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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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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이지성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단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어떤 출판사든지 이지성 작가를 잡을 수 있으면 출판사가 부흥을 할 수 있는...

출판평론가 김성신



몇 년 전 불현듯 나타나 출판계를 휩쓴 작가가 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꿈꾸는 다락방>,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20 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등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누구나 한 번은 봤음직 한 책을 여러 권 써낸 작가 이지성이다. 최근엔 무려 14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당구여신 차유람과 결혼에 골인하여 도둑질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책이 얼마나 잘 팔리느냐 하면, 2015년 5월까지 누적 300만 권가량을 팔아치웠다고 한다. 강연, 해외 판세, 계약금 등은 빼고 오직 인세로만 계산했을 때 40억이다. 40억. 이 정도면 가히 출판계의 ‘신화’로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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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기준 판매량

출처 - <매일경제>


그가 얼마 전 신간을 냈다. 이미 4개월도 더 됐으니 신간이라 하기엔 좀 그렇기도 하지만 걍 신간이라고 하자. 제목은 <생각하는 인문학>. 출판사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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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요것부터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본인은 체질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싫어라 하는지라, 그가 쓴 책들은 표지만 익숙하게 봤었지 직접 읽어볼 생각은 1도 없었다. ‘좋은 이야기 쉽게 쓰는 자기계발서 저자’ 딱 이만큼이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 아니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다음 ‘뉴스펀딩’에 그가 연재한 글 한 편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아찔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 6화 ‘지드래곤에게 인문학을 권한다’ 중 일부를 발췌해 보겠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십대들의 절반 이상이 장래에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또 연예인을 희망하는 십대들의 대다수가 저도 즐겨 듣는 빅뱅의 '지드레곤'을 최고의 롤모델로 인정하고 따르고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빅뱅의 '지드래곤'이야말로 우리나라 연예산업의 구조를 뛰어넘은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십대들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도 접했습니다.



여기까진 알겠다. 지디에게 ‘구조를 뛰어넘은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칭호 붙이는 게 약간 걸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개취겠거니 하고 넘어가 보자. 쨌든 포인트는 지디가 10대들의 롤모델이라는 것. 문제는 그 담부터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빅뱅의 '지드래곤'에게 인문학을 권하고 싶습니다. 만일 그가 인문학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십대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십대들은 인문학을 하는 동안 만큼은 입시구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세계 최고수진인 청소년 불행지수도 어느 정도 낮아질 것이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 청소년 자살지수도 심히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중략)


한편으로 저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도 불린다는 빅뱅의 지드래곤이 인문학을 시작하면 수많은 연예인들 또한 인문학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게 뭔 말이지? 뭔가 쭉쭉 읽긴 했는데 이해가 안 되니까 찬찬히 함 따져보자. ‘롤모델 지디 -> 지디가 인문학 -> 10대들도 인문학 -> 불행지수, 자살지수↓, 다른 연예인들도 인문학, 에불바디 인문학’이라는 거다.


아찔하다. 일찍이 이런 명랑한 비약은 본 적이 없다. ‘만일, 만일, 그럼’으로 이어지는 접속사로 ‘10대들의 롤모델 지디’라는 전제가 에불바디 인문학이라는 명랑한 결론으로 순식간에 질러가 버렸다. 어째서 지디가 인문학을 하면 10대들이 따라 할 것이며, 불행지수에 자살지수까지 떨어지는지는 앞뒤 맥락 어디를 찾아봐도 나오질 않는다.


게다가 그가 전제로 삼은 ‘롤모델 지디’를 제외하면 하나도 들어맞는 소리가 없다. 지디가 인문학 하면 소녀 팬들도 인문학에 빠질 거라고? 그들이 지디에 열광하는 건 그가 멋있기 때문이지, 올바른 말을 해서가 아니다. 또 청소년들이 불행한 건 인문학을 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이 모냥 이 꼴이니까 글타. 청소년 자살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근거가 없다. 왜냐면 청소년 자살률 1위가 아니니까.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지, 자살률이 1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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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신문>

혹시 여자 통계만 보셨나?


이 글을 읽고서 문득 그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쓴 책은 어떨까, 궁금해서. 그가 가장 최근에 쓴 <생각하는 인문학>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지디에게 인문학을 권하는 이 글 안에 그의 모든 것이 있었다는 것을.


자. 이제 슬슬 책 이야기를 해보자.


