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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9. 금요일

요제프 K











스코틀랜드의 독립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끝났다. 안타깝게도 스코틀랜드는 독립에 실패했다.(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개표 작업이 진행중인데 실패가 확실한 듯) 세계화 물결이 전 세계를 뒤덮는 21세기에 세계화의 상징 EU가 버티고 있는 유럽에서 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패기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물론 독립을 주장했던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공약이 좀 터무니 없긴 했으나 현대사회의 국가관과 정치 경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간단한 역사 및 배경


이 이야기는 대부분 익숙할 것으로 예상되니 간단히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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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다른 말로는 영연방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위와 같이 잉글랜드 외 4개의 지역이 한 국가를 이루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엔 수백 개의 작은 '국가' 가 존재했다.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엔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작은 도시 국가와 (프로이센과 하노버 같은); 여러 제후국이 난립하여 근대에 이르기 전까지 그 난잡한 형국이 유지 되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별로 크진 않은데 그레이트)의 맹주 잉글랜드의 통일 시도에 대하여 스코틀랜드인들이 때론 격하게, 때론 부드럽게 저항을 하다, 어찌어찌... 비교적 늦게, 1707년 잉글랜드와 합병되었다. 자세한 건 (여기)를 보시면 되겠다.


독일.png

통일 전 독일 지도이다. 딱 봐도 눈이 아플 정도로 뭐가 많다.


유럽 대륙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와 민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잃고 현대국가의 테두리 속으로 별 저항 없이 들어간 데 비해 스코틀랜드가 그 정체성을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레이트 브리튼 섬 자체가 유럽 대륙에서 떨어져 있고, 그 중 북쪽 끝에 있는 스코틀랜드는 아무래도 인구 이동이 적어 주변 민족과 섞일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켈트족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노력도 큰 역할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300년 간 독일 한가운데에 스코틀랜드가 존재했다면 아마 그들도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왜 독립하려 하는가?


스코틀랜드의 독립 시도는 계속 이어져 왔다. 지금까지 있어온 “우리 독립할래?” 라는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의 질문에 과반수의 스코틀랜드인들이 반대한 것은 '잉글랜드 없으면 우리 거지 된다능'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그러나 상황은 북해에 유전이 개발되면서 약간 변했다. 바다에서 돈이 나오기 시작하니, 경제적으로 잉글랜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왠지 동쪽에서 기름 팔아서 잘 먹고 잘 사는 1인당 GDP 10만 달러(세계2)에 빛나는 노르웨이가 부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우리나라에도 요즘 '북유럽 감성'이 잘못 들어왔다가 이리저리 조리돌림 당하고 고생을 실컷 하는 중인데, 얘네가 스코틀랜드에도 들어갔나보다) 이런 여론을 잘 반영한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공약은 북유럽 스타일의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 각하께서도 후보 시절 말씀하신 (그리고 까먹으신) '증세없는 복지'(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새누리당한데 욕먹기 딱 좋은... ?)라는 공약을 들고 나왔는데, 다만 차이점은 얘네는 바다에서 기름이 난다는 점 정도가 있겠다. (우리나라엔 흡연자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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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비핵화(스코틀랜드엔 영국 핵잠수함이 주둔중이다), 파운드화 통용 문제, 스코틀랜드 국가 부채 문제 등 각종 이슈가 많은데 그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독립 안하니깐) <딴지일보>는 민족 정론지니깐 그런 이야기 말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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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른 적절한 정리는 <한겨레>가 만든 이 표를 보도록 하자.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는 이상하게 스코틀랜드 독립 찬성 의견이 많았다(뭐 그래봐야 딱히 영향은 주지 않지만). 아무래도 '독립'하면 왜정 시대가 떠오르기도 하고, 멜 깁슨의 '후리덤!!!' 사자후가 떠오르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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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13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멜 깁슨은 실제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 역을 맡았다. -편집부 주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경우 약간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오랜 침체기에 있는 스코틀랜드의 낙후된 경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어맹뿌가 뉴타운 지어준다고 하니깐 그를 뽑은 서울시민들과 비슷한 거라 보시면 되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 투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투표로 독립을 결정한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우린 언론을 통해 독립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평화적/폭력적 행위와 그들을 탄압하는 정부들을 보곤 한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혹은 단체)만 해도 달라이 라마, 체첸 반군, 신장 위구르족, 그리고 최근 칼리프 국가를 만들겠다고 전지구적 어그로를 끄는 IS까지모두 그다지 평화롭지만은 않은 과정들을 거치고 있다. 그런데 투표라니! 이게 가능한 이야긴가 싶다.


