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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08. 수요일

젊은농부








친환경농업(농가, 농산물) 인증제가 시행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 마트와 장터에서 ‘유기농’ 또는 ‘친환경’이란 이름이 붙은 먹거리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친환경인증’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기도 합니다.


친환경농축산물.gif


좋은 먹거리를 찾고자 하는 우리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친환경’, ‘유기농’, ‘착한’ 농산물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고, 그런 현상은 자연스레 관행농으로 지어진 농산물과 소위 ‘친환경 농산물’이라 불리는 먹거리들 간의 가격 격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의 경제사정에 여력이 있다면 마땅히 그 차이만큼의 돈을 더 지불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먹으려 합니다. 그 먹거리가 ‘친환경’이라는 이름값을 하길 바라 마지않으며 말이지요. 친환경 농산물을 먹고자 하는 바람과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마땅히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결정 사이에는 분명 ‘믿음’이 필요하겠지요. 그냥 아무 농산물에나 ‘친환경’이라는 이름 붙인다고 모두가 다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다면 그 어떤 소비자도 그 친환경이란 이름값에 돈을 더 지불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땅을 살리고 먹거리의 건강함을 지키고자 하는 농부와, 내 가족의 건강과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소비자가 서로의 바람과 노력을 믿고 생산과 소비를 이어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힘을 보태고자 시작된 것이 바로 ‘친환경농업인증제도’입니다. 친환경 시장에서 가짜 친환경농사와 농산물을 몰아내고 제대로 된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자들이 믿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서, 환경농업을 짓는 농가도 좋은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도 모두 웃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친환경농업인증제도’가 시작된 동기요 이뤄야 될 목표일 것입니다.

 

 


화두

 

얼마 전 TV를 통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친환경 유기농의 진실]이라는 KBS 파노라마 1~2부작이었습니다. 


친환경0.JPG  


1부는 ‘가짜 인증의 덫’, 2부는 ‘농약의 유혹’이라는 이름의 이 다큐는 꽤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며 ‘친환경인증제도의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다큐를 접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 관한 반응들을 한 번 검색해보았는데 역시 친환경농가 측의 반발이 꽤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의 문제일 뿐이다!”


“단편적(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보도 때문에 나머지 성실한 친환경농가들마저 죽어난다!”


“보도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등등...

 

반면에 이런 의견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다.”


“일부, 일부, 일부, 일부들이 모이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이제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믿고 먹을 수 있겠는가?”


등등...

 

아무래도 (적어도) 친환경 먹거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겐 KBS의 이번 다큐가 하나의 화두로 작용했던 듯 느껴졌습니다.


친환경농업이란 무엇인가?

친환경 먹거리란 무엇인가?

친환경 인증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이어져 온 친환경인증제도의 현재를 되짚어보자는 다큐의 기본 취지는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에게 참으로 많은 ‘할 말’을 남겨 놓게 된 것 같습니다.

 

다큐의 시작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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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땀방울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자연이 대지에 생명을 불어 넣으면, 흙은 뿌리를 품었다. 

주는 만큼 베푸는 자연. 친환경 농업은 자연에 순응하는 농법이다.


친환경 농법은 자연에 순응하는 농법이지요. ‘친환경’이란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자연환경과 최대한 닮은 모습으로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농법이 바로 친환경 농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과 닮은 농사로 지은 먹거리니 당연히 사람에게도 좋겠지요. 소비자 대부분은 그런 생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친환경 농법은 농작물이 자라는 터전인 대지 그 자체도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농사이기 때문에 더불어 환경에게도 좋은 농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관행농산물 보다 다소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구입하는 친환경 농산물의 가치에는 그것을 먹는 우리네 건강뿐만이 아닌 자연환경 전체에 대한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맞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 대지의 생명을 살리는 농사는 고사하고, 심지어는 관행농법으로 지은 농산물과 별 차이가 없어 그것을 먹기 위해 구입하는 소비자들만 손해 보는 격이라면? 과연 누가 친환경 농산물에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써가며 구입하고 먹을지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쉬 답을 찾을 수 있겠지요. 아마 아무도 그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행하게 된 제도가 바로 ‘친환경인증제도’이고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검증과 인증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형태로 시작되게 된 것이지요. 이익에 휘둘리는 민간기업보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야말로 공신력 있는 검증과 인증 절차로 생산과 소비 모두의 권익을 지켜낼 최적의 적임자일 것입니다. (이 부분을 쓰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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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의 기본적인 주제이자 물음은 바로 여기에 자리합니다.


