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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04.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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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더운데 고생이 많다. 딴지 필진이 되어 가문의 영광이다. 풍악을 울리고 열흘 동안 잔치를 벌여 마땅하나 요새 나라 잃은 백성의 심정이라 조용히 자축하고 있다.


댓글을 보니 프로바둑 사설도박에 대해 밝혀달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EXID도 ‘위아래’가 있는 법. 일단 인터넷바둑 작전세력부터 썰을 풀어보겠다. 저번 미생의 이야기의 어쩌면 후속편이 될 수도 있다.



1. 통신바둑 시절


PC통신에선 바둑이 유독 강세였다. 케텔부터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바둑서비스는 인기가 많았다. 핸드폰도 없고 모뎀을 써서 바둑 두던 때라 전화가 먹통되는 것은 다반사였고, 지금이야 인터넷이 싸지만 당시에는 통화료였으니 바둑 좀 두면 한달에 몇 십만 원은 금방 나갔던 시절이었다. 그런 업계에서 통신바둑은 짭짤한 사업이었다. 이 당시는 소규모 덕후같은 끈끈함이 있던 시절이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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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터넷 바둑


인터넷의 등장으로 통신비가 저렴해지자 바둑 사이트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초창기만 해도  PC통신의 흔적 때문에 바둑 사이트를 이용하려면 월정액제의 요금을 내야 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인터넷에 돈 쓰는데 인색하진 않았다. 그러나 네오스톤이라는 업체가 바둑사이트 무료화를 선언하면서 업계의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호회가 커지기 시작한다.



3. 레드오션이 된 인터넷 바둑


기본적으로 무언가 서비스를 하려면 돈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무료로 하니 기존 업체들이 버티질 못 하는 것이다. 결국 망하든 통합을 하든, 살아남은 사이트가 몇 안 됐다. 대형 포털의 경우 ‘바둑’으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자사의 이미지 재고 효과를 원한 거라 괜찮다. 주 수입은 포커랑 화투고, 바둑은 이미지 상 넣어놓은 거니까.


문제는 바둑만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사이트였다. 대부분 무료회원이고, 유료회원이 있다 해도 콘텐츠에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결국 인터넷 바둑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바로 배팅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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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팅이란 무엇인가?


배팅은 두 대국자가 대국을 할 때 관전자들이 누가 이길까에 돈을 거는 것이다. 전체 판돈의 일정 퍼센트를 파이트 머니로 승자가 가져가고, 배당비율에 따라 배팅에 이긴 사람이 가져간다. 처음에는 쓸데도 없는 사이버머니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시큰둥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바둑사이트에서 기력이 약한 사람은 하수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사이버머니가 많은 사람은 자신의 안목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뽀찌를 나눠줄 수 있다. 또 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 랭킹을 발표하니 호승심이 생기고, 사이버머니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사이트의 정상급 9단들도 처음에는 사이버머니를 신경 쓰지 않았다. 두다보면 저절로 쌓이기 시작하는 머니였으니까 사람들이 원하면 그냥 주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사이버머니’를 ‘현금거래’ 할 수 있게 됐고, 사이버머니는 더 이상 사이버머니가 아니게 되었다. 다른 게임에선 사이버머니로 장비라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바둑사이트에서의 사이버머니는 그저 배팅하고 남에게 과시하는 데만 사용할 뿐 메리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는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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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창조경제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두두차이나)



5. 작전의 초기단계


이렇게 사이버머니를 현금화 할 수 있게 되자 배팅은 바둑 좀 두는 연구생 출신과 프로들에게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었다. 특히 9단 레벨에서 바둑 좀 두는 쪽은 상대가 누가 누군지 훤히 알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들하고 다 친하니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연락하면 몰래 다 알려준다. 일례로 중견 프로기사가 모 사이트에서 대국 중 상대가 매너 없는 행동(대국이 불리할 때 기권을 안 하고 접속을 끊으면 대국이 일시정지 된 채 5분을 기다려야 한다. 5분 안에 상대가 들어오면 다시 대국이 재개되지만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 대국이 끝나지 않는다)을 하자 바로 모 사이트 본사 운영자한테 전화해서 얘 누구냐고 물어봤다. 사이트 측에선 상대가 누군지 알려줬고, 프로 기사는 바로 전화해서 욕을 했다. 여기서 문제는 모 사이트의 운영이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바로 노출하다니.


거기다 서로 누가 누군지 뻔히, 아니, 친한 사람들에게 ‘얘는 나보다 세다’, ‘얘는 내가 이긴다’하는 식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친한 놈 둘이서 짜고 치는 순간부터 골 때려지는 거다. 예를 들면 ‘오늘 5판을 두자. 그 중 2판은 내가 이기고, 2판은 네가 이기고, 막판만 제대로 두자’ 이런 식이다. 그리고 또 친한 놈한테 승패를 미리 알려준다. 그러면 정보를 알고 있는 놈은 첫 수를 두자마자 한쪽에 세게 배팅을 때린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고배당을 노리고 반대쪽으로 우르르 모인다. 그렇게 되면 보통 6:4 에서 5.5:4.5 정도 나온다. 절대 질 수 없는 배팅인 것이다. 이렇게 초기 작전세력들은 친한 놈들끼리 알음알이로 작전을 했고,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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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작전의 문제는 바둑이 느슨해진다는 것에 있다. 잘 두는 사람들이 보면 짜고 치는 게 보일 정도다. 승패가 정하는 순간부터 지는 사람은 정말 지되, 티 안 나게 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정말 힘들어서 이기는 게 쉬울 정도다. 지려고 하는 순간 마음이 비워지면서 수가 잘 보인다. 반면 이기는 게 확정된 사람은 마음이 풀어져 떡수를 연발한다. 고수들의 눈에는 이게 뻔히 보인다. 그래서 이런 작전들은 초기에 반짝하고 나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람들이 배팅을 안 하고, 운영진에게 걸려 아이디가 삭제되기도 했다. 그럼 중간 단계는 무엇인가.



