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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02.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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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쿡찍어 푸욱> 18. 권력이라는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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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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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립과천과학관의 국제SF영상축제인 <SF2014>에서 '우주 저 너머'와 '시네마토크'를 하고 있다. 허리 수술 후 겨우 한달 남짓 지난터라 몸도 정신도 부대낀다. 그래서 오늘은 좀 가볍게 갈려고 하는데 머 그렇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주제는 제목처럼 저런 내용이다.

 

소유, 그리고 존재와 관련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1. 집이 없다구? 그럼 어디서 자?

 


굳이 에리히 프롬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그보다 훨씬 단순한 차원에서 소유와 존재에 대한 답은 내게는 항상 명확했다. 소유가 주는 쾌감이 일차원적이고 단기적이라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다들 경험한게 아니냐. 물론 질 좋고 유용한 물건을 갖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고 때로 유용함도 제공해 주는 건 맞다. 예를 들어 지금 타이핑 하고 있는 맥북 같은 게 대표적이다. 머 이런 수준의 소유마저 버린,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을 살라면 우원은 '노땡스' 하겠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유의 욕망과 가치에 스스로 잠식돼 버리는 경우다. 이건 그냥 바보같은 삶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세상의 물건이라는 건 대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런 시시한 것들을 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를 증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나란 인간은 대체 얼마나 시시한 거냐.

 

굳이 대단한 욕망이나 집착에 빠져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도 은연중에 소유의 개념에 잔뜩 젖어 살고 있다. 어릴 때 누가 우리는 집이 없어라고 하면 그렇게 이상한 말이 없었다. 아니 분명히 지금 집에 살고 있으면서, 길거리에 나앉거나 다리 밑에 거적깔고 있지 않은데 왜 집이 없다는 걸까. 그러다가 고등학교때쯤 되서야 그 말이 소유한 집이 없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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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집에 이사갈 때 마다 농구대를 설치한다는 박모씨.

이쯤 되면 집 없다는 말이 무색할 뿐.

 

 

그런데 우원은 그 말이 아직까지도 잘 와 닿지 않는다. 내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든 아니든, 내가 생활하고 잠자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곳이 내 집 아니냐. 물론 남의 소유니까 마음대로 손대기 어렵고 월세나 전세금을 올리는 등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곳이 일단 내 집인 거다.

 

이래서 우리 집이라는 말은 소유와 존재의 두 양식 속에 혼란을 초래한다. 멀쩡히 우리 집에서 잘 존재하던 내가 어느 순간에는 집을 소유하지 않은 뭔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습관적인 단어 하나의 사용 때문에, 존재 중심의 삶이 소유 중심의 삶으로 뒤바뀐다. 그래서인지 그런 의미로 우리 집이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슬프거나 자조적인 표정을 짓는다.

 

 


2. 돈 벌기 위해 집 사는 사람들


 

이것도 비슷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만큼 집이 재산증식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회도 흔하진 않을 거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모델하우스든 광고든 보면 대개 투자가치에 대해 큰 비중을 둔다.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해 볼려고도 했는데 잘 안된다.

 

집은 나와 가족이 살기 위해 구입하거나 짓는 거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팔고 이사가는 일이 생길 수 있고 그 와중에 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목적에 가까워진다면 그 집에 과연 제대로 정붙이고 살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건강하게 존재하려면 기본적으로 안정감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있음에도 습관처럼 집이 없다고 표현하고, 그렇게 장만한 집도 결국 돈이나 남기기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그런 기준으로 평가된다면, 우리의 가련한 존재는 대체 어디에 붙들어매야 할까.

 

 

3. 왜 아파트에들 목을 매지?

 

쓰다보니까 마치 앞의 소재에 이어서 쓰는 릴레이 글 같이 되고 있다. 암튼 우원이 이해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파트. 왜냐면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처럼 아파트가 많은 곳도 없고 또 고급으로 여겨지고 비싼 곳도 없기 때문이다. 아, 물론 홍콩이나 맨해튼 같이 좁고 비싼 도시는 좀 예외인데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를 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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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자. 아파트란 곳은 제 아무리 잘 지어 놔도 결국 공동주택이다. 집 한채 지을 땅에 10, 20, 요즘은 50채도 올라앉아 있다. 벽이랑 천장, 바닥은 남의 집하고 같이 쓴다. 내가 편하게 앉거나 디비져 있을 정원이나 옥상도 없다. 그래서 마음대로 소리도 못내고 뛰지도 못하고 요즘은 담배도 못핀다. 그런데도 택도 없이 비싸다.