과연 친환경인증제도는 우리의 기대대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친환경인증농가들의 반발을 접하다보면 다큐가 마치 부정적 결론을 마음속으로 이미 내려놓고 그에 합당한 증거들을 찾아 모은 짜깁기 영상인 듯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다큐가 의외로 충실히 스스로의 물음인 “친환경인증제도는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는가?”의 답을 찾기 위해 나름 꼼꼼한 준비들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많은 수의 친환경 농가들이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로 ‘친환경인증’을 받고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들이라도 듬뿍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논란의 화두를 던질 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행농업? 친환경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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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등장하는 어느 농부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게 저 위의 두 말이 참으로 진실 되게 다가온 이유는 저 두 이야기에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농사와 농부들의 문제 모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농약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농부. 하지만 농약 없이는 깨끗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원하는 수량만큼 거둘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는 농부. 친환경이란 농약을 지양하는 농사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농부. 친환경인증을 받는 것이 자신의 작물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값에 팔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절감하고 있는 농부.

 

농부의 깨달음과 경험, 배움과 앎 모두가 이렇게 모순되고 상충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누군들 친환경이 무엇인지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들 거짓 인증이 잘못인 줄 몰라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 모순의 악순환과도 같은 현실의 깨달음들이 한 번 잘못 발을 내디디면 쉬 유혹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작물은 이랑에 심으니, 이랑 사이사이에 자리한 고랑에는 해도 된다는 생각. 이 또한 참으로 문제입니다. 농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농약, 벌레는 잡기 위한 농약, 병해를 방지하기 위한 농약, 이렇게 세 종류이지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이랑에 비닐을 멀칭하고 제초제는 보통 고랑에 뿌립니다. 제초제가 농작물에 닿으면 농작물도 당연히 식물이니 잡초와 마찬가지로 죽게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통 제초제는 고랑에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농약은 어떨까요? 작물에 뿌리지 않으면 별 효과 없는 농약들을 과연 굳이 고랑에만 뿌리고 말 것인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지엽적인 것들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농약과 화학비료, 화석연료 투입에 의존하는 관행농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당연히 환경의 파괴이고, 그 환경 파괴의 원동력이 되는 기본적인 인식은 바로 ‘농작물에만 집중하는 농사’입니다. 오로지 크고 깨끗하며 수량도 많은 수확물을 위해 나머지 텃밭의 모든 생명력은 잊고 무시하는 농사가 바로 관행농이지요. 헌데 ‘친환경’이란 이름표를 받고 있는 텃밭과 그 텃밭의 주인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작물에만 집중되는 시선을 유지한 체 인증 조건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로 관행농을 따라하는 농법이 과연 진정한 친환경농법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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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인증은 돈이 된다, 라는 기본 명제만 없다면 아마도 많은 농부님들이 친환경인증농가가 되기 위해 그 까다로운 절차와 검증을 스스로 자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선택으로 어렵고 험난한 환경농업의 길에 뛰어드신 농부님들을 향한 비판이 아닙니다. 눈 가리고 아웅으로 ‘인증’을 받는 것에만 열중하는 가짜 친환경농부님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친환경농업일지를 쓸 소양도 의지도 없어 월례로 연례로 여럿이 한데 모여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으면 밀린 일지를 받아쓰기하는 농부님들, 수확 전 인증이 끝나면 수확과 동시에 밀린 약들을 죄다 뿌려대는 농부님들, 비검출항목에 해당되는 농약을 골라 마음껏 쓰며 농사짓는 친환경농부님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분들에게 ‘친환경인증’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왜 그러한 수고들을 자처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인증에는 정확함과 공정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 수고를 감내하며 진정한 친환경 농사를 짓고 계신 농부님들에게 그 수고만큼의 합당한 이익이 마땅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증은 정확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억울하게도 늘 전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저 농부들뿐입니다. “그저 ‘욕심 많은 농부’가 나쁜 일을 저질렀다!!”라고 말이지요.

 

정말... 진정 모든 책임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유기적인 부패

 

유기농의 유기는 ‘얽혀 있는 생명력’의 ‘유기(有機)’입니다.


 유기(有機)

1. 생명을 가지며, 생활 기능이나 생활력을 갖추고 있음.

2.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음.


진정한 유기농이란 농약 적게 쓰고 자연의 퇴비를 사용하는 등의 제한적 의미에 머무르는 개념이 아닌, 텃밭의 생명들 모두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농사입니다. 유기적이란 것은 참으로 유기적이지요. 어느 하나 따로 떼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내 몸부터가 유기체이니 말 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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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악취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면, 그 탓을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내 그에게만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순환 고리 전체가 썩어있다면 그것은 분명 구성원 모두가 유기적으로 얽혀 썩어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순환 고리가 건강하다면, 설혹 구성원 중 어느 하나가 썩어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금세 순환의 자정작용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것입니다. 악순환의 반복에서는 설혹 어느 하나가 깨끗하고 건강하더라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썩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지요.

