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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화요일

펜더







 







경기景氣와 작가


 

향후 5년간 긴긴 겨울이 이어질 것이다. 이 겨울을 버티기 위한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모 경제연구소 연구원의 발언이다. 뒤를 잇는 주류와 재야 경제학자들의 말들이 이어진다. (곁다리로 사회학자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주변 작가들이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의) 시큰둥했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언제 예술가들이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을까? 1990년대 초 반짝 불꽃이 타올랐던 순정만화 르네상스에 대해서 김진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그때가 르네상스였다는 걸 알겠어요, 그 당시엔 지금이 활황인지 불황인지 가늠도 안됐어요.”

 

맞는 말이다. 이 바닥에서 진리로 통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이쪽이 언제 경기 좋았던 적 있니?”

 

...그래 이 바닥에 언제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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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시작


 

유럽을 다녀와서 통장 잔고를 보았다. 바닥을 뚫고 지나갔다. 내 지인들과 가족들은 글쟁이란 직업에 대해서 묘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급전이 필요하면, 영업하고, 계약 하나 빨리 하면 되지 않나?”

 

이해 불가이다. 얼마 전 아내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직장인이라면, 대출을 고민하거나 제2금융권을 기웃거릴 액수였다. 넌지시 말을 한다


어디서 누가 가져오면 안 되나?” 


고민을 했고, 결국 난 다시 알바의 세계(?)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 하고 잠깐 멈칫 했다.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더 무서운 건 경쟁자(?)들이 차고 넘쳐난다는 것이다. 2천 년대 초반의 업계 상황에서는 도저히 단가가 맞지 않을 일들이 넘쳐났다. 아는 PD에게 하소연을 했다.

 

석박사들 어디 가겠어?”


너네 회사 같은데 들어가지 않아?”


“(순진하단 듯) 2년 지나면 땡치는데?”


아놔...걔들이 전부 다 비정규직이야?”


. 까놓고 말해서 너나 나나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요즘 들어오는 애들 보면...저 정도 스펙인데 왜 여길 지원했나 싶을 정도야.”


“......”

 

석박사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난다. 덕분에 이들이 알바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취업을 못한 학사출신들,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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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가 선택할 수 있는 알바들

 


많은 작가들이 글에 등급을 붙인다. 자신의 오리지널 작업에 대해서만 '자기새끼' 타이틀을 붙인다. 그리고 그 이외의 생와 관련된(?) 글들에 대해서는 '알바' 란 타이틀을 붙인다.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과 일에 대한 성격규정, 그리고 일종의 합리화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단 이걸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알바일 뿐이야. 본업은 내 작품을 쓰는 소설가(혹은 시나리오 작가나 시인)!”

 

까놓고 말해서 어지간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도 수상 이후 2~3년 지나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게 된다. 대단한 작품을 써냈다 하더라도 생계의 불안을 떨쳐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전업(專業)’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기는 힘들다.

 

하물며 이름 없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 말해 무엇 할까?

 


(내 경험과 주관적 통계를 취합한 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일반화의 오류나 극히 예외적인 사건을 침소붕대했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이 점 염두에 두고 읽어주길 바란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지만, 상당수는 그 알바의 덫에 걸려 주저앉거나 설사 빠져나온다 하더라도 결국은 대필작가혹은 잊혀진 작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위험부담 속에서도 기존작가들이 알바에 뛰어드는 것은 바로 생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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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알바를 할 경우에는 다음 3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알바의 기준은 기존작가 혹은 작가지망생에 한정된 알바이다)

 


대필

 

글쟁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알바이다. 대필의 경우에도 글의 종류와 가격, 원고량, 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대필의 경우는 선거철 직전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자서전이나 유명인, 연예인들이 내놓는 회고록이나 에세이집을 생각하는데, 이건 기본이다. 잘 찾아보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는 책도 대필인 경우도 있다. (대체적으로 유명인이 찍어낸 책을 잘 찾아보면 된다) 한때 자판기에서 판매된 적이 있는 2,000~2,500원짜리 OO문고 시리즈나 그 유사품도 99% 대필이다.

