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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3. 화요일

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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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정신상태에 대해 재고해봐야 한다.' 7시간 기사'를 쓴 사람도 아니고 단순히 기사를 번역한 기자를 잡아 족쳐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애초에 뭘 했길래 그렇게 찔려서 온갖 데를 다 쑤시고 다니는지, 이렇게 일을 키우면서 도를 넘은 비판에 국격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미 기자를 탄압하는 것을 외신들이 속보로 전하는 와중이다. 더 떨어질 국격이나 있으면 좋으련만, 바닥에는 더 낮은 바닥이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에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 삼풍백화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1. 시작부터 비리


삼풍백화점은 삼풍아파트가 지어진 이후에 남은 땅을 어디로 굴려먹을까 생각하다가 탄생한 건물이다. 물론 공사가 시작된 이후의 이러한 부지 변경은 무허가 건축이라 하여 제재가 가해졌으나, 이런 것에 굴하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명패 못 다는 법이다. '전통적인 사과 박스'가 몇 번 오가고, 삼풍은 원하던대로 백화점을 지어 올리는 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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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입맛대로 부지를 변경했으니 이제 건물을 올릴 차례였다. 처음 삼풍이 그 자리에 백화점을 올릴 예정은 아니었다. 삼풍 랜드라는 지상 4층, 지하 4층짜리 상가를 지어서 옆에 있는 아파트와 연계하는 주상복합으로 나가려는 계획이었지만, 삼풍기업의 오너였던 이준 회장이 이왕 지을 거면 통 크게 백화점으로 가자면서 시공사인 우성건설에 백화점으로 건축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나 건물은 이미 지어질 만큼 다 지어져 있었기에 우성건설 측에서는 이런 노망난 소리를 들어줄 리 없었고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이에 삼풍은 쿨하게 계약을 파기, 자회사인 삼풍건설로 백화점을 완성시킨다. 4층짜리 건물에 대강 1층을 올려서 5층짜리 건물로 말이다.


그와 더불어서 삼풍은 5층의 용도를 식당가로 정한다. 뭐, 당시에는 딱히 이상한 결정도 아니었다. 많은 건물들이 음식은 전망 좋은 곳에서 먹어야 제대로라고 생각하고 최정상부에 식당을 올렸으니까. 다만 문제는 삼풍의 5층이 가라로 지어올린 허깨비였을 뿐만 아니라, 식당가를 지으면서 온돌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당의 특성상 무거운 요리설비들이 5층에 자리잡았는데, 그 무게는 무려 건물 세 층을 올렸을 때와 맞먹는 것이었다. 4층 짜리 건물에 4층을 추가시킨 격이다.


거기에 더 웃기는 촌극이 벌어진다. 삼풍이 준공 검사도 받지 않고 단지 가사용 승인만을 받은 상태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무너지기 전년도인 1994년 11월에는 무허가 건축물로 분류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2. 붕괴의 원인


삼풍은 원래 무량판 공법이라는, 영어로 하자면 '플랙 슬래브 구조'라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 무량판 공법은 대들보 없이 바닥이 직접 기둥으로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로서, 기둥과 위층 바닥 사이에는 이런 하중을 전달하기 위한 보조 지판이 설치되어 기둥의 철근과 바닥의 철근이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바닥의 철근의 끝은 반드시 ㄱ자로 굽어있어야 한다. 이 끝부분은 건물이 무너질 때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기에 매우 중요한데, 역시나 삼풍은 돈이 더 든다는 이유로 ㅡ자형 철근을 이용했다.


