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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4. 금요일

챙타쿠








살면서 내가 호구짓 한 일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부모님에게 호구짓 한 일을 물어보자. 아마 나와 비슷할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고조 아버지의 호구짓을 디벼보자. 잘 보면 조상님들 모두 한 번씩은 호구짓을 하셨거나 혹은 호구셨다.


역사와 패션이 돌고 돌듯이 호구 또한 돌고 돈다. 늘 그렇듯 언제나 호구는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우고 단기가 시작된 순간부터 항상 호구는 있었다. 호구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기니까.


물론 호구 중에는 백성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절대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될, 나라의 통치자인 왕 중에도 호구는 있었다. 이름도 찬란하게 이들을, 우리는 '호구왕'이라 칭하기로 한다.


본 글에서 이런 '호구왕'을 다루는 이유, 간단하다. 그저 평범한 한 명의 개인이 호구짓을 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슬퍼지지만, 한 국가에 호구왕이 출현하면 자신은 물론 온 국가가 슬퍼지기 때문이다. 호구왕의 호구력에 따라 한 세대가 아니라 몇 세대가 슬퍼지는 경우도 있으며, 진짜 재섭으면 아예 국가가 사라지기도 하니 호구왕의 탄생을 막는 것은 가히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설령 뜻하지 않게 호구왕이 탄생했다 하더라도, 왕이 호구짓을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뜯어 말리고 경계하여 그 참화가 널리 미치지 않도록 졸라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하여 애국의 열과 성을 다해 역사 속 호구왕 랭킹을 이곳에 맹그노니, X되기 시르면 경건하게 정독하여 국가적 X됨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는 생각으로



호구왕 3위. 고구려 영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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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 5000년사 역대왕조실록)


3위에 오를 호구왕은 고구려의 영류왕이다. 영류왕이라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맞은 나에게도 꽤 낯선 이름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알 수도 있겠다. '연개소문에게 시해 당한 왕'. 사실 신하에게 시해 당한 왕은 우리나라 역사에 더러 있지만, 특히 영류왕은 말로가 매우 비참했다.


당시는 당 태종이 집권하던 시기로 당은 매우 강성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당과 고구려는 당연히 사이가 안 좋았고, 한 판 붙네 마네 했더랬다. 당연히 고구려 내부에서도 논쟁이 오갔는데, 영류왕을 대표로 하는 귀족들은 친당정책을 추진했고, 연개소문을 대표로 하는 강경파는 싸우기를 원했다. 영류왕은 반대파지만 소수인 연개소문을 치려했으나 연개소문이 그 사실을 먼저 알고 먼저 영류왕을 시해한다. 그냥 시해만 하면 다행이게. 무려 시신을 토막 내어 시궁창에 던져버리기까지 했다(저자거리에 매달았다는 말도 있음). 한 때 한반도와 중국 일부까지도 지배했던 고구려의 왕이 뒷동네 건달 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연개소문은 보장왕을 후대 왕으로 세웠으나 사실 연개소문의 독정에 가까웠다. 연개소문은 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나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했고, 연개소문이 사망한 후 고구려는 멸망했다.



호구왕 2위. 고려 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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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은 외척과 문벌귀족 간에 권력 투쟁이 치열하던 때 왕이 되었다.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환관과 측근 세력, 무신들을 키웠으나 문벌귀족들의 견제로 실패하였다. 이후 문신들을 대우하기 시작했고 한 때 친했던 무신들을 천대했다. 당연히 무신들 사이에선 반발이 생기는데 이는 나중에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의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한다는 이유로 신하들에게 벼슬을 주고 총애를 하는 등 나랏일을 돌보는데 기준이 없었다. 총애를 받는 신하는 받는 대로, 안 받는 신하는 안 받는 대로 불안과 불만이 생겼고, 결국 아첨하는 신하들만 남는다.


거기다 한 가지만 하랬다고 향락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정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명소가 있다는 말만 들으면 가서 정자나 별궁 등을 지었다. 그 시대에 지금처럼 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할 리가 있나. 당연히 그 동네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했으며, 심한 경우 땅과 금품을 뺏기도 했다. 


의종은 정중부와 이의방이 일으킨 무신정변에 따라 유배를 당했고, 복위운동도 실패한 후 허리가 꺾여 죽음을 당한다.



호구왕 1위. 조선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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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선조의 호구력은 유명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무시한 것은 물론, 임진왜란을 예측하지 못했고, 임진왜란 중에도 왕으로서 하면 안 될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 돼서 도성을 버리고 떠났으며,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꾼 이순신 장군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태도를 열등감의 발로로 보지만 열등감이든 뭐든 '왕'이 보여야 할 태도는 아니다.


사실 이래저래 해도 왕인지라, 전쟁이 끝나고 나서 수습이라도 잘했다면 후대에 이렇게 욕을 먹진 않을 거다. 하지만 선조는 '수습'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조선의 백성들은 전쟁의 폐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지배층은 여전하지만, 세간 살림과 먹고 살기는 더 나빠진 채로 그렇게.


호구는 선조인데 피해는 백성들이 받은 것을 보면, 호구를 지배자로 두면 피지배층이 어떻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호구왕 0위.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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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명실공이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여왕이다. 0위에 모신 건 현재진행형 호구이기 때문이며 장차 더 큰 호구로 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엔 중국의 초대에 따라 전승절 기념 행사에 다녀왔는데, 시진핑 주석과 기념촬영을 하며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호구의 매력을 어김없이 발산하고 왔다. 2년 반 정도 남은 임기동안 얼마나 더 큰 호구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사는 돌고 돈다던데, 우리네 대통령께서 역사책을 보고 ‘호구짓을 번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길 바라며 적어본다. 굽어 살피소서...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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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벙커깊수키 통합11호 : 호구 특집2(15년 8월호)>에 실린 

챙타쿠의 <호구가 왕일 때 호구왕이 된다>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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