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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엄마 추천8 비추천0

2014. 10. 17. 금요일

독투불패 고래엄마 






편집부 주



이 글은 원고 펑크 신기록을 수립 중이신 

'이슈 VS 이빨'의 마사오님 기사 마냥

역사적 사건에 촌철살인의 이빨이 더해진 형식이 돋보이기에

비스무리한 틀로다가 편집 함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럴 수가!

편집자도 믿기지 않는 가독성이 창출되었기에 

마빡에 올려드리는 바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이순신 말고 선조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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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집 남자들은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본다. 그런데 나는 조선 최악의 임금 선조를 보고싶지 않아서 같이 보고싶지 않다.


조선 제 14대 임금 선조는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춘 임금이다. 무능력한데 오래 살았고 신하들 잘둔 덕에(?) 죽을 때도 왕이었으니까.

 

선조는 1552년에 태어나 1567년부터 왕이 되어 1608년까지 조선의 왕이었다. 할아버지 중종의 서자 덕흥군의 아들, 그 중에서도 위로 형이 둘 있는 막내였다. 아버지도 적통이 아니고 아들도 적통이 아닌 흔히 말하는 방계 출신 제 1호다.


역사에는 정통성에서 두 계단 아래인 선조를 왕위에 세우면서 선왕 명종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사실은 나이 제일 어리고 더 정통성 없는 왕을 골라야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네 기득권을 대대손손 이어갈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는 명종 부인 인순왕후 세력이 선조를 찍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왕이 된 선조는 죽는 날까지 정통성 없는 권력 컴플렉스와 그 합병증인 '나보다 능력있는 놈에게 자리를 뺏길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영토를 다스렸다. 동물의 세계에서 늙어가는 우두머리 사자가 자기 무리 내 젊은 수컷을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적대자 1호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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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1570년 25세에 과거에 급제한 수재로 이이의 문하에 있으면서 "공자는 다 익은 감이요 율곡은 덜 익은 감"이라는 등 열혈 율곡당, 즉 서인이었다가 동인이 중앙정계를 장악하는 것을 보고는 누구누구처럼 당을 바꾸어 열혈 동인당이 되어 율곡을 씹기 시작했다. 적진에서 넘어온 사람이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 그렇듯 이제는 열혈 안티 율곡(서인)의 기수가 되었던 것이다.


인재들을 직접 가르쳐 키웠던 정조와는 달리 그럴 능력도 배포도 없었던 선조는 나이도 엇비슷한데다 능력잇는 정여립이 고와보일 리 없었을 테고 게다가 중앙 정계의 판세에 따라 제빨리 줄을 갈아타는 권력에 대한 기민성도 경계했을 것이다. 내가 틈을 보이면 언제든 나를 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적대감은 둘째치고 내가 실수라도 하면 꼬투리라도 잡아서 왕을 갈아치울지도 모른다는 권력 본능이 발동했다.


서로 물어뜯게 할 견제세력이 없는 한 최고권력자에게 위협감을 주는 능력있는 자는 발탁될 수 없는 법! 정여립은 끝내 낙마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정여립이 조용히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데 있었다. 그가 군사를 조련해 한양을 정복하려 했다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신원 복원 운동, 내시 자기 세력 규합 등을 통해 권력에 편입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선조는 그 싹까지 자르려 했다. 즉위 당시 윤원형 일파를 견재하기 위해 재야 사림들을 등용하면서 동인과 서인이라는 양당체제를 만들어 주었더니 동인이 지나치게 커지자 정여립을 이용해 동인을 제거하고 서인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다분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적대자 2호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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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이순신의 전공을 논하면서 넬슨은 나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이순신은 혼자 싸웠기 때문에 이순신이 훨씬 대단하다고 평했다. 나라를 지키는데 나라의 지원을 못 받는 것 그것은 조선시대 때도 있었던 우리 역사의 전통인 모양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창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쪽은 양당 중 서인이었다. 십만 양병성을 주장한 이이가 그 대표주자다. 그밖에도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등 중 서인 계열들은 다 안보위협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인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선조는 '국방 이상 무'라며 동인 손을 들어주고야 만다. 왜구와 환관들 때문에 정신 못 차리던 명과 4군 6진이 유명무실화되고 있는 틈을 타 여진족이 뭉치면서 후금의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는 것도 묵살하고 '북쪽 안보도 이상 무'라는 말에 혹한 것처럼. 강력하게 키워 놓은 군대를 장악하는 사람은 곧 나의 적이라 생각해서 그랬을까? 지나친 억측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그렇게 임진왜란은 터졌고 불방망이라는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신립의 처절한 저항 말고는 별 어려움 없이 걸어서 도성을 점령했고, 선조는 남몰래 의주로 도망쳤다. 한국전쟁 때 이승만이 국민을 안심시켜 놓고 몰래 부산으로 튄 것처럼.

