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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로도 함 가볼까 아니면 그리스로 다시 돌아가 볼까 하다가 어째 또, 또, 또, 절대왕정의 그때로 끌려들어 가게 되었더랬다. 꿈도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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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정체론의 종결자 몽테스키외를 다루는 만큼 간단히 흐름을 정리해보자. 16세기 초반 마키아벨리는 교회와 정치를 분리하고, 유능한 군주상을 그렸다. 17세기 초반 홉스는 이걸 꿀꺽 받아서 왕 아래의 평등과 법에 의한 통치를 구상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더는 왕을 믿을 수 없었던 로크는 의회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분립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18세기 초반 몽테스키외는 이에 필을 받아, 하나 받고 하나 더! 라는 정신으로 사법권을 독립시켜 삼권분립의 원칙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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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1689~1755)



공화정체에서는 덕성이, 군주정체에서는 명예가 필요한 것과 같이 전제정체에서는 공포가 필요하다. 전제정체에서는 덕성은 전혀 필요하지 않고, 명예는 위험하기까지 할 것이다.


- 몽테스키외 지음, 이명성 옮김, <법의 정신>, '제3편 세 가지 정체의 원리', 홍신문화사, p.34




군주정체나 전제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평등을 바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월을 지향한다.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들도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그것은 남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 <법의 정신> '제5편 입법자가 제정하는 법은 반드시 정체의 원리와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 p.51




절도 있는 국가에서는 법은 어디서나 지혜롭고,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하급 관리라도 그 법을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전제국가에서는 다르다. 법이 단지 군주의 의지일 뿐이므로, 군주가 제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관리로서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의지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 <법의 정신> '제5편 ', p.72-73




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아시리라. 로크와 몽테스키외 사이에는 둘에서 셋으로라는 단순한 버전업 이상의 차이가 있다. 도시로 부가 몰려들고, 그에 따라 터전을 잃은 하층민들도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끈하게 큰 일을 벌일 때마다 공공부채는 쌓여가고 뭐 그런 흔한 공통점을 제외하면, 18세기 초반을 전후로 한 영국과 프랑스는 너무나도 다른 나라였다. 프랑스는 (아직)왕의 목도 못 잘라봤고, 신 귀족(법복귀족)을 중심으로 신분제도 견고했다. 게다가 일상세계의 지배자라 불릴 만큼 교회 역시 여전히 만만치 않은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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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의 하층민들



법복귀족 출신으로 거의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을 '뻔' 했던 몽테스키외는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에 만연했던 특권의식에 진저리를 치고 법관직을 팔아치운 후 이 책을 쓰는 데 인생을 바치게 된다. 루소처럼 대놓고 돌직구를 던져대지는 않지만, "법의 정신"에서는 자국 프랑스를 폭풍 디스하는 대목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요약하자면 왕(루이 15세;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악명높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더랬다. 앞선 세대의 그림자가 너무 컸던 것. 왕위와 더불어 궁정의 관료들과 법복귀족, 부채도 함께 물려받아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는 손을 놓아버린 건 사실)에게는 명예가 없고 귀족에게는 덕성이 없으니 프랑스는 전제 국가라는 거다. 그럼 교회는? 옛날 옛적 언젠가에는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했었더랬지. 마봉춘처럼


계몽주의자였던 그에게 교회의 권력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특권층에게 모든 권력을 줘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옆 나라의 정치변혁과정을 보아하니, 급격한 변화는 피와 혼란으로 얼룩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현존하는 틀의 연장선상에서, 그러나 당시의 계몽사상가들에게조차 파격적이었던 제안을 한다. 바로 재판권을 평민들에게 넘겨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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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신분 성직자, 제 2신분 귀족, 제 3신분 그 외 모든 사람



재판권은 상설적인 원로원에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법률이 정하는 수속에 의해 필요한 기관에 존속하는 법정을 구성해야 하며, 또 그러한 시민단체로부터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재판권은 특정한 신분이나 특정한 직업에 결합되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눈앞에 항상 같은 재판관이 있을 일이 없고, 사람들은 재판관직은 무서워해도 재판관은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중대한 공판에서 범죄인은 법과 협력해서 스스로 재판관을 선출해야 한다. 또는 적어도 많은 수의 재판관을 기피할 수 있어서 남은 사람이 그가 선택한 사람으로 간주되어도 좋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 '제11편 국가조직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자유를 형성하는 법', p.162



영국의 계몽사상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또한 신분제 하의 법률가이기도 했던 몽테스키외는 법률체계를 사회계약에 기초한 원칙의 차원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법은 곧 정의가 아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하나였으며, 또한 권력을 제힘으로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사회계약이 유효하려면 법체계도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어야 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배심원제 등을 예로 들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어떻게 정치적 결정권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나간다.