 

이게 왜 이렇게 됐나 알아보려면 우원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우원이 초등학교 저학년때던 1970년대에는 울나라가 많이 못살았기 때문에 단독 주택들의 시설이 엉망이었다. 수세식 화장실도 흔하지 않았고 부엌도 지금같이 실내에 있는 게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이 깔린 반쯤 외부인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새벽에 한번씩 나가서 불 갈아야 하는 연탄 보일러 등 생활하기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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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싱크대는 그 무렵 아파트와 함께 보급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대략 그때쯤이다. 맨날 그러고 살다가 여기는 양변기에, 깨끗한 싱크대에, 다용도실에, 베란다에, 엘리베이터에, 기름 보일러를 때니 삐까뻔쩍하고 편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파트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 때 생긴 아파트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고급스러운 주거 형태의 관념으로 굳어진 거다.

 

그렇다고 머 아파트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상스레 추앙되고 어이없이 비싼 게 웃긴 거지. 원칙적으로 공동주택은 단독주택보다 싸야 정상인거다.

 

 


4. 잘산다, 못산다?



우리가 쓰는 말 중 깨나 이상한, 특히 소유에 경도돼 있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다.

 

잘 산다는 건 말 뜻대로 직역해 보면 lead a good life 정도 된다. 좋은 삶을 산다 정도의 의미겠다. 근데 울나라에선 무조건 돈이 많은 걸 뜻한다. 다른 아무 가치도 상관 없이, 그냥 재산이 많아서 좋은 집에서 비싼 차 굴리면 그게 잘 사는 거다. 가족들끼리 치고박고 하건, 누구 하나가 아프건, 가출을 하건, 자살하건 상관없이 돈만 많으면 된다.

 

똑같은 상황의 거울상은 물론 못 산다는 말이다. 아무리 가족들끼리 단란하고 행복하건,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살고, 주변도 돕고, 천사 같이 산다 한들 돈 없으면 걍 못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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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의심 없이 다들 이런 말을 쓰고 있다.

GDP 따위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일까?

 

 

그럼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산다는 건 뭐냐? 거야 당연히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니겠냐. 돈이 많은 건 그냥 돈이 많다고 하면 그만이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된다. 이건 잘 살고 못 사는 것과는 아무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덤으로 가난하다는 말도 좀 우습다. 돈 좀 없다고 집에 난리가 나야 되나?

 

이게 다 몇 십 년 전 지지리도 돈 없던 시대의 유물이다. 그 시절에는 돈이 없으면 말 그대로 못 살고’ ‘가난했을테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간 미친듯이 벌고 이제는 여유도 좀 생겼는데도 이렇듯 우리는 아직도 돈이 행복을 좌지우지하던 때의 촌스런 사고에 갇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이용해 먹는다.

 

그래서 요즘 세상이 이리 막장이 돼 버린 거고.

 

 


5. 다세대주택에 넘쳐나는 벤츠


 

우원이 사는 동네는 다세대 주택가다. 대부분의 집들이 붉은 벽돌로 지은 3 층 전후의 다세대주택이거나 소위 빌라고 집들 사이로 난 골목도 차 두대가 마주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이다. 물론 그 좁은 길에는 양쪽으로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돼 있다.

 

근데 여기에 벤츠, 비엠더블유 등등이 천지다. 우원이 사는 곳이니 여기 집값이란 게 뻔한데, 저 사람들은 대체 무슨 돈으로 저런 차들을 몰고 다니는 걸까? 내가 촌스러워서 가격을 잘못 알고 있나 함 알아보기까지 했는데, 제일 낮은 사양이 6천만원이었고 2억원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었다. 중고라고 해도 만만치 않을 터.

 

솔직히 말해서 이 동네에는 일반 SUV나 국산 중형차 이상 있으면 좀 어색한데,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건지 아리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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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 없음

 

 

오해 말자. 우원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모는 것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냥 정말로 이해가 안되는 거다.

 

돈이 많아 아파트 값으로 수십억을 쓸 수 있다면 아예 좋은 집을 짓는게 낫고, 그렇게 집 짓고는 팔아서 몇 푼 남길 생각 말고, 또 전세든 월세든 내 사는 곳에 맘 붙이고 사는게 옳지 않냐는 거다. 한편 돈이 별로 없어 다세대 사는 상황이면 거기 맞는 차 몰고 다니는 게 상식적이고, 잘산다/못산다 운운하는 습관적인 표현에 괜시리 영향받지 말고 내 방식대로 살면 장땡 아니냐는 거다.

 

그러면 뭐, 굳이 엄청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로서 자부심을 가진 채 한 세상 존재하다가 갈 수 있지 않냐. 도대체 왜 기회만 있으면, 조금의 빈틈만 있으면 나의 소유와 남의 소유에 그토록 예민하고 그걸로 세상과 사람을 평가하려 드는지, 우원은 그 공허한 삶의 태도가 그저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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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