 

이순신은 이 때 등장해 남해와 서해의 바다를 장악함으로서 일본군의 병력증강과 식량보급을 차단함으로서 전쟁에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쟁에서 칼을 쥔 자는 책임을 물어 우두머리를 바꿀 수도 있다는 공포심과 잘난 이에 대한 열등감이 스물스물 이순신에게 촉수를 뻗었고, 이순신 같은 장수보다 힘이 없어서 조금만 도와주는 척 해도 말 잘 듣는 쪽, 선조와 그 떨거지들을 선택한 명의 뒷배도 있고 해서 선조는 정여립처럼 이순신을 제거하기로 한다. 여기서 다시 오버랩 되는 그분 초대 대통령 이승만. 그분도 김구나 조봉암 같은 사람들을 적극 제거했다. 스펙에서 딸리는 기업 총수가 스펙 좋은 아랫사람에게 느끼는 그런 모멸감 내지 불안감, 열등감 등등이 한 몫했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다 김구나 여운형보다 말 잘 듣고 능력 없는 이승만을 선택한 미군정의 비호가 있었지 않은가! 역사는 정말로 돌고 도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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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는 이순신이 참 싫었다. 나라가 개떡같고 나라는 널 버렸지만 너는 끝까지 절대충성하는 아름다운 국민이 되라는 선전물의 표상 같아서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우리가 이순신을 그렇게 이용한 위정자들을 미워해야지 왜 엄한 이순신을 미워해야하는가! 물론 그가 완벽하다고 말하진 않지만 그의 업적을 깎아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죽을 만큼 얻어맞고 나을만할 때 딸랑 배 열세 척으로 명량대첩을 이뤄낸 이순신에게 내려진 '면사첩' 죽음을 사해준다는 종이 쪼가리 하나! 기르던 개가 마음에 안 든다고 개 패듯 패놓고 집에 든 도둑 잡아주니까 이제 맞을 짓 하지 말고 이런 것만 하라고 머리 쓰다듬어 주는 주인 같은 모습이다. 지가 잘못해놓고 용서해준다고 한마디 하는 우리네 사법 심판 같은 짓을 선조가 해버리고 말았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노량해전을 다룰 때 이순신은 스스로 갑옷을 벗는다. 내가 봐도 이순신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을까 한다. 전쟁에서 이기면 나중에 선조와 명에게 맞아죽을 것 같고, -아니 멸문지화라는 걸로 연좌죄까지 걸 지도 모른다- 질 수도 없는 상황, 진퇴양난 속에서 그가 할수 있는 선택은 자살이지 않았을까. 다행히 요즘은 이순신의 백의종군도 다루지만 이런 얘기도 많이 하니 대놓고 이순신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 참 다행인 세상이다.

 

독립운동 변변이 안 하고도 초대 대통령이 되어 저보다 잘난 놈들 다 죽이고 역사 정리 제대로 못해 아직도 서북청년단 운운하는 세상을 만든 이승만 대통령과 능력없이 왕위에, 그것도 너무나 오래 앉아서 잘난 놈들 다 제거하고 전쟁 후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아 역사의 흐름을 막아버린 선조, 참 많이 닮지 않았나?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 남편에게 읽어줘야 하나



 애절양

 

갈밭마을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라

현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군인 남편 못 돌아옴은 있을 법도 한 일이나

예부터 남절양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서 호소하나 동헌 문엔 호랑이요

이정이 호통하여 단벌 소만 끌려갔네

 

칼을 갈아 발에 들자 자리에 피가 가득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아 닥친 곤액

 

잠실음형 그 어찌 죄가 있어서리오

민 땅 자식 거세함도 가엾은 일이거늘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정한 이치

건도는 아들 되고 곤도는 딸 되는 법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하물며 대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한알 쌀, 한치 베도 바치는 일 없으니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한고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읊노라

 

 

조선시대 르네상스인, 다산 정약용의 시를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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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근대사를 배울 때 교수님이 들려주신 시다. 제목을 두고 한 내 옆에 있던 선배가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이라고 번역해 교수님께 된통 혼나던 기억이 난다. 창자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거세하는 기막힌 슬픔이라고 하는 거라고.