그러나...


you can do it.jpg


가능하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는 전근대적 통치이념을 펴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닌 나름 교양 돋는 문명국 영국과 쇼부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무조건적으로 영국을 빨아 주는 게 아니란 걸 이해하시리라 본다. 얘넨 그래도 말이 통하는 애들이잖아)


현대적 국가관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이후 미군이 가져다준 '자유경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사회'를 별다른 고뇌과 시행착오(사상적)없이 건설하여서 그런지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이 똥을 싸면 당연히 뒤를 닦듯 무의식적으로 선거날 습관적으로 투표소에 가서 1번을 찍곤 나랏님에게 권력을 위임하여 나랏님과 그 졸개들이 국민들을 착취하도록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좀 복잡하지만 현대 민주사회의 근간이 되는 국가개념의 기본골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hobbes.png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중 홉스, 로크, 루소 같은 사람들은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비록 각 사상가의 주장이 조금씩 다르긴 했어도, 그 공통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은 국민들의 동의과 계약에 의해 형성된다'


라는 것이다.(물론 이 뒤에 살이 많이 붙어서 현대적 국가관이 만들어진다)


변호인.jpg


여기서의 계약은 '국가는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고 국민은 권력을 위임한다' 라는 것이다.



세월호.jpg


고로 이 출처 불분명한 짤방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국민과의 계약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정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스코틀랜드인들은 어찌 되었든 수백 년 간 그들의 권력을 영연방 총리에게 위임해 왔고, 그 위임 받은 권력으로 영연방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였든 뭐였든지 간에, 스코틀랜드 국민의 상당수가 '이제 권력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와 의회에 위임하자'라는 주장을 하게 되어 그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무슨 코쟁이들 펜대 굴리는 소리 같아서 상당히 괴리감이 들겠지만 이것이 바로 현대식 국가관에 의거한 정상적인 정치권력과 국민간의 거래 과정이다.


그에 비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형태의 국가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스레 생각하며 그것을 공공연하게 강요하는 사람들도 많고, 국가 권력자를 신성시 하는 북조선+파쇼스러운 정치 세력도 존재한다.(반인반신과 그의 딸)


만약에 제주도에 유전이 발견되어서 사우디만큼 석유가 많아지고, 제주도민당이 창당되어 과반수의 제주도민들과 함께 '우리도 독립해서 북유럽 감성의 석유 부자 복지국가를 만들자!'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그들의 독립 선언은 받아들여질까?


이론적으론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절대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 여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의 머릿속엔 아직 우리나라는 '국가'라는 상위 개념이 '국민'이라는 피지배층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관 간의 대립이 우리나라의 여권 지지자와 야권 지지자의 근본적인 사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나랏님)이 연애 못한다고 하니깐 모독이 도를 넘는다고 화를 내는 것이다.(연애 좀 못하면 어때..ㅠㅠ)


어쩌면 일어날지 모를 파동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시도했다고 해서 유럽에 있는 소수 민족들이 따라 나서거나 비슷한 행동을 할 확률은 적다고 본다. 스코틀랜드도 어찌 되었든 독립에 실패 하였고, 각 국가/민족 들의 상황이 다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일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배 하에 있는 소수 민족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신장 위구르.jpg

신장 위구르 족의 시위장면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보수층처럼 전근대적인 국가관을 믿고 있는 정부 권력 하에서 핍박 받으며 몇몇은 목숨까지 바쳐가며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런데 저 멀리 서양에선 '투표'로 독립을 하려는 시도가 있고, 그에 대해 영국 정부는 무력 진압 같은 물리적 탄압을 하지 않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대처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겐 딴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물론 딴나라 이야기다) , 평소 가지고 있던 이상보다 높은 (서양에서 온); 무언가가 그들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북유럽 석유재벌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한 가을 밤의 꿈'으로 사라졌다. 21세기 들어 경제 논리에 입각한 국가 건설 시도와 종교 권력을 기반으로 한 국가 건설 시도(IS)가 동시에 일어나는 걸 지켜보는 건 나 같이 세상 일에 관심 많은 잉여에겐 꽤 흥미로운 일이다.(물론 IS는 사라져야 한다는 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린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일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투표를 통한 독립 시도를 바라보며 이번 기회에 우리 각자의 머리 속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립에 실패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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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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