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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2. 수요일

金氷三








경마장 커피 자판기와 설악산 케이블 카


최근에 경마장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에는 과천 경마장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관중석에 올라가기 전 광장에 다소 뻘쭘하게 두어 대가 있었다.


경마는 보통 한 시간에 한 게임이 열리는데, 말이 달리는 시간은 길어야 1~2분이고, 나머지 58분은 탐색과 결정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예상지를 들고 말을 찍기도 하고 다음 게임에 나올 말들의 상태를 살피러 가기도 하고, 또 일부는 긴장했던 순간을 달래려고 내려와서 커피를 한 잔 하기도 한다.


그래서 커피 자판기 앞에는 항상 줄이 길다. 말이 달리는 시간 몇 분을 제외하면 늘 그렇다. 당시에 들리던 소문으로는 과천 경마장에 있는 커피 자판기 한 대의 수익이 월 2천만 원이라고 했다. 실제로 커피를 뽑아먹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물이 모자라, 자판기 옆에 석유풍로를 갖다 두고 사람이 큰 양푼에 물을 끓여서 자판기 급수통에 부어 넣기까지 했다.


흔히 말하는 '노나는 장사'가 바로 이런 것이다. 몇 백만 원 정도 하는 자판기 하나가 한 달에 2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오죽하면 ‘경마장에 커피 자판기를 놓을 권리는 대통령 빽으로도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과연 이 엄청난 수익의 원천은 무엇일까? 몇 백만 원 짜리 기계일까, 아니면 ‘경마장’이라고 하는 그 자리일까? 과연 돈 몇 백만 원을 투자한 자판기 주인이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맞을까, 그 자리에 자판기를 놓아도 된다고 한 누군가가 그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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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설악케이블카'라는 케이블카 회사가 있다. 다카키 마사오의 전처 소생이 갖고 있다는 이 회사의 자본금은 2억 5천만 원이다. 그런데 연간 영업이익은 50억 정도다. 그러면 이 엄청난 영업이익의 원천은 자본금 2억 5천만 원일까, 아니면 ‘설악산 권금성’이라고 하는 그 자리일까?


박근혜의 지시로 속성 추진되고 있다는 설악산 대청봉 케이블카나 호텔 건립 사업도 이와 똑같다. 거기에 투자되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은 그것들의 수익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케이블카가 됐든 호텔이 됐든, 이익이 난다면 그 이익은 엄연히 국가 소유인 설악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지, 거기에 투자된 자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세무 회계상 이익은 쥐똥만한 기여를 한 자본가에게만 100% 돌아갈 뿐, 정작 수익의 원천인 설악산의 원 주인인 국가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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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설악산 대청봉에 케이블카와 호텔을 만들면 무조건 장사가 잘 될 것이다. 이것은 100% 확실하다. 아무리 자연보호 단체가 나서서 ‘설악산 안 가기 운동’을 하고 어쩌고 해도 장사는 잘 될 것이고, 설악산은 설악‘산’이 아닌 설악 ‘유원지’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지어진 케이블카와 호텔을 철거해도 원상태로 돌리는 데는 아무리 짧아도 1~200년은 걸릴 것이다.


앞서 예를 든 경마장 커피 자판기는 한 대당 월 순익을 수천만 원이나 남겼지만, 지역 경제에 공헌한 건 ‘석유풍로에서 물을 끓여서 자판기에 붓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아저씨가 받는 돈인 일당 3만원이 전부다. 한 달 해봐야 24만 원. 마찬가지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매표 겸 안내 방송하는 매표원과 탑승을 도와주는 안전 요원, 매점 판매원 같은 최저 시급 인력 몇 명의 급여 만큼이다. 호텔도 그렇다. 방 청소하는 아줌마, 호텔 보이, 식당 알바 등 이들이 취직해서 받는 월급 정도만이 그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관광객이 와서 쓰고 가는 케이블카 비용이나 호텔 숙박비는 결코 강원도 설악산 인근에 남지 않는다. 지역 경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가, 또는 돈 굴릴 데를 찾는 자본가들이 ‘설악산 개발’을 주장하는 게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돈’을 좆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니까. 하지만 명색이 야당 출신 도지사라는 양반이 앙말 걷고 나서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설악산 개발은 눈앞의 관광객 증가를 유발시킬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설악산의 지위를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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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관광호텔과 케이블카에 대한 최문순 지사의 인터뷰

