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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25.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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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3. 중력의 임무 (1)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4. 중력의 임무 (2)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5. 중력의 임무 (3)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6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7. 시간을 여행하는...안내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8. 소설 '20년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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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1. 나는 대체 뭐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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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3. 고대의 실험 (下)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4. 고대의 실험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단편 소설 <30초>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9. 단편 소설 <30초>,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 영구기관/무한동력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1. 인류의 과학...실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2. 과학은 감동이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3. 계몽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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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계인들과 만나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이런 소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문제지 싶다.


예전에는 외계인이라면 주로 화성인이나 금성인처럼 태양계 내부에 사는 생명체들을 말하곤 했다. 외계인 SF의 원조격이라고 할 H.G 웰즈의 <우주전쟁(원제:War of the Worlds)>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은 가장 가까운 행성인 화성에서 온 존재들이었다. 1950년대 소위 ‘외계인 접촉자’로 유명했던 조지 아담스키도 금성과 목성 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랬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가까운 데 실제로 외계인들이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만 해도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열라 낮았기 때문이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조차 우주에 천억 개 이상 널린 은하 중 하나일 뿐인 우리 은하계가 우주 전체라고 믿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이후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가 아는 우주의 크기가 얼마나 커졌는지 미뤄 알 수 있다.


여하튼, 이제 우리는 우주가 엄청난 은하와 별, 행성을 거느린 어처구니 없이 큰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과학자들도 이 큰 우주 어딘가에 인간과 비슷하거나 더 발달된 지적 생명체들이 있을 거라는 점에 합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우주의 크기가 서로 교류하거나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은 열라 역설적이다. 인간이 30여 년 전에 보낸 보이저 1호는 이제 겨우 태양권계면을 넘어섰고, 상징적인 목적지인 글리제 455에 도달하려면 장장 4만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우리의 현재 과학기술로는 말할 것도 없고 빛의 속도로도 가장 가까운 별 조차 4.3년이 걸리는 상황이니, 다른 항성계를 좀 드나들려 친다면 광속으로도 무리고 그보다 10배, 100배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가 나서서 외계행성을 방문하면서 다니려면 너무 많은 세월이 걸릴 것 같고, 결국 진작에 저런 한계들을 다 극복한 외계인들이 우리를 만나러 와주기를 기다리는 게 빠르고 현실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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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만약에 외계인들이 소수나마 지구를 방문하거나 지구 주변을 지나쳐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하루에도 수백 개씩 등장하는 UFO 사진들 중 극히 일부라도 진짜 외계인의 비행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럼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소극적인 걸까? 여기까지 왔으면 정체를 드러내고 서로 인사도 하고 교류도 하는 게 맞지 싶은데, 왜 숨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저렇게 어정쩡하게 있냐 말이다.


여기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그 중 그럴듯한 이론은 다름아니라 우리가 너무 수준이 낮아서 외계인들이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거다.


생각해 보자. 멕시코의 물리학자 알큐비에르의 이론을 발전시킨 나사의 해롤드 화이트 박사는 최근의 계산을 통해, 광속의 10배로 움직이는 워프 드라이브를 한번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목성을 한꺼번에 없앨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수준의 에너지는 저 옛날 고리짝 호모 에렉투스가 불 피운 것까지 포함해서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를 다 합친 것보다도 크지 싶다.


결국, 항성간 여행을 통해 지구까지 도달한 외계인들은 이런 수준의 에너지를 일상적으로 운용하는 존재다. 다시 말하자면 이 친구들이 맘만 먹으면 목성보다 훨씬 작은 지구와 그 위의 인간들 정도는 한 순간에 없애 버릴 수 있다. 힘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나고, 과학기술이나 지식은 물론 문명의 성숙도나 사고방식의 수준 차도 엄청날 거다. 우리가 돌도끼와 돌칼을 들고 다니며 주변 부족을 공격해 뇌를 파먹던 원시인들을 떠올리는 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공격당할 가치조차 없다. 그럼 만약 이들이 우리와 관련해 굳이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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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임무>에 등장한 외계인에 의한 구원의 개념은 우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유사한 소재의 SF작품들도 있고, 특히 걸작으로 아서 클락의 <유년기의 끝>을 꼽을 수 있다(꼭 한 번 읽어들 보시라). 나아가 이런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들조차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헤일-밥 혜성 뒤에 숨어오는 UFO가 자신들을 구원할 거라고 믿고 집단자살한 ‘헤븐스 게이트’라는 사교집단이 있었고, 캐나다를 중심으로 그보다는 훨씬 덜 과격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라엘리안 무브먼트도 이런 쪽이다.