여느 자기계발서가 그러하듯 <생각하는 인문학>도 술술 읽힌다. 첨엔 42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겁먹었으나 30페이지를 읽고서는, 금방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팍 왔고, 책장을 슉슉 넘기며 금방 읽었다.


책은 역시나 기대했던(?) 만큼 ‘지디 인문학’에 버금가는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잔뜩 담고 있었다. 인문학 서적과 자기계발서와 종교 경전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찔함도 일품이고. 어찌어찌 책을 다 읽고, 내 맘대로 책의 메세지를 4가지로 정리해봤다.



1.공포심을 조장한다.



지금 중국은 한나라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6대 황제 무제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인문학 운동을 강력하게 장려하고 있다.


(중략)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고조선제국이 중국 최초로 국가가 인문학 교육을 강력하게 주도했던 한무제의 침략을 계기로 붕괴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시작은 상콤하게 중국부터. 중국의 경제성장, 동북공정 등을 예로 들며, 중국은 인문학 졸라 해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도 인문학을 시작하지 않으면 중국에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머 틀린 말은 아니다. 인문학이 나쁜 것도 아니고, 국가가 나서서 장려하면 도움이 되고 하니까. 고조선 이야기까지 하는 건 좀 글치만 이 정도는 ‘우려’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제 좀 더 강한 주장을 보자.



만약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Think'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인문학의 세계를 깨닫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계속 방황하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컴퓨터산업에 국가적 투자를 해놓고도 인류 컴퓨터 문명의 역사에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못한 것처럼 미래에도 공허하기 짝이 없는 행보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요 전자기업이 지금과는 비교도 못 할 규모로 컴퓨터 관련 산업 하청공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조차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빼앗기고 국제사회에서 후진국 아니 후진국으로 대접받는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 미래에 노인이 된 당신이 먹고살기 위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로 노동을 하러 가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살짝 더 과격해졌다. ‘하청공장’, ‘후진국’, ‘재앙’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띈다. 우리가 인문학을 하지 않으면 미래에 망할 것이란다. 나이 먹고 ‘외국인 노동자’가 돼서 아시아를 전전할 수 있다는 꽤나 구체적이고 강렬한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아이들 얘기까지 나오니 살짝 겁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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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잉, 무쳐워~


여기까지는 충격요법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다(힘들겠지만). 근데 더 남았다.



만일 조선의 지배계층이 <논어>를 제대로 읽고 실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영제국을 만든 영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처럼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나 적어도 '멸망->식민지->남북분단->6.25전쟁->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와 남한의 친일파 득세'로 비극적인 역사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문고전이 개인과 가정은 물론이고 조직과 사회, 국가의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젠 좀 더 노골적이다. 앞서 본 ‘지디 인문학’ 이야기는 귀여운 거였다. 최고의 인문고전인 <논어>를 ‘제대로’ 읽고 실천하지 않아서 친일파가 득세한 세상까지 왔다고 한다. 근거나 논증 따위는 없다. 그에겐 통찰이 있을 뿐. 인문학에 대한 그의 고집과 확고한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계속 가보자.



일제의 식민교육

공장 노동자와 직업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계된 프러시아 교육을 이어받은 미국 공립학교 교육

친일파의 우민화 교육

군사정권의 독재교육


당신의 두뇌회로는 이 네가지 '쓰레기 교육'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 당신의 인생에 그토록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 이제 공포심 불어넣기의 마무리다. 결정적인 표현이 나왔다. ‘쓰레기 교육’. 우리가 받은 교육은 쓰레기니, 그 쓰레기를 버리고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인문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방법이 꽤 과격하다. 쓰레기 교육을 받은 우리가, 인문학을 하지 않고 살면 ‘인생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인문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고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겁박. 그렇게 공포심을 불어넣고 나면 엉망인 현실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슬며시 보여준다.



2.희망을 주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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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지긋다...


인간은 하루에 약 6만 번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중 99.9퍼센트는 어제와 똑같은 무의미한 공상이라고. 만일 당신 삶이 문제투성이라면 원인은 간단하다. 당신이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매일 6만 번씩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과거에 정지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앞서 1번에서 살펴본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법인 ‘너는 인생을 잘 못 살고 있어’라 말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무의미한 생각들을 생산적인 생각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한 가닥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 인간이 매일 99.9%의 생각을 ‘어제와 똑같은 무의미한 공상’에 소비한다는 연구자료 따위는 없다. 설사 그런 연구가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도 없고.