명망과 재산을 갖춘 귀족과 시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법을 제정하고, 평민들로 구성된 재판정이 심판한다. 그리고 공권력을 지닌 왕이 공공의 결정을 실행한다. 만약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높으신 분-높으신 분-높으신 분으로 구성된다면 왕-귀족-교회의 나눠 먹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동일한 인물이나 세력에 의해 세 가지 권력 중 둘 이상이 장악된다면 삼권분립은 단순한 형식에 불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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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체에서 과도한 권위가 갑자기 한 시민에게 부여되면 일종의 군주정체 혹은 군주정체 이상의 것이 형성된다. 군주정체에서는 법은 국가 구조의 결함을 메워 주거나 아니면 그것과 조화를 이루고, 정체의 원리가 군주를 제약한다. 그러나 한 시민이 과도한 권력을 장악한 공화정체에서는 법이 그 점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제약할 어떤 수단도 없으므로, 그 권력의 폐해는 보다 더 크다.


- '제2편 정체의 본성에서 파생되는 법', p.23



몽테스키외가 법에는 사회가 투영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꼭 기억해둘 만 하다. 사회가 잔인하다면 법도 잔인해진다. 똑같은 법 조항이라도 온갖 사회적 편견, 통념, 가치관, 사고방식 등에 의해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법이 아니라 교육과 토론의 몫이었다. 법의 정당성은 폭넓은 합의에서만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공공의 의사결정을 대리할 대표자를 선출할 권한 이상으로 직접적인 의사결정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했다.



자유로운 국민에게는 개인적인 의논의 좋고 나쁨은 대개의 경우 아무래도 상관없으므로, 시비를 따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거기서 자유가 생겨나고, 그 자유가 이런 토론의 결과를 보장해 준다.

이와 같이 전제정체에서도 사람들의 토론이란 좋은 나쁘든 모두 해롭다. 사람들이 이 정체의 원리에 대해 따지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받는 것이다.


- '제19편 국민의 일반정신과 습속 및 생활양식을 형성하는 원리와 관계되는 법', p.309




기강이 느슨해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그것은 범죄를 처벌하지 않은 결과일 뿐 형벌을 경감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 부패와 타락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국민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법에 의해 타락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고칠 수 없는 병폐이다. 왜냐하면 병의 근원이 치료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 '제6편 민법 및 형법의 단순성, 재판의 수속 및 형의 결정 등에 관한 여러 정체 원리의 귀결', p.91-92



그럼 몽테스키외가 말하고자 했던 '법의 정신'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유추하실 수 있을 듯싶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법이란 쉽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가급적 간결하게,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의미 그대로 사용해서 써야 한다. 여느 지식이나 사업이 그러하듯, 법도 어렵고 난해하다면 소수에게 독점될 수밖에는 없다. 특히나 법치국가에서 법의 독점과 권력의 독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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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쉽게 쓰여야 한다.



그리고 법은 자의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명확하되, 너무 세세한 규정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법은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변경되어야 하고, 예외나 제한, 수정이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법은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불필요하거나 지켜지지 않는 법은 법체계 전체에 대한 존중을 약화시킨다.



정체의 원리가 일단 부패하면 가장 좋은 법도 악법이 되어서 국가에 위배된다. 그 원리가 건전하면 악법도 좋은 법의 효과를 가진다. 원리의 위력이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이다.


- '제8편 세 가지 정체의 원리의 부패', p.126



(그러나)유럽(프랑스)에서는 군주의 포고는 그것을 읽기도 전부터 사람들을 괴롭힌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필요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결코 우리 신민의 필요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제13편 조세의 징수 및 국가 수입과 자유의 관계', p.219



타락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다. 그들이 방황하는 것은 어른들이 이미 부패해 있을 때뿐이다.


- '제4편 교육법은 정체의 원리와 관계가 있어야 한다', p.43



불경죄의 부당함이라든지, 노예제나 통상, 상속, 공채 등과 관련된 법을 살피면서 절대왕정과 중상주의, 신분제의 면면들을 아닌 척 골고루 씹어 드시는 솜씨를 모두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잔변을 남기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쯤에서 그만. 아무튼 몽테스키외가 이야기했던 삼권분립은 세 가지 권력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을 만큼 동일한 무게를 가질 수 있는지, 또 왕정이 폐지된 이후의 정치에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과연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러모로 비판받고 또 대안이 고민되어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거다. 몽테스키외의 생각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몫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사회를 '가난에조차 참가할 수 없는' 사회로 보았다. 삼권분립이건, 사권분립이건, 오권분립이건, 혹은 지방분권이건, 형식이야 어떠하든, 실질적인 결정이 소수의 손에 달려 있다면 몽테스키외의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음… 너무 진지했나? 게임으로 치자면,


"쪼렙도 유저다! 이거뜰아."


라는 뭐 그런 이야기. 중세법의 변천 과정에 대한 설명 중에 눈길을 끌었던 문장으로 끝맺고자 한다.



무지의 시대에는 저작의 요약이 흔히 그 저작 자체를 매장해 버리게 마련이다.


- '제28편 프랑크인에 있어서의 시민법의 기원 및 변천', p.465



<무지의 시대>라는 영화도 있다더라, 어찌어찌 욱여넣으며 소레쟈~










onesixth


편집 :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