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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4. 수요일

SamuelSeong










0. 그라민은행


요즘 본 기자의 최우선 관심사는 아내님의 저녁을 뭘로 만들어드리냐다. 2010년에 TV를 치워버린 이후로 트위터나 가끔 보는 뉴스 사이트를 통해서가 아니면 최근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알 방법도 없는데다, 딱히 관심도 없다.

 

기사 쓰는 것도 귀찮아서 거의 분기별로 쓰는 넘이 굳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기나긴 출퇴근길에 들었던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093b -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기록 2()>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로 놓고 보면 아주 명확해지는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놓는 바람에 애매하게 풀어버릴 때가 있다. 팟캐스트 속에 등장했던 그라민은행이 바로 그 경우였다.

 

당해 방송 주제는 '빚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에 집중되어 있었다. 방송 내용 중 그라민은행에서 시작했던 마이크로크레딧이 '새로운 빚을 만드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언급이 되었는데 나는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겼다.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빈곤 퇴치에 앞장선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래딧도 위의 맥락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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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제공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소액 대출은행이다. 그라민은행을 설립하여 빈곤퇴치에 이바지한 공으로 2006년 유누스 총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1983년 법인으로 설립된 그라민은행은 극빈자들에게 150달러 안팎의 소액을 담보 없이 신용으로만 대출해줬다. 특히 그라민은행은 자립의지와 충실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빈곤층 여성을 대출 대상으로 했고, 그 과정에서 채무자 5명을 연대해 서로 대출 책임을 나눠 갖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 - [출처]네이버 시사 상식사전





1.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와 비판적 시각들

 

1945,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인도가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을 맛볼새도 없이 인도 전역이 격렬한 갈등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이슬람교 중심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나갔고, 신생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동파키스탄이 떨어져나가 방글라데시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 지역의 현대사는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일부 정치 세력에 의해 '월가가 싫어할 경제학자'라는 뜻밖의 칭호를 얻은 이들 중 199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야 센(Amartya Kumar Sen)이 있다. 그는 경제학자로도 유명하지만 서방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되어 비춰지는 자신의 조국, 인도에 대한 다양한 대중서적을 쓴 양반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석학께서 인도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시각들 중 하나인 '저런 나라가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한거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겠냐?'에 대해, 인도의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이유를 꽤 재미있게 답 하신 바 있다. 하지만 이 석학의 말씀과는 달리 한 때 한 나라였던 다른 두 나라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엎어지는게 일상다반사다. 사실 인도도 헌정중단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 중에서 인도 대륙의 오른쪽 위에 위치한 방글라데시의 군사 쿠테타 역사는 유구하다. 1975년에만 세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21번의 군사쿠데타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맨날 이렇게 총들고 나와 헌정질서를 정지시키는 것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지 않겠는가? 그래서 2007년 쿠데타에서는 나름 신기한 시도를 했다. 쬐끔 엽기적인 인기투표, '누가 니들 대표자가 되었음 좋겠어?' 를 했던 것.

 

명망가를 앞세우고 자기들은 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게 더 낫다는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외국인들에겐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1차 투표에서 가장 먼저 떨어져나간 명망가가 다름아닌 무하마드 유누스였던 것이다. 200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가 20071차 투표에서 아웃되다니... 왜 그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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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가 간만에 기사를 쓰게 만든 <그것은 알기 싫다 093b>편 에도 나왔지만 마이크로크레딧의 선구자, 그라민은행은 현재 거대한 그룹이다. 특히 그라민통신은 방글라데시 통신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절대적 시장 강자다.

 

문제는 이 그룹의 계열사들이 뭔가를 생산해서 외국에 팔아 돈을 버는 구조로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국 사람들의 돈을 걷어 외국으로 갖고 간다는 비판을 받기 쉬운 업종들이라는것이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국내의 비판은 이 것에 집중된다.

 

반면 외국에서 보는 비판적 시각은 대체로 탈세혐의와 같은 기금 운영의 문제, 혹은 마이크로크래딧 역시 서민들을 빚에서 탈출시키는 궁극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집중된다.

 

이쯤되면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만 하다. DJ도 로비해서 받은 노벨 평화상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글쎄... 노벨상이 그렇게 만만한 상이면 왜 전세계가 수상자 소식에 집중하겠는가?



2. Grameen Shakti

 

<Bunker 1 특강 - 환타의 서바이벌 투어, 터키편>의 강사 이름은 샥티다. 특강에 참석하셨던 분, 혹은 방송을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샥티란 빠와, Power를 뜻한다. 그라민 빠와라... 도대체 뭐하는 회사일 것 같은가? 이 회사는 글라데시 최대의 신재생에너지 회사.

 

주요 사업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라민금융과 연계된 태양광 패널 공급


2. 축분을 이용한 집합형 취사 가스 공급 시스템 개발 및 보급


3. 1&2를 통한 CDM (The 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개발체제)

(CDM에 대해선 차후에 별도 기사 작성을 하도록 하겠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발전과 온실가스 감축 기술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개발된 시스템인데, 요즘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 정도만 이해해도 일단 이 기사 이해하는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필요한 전기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가난한 나라의 농촌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전기는 '통신을 위한 핸폰 배터리 충전 & TV와 라디오' 그리고 조명용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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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전기는 50~80W 정도의 태양광 패널 하나면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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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많은 인간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살고, 절실하게 필요한 전기의 양이 그닥 많지 않다고 한다면 일반적인 방식의 전기 공급, 그러니까 대형 발전소에서 송전탑, 변전소를 통해 전기 공급하는 형태는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Grid Parity네 뭐네 하는 이야기 필요 없이, 이런 지역의 전기 공급은 이게 맞다. 손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더불어 취사를 위해 정글에서 나무를 베지 않고 마을 양계장이나 외양간에서 발생하는 축분을 모아서 취사용 가스로 공급하면, 우리는 훼손되지 않은 정글이 주는 갖가지 혜택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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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극히 적은 상태로 사람을 내몬다. 공부할 수 있는 불빛,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작은 흑백TV와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전기를 공급하는데 손이 무진장 많이 간다. 영리만 쫓는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 아니다.