 

(2,000원짜리 책의 경우 거의 대부분은 저작권이 없는 책들의 우라까이 , 짜깁기를 한다. OO편집부 지음이라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편집자가 대필을 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인세가 아닌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지금도 꾸준히 찍혀져 나오는데, 상당수가 영업용이다. 특히나 보험 영업사원들이 거래처를 돌 때 많이 사용하는 사은품 중 하나였다. 놀랍게도 대필의 연결책 중 상당수는 출판사 편집부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편집부의 편집장이나 편집자들이 대필을 하는 경우도 많고, 글쓰는 재주가 있는 필자들과 연결을 해주는 경우도 많다.)

 

이런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시나리오나 기획안, 심지어 기사도 있다. 정체모를(?) 매체부터 시작해서 언론을 빙자한 모임들이 대필작가를 모집한다. (구인사이트에서 대필작가를 모집하는 경우의 대부분이 이런 기사 대필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시세를 보면, 스트레이트 기사 한 건에 20,000원이다. 2만원에 기사 하나가 나오는 것이다. 이 기사의 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정보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사라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스트레이트성혹은 박스 기사의 제조원리(?)는 글밥을 조금만 먹으면 알 수 있다.

 

대필의 경우에는 앞서의 기사에서도 소개했으니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해야겠는데, 최근 대필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가격이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간단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지고,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오른다.

 

이 단순한 원리 앞에서 글 값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0년의 대필 가격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5년 전에는 대필만 해도 어느 정도 생계가 유지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대필만으로는 어려운 시절이 됐다.

 

(영어 에세이 대필 가능자를 찾는 업자들이 부쩍 늘었다. 그게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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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글감+강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애매하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각 기업체에서 필요한 이 있다. 작게는 기업체 홍보 블로그도 있고, 크게 보자면 홈페이지의 연재나 외고도 있다. 보통 사보외주업체를 통해 들어오기도 하고, 알음알음 (인맥으로) 연결되는 수가 대부분이다. 결국은 인맥인데, 기존 작가에게 맡기기에는 애매하고, 홍보업체를 끼고 하자니 전체 사업규모가 작은 경우이다. 주로 인터뷰를 통해 작성해야 하는 글들이 많다. 내 경우에는 대표작(?)으로는...삼성서울병원의 의사들 인터뷰 (삼성 서울병원의 수백명의 의사들 중에서 자기 나름의 위치에 올라선 의사들, 각과의 과장급 이상) 프로젝트를 맡아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틈새시장이라고 해야 할까? 재미난 사실은 이렇게 한 분야에 흔적을 남기면 계속 그런쪽으로만 의뢰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형병원 인터뷰만 몇 개를 했는지 모르겠다. (개인병원도 했다)

 

강연도 마찬가지인데, 내 경우에는 처음 시작을 너무 하이클래스에서 시작해서인지 가격 형성(?)을 잘못했다. 나중에 강연이 좀 익숙해지고 나서 대한민국 강연시장을 제대로 바라보게 됐다. 정말 한국 사람은 뭐든 못배워서 환장한 놈들이다.’ 란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뭐가 그리 배우고 싶은게 많은지...

 

보통 클라스를 말할 때 보면,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 대기업 강연, 대기업 임원 강연(임원 승진 강연), 국가단체 강연, CEO급 이상의 조찬강연 등등을 어느정도 인정해 주는데, 이 경우에는 페이도 페이지만, 의전부터가 다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한정적이다. 진짜는 수면 아래에 있다.


대표적인 게 영업사원들에 대한 교육이다. 각 지자체의 공무원 특강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랜덤이라 언제 뭐가 걸릴지 막막하지만, 영업사원들이나 사원교육의 경우에는 112달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으로 계속 강연만 하면 된다. 어차피 듣는 사람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교육차원에서 로테이션으로 사원을 돌린다) 같은 내용으로 돌리면 된다.

 

매월 같은 날, 같은 장소, 다른 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면 됩니다.”