 

현대농업과 친환경농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불거질 때마다 마치 농부의 욕심만이 만악의 근원인 양 뭇매를 맞곤 하는데, 정말... 진정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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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기잖아요. 농민들도 사기꾼이 되는 거고. 소비자들은 속아서 쓰린 거고. 관에서 확실하게 책임져 주고 확실하게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서 실적 위주로 정책만 만들어서 쏟아내고, 실적만 올리려고 하니까 악순환이 계속되고... 정부에서 그걸 끊어줘야 하는데 계속 쉬쉬하고 있으니까 계속 더 키우는 꼴밖에 안 되잖아요. 친환경 보조금은 계속 나가고...“

 

친환경인증심사를 진행했던 어떤 이의 이야기입니다. 제보자라 소개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악순환의 주체가 단지 농민 하나만이 아닌 정부와 기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친환경인증제가 만들어낸 폐해의 주범이 바로 정부와 기관임을 역설하는 증거들을 하나둘씩 잔뜩 풀어 놓더군요.


영상에서 언급된 관련 문제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풀어서 하나하나씩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 친환경 인증지역 위성사진을 보면, 인증대상지역이 ‘야산, 무덤, 둑, 도로, 시설부지 등’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 농사를 짓지 못하는 노인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자신도 모르는 사이) 친환경농가로 등록되어 있다. (심지어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이가 등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 사용금지 약물들이 친환경인증 농지와 농가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실 (심지어는 관행농에서도 금지된 약물들도 다수 포함.)


- 사용금지 약물들이 발견된 농가의 농지에 대한 토양분석을 요청하자 거부하는 ‘농산물품질관리원’ 조사관. -> 거부의 이유로 32만원 정도하는 검사비를 언급


- 제작진 측에서 토양시료를 채취해 자체 분석한 결과 의심농지 두 곳 모두에서 농약 검출


- 친환경농사가 불가능한 간척지의 토양을 친환경농지로 등록해 인증을 받고 지원금을 수령하고도 친환경농사를 짓지 않은 농부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죄목은 사기)

     -> 농민들은 유관기관과 정부의 허술한 정책과 유혹을 탓함

     -> 친환경 농자재 업체가 불법인증을 부추겼다는 농민의 주장


- 알고 보니 친환경농업인증 시장에 흐르는 막대한 자금들이 자재업체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 (인증대행, 자재납품, 친환경단지조성지원금 등)


- 친환경 인증농가 수는 1999년 대비 100배 이상 증가하였으나, 인증 시스템이나 인프라는 그에 발맞춰 발전하지 못한 현실적 문제.


- 그 과정에서 ‘고인 물’이 되어버린 친환경인증관련 시장에 자연스럽게 ‘유착관계’가 형성되었음. (정부기관 – 자재업자 – 민간인증기관 – 농민)


- 자재업자와 기관인원들이 아예 인증신청서 작성부터 영농일지와 심사 관련 서류 작성을 돕거나 혹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게 하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음


- 엉터리로 이뤄지는 심사와 토양분석자료들을 살펴보니 Ctrl+C 한 다음 Ctrl+V 한 문서들이 다수 발견 됨.


- 인증 검사에 사용될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함. (그것을 돕는 것이 심지어는 인증기관 인력이기도 했음)



기타 등등... 다 적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모든 문제들은 죄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썩은 내 나는 부패들이 죄다 그렇듯이 역시나 문제는 돈입니다. 친환경 인증이라는 사업을 하나의 블루오션으로 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돈을 긁어모을까 하는 궁리가 넘쳐나는 곳에는 실상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농업이니 소비자의 건강이니 하는 문제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건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영상에서 소개한 ‘친환경인증에 따른 돈의 흐름’이란 부분을 잠시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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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인증기관에서 친환경농가를 선정 

-> 지자체가 친환경인증농가에게 보조금 지급 

-> 인증비, 자재비, 분석비 등의 명목으로 

보조금을 관련 기관(자재업자, 인증기관, 분석기관)에 거의 대부분 지급

 

농민들이 백날 뼈 빠지게 농사 지어봤자 돈 되는 것 하나 없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에는 다음과 같은 흐름이 그 이유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단 친환경농가가 아니어도 상황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본농업이라는 악순환의 놀음에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자체는 실적을 위해 친환경 농지를 늘려가려 합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친환경인증 농가가 늘어납니다.