6. 작전의 중간단계


여기서 ‘쩐주’가 등장한다. 쩐주에겐 보통 미생인 연구생들이 많이 걸려든다. 프로와 달리 연구생들은 연구생에서 퇴출되면 갈 곳이 없다. 연구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와 비교되어 서러운 꼴도 많이 당한다. 자신과 친한 친구인 프로와 같이 바둑모임에 갈 경우 꿔다 논 보릿자루가 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인터넷 바둑 동호회에 들어가면, 아저씨들이 사범이라고 치켜세워주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지방에 대회 있으면 자동차로 태워서 모셔가고, 지방에 유명한 맛집 다니고 한다. 이러면 애들이 금세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맨날 바둑 공부만 하던 애들한테 돈 좀 있는 동호회 회원이 여기저기 보내주면 그야말로 충신이 된다. 이런 아저씨들은 자기하고 바둑 두자고도 안 한다. 그냥 사범님이 두시는 거 옆에서 보는 게 즐겁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직접 작전은 안 하지만 동호회 회원 중에 꼭 몇 명에게 작업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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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랏!


이제 작업은 어떻게 하느냐. 선수 둘이 뛴다. 이 선수들은 평소에 정말 열심히 두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씩만 한다. 이러면 걸리지 않는다. 동호회 단위로 움직이다 보니 선수로 뛰는 말이 많아서 괜찮다. 보통 성적이 좋은 극강 9단과 8~9단을 왔다 갔다하는 선수랑 붙이는데, 어디에 작전을 거는가? 성적 좋은 극강 9단에게 하지 않고 져도 아무 의심 안 받는 8~9단을 왔다 갔다하는 선수에게 한다. 90% 확률로 질 선수가 100% 확률로 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작전의 심오함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작전의 경우 상업적으로 하기 보다는 동호회 아저씨들의 가오로 하는 것이라, 체계화 되지 않았고 사람이 많다 보니 새는 말도 많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걸렸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억지로 지는 티가 난다.



7. 작전의 최종진화


최종단계인 기업형 작전이다. 당시는 사이버머니 1억에 현금을 1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던 때였다. 이들은 오피스텔을 차려놓고 작전을 했다.


우선 작전을 하다 걸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a. 어설픈 대국 (한 쪽이 티 나게 져주는 상황)
b. 사이버머니의 현금화 시 신분 노출
c. 작전세력들의 입방정 (작전세력 섭외 시와 술자리에서 무용담이 주원인)


그런데 최종진화된 작전세력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이겨냈다. 마지막 술자리에서 입방정만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어떻게 작전을 했는데 알려주겠다.



a. 어설픈 대국


한 쪽이 져주려고 수를 두는 순간 바둑의 내용이 이상해진다. 이는 속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실제로 두면 된다. 단, 미리 둔다. 선수 둘이서 오프라인에서 만나 말 그대로 기보를 찍어낸다. 서로 이기려고 두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다. 그렇게 찍어낸 기보를 정해진 시간(밤 10시는 넘어야 배팅이 무르익는다)에 만나서 미리 둔 기보를 재연한다. 승패는 정해져 있지만 내용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의심을 할 수 없다. 심지어 관전자들은 패배자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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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기보를 미리 짜놨다고 한다

(사진은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출처- 이세돌 기사의 레전드까진 아닌 전설의 기보)


이렇게 작전을 하니 내용으로는 절대 안 걸린다. 일부러 의심을 피하기 위해 배팅을 많이 한 쪽이 지기도 한다. 100% 승률은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중국 선수를 섭외해서 이 짓을 하더라. 정말 대단하다. 아마 중국 선수를 섭외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것이다.



b. 사이버머니 현금화


오피스텔 및 각종 서포트를 해주는 어른 한 명이 현금화를 맡는다. 바둑계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 선수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 정말 선수들이 바둑만 둘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기도 하는 일종의 매니저 역할이다.



c. 작전세력들의 입방정


걸리면 바둑계에서 매장될 사람들로만 구성해서 정보유출을 차단했다. 그리고 이미 작전의 초기·중간 단계를 거친 선수들 중에 엄선했다. 이들은 초기·중간 단계를 거치며 승부조작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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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한 번 잘못 열면 다 같이 주옥 되는 거야

(출처- MBC 무한도전)


이 작전을 주동적으로 한 자들이 몇 억씩 모았다는 소문이 있다. 작전세력 중 일부가 술 먹고 입방정을 떨어서 어느 정도 유출되었고, 때문에 지금은 작업장 운영을 안 하고 있는 걸로 안다. 아마도.



여기까지 인터넷 바둑 작전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전세력도 처음에는 작은 작전에 맛을 들였다가 점점 조작의 규모가 커져도 양심에 가책을 못 느끼는 거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시작된 조작과 작전세력은 훗날...
 


추신:


1) 예전에 바둑토토와 관련 된 인터뷰에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도 사설배팅에 연루되었다. 야구, 축구, 농구도 사설배팅에 연루되었는데 바둑은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당시 한국기원 고위 관계자의 대답은 이랬다.


“프로기사들을 뭘로 보는 것인가. 프로기사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바둑은 다르다.”


2) 미생들이 다 조작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속된 말로 바둑기술자가 자기의 기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미녀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하고,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네.










kimgonma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