 

부모가 물려줄 게 없으니 아이들을 결혼할 때까지 서로 웃고 울고, 사회를 향해 시민의식을 나눌 수 있게 형제라도 물려주자는 마음으로 아이 둘을 낳았다.


포유동물이 설마 새끼 못 낳을까보냐는 무모함과 병원에서 동물 취급 받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아이들이 처음 보는 세상이 이상한 아저씨 아줌마, 기계같은 것만 가득한 엿같은 곳이 아니라 엄마 쭈쭈와 아빠 목소리,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라는 인상을 줘 안심시키고픈 마음에 집에서 낳는 이벤트도 해 주었다.

 

박원순 아저씨와 다른 분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가게 덕에 착하지 않은데 착한 일 조금 하면서 형제들 중에 제일 돈 없으면서도 제일 풍족하게 아이를 키웠고, 밖에서 일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는 자본가들이 만든 착취공식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사육시키지 않고 학교라는 곳으로 보낼 수 있었다.

 

작은 아이는 이제 다섯 살. 남편은 셋째를 가지고 싶어선지 유모차와 아기 욕조 같은 걸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게 말을 못한다. 나도 자신이 없다. 다섯 살 짜리 작은 녀석은 본인 의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유치원 사육을 시켜야 하는지, 그러고 나는 일터로 나가야 하는지 자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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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강진에서 <애절양> 쓰고 60년쯤 지나 진주를 중심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171개소에서 진주 농민항쟁이 터졌다. 강화도에서 농사짓다 이씨 혈통이라는 이유로 김씨들이 세운 허수아비 왕, 철종은 이를 수습할 생각은 전혀 할 능력이 없는지라 김씨 작폐들이 시키는 대로 삼정이정청이라는 걸 만들었다. 컨텐츠 없는 나랏님이 다스릴 때는 예나 지금이나 밑에서 시키는대로 하게 마련인데 시키는 방법이 옳았던 적 또한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지금 그 역사와 싱크로율 백 퍼센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 생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곡창지대인 삼남지방이 무너지면 자기네들도 뜯어먹을 게 없는 관계로 하층민을 달랜답시고 만들어 놓은 삼정이정청이라는 것의 수장은 안동 김씨와 그 작폐들!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한 일이다. 지금의 세월호법 논의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돌고 있기 때문에 역사에서 현재를 배우는 게 아니라 현재에서 역사를 배워야 할 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정이정청은 다산이 노래한 군역의 슬픔과 토지를 소유자가 내야 할 대동세나 결작세 같은 세금도 소작농에게 고스란히 전가하고, 죽지 말라고 쌀 빌려 주고 엄청난 이자로 더 처절하게 받아내는, 국가가 공식 인정하는 쌀 고리대인 환곡제 등을 개혁한답시고 설치는 척 하다 <삼정이정절목>이라는 책 한 권 딸랑 펴내고 해체되었다.


애초에 수사권도 기소권도 집행 인력도 없는 이름만 있는 기관인데다 자기네가 망가뜨린 삼정을 스스로 고치라고 앉혀놨으니 애초부터 뭘 하자고 만든 게 아닌 것이다. 지금의 그 많은 위원회들과 국회라는 곳에서 만든 세월호법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게 하는 기관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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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를 보면서 나는 남편에게 아들이라도 좋으니 셋째 낳자는 말을 할 자신이 없다. 오늘 남편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뭐라고 할까? 우리도 스스로 피임이란 이름의 거세를 하고 있는데 참 씁쓸해 하려나.





화냥년에서 기지촌 이모들까지



우리 네 식구 산책길을 가로막을까봐 잽싸게 휙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아들 둘이 먼저랄 것도 없이 '도둑고양이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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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버려져 배신감을 추스르며 추워지는 날씨에 처절하게 생존투쟁하고 있는 당찬 녀석에게 도둑이라니? 대책 없이 내몰아 도둑으로 만든 게 누군데 도둑고양이? 고 녀석 참 억울하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꼭 길고양이나 집 없는 고양이라고 부르라고 일러주었다.

 

억울한 게 어디 도둑고양이 뿐이랴. 우리 역사에도 이렇게 억울한 이름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 중 으뜸은 '화냥년'이 아닌가 싶다.


대책 없이 남자만 밝히는 몹쓸 여자라는 화냥년이란 말은 환향녀에서 나왔다. 금의환향 할 때의 그 환향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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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보존과 무능, 전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로 주변 판세를 잘못 읽어버리는 -마치 명박이 아저씨의 그것과 같은- 삽질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져 백성들을 난민으로 격하시켰다. 화냥년도 이 때 생겨났다.