우원은 이런 종교들에는 전혀 흥미 없지만 '언젠가 발달된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와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격이다. 만약 외계인들이 지금 주변에 있는데 우리에 간여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자격 미달이기 때문은 아닐까. 예컨대 우리가 원시인을 문명화하고 싶어도 그들이 다른 종족의 뇌를 먹으면 그 지혜를 갖게 된다고 믿는 수준이라면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마땅찮은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 때의 자격은 어떤 걸까.


일단은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과학기술은 갖춰져야 할 거다. 돌도끼와 돌칼을 들고 설치는 자들에게 상온 핵융합이나 암흑 에너지를 아무리 알려준들 소용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스타트렉> 시리즈에서는 그 지점을 광속 돌파, 즉 워프 엔진을 보유하는 때로 규정하는데 이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일단 광속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명은 항성간 여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립된 존재고, 주체적으로 외계에 나가 다른 문명과 접촉할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데서 온 외계인들이 좋은 의도로라도 간섭을 시작하면 서로 수준 차가 너무 나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결국 뒤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원은 소설 <계몽의 임무>에서 그 때를 인류가 우주에 처음 진출하는 순간, 즉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시점으로 설정했다. 이유는 물론 우리의 현실에 빗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광속 돌파는 못했지만 여하튼 우주로 나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만으로 과연 외계의 발달된 문명과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워프를 실현할 정도의 기술과 에너지 운용력을 보유한 저들이 전쟁과 파괴로 자멸하지 않았다는 건 과학 외에 ‘인성’도 대단히 발달된 존재라는 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중요한 잣대로 평가되지 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성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걸까?


이를 위해 우원이 선택한 것은 다른 생물종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야기속의 시대는 1957년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2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다. 수천만 명이 죽은 전쟁을 갓 치른 상태에서 우리는 아직 외계인과 마주할 자격을 갖지 못했을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인들은 인간 앞에 나타나서 도움을 주려 한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2천 년 이상이나 지구를 지켜보며 지구인들에 연민을 가져 온 한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극중의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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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야훼가 기계를 작동하여 지구의 동향을 살피는 걸까.


그러나 인류는 라이카를 죽음의 길로 보냄으로써 그들을 크게 실망시킨다. 개 한 마리의 목숨이 세계대전이나 원자탄 투하보다 더 악한 일이라 그랬을까?


여기서 우원이 포인트로 두려 했던 것은 인간의 무감각이다. 전쟁과 죽음의 ‘동종’상잔을 경험한 후에도 인류는 그리 배운 게 많은 것 같지 않다. 특히 지능은 인간만큼 높지 않더라도 감정을 지닌-개나 고양이는 분명히 감정을 갖고 있다. 다른 많은 동물들이 또한 그렇다- 동물을 생환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실험을 위해 사지로 내보낸 것, 그리고 그것이 과학과 탐험의 명분하에 이루어진 것을 그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인 거다.


만약 과학의 이름으로 이런 일이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될 수 있다면, 그렇게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결국 어떤 목적으로 쓰여지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그들의 앞선 기술과 문명을 전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오용될까. 바로 이런 점을 현명한 야훼와 예수는 꿰뚫어 봤던 거다.


머, 우원은 유별난 동물보호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말 인간다운 모습이 되려면 동식물과 자연에 대해 그야말로 대인배적인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될 거라고 믿는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다. 개체수로 가장 많은 존재는 35억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박테리아이며, 비록 기계문명을 만들진 못했지만 돌고래의 지능은 인간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또 지금 이 순간이라도 지구가 조금이라도 화가 나서 지표면의 극히 얇은 부분만 흔들어 버리면 인류는 즉시 궤멸한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과 덧없음을 가슴 깊이 깨닫는 게 진짜 성숙의 시작이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작고 하찮은지 느끼고 일단 절망하자. 하지만 그 작음을 얻기 위해 걸어온 수십억 년의 진화, 인간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협업한 수조의 (단)세포(생물)들, 그리하여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에 긍지를 갖자. 이런 마음으로 겸손하면서 동시에 벅차지 않다면 우리 존재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으며 또 미래가 있겠냐는 거다.


그래서 예수는 비록 떠나지만, 자신이 행동으로 실천한 가치를 여전히 우리에게 요구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굳이 내가 죽으면서까지 남을 살릴 필요도 없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들, 동식물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그려가면 된다. 그런 세상이 바로 우주의 본질에 가까운 성숙한 문명이다.


우원 생각에는, 만약 우리가 그럴 수만 있다면 외계인들의 도움이 필요하지조차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먼 훗날 돌아온 그들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이제 알아서 잘 하겠군, 하며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신도 악마도 메시아도 미륵도 필요치 않은,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우고 잠시나마 믿었던 진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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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