 

본 기자는 20093월 말에 방글라데시에 처음 갔을때 이들이 활동하던 현장을 모두 쫓아다닐 수 있었다. 현장을 체험한 결과 이렇게 손 많이 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노벨상 위원회가 그냥 심심해서 사람 찍는것도 아니고.

 

이틀간 그라민 샥티를 찾았다가 잠깐이나마 유누스를 만나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열정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사기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은 비판의 지점과는 좀 차이가 있다.



3. 타협과 균형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 중 하나인 전세는 원래 은행금리가 겁나 높던 시절의 산물이다. 은행이율만큼의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집주인과 집을 통으로 살 돈은 없는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고율의 은행이자 덕분에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으로 가는 시절로 바뀌다 보니, 우리는 20~30년 전의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개발도상국에서 뭘 좀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벽은 금리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이 워낙 인플레이션이 심한 국가들이라 은행의 금리 조차도 '물가인상율 + 금리'의 구조로 되어있어 특혜라고 할 수 있는 '정책금리' 사업조차도 금리가 17%대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은행대출 금리는 우리의 사채 금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원래 그라민은행은 작은 조합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출자한 돈을 빌려주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게 빈곤퇴치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자 세계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제1세계의 시민들이 그라민은행에 출자해서 물가상승률 수준의 금리를 주었다. 그러자 돈을 빌려서 자활에 나서는 이들이 졸라 많아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선의가 이렇게 모이면 세상이 졸라 좋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

 

이런 판이 벌어지면 누군가는 분노게이지를 축적하게 된다. 기존에 '높은 금리' 금융 상품을 팔던 이들은 자기네 고객을 빼앗기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작은 협동조합 수준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것을 두고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규모가 커져서 법인등록을 해야 하는 사이즈가 된 '금융기관'이 초저리 상품을 유지한다니!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특혜가 된다.

 

1세계 시민들의 선의가 모여 총자본금이 기존의 금융기관들과 대적하는 수준이 되면 그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존 체제와의 타협 밖에 없다. 졸라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그래서 규모가 커지면서, 출자한 제1세계 시민들의 선의와는 거꾸로 그라민은행의 금리는 계속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마이크로크레딧 자체가 상표권이 있는게 아니잖은가. 그래서 인도 대륙의 사채꾼들이 죄다 마이크로크래딧이라는 간판을 달게 되었고, 쬐끔 심한 놈들은 연리 몇 백 퍼센트대의 '금융상품'을 마이크로크레딧 이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사채업자의 손으로 들어간 어느 나라랑 비슷한 셈이다.

 

사실 비판하는 이들의 시각과는 달리 그라민그룹의 수많은 자회사들의 궤적은 메인 사업영역에서 자신들이 기존 체제와 타협한 후에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개별적 노력들 역시 하나씩 기존 체제로 흡수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4. 세상은 위대한 한 사람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본지 독자들에게 엔간히 시달려봤던 기자는 몇 년 전에 다른 매체에 글 하나 썼다가 수천 개의 욕 댓글을 경험한 바 있다. 2005년말에 개봉했던 영화에 대한 논쟁을 두고 도대체 뭐하는거냐고 썼던게 욕 먹었던 이유였다. 그 영화는 친일영화라는 참 뜬금없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흥행에 참패했던 '청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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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던 것은 시대가 엉망이면, 혹은 전체 시스템이 엉망이면, 아무리 뛰어난 인간들의 삶도 비극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사회적인 낙인이 한 번 찍히면 원래 하고자 하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할까...

 

그런데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지점에서만 벌어졌던 일일까졸라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며, 부정부패가 장난 아닌 나라가 사회운동가의 저금리 은행(이제는 저금리도 아니지만) 하나로 홰까닥~하고 바뀐다는 건 어린이 명작 동화에서나 가능하다거꾸로 어느 하나에 집중되면 기존의 체제에 흡수되어버려 현재의 상황보다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사회 시스템이 촘촘하게 굴러가는 국가일수록 더 빨리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중심으로 해야 하고, 어떤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뭐 그런 형태의 개혁은 대체로 구라에 불과하다. 어떤 하나가 통으로 체제에 편입되고 나면 그 가치에 매달리던 인간들이 모조리 기득권이 되어버리는 것이 어디 한 두번 보는 일인가 말이지...

 

"모든 것을 바꾸는 단 하나의 변화" 같은 것은 없다. 어떤 모델이든 그것이 작동하는 역학관계에 대해 유의해서 보지 않으면 교훈을 얻지 못한다.

 

공구리마왕과 해맑은 여왕전하의 시대를 지나 다른 왕을 옹립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세상은 수많은 이들의 어마무식한 삽질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쌓여야 눈꼽만큼 나아지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졸라 많은 책을 팔아먹은 조앤 K. 롤링 언니가 그 초대작 장편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거 아닌가



"애들아, 세상의 다른 이들은 언제든 너희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니 


거기에 맞서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국제부 Samuel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