임진왜란으로 명과 조선이 초토화된 틈을 타 누루하치라는 사람이 나타나 흩어진 부족을 모아 후금을 새우더니 몇년 지나지 않아 중국처럼 한 글자로 된, 딴에는 정식 나라랍시고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정신 못차리는 인조를 압박해오니 인조는 입으로만 전쟁을 외치다 원래 피난지인 강화도까지도 못가보고 남한산성에서 잡혀 우리 역사에 '삼전도의 굴욕'이란 이름을 남겨주었다.

 

그래도 인조는 맨 땅에 해딩하면서 이마 좀 깨지는 걸로 왕 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는데 애먼 백성들 50만이 포로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갔고 그 중에 체력과 피붙이의 재력을 두루 갖춘 운 좋은 사람들만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걸 어려운 말로 속환이라 부르는데 속환된 포로들 중에 여자를 환향녀라고 불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네들이 지켜주지 못한 것을, 살아 돌아왔으면 위로금을 주지는 못해도 잘 돌아왔다고 도성 안에서 잔치라도 벌여주었어야 하건만 조선 남자들은 이들에게 '오랑캐 남자들을 섬겨 음란해지고 문란한 기운을 갖고 조선에 들어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낙인을 찍어버림으로써 적보다 더한 인권유린을 하고야 말았다. 섹스를 강요 당해 몸이 망가졌다는 것보다 강요 당할 때의 굴욕감과 그 이후의 몹쓸 여자, 음란한 여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더 무서운 법 아니던가!

 

꼭 그래야 했나?


그래 꼭 그래야 했지.


왜?


기득권 유지 때문이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거나 잘 살아돌아왔다고 받아들여주는 순간 백성을 지키지 못 했다는 안보무능이 고개를 들 수 있고 그리 되면 백성을 통제하고 내 자리를 보존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너희들은 살아돌아오면 안 됐고, 살아돌아와서도 죽은 척 엎드려 있어야 하는 거지. 너희들이 얼마나 음란하고 몹쓸 년들인지 보여줄게. 정조라는 걸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순종하다 간 열녀들과 그 비문들을 봐! 그래서 조선후기부터 열녀비와 열녀문이 넘쳐났군 그래!

 

권력자들이 자행한, '문란한 여성' 낙인찍기의 적반하장은 300여 년 뒤 그대로 계승되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기지촌 이모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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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좌절된 반민특위와 친일파들의 권력 재장악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몹쓸년들', '그 몸으로 제대로된 애나 낳겠나'하는 식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까지 빼앗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어 해방된 내 나라에 와서도 반겨주는 이 없는, 불가촉 천민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일본군에 복무했고, 내 나라 여자들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몰았던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며 미얀하다고 사과할 리 만무했다. 그러면 내 권력을 내놓아야하는데 그런 의로운 권력자를 나는 우리 정치사에서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자기 기득권 유지를 위해 경제개발비라는 명목으로 6.3 한일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당한 보상권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내 나라도 보상 안 해주는 판에 원고 측에 고발도 못 하게 하였으니, 할머니들의 한이 수요집회로 이어졌다는 건 말 안해도 알 수 있다.

 

권력자들이 친일에서 친미로 전향해 잘 먹고 사는 동안 누구한테도 수용받지 못한 할머니들은 먹고 살기 위해 미군기지 주변에서 다시 성을 팔 수밖에 없었고, 전쟁 후에 먹고살기 힘들었던 가족을 위해 자기 몸을 팔아 소중한 외화를 벌어들여 가족과 나라를 먹여살린 이모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암암리에 장려한 미군 상대 성매매 이모들! 우리는 그들을 기지촌 이모들, 양공주 이모들이라 불렀고 국가는 그들에게 나라를 위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불러주며 계속 성노예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지금 국가가 그들에게 해준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정책이 있는가? 코드 원부터 그 이하 위정자들은 그들이 힘들여 일하기 싫고 천성이 게을러 쉽게 돈버는 길로 들어선 막나가는 여자들로 낙인찍고 있지 않은가?

 

<Yes means yes......>라는 독투를 보며 꼭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No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맥없이 당해야 했던 그네들의 한의 역사와 지켜줘야할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무능에 대해서! 그리고 리더들을 잘못 만나 두 번 죽어야 했던 인간에 대해서!









독투불패 고래엄마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