근거 없는 ‘심리학’ 끌어다 쓰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천재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생 자기 뇌의 5퍼센트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쓴 천재들이 남긴 자취를 따라가다보면 공통된 고백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인문학이 뇌를 바꾸었다는 고백입니다.


(중략)


제갈공명은 아마도 뇌의 10퍼센트 정도는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니라라 3대 기업의 창업가들은 뇌의 7, 8퍼센트 정도를 썼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만일 뇌의 5퍼센트도 쓰지 못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지금부터라도 인문학의 바다에 자신을 내던진다면 아무리 못해도 뇌를 1퍼센트 정도는 더 쓰지 않을까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뇌를 지금부터 1퍼센트 정도만 더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분명코 우리나라에서 상위 0.01퍼센트에 속하는 업무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인용이 많아서 미안하다. 주옥같은 문장들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이해해 주시라. 무튼 이번엔 논거로 인간이 뇌의 5%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낭설을 가져왔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제갈공명은 뇌의 10%를, 이건희, 이병철, 정주영은 7%씩 썼을 거라는 소름 돋는 연역적 추리까지 보여주셨다. ‘아무리 못해도’ 뒤로 따라 나오는 문장들은 범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 만의 지성이 돋보이는 문장이라 하겠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희망을 말하기 시작한다. 생각의 99.9%, 두뇌의 95%를 안 쓰고 있으니 그걸 쓰라는 주장. 앞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을 꺼낼 때처럼 근거는 없다. 그냥 뭉개고 가는 거다. 이러다 투시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올까 싶어 조마조마 했을 정도다(다음 책에서 기대해본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인류 역사에 단 하루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공자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의 생각은 인류 역사에 2500년 넘게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인문학 천재들의 두뇌 속 생각 시간은 보통사람들과 비교하면 91만 2500배(2500년x365일) 느리게 흐른다고 할 수 있다.



글치, 이제 쓸모없는 생각을 버리고 생산적인 삶을 산 위인들이 텨 나온다. 공자님, 플라톤님. 2000년이 넘게 텨 나오느라 고생이 많으신 분덜이다. 이분들은 생각을 낭비하지 않고 살았더니 보통 사람들보다 91배나 생각이 느리게 흘렀다(?)고 하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다. 걍 훌륭한 사람이 돼서 인류에 오래오래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정리하자.


이제는 쫌 더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나올 차례다. 자신이 인문학을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이렇게 변했다며 여러 사례를 제시해 주었다. 아래 내용에 따르면 그의 인문학은 ‘show me the money’, ‘operation cwal’, ‘power overwhelming’ 3단 치트키에 버금가는 만능키, 무적, 개사기가 아닐까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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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수준이 낮아서 저소득층 공부방에서도 적용을 못하고 따돌림을 받던 두 아이가 <논어>의 교육을 받고는 고작 한 학기 만에 자원봉사자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사회성이 향상되었다.


또한 피해의식이 있고, 읽기와 쓰기를 하기 못하고, 기억력과 언어구사 능력이 떨어지고, ADHD로 고생하던 아이들이 <논어> 교육을 받고부터 자존감을 갖기 시작했고,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있게 됐고, 기억력과 언어구사 능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ADHD 증세 역시 눈에 띄게 좋아졌다.


부모에게 방치된 아픔을 폭식, 게임중독, 동생 학대로 풀던 아이가 <논어>와 <장자>를 만나더니 금세 정서적인 안정감을 되찾았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임에도 한글을 읽고 쓰지 못했는데 읽기와 쓰기도 가능해졌다.




3.그러나, 불가능한 방법


힘들겠지만 여기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다 인정한다고 치자(레드썬~). 우린 쓰레기 교육을 받았고, 매일 같이 무의미한 생각을 하고, 뇌는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다. 반면 인문학적 생각으로 뇌와 생각을 잘 사용한 사람들은 막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고 삶이 바뀌었다고 해보자. 지금까지 졸라 열심히 살았던 과거는 ‘실패한 인생’이라 치자. 이제 막 그 사람들이 했던 방법에 따라 공부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뜨거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내 삶이 바뀌는 건가? <생각하는 인문학>에선 이런 방법을 제시한다.