건축물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기둥이다. 벽 또한 일종의 기둥이라고 할 만한데, 건축 당시에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잡은 벽들의 대부분을 '매장을 좀 더 넓게 사용하기 위해' 시공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서 각층에 구멍을 뚫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구멍이 뚫린 만큼 하중은 기둥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기둥까지 깎아냈다. 4층과 5층에 지어질 20개의 기둥 중 8개 기둥의 원 두께는 800mm, 그 안에는 철근 15개가 박혔어야 했으나, 기둥의 두께를 600mm로 줄이고 철근의 수는 8개로 줄이는 등, 무너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건축물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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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때부터 이렇게 문제를 안고 있던 삼풍백화점은 개장을 하고도 문제가 될만한 행보를 계속한다. 그중에 하나는 2층에 삼풍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을 개장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책은 나무로만 만든다고 알고들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나무로 종이를 만들 때 돌가루를 섞어야만 우리가 아는 종이가 나오는데, 나무로 만든 펄프의 올록볼록한 면을 줄여서 촉감을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으로, 돌에 따라서 그 촉감과 품질이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책은 비슷한 크기의 벽돌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된다. 그러다보니 책을 보관하는 서고 또한 튼튼한 나무를 써야지 아무거나 쓰면 그냥 내려않는다. 이렇게 무거운 책들을 지탱하느라 안 그래도 혹사중인 기둥은 더욱 더 혹사당한다. 


매출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삼풍문고는 1년 2개월 만에 삼풍백화점에서 철수하지만 그 또한 붕괴를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음은 말하지 않아도 잘들 아시리라 믿는다.


앞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삼풍을 보내버린 실질적인 요인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일단 가장 큰 요인은 냉각탑이었다. 애초에 이 냉각탑은 지하에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지하의 공간 확보를 위해서 옥상에 올려졌는데, 하나의 무게가 36톤에 냉각수를 채우면 100여 톤에 육박하는 물건이 된다. 이것이 하나라면 모를까 세 개나 올라갔고, 처음에는 동편에 설치하였으나 실외기의 소음문제로 민원이 들어오자, 서쪽으로 옳겼다. 옮기는 것 또한 가관이었는데 돈이 아까워서 크레인을 부르지 않고 냉각탑에 롤러를 달아서 옮겼다. 그 무거운 걸 옥상에서 굴려버렸으니 당연히 그나마 멀쩡하던 기둥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다.


삼풍 1.png
삼풍 2.png
삼풍 3.png

출처 - <리그베다위키>


이렇게 충격을 주다보니 건물의 옥상부에는 펀칭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펀칭현상은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이 과도한 하중을 받아, 바닥이 기둥에 전달할 하중을 넘어설 때 바닥이 내려앉는 현상이다.


삼풍4.png

삼풍 5.png

출처 - <리그베다위키>


이런 펀칭 현상은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들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삼풍백화점에 내려진 사망선고와 다름 없었다.


3. 욕망


이렇게 건물의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까지 오자 삼풍의 경영진은 감리업체인 우원건축을 부르고 5층의 영업을 중지와 함께 에어콘의 가동을 중지시킨다. 그리고 우원건축의 임형재 소장과 이학수 건축기술사가 도착한다. 


임형재 소장은 건물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사람들의 대피를 요청하나, 이학수 건축기술사는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건물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현재는 침하가 멈췄다는 말을 한다. 결국 이준 회장은 백화점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할 것을 명한다. 이 때가 무너지기 2시간 전이었다.


그리고 무너지기 17분 전인 5시 40분 쯤, 다급히 침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전해졌고 임원진은 돈이 될만한 것들을 챙겨서 서둘러 백화점 건물을 빠져나간다. 그대로 침하가 멈추는 듯 싶었으나 붕괴 16분 전인 5시 41분 경 침하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손실을 원치 않았던 삼풍은 1, 2층의 영업을 감행했다. 그 와중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손님과 직원 일부는 빠져나갔다.


그리고 5시 50분 경, 1천여 명이 넘는 손님들과 직원들은 경영진도 아닌 5층의 직원들로부터 대피하라는 다급한 말을 듣는다. 2층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도망치긴 했으나 지하에 있던 이들 대부분은 듣지 못했다. 5시 57분에 5층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단 20초, 20초 만에 삼풍은 무너졌다. 1500여 명의 사람들을 잔해 속에 품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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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




ps. 종이는 건축설계를 변경해야 할 정도로 하중이 꽤 나가는 물건이다. 예시로 정부대전청사는 특허청이 소속되어 있는 관계로 방대한 양의 서류를 보관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건물보다 훨씬 더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돼끼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