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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02. 목요일
보리삼촌








살랑살랑하다. 부는 바람도, 나의 기분도 살랑살랑하다. 거창, 막연히 알고는 있는 동네였으나, 막상 발길을 옮기려 하니, 마냥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을 뿐더러,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차를 끌었다. 소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대략 오후 네 시 전후로 도착한다는 연락을 남겼었다. 제보자는 시간 상관없이 언제든 거창 창남초등학교 앞 카페로 오라 했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차에서 내려 카페로 향하는데, 밖에 서 계시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딴지에서 오셨습니까?"

"네."

"아이고, 아까부터 기다렸습니다."

"네? 언제부터요?"

"두 시 쯤부터요, 안 오시나 해서 이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네? 두 시요? 연락 주신 분은 누구시죠? 저랑 연락하신 분요."

"누군데요? 저희도 모르겠는데."

"xxxx-xxxx 이 번호요. 이 분과 계속 연락했고, 오늘도 말씀 드렸는데. 그럼 그 쪽은 어떻게 되세요? 학부모 대표신가요?"

"네 맞습니다. 근데 그 번호는 모르겠는데요."

"제보하신 분 모르신다고요? 이 분과 연락하면서 지금 온 건데... 누군지 모르신다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는데. 누구지?"

"일단 들어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잠시, 화장실 좀 갔다가 갈 게요."


'뭐지? 왜 제보자를 모르는 거지?'



어느 날, 딴지 사무실로 한 남성 분이 찾아왔다. 스스로를 목수라 소개한 그 남자는, 지금 거창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하여, 이 곳 거창까지 오게 되었는데, 막상 와 보니, 당사자(?)들은 제보자의 인적사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자료가 집에 있는데 괜찮으시면, 집으로 가시죠?"

'음, 까페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집?' "네? 네. 그러죠."


'부부 같은데, 왜 차를 각각 타지? 차도 좋은데?' 괜히 예민해졌다. 아주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마음은 대문에 다다르자,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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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의 대문에 붙여진 포스터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치 다례를 배워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의 방에서 얘기는 시작됐다. 먼저 거창교도소 학부모 반대 모임의 공동대표 중 한 분인 김은옥 님께서 말을 꺼냈다.(주로 대화에 참여한 인원은 보리삼촌, 공동대표 중 1인 김은옥 님, 회원 권정미 님 이렇게 셋이다. 물론 그 외의 분도 계셨지만)


"그러면 어떻게 먼저 제보를 받으신 거예요?"


'오잉?' 나로선 당황스러웠다. 제보를 해 온 측에서 어떻게 제보를 받고 왔냐고 물어보다니.


"일단은 여기 분들 중에서 한 분이 저희 회사로 찾아 왔습니다."

"어, 그래요~?"

"누구지? 성함을 알 수 있나요?"

"음.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모르시는 구나.(웃음)"

"저희는요, 정말 자발적으로 움직여요. 어떤 사람은 막 SBS에 제보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곳에 연락하고 그래요. 이게, 어느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니면 안되겠단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조직을 짜긴 짰지만은, 아니 짠 게 아니라..."

"(웃음) 가면서 진화되어 갔지."

"(웃음, 맞장구치며) 천지창조처럼 스스로 만들어진 조직이에요."

"제보하신 분은 서ㅇㅇ 씬데요. 목수라고 하시던데. 모르세요?"

"누구지?"

"여튼 그 분께서 우리 회사에 찾아와서 부편집장님께 취재를 요청했고, 응하게 되어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략적인 이야기만 듣고 왔기에 자세히 듣고 싶어서요. 근데 그 분께 연락처를 받은 건 카페를 하시는 목사님, 그 다음 학부모 대표님, 끝자리가 ㅇㅇㅇㅇ."

"그건 저의 번호."

"네, 이렇게 연락처만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요."



거창엔 법조타운(혹은 교도소)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7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2014년 12월, 착공이 계획되어 있다. 2011년에는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한 군민 3만 여명의 서명부가 법무부에 제출되었다.(거창군의 인구는 2013년 12월 31일, 위키백과에 근거, 63,177명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금 거창 군내에서 가장 큰 화두다. 지난 추석 땐 온 집안이 시끄러웠단다. 이 법조타운 조성 사업의 추진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군민이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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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 3만 여명이 3년 전에 이미 서명을 했던 사업. 사실상 어린 아이와 연로하신 분들을 제외하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갈등이 고조됐을까? 

법조타운이 교도소라고 처음 알려진 것은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이홍기 군수(전 군수이자, 당시 군수 후보)를 겨냥한 한 군수 후보의 발언 때문이었다. 딴지에 취재를 의뢰한 반대 측은, 그간 사업을 추진해 왔던 관에서 군민들을 속였다는 입장이었다. 3년 전엔 법조타운이라고하여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도소였다는 거다.