가우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읽고 쓸 줄 알았으니, 그리스, 라틴 원전을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원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원어로 술술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저는 인문고전의 경우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자 하나 안 빼고 전부 필사하는 방법을 선호하는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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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하고(인쇄술 만든 쿠텐베르크는 대굴빡을 박습니다. 다 너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 스마트폰의 음악 폴더를 열어보라. 위대한 음악, 즉 클래식이 몇 곡이나 들어 있는가? 아마 한 곡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화가가 그린 작품(진품일 필요는 없다)는 어떤가? 집과 사무실 등 당신이 주로 머무르는 공간에 몇 점이 걸려 있는가? 이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위대한 건축물은 몇 곳이나 직접 만나보았는가? 이 또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이쯤 되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 당신이 특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지.



클래식, 명화, 위대한 건축물을 즐기며,



기초가 되는 수학적, 과학적 발견을 한 제논, 아폴로니오스, 슈피텔, 네이피어,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뉴턴, 라이프니츠, 가우스, 해밀턴, 드모르간, 실베스터, 바이어슈트라스, 케일리, 리만, 칸토어, 소피야 코발렙스카야, 칼 피어슨, 화이트 헤드, 러셀, 힐베르트, 바일, 괴델, 토머스 영, 맥스웰, 볼츠만, 아인슈타인, 닐슨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의 삶과 사상과 업적 정도는 알아야 한다.



저 사람들의 삶, 사상, 업적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1.<격몽요결>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반복적으로 읽어라. 되도록 두 눈을 감고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읽기 바란다. 이 두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두뇌 안에 새로운 생각 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게 기초공사를 한다는 의미다. <괴테와의 대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2.<근사록>, <퇴계 선집>, <남명집>, <성호사설>, <일득록>을 읽어라. 좋은 구절들을 따로 뽑아서 여러 번 필사하고 암송하라. 이 책들을 소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 시스템의 뼈대를 만든다는 의미다. <학문의 진보>,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3.<논어>, <대학>, <중용>, <맹자> 즉 사서와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라. 이 책들 역시 자신의 것이 될때까지, 그러니까 공자나 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읽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사색하라. 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두뇌 안에 새로운 생각 시스템이 안정적으로자리잡게 만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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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불가능하지만, 그걸 해낸 사람이 있다


어쩐지 저걸 다 할 수 있으려면 500년 정도는 살아야 할 것 같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절대 불가능 할 것 같아 보이지만 저걸 다 극복하고 세계 5대 성인인 소크라테스, 예수, 유느님, 석가, 공자의 반열에 오르기 직전인 이가 있으니, 여기서부터가 일반 자기계발서와 비교할 수 없는 <생각하는 인문학>만의 불가침영역이라 할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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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유느님, 석가, 공자 + @



나는 성격이 고요하고 사색적인 편이다. 상쾌한 공기가 가득한 숲속을 산책하는 것을 종아한다. 20대 후반에는 숲에서 시를 쓰다가 아침을 맞이하고는 숲 아래 가게에서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신하고 출근했던 날도 적지 않았다.



역시 가볍게 시작해보자. 왠지 <월든>에서 봤던 것 같은 구절이지만, 뭐 넘어가자. 이제 요 정도는 뭐 암것도 아니다.



다른 누가 아닌 내 삶을 통해 증명하고 싶다. 사람의 운영을 바꾸는 생각의 힘, 즉 인문학의 힘에 대해서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때 나는 '생각'이라곤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빚보증을 섰고, 아무 생각 없이 직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파멸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대 후반에 인문학을 제대로 만났고,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마치 우주로 향하는 로켓처럼 비상하기 시작했고, 자옥 같은 현실의 궤도를 벗어나 꿈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나 같은 바보 멍청이도 이렇게 변했다. 당신은 어떨까? 나는 감히 확언하고 싶다.



요 대목에서 자기계발서의 필수 덕목인 성공 스토리가 나온다. 보증으로 4억에 이르는 빚을 얻었고 그걸 갚기 위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 선생님이 되어서도 옥탑방에 살면서 교직 사회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 그러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라는 책이 대박나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는 인간 성공 스토리.


그 감동적인 스토리 뒤에 나올 클라이 막스는 바로 이거다. 이지성이 지인과 나눈 이야기를 실은 바로 이 대목.



"혹시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이 뭔지 아십니까?“


"무슨 사진 찍는 기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책을 한번 읽었을 때 그 내용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서 뇌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단 1초 만에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니까요.”