친환경 농가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자재업자와 민간친환경인증기관, 그리고 분석기관들이 돈을 법니다.


돈이 되는 것을 안 자재업자와 인증-분석기관들이 지자체와 농민을 더욱 부추깁니다.



정말 완벽하게 썩어있는 악순환의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유기적인 부패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요.


친환경7.JPG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지금 도에서 100%를 채우라고 해요. 얼마나 긴박한가를 아셔야 합니다. 인사에 파격적으로 반영하겠다. 우리가 원리원칙대로, 책대로 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자로 잴 필요 없어요. 저기서 저까지 대충 한 번 딱 해서 감 잡아서 하면 돼요. 면적이 적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충 하세요. 조금씩 심은 것은 그냥 곱하기 얼마 해버리세요. ..(중략).. 농약 사다가 뿌려, 뿌려버리고... 누가 농가 가서 다 보나요. 안 봐요.“

 

어느 군의 부군수의 회의 내용 녹취록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정말 ‘미쳤다’ 같은 느낌 정도랄까요. 실적에, 승진에, 돈에 미친 사람들이 ‘친환경농업’을 가꿔나가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소비자와 농민의 건강과 권리 같은 것이 고려될 틈이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과정에서 ‘친환경농산물’이니 ‘안전한 먹거리’니 ‘그런 것들을 인증으로서 믿게 하겠다’느니 하는 헛소리들이 어떻게 진정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 영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적은 것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고, 2부 영상에 대한 언급은 시작도 않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한 번 찾아서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내 탓도 있음이니...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 친환경농법으로 지어진 좋은 먹거리인지 아닌지. 비단 내 건강 하나 때문만이 아니라 좋은 길을 걷는 농부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라도 꼭 진짜 친환경농가의 농작물을 애용하고 싶더라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믿음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정부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부분은 아마도 소비자인 우리의 몫이라 여기는 것이 맞는 이치라 생각합니다.

 

좋은 먹거리란 무엇일까요? 친환경농업으로 지은 먹거리만이 좋은 먹거리일까요? 관행농업의 수확물은 모두 농약덩어리에 쓰레기 같은 것들일까요? 과정에 무관심한 채 인증마크라는 결과물만 맹신하려 한 나의 어리석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친환경-유기농-신선-고단백-프리미엄 등의 말장난으로 먹거리 시장을 도배하게 만든 원인은 생산자의 몫일까요? 아니면 소비자의 몫일까요? 아니면 둘 모두의 몫일까요?

 

우리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환경을 위해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한다는 생각과 실천 그 자체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과연 무엇이 진짜 친환경농산물인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이미 우린 실패자이자 피해자일지 모릅니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는 정부기관과 사업자들을 탓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소비자로서의 자신을 탓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그냥 맘 편히 모든 먹거리를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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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먹거리는 고맙고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모든 먹거리에는 대지의 푸근함과 태양의 따뜻함, 그리고 비의 촉촉함이 스며있음을 알고 그것이 비싼 것이든 아니든 프리미엄이든 아니든 유기농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고마움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것이 좋은 먹거리를 먹는 가장 간단하며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착한 농사니 나쁜 농사니를 따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그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농사에 대해, 환경에 대해 자연스레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한 작은 변화야말로 ‘과정’이 되어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와 혁명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 썩어빠진 악순환의 고리 한 부분엔 소비자로서의 나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로는 나의 무관심이, 결과에만 연연했던 어리석음이, 좁은 시선이, 이기심이 악순환의 먹잇감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먼저 변화하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하면 되느냐???

 

이것이 지금부터 우리 소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사족

 

세상엔 정말 자연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어가는 농부님들이 계십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그런 농부들 중 하나이고요. 물론 저는 농사 실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어 파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사 겨우 우리 가족 반찬 만들어 먹을 정도를 자급하며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 자연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 자연농부입니다. 하지만 저와는 다르게 자연의 힘으로 농사지으면서도 남부럽지 않은 수확물을 거두는 대단한 농부님들도 세상엔 존재합니다. 몇몇은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였지만,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런 분들이 세상에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눈과 생각을 텃밭에서 땀 흘려본 후에야 어렵게 얻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농부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는 일이니, 그렇다면 다른 많은 분들은 어떻게 그것들을 분간하여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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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답이 소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농사를 짓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소통, 교류, 사랑. 도시와 농촌이 둘이 아니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둘이 아니며, 대지와 농장물이 둘이 아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소통과 교류.


그것이라면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밝은 눈과 생각을 선물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즐거우시길.








젊은농부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