- 중략 -


"국민TV에서 취재를 왔는데 '우리가 집회만 쫓아다니는 전문꾼인데, 이렇게 집회를 뭉클하게 하는 건 처음 봤다' (웃음)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했길래요?"

"youtube에 저희 동영상이 있어요. 그리고 다음 카페도 있거든요. 카페에 여태까지 했던 것들이 영상으로 많이 있어요." (뭉클한 집회)

"youtube에서 뭐 치면 나오죠?"

"거창 교도소, 거창만 치면 나와요. 요즘에는 연관 검색어로 많이 떠서. 아, 너무 슬퍼요 이런 현실이. 집에서 밥하다가 빨래하다가..."

"다 내던지고..."

"(검색 후) 영상이 많은데 뭉클한 집회 영상은 어느 거죠?"

"(손으로 가리키며) 이 거 같은데. 최근에 올라온 건 아니고요. 읍사무소에서 그 때 이 영상 보고 울었었는데(웃음). (영상 보며) 이 날 우리가 모금하려고 아나바다 장터를 했는데, 교도소 반대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나와서……. 우리가 집회 기획 이런 거 해 봤겠어요? (웃음)"

"지금 교도소를 반대하는 학부모 모임엔 몇 명이나 있어요?"

"그걸, 알 수가 없어요."

"아, 몰라요? 체계적인 게 아니니까?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모임이니까?"

"예예예."


밑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모임. 그들은 누가, 어디까지가 회원인지도 알지 못했다. 제보를 한 그 분도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던 거다. 마음으로 뭉친 거지, 말 그대로 짜여진 조직이 아니었기에 제보자가 누군지 모르던 상황.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이 모임의 공동대표는 자그마치 15명.


"그리고 우리가 단체 카톡방을 활용을 해요. 거기에 채팅방이 두 갠데, 최대 모이는 인원 수가 한 방에 천 명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거기 천 명이나 있으면 중구난방이겠는데요?"

"아니에요. 처음엔 좀 그랬는데, 점차 점차 자리가 잡혀가면서, 꼭 할 말만 하고, 들어주고 그래요 지금은."


카톡 채팅방에 천 명이나 참여할 수 있단 걸 처음 알았다. 천 명의 대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말 많은 몇 명만 모여도 도떼기 시장이 되기 십상인데 카톡 감옥도 아니고, 천 명이 참여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채팅방이라니. 그런데 그 천 명의 채팅이 자리를 잡았다는 건 현 상황에 대한 그 분들의 단결력을 보여준다. 공유, 이해, 열정, 배려 기타 등등과 함께.


"7월 말 쯤에 만들어졌어요. 처음엔 소수였는데, '천 명 만들자 우리, 천 명 만들면 승산 있다. 이게 오래 묵은 일이고, 그런 싸움이기 때문에 이거를 터트리려면 많은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우리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요, 뭐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녜요' 하다가 언니가 '이래선 안되겠다. 해 보자' 이래서 학부모 모임을 만들게 된 거죠."

"'피켓팅이라도 해야지, 저거 그대로 넘어가면 그냥 시행이다' 이러면서."


- 중략 -


"죄송하지만 명함을 안 들고 왔어요. 다음에 챙겨 올게요."

"괜찮아요. 저도 명함 없어요. 아휴 명함 만들어야겠어. 다들 이렇게 주시는데."

"이게 다 오신 분들이에요? 봐도 돼요?"

"진짜 많~이 만났습니다. 여긴 보좌관 쪽이고, 여긴 법무부 행정과장, 교정본부장, 기자, PD..."

"이렇게 많이 만난 거면 이슈가 많이 됐겠는데요? 다른 곳 보도된 곳 없나요?"

"(명함을 보여주며) 여기 다 보도가 됐죠. 다들 단편적으로 다뤄서 그렇게 이슈는 안 됐어요."

"(자료 보며) 자료가 엄청나게 많네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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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다가 아님, A4 엄청 쌓여 있음. 레알.


"공부 많~이 했습니다. 이게 3년, 4년, 오래 묵은 일이에요. 저희가 활동한 게 두 달인데, 것만 해도 어휴... 공부 많이 하셔야 할 거예요."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왜 반대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는 그 사업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추친 측의 입장은 또 어떠한지, 대안은 무엇인지... 다음 글에선 본격적으로 "거창군 법조타운 추진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이 연재에서는, 반대 측은 물론 찬성(추진) 측의 입장 또한 충분히 다룰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