“제가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을 활용하기 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어도 잘해야 전체 내용의 40~50퍼센트를 기억했습니다. 그곳도 바로 읽고 났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몇 시간만 지나도 이 수치는 20~30퍼센트대로 떨어졌고, 하룻밤 자고 나면 겨우 몇 줄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포토그래픽 메모리능력이 회복되자 며칠 아니 한두 달이 지나고 전체 내용의 90퍼센트 이상을 기억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내용이 몇 페이지 몇째 줄에 있다는 것까지 기억했죠. 이때 깨달았습니다. 제 뇌가 책을 통째로 스캔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뒤에 제 삶은 온통 황홀한 체험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일단 교사업무와 학교업무를 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제 능력으로는 평생이 걸려도 도무지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암호로만 여겨졌던 수학 문제가 마치 더하기 빼기처럼 쉽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교사경력 30년차인 선생님들이 사흘이나 나흘 걸려서 해내는 업무들을 고작 두세 시간 만에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경력 25년차인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끙끙대던 일을 30분 만에 해결해드린 적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인용이 길어 미안하다. 이런 간증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 그만 길어지고 말았다.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 가히 대단하다는 감탄과 함께 엄지손꾸락을 치켜세울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이 아래와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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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빙하우스 망각곡선. 한 시간만 지나도 절반은 까먹는다.

외워도 외워도 까먹는 건 죄가 아니라 원래 우리 머리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이지성 작가는 한 두 달이 지나도 90% 이상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주 일반적인 수준이었던 저자의 기억력이 인문학 학습 후 서번트 증후군에 버금가는 기억력으로 탈바꿈했다는 거다. 졸라리 부럽다.


좀 띄엄띄엄 봤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인문학>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앞서 말했지만 이 요약은 전적으로 내 조때로 했기 때문에, 내용은 같으되 그 구성은 이지성 작가의 책과는 다를 수 있다. 혹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리디북스(링크)에서 제공하는 47페이지 미리보기를 참고하심 되겠다.


이제 다시 앞서 본 ‘지디 인문학’으로 돌아가 보자. 그가 지디에게 인문학을 권하는 이유가 ‘지디가 내 책을 읽으면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아서’일까 ‘진심으로 지디가 인문학을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기’때문일까.


지금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않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관심법을 쓰지 않는 이상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가 어느 한쪽을 택했다 하더라도 다른 한쪽을 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가 교육봉사, 교육기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책으로 그가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자 하는지는 대강 보이는 것도 같다.


그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내가 싫어하는 자기 계발서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당구요정 차유람이랑 결혼했기 때문이다. 아, 아니, 그것도 아니다. 자기계발서도 괜찮고 가벼워지는 것도 괜찮다. ‘인문학’이란 타이틀도 달고 싶음 달아라. 인문학이 무언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건 뭐든 인문학 아닌가. 그의 책들이 입문서로써 나름의 의가 있다는 것 자체까지 부정하진 않겠다. 다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책을 쓰고 인문학을 말한다면 가벼워질 수는 있어도 스스로는 놓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그가 돈을 버는, 혹은 선의로 자신의 성공을 전파하는 방식은, 치열하지도 않고 비이성적일뿐더러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한다.


다시 한 번 그의 노하우를 보자. 공포심을 조장하고 그걸 고칠 수 있다는 뽕을 잔뜩 넣고, 정작 솔루션은 실행 불가능한 것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이 일시적 위안을 얻을 순 있으나 바뀌는 건 없다. 되려 임파서블한 솔루션을 해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죄책감만 지어줄 뿐이다. 독자는 다시 그 가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지성 작가의 책을 찾는다.




공포 -> 희망 -> 불가능 -> 책 구입 -> 공포 -> 희망 -> 불가능 -> 책 구입




이 굴레 속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첫째, (그의 표현대로) ‘쓰레기 같은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게 지속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되겠다. 요런 자기계발류 서적들은 개인을 시스템에 철저히 순응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감춰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지성 작가 자신이다. 같은 것 같지만 조금은 다른데 또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책들을 계속해서 써낼 그가 지금까지 팔아 재낀 300만 부에 이어 더 많은 책들을 팔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한 모든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그의 인문학'은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끝없이 불러 일으킬 테니까 말이다. 단, 그가 이 매커니즘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어쩐지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판단해주시라. 이상. 끄읕.





P.S.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께 ‘[김두식의 고백] ‘자기계발서 작가’ 이지성 인터뷰’ 기사를 추천하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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