 

강연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날로 먹을 수 있기에 꽤 괜찮은 수입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강사업체가 수수료를 일정부분 먹는다. 몇 군데 강연업체를 보면 그 경쟁이 치열하다. 나도 강연업체를 한 번 슥 둘러봤는데,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무서운 경기한파로 대기업들의 사원교육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면서 이쪽 업계도 위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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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이건 아예 포기하는 게 맞다. 외고의 가격이 정말 터무니없이 떨어졌다. 월간지 연재가(중소형) A4 5매 기준(10포인트) 20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 그나마도 입맛에 안 맞으면 가차 없이 교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 쓸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걸 인터넷의 폐해라고 해야 할까? 좋은 글은 넘쳐나고 있다. 그걸 공짜로 쓸 수 있는 방법은 편집기자 1~2년 하면 짬밥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본적인 우라까이 기술만 알면 청탁을 넣지 않고, 괜찮은 기사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도 싫다면? 노가다 일당 가격으로 글 하나를 사면 된다. 지금 현실이 그렇다.

  

사상 유래가 없는 청년실업, 인터넷의 발달, 다른 놀거리&볼거리의 증가, 경기침체... 이 모든게 종합되니 글 값은 물론, 글 알바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누구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시대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인터넷이 시작되면서 종이매체는 휘청이고, 인터넷이 보급되고 나서 채 10년이 되지 않아 이제 매체 환경은 모바일로 넘어갔다. 플랫폼의 변화 앞에서 문화사업도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분명 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과도기를 맞아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을 찾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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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

 

한 달 동안의 유럽순방, 이후 컴퓨터의 침수 (메인보드가 다 타버렸다), 생활비와 기타 등등의 문제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간만에 서울나들이와 영업을 뛰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늘 불경기인 게 이쪽 판이지만, 이 정도로 침체 된지는 몰랐다. 글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글을 원하는 곳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삼성의 어닝쇼크와 뒤이은 긴축움직임이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 40이 넘으니 남는 것 맷집뿐이더라.”

 

동감한다. 3년 전에는 대필을 할 때마다 어떤 비애감과 자괴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프다. 우선은 살아야 하니 말이다. 그나마 이런 재주가 있고, 그 재주가 세상과의 싸움에 통한다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건 지금 내 입장에선 사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역에서 하룻밤동안 괴로워하며 통음해야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위 말하는 알바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 가격대도 한참 내려가고 있다. 독립PD 선배에게 구성과 광고 알바까지 부탁해야 할 정도로 지금 글쟁이들의 알바시장은 위축돼 있다. 추운 겨울이다.

 

다행스럽게(!?) 대필 의뢰가 들어왔다. 아마 계약서를 쓸 때 3년 전 원고료를 쓸 것이다. 지금 시장이 그러하니 말이다. 늘 그렇지만, 모든 게 올라도 글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그게 함정이다.

 

영화하는 후배 한 녀석이 연락을 했다.

 

, 나 내려가려고...”


“...취직 자리 구했냐?”


뭐 찾아봐야지.”


열심히 해라. 어디가도 거기보단 낫겠지.”


그런데...이게 옳은 걸까?”


“(단호) , 옳아.”


“(체념) 그래 형이 옳다면 옳은 거지.”


뒤돌아 보지 말고, 여자 만나 애 낳고 알콜달콩 사는 것만 생각해.”


그래야지...

 

오래 버텼다. 영화판에서 시나리오 쓰겠다고 8년을 굴러먹었다. 그 사이 이런저런 잡일들을 많이 했지만, 한해한해 생계의 막막함이 조여들어왔고, 20대의 팔팔한 패기는 어느새 30대 중반의 남루함으로 변해 있었다. 작년 겨울 알바를 찾기에 내가 연재하던 연재처 하나를 물려줬는데, 그거 하나만으론 용돈벌이는 고사하고 담뱃값도 되지 않았나 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손을 내밀고, 월세 보증금을 다 까먹고 고시텔로 들어가더니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알바꺼리라도 찾아서 쥐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연차가 있기에 찾아보면 적당한 일거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후배도 찾을만큼 찾아본 후였다.

그때까지 후배 녀석이 했던 알바는 리포트 대필, 스트레이트 기사, 공모전 알바, 각종 윤색과 대필이었다. 그 녀석과 나의 차이점은 단 하나. 나는 속도맷집이 있었고, 그는 속도와 맷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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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을 대비해 난 내 나름대로의 준비로 부산하다. 아마 이 겨울 동안 얼어 죽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난 15년간의 짬밥을 믿고 여기저기 겨울을 날 수 있는 동굴을 준비하고, 버티려 한다. 아직까지 난 글 이외의 다른 걸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 없다.

 

 

 

 



펜더

 

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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