<PBC 뉴스>



가리왕산의 미래


설악산 정상에 대한 케이블카와 호텔 신축에 대한 집요한 공작(?)을 보면서 가리왕산의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현재까지 내려진 결론은 가리왕산에 스키 활강슬로프를 건설하여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 사흘간의 경기를 치른 후 원래대로 복구한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슬로프 건설에 천 억, 다시 복구하는데 천억 원 정도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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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슬로프 조감도


우리나라의 스키장은 국제 스키협회가 규정한 활강 경기장 기준에 맞는 것이 없어서 신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계 어떤 나라도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스키 슬로프를 신축하고 원상 복구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처지를 고려해서 올림픽 조직위원회은 여러 옵션을 제시했다. 현재 기준에 가장 적합하지만 고도가 못 미치는 용평의 슬로프에 인공 구조물을 세워서 기준을 맞추는 방법, 활강을 두 번에 나눠서 경기를 하게 한 후 시간을 합산하여 순위를 정하는 방법, 일본과 분산 개최를 하는 방법, 일본이 싫다면 활강 경기만이라도 북한에서 시행하게 하는 방법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강원도와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끝끝내 모두 무시하고는 학생 주임이 두발 검사하던 학생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듯이 가리왕산을 밀어버렸다.


의심을 가지는 가장 큰 부분은 ‘과연 경기 후 가리왕산을 복구했을 때 원래대로 보호구역으로 되돌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절대 그럴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진짜로 가리왕산의 자연을 소중히 여겨서 원상 복구할 정도의 ‘개념’이 있는 집단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훼손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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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을 벌목하고 있다.

(출처- 녹색연합)


2018년 올림픽이 끝나면 틀림없이 ‘복구에 드는 비용’과 기 개발된 지역의 관광 상품화를 내세워 복구는커녕 추가 개발을 할 것이다. 경기장 건설과 진입로를 만드는데 드는 돈은 그저 건설업자의 얕은 지갑을 채워줄 뿐이지만, 새로 개발될 ‘가리왕산 관광지구’는 두고두고 빼먹을 수 있는 소중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 슬로프를 계속 운영할지 혹은 슬로프는 폐쇄하고 향후 500년 뒤를 내다보면서 묘목을 심을지는 알 수 없으나, 경기장 하부인 운영 시설 부근은 대단위 관광지구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휴양림이든 산림욕장이든 이미 진입로가 완성되고 일부 개발이 된 그 땅을 원래대로 되돌릴 리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가리왕산 산자락이 개발된다면, 스키장이 들어서기 전 가리왕산 산자락 땅값에 비해 적어도 수천 배, 많게는 수만 배가 오르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설악산에다가 케이블카와 호텔을 지어 천년만년 안정된 수입을 올리는 바로 그 사람들은 가리왕산에 지을 각종 휴양 콘도나 별장과 같은 시설들을 이용해 똑같이 빼먹을 것이다. 물론 이 때도 ‘낙후된 지역의 경제 활성화’라는 약방의 감초 같은 슬로건도 빠지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런 식의 관광 개발은 절대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자본의 수익 창구가 될 뿐, 지역민들은 최저임금의 노예 역할만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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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감히 예언한다. ‘가리왕산은 올림픽 경기 이후에도 절대로 원상 복구되지 않고, 휴양지라는 명목으로 자본의 새로운 수익 창구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면 가리왕산 스키슬로프는 당초에 ‘부동산 개발’을 염두에 두고 추진된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자본가들에게 자비란 없다. 그저 돈만 된다면 제 부모 묘소라도 파 엎고 상가를 지을 놈들로 보이는데, 하물며 주인 없는(?) 국유지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金氷三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