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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9. 수요일

miseryruns










어떤 슈퍼 히어로의 죽음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근성 중의 하나가 자기 히어로를 중간에 내다 버리는 건데요. 자기 히어로를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를 버리는 거거든요. 10대 시절과 20대 초반까지 자기가 열광했던 히어로는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는 정체성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보수 기득권층에 영합되어버리는 순간 자기 히어로도 같이 버린단 말입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중략) 우리나라 팬들은 20대 중반만 되면 '내가 10대 때 XXX이 좋아했었는데, 그땐 미쳤었지' 라고 합니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는 거잖아요.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않구요.“

 

- 신해철. [쾌변독설] 신해철, 지승호 지음. p34-35 



어떤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 사람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기회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그 때가 되어서야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오래된, 유의미한 사람이었는지 깨닫는다.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의 관념을 덮어씌워서 그 사람의 행동과 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상대를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래줬으면 좋겠는데. 그가 저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그 사람에게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도 우리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관념을 투사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지 못(않)으면 화를 내곤 한다. 슬퍼하거나, 증오를 드러내기도 하고,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무시한다. 그러고는 그가 나에게 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그를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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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난 뒤의 평가는 생전의 그것과는 좀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제 고정되었고, 죽었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며, 동시에 망각이라는 것과 싸워야 하는, 정확히는 망각이라는 것과 그 사람 사이에서 내가 대리전을 치루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망각과 싸우거나, 망각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그 사람의 위치를 찾아 헤맨다. 그가, 나의 삶에 언제 무엇을 남겼을까, 하고.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된다. 이영도의 글을 인용하자면 내 안에 있는 그 사람을 찾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 글은, 지금 이 상황에 있는 나의 생각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긴 잡문이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관찰 능력을 가진 히어로

 

사람이 말로 내뱉은 것 중 가장 행하기 어려운 일이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가 담배 끊는다, 다른 하나가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특히 나와 반대되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노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건 역지사지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걸 따로 부르는 말이 상대론()이. 상대론(세계에는 절대점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비교로 가치평가하려는)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을 찾고 싶다면 정치인들을 보면 된다. 절대선 보다는 상대적 선, 그것도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근거로 한 상대적 선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면, 이들을 따를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들은 옳은일을 찾는 것보다 적을 이기는방법을 찾는 데 익숙하다. 그게 우리가 정치인들을 경멸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도 대개 그렇다. 우리는 이명박이 나쁘기 때문에 노무현이 그립, ‘박근혜가 끔찍하기 때문에지난 선거의 결과가 아쉽지 않은가.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역지사지를 행한 사람이 있다. 담배는 끊지 못했으니 이런 면에서는 또 보통인 우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노벨상처럼 역지사지에 대한 상을 수여하는 행사가 있다면 대상은 몰라도 장려상이나 감투상 정도는 받아야 할 사람이 신해철이다. 그는 그런 태도로 논객이라든가, ‘싸움꾼이라든가, ‘독설가라든가 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는 성격은 더럽고 말은 잘 해서, 말로 이기기 어려운 궤변론자라는 비판이 가장 잘 먹히는 연예인이었다.

 

그렇다. 그는 연예인이다. 그는 연예계에 종사했다. 그 연예계라는 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대중의 시선이 쉽게 몰리는 곳이고(의 존재 원리 자체가 그러하니까), 그러므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런데, 그 생각해 본 적 있나. 신해철이 평생을 산 직업은 역지사지와 일반론보다는 상대론이 더 유용한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상대론은 여러 레이어로 적용되는데, 우선 한국의 연예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배우(가수, 탤런트, 뭐든 연예계 종사자라면 마찬가지) A씨 마약복용(이 외에도 각종 범죄를 끼울 수 있고, 심지어 범죄가 아니지만 그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어떻게 한 경우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혐의라는 기사가 뜨면, 그 뒤로 소문이 돌며, 사실 당사자가 아닌데 그런 소문이 돈 사람들은 그 때부터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몸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는 직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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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충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신해철은 그런 직종에서, 그나마 가장 역지사지에 충실한 삶을 살고, 말을 하고, 음악을 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 연예계라는 세계에서 절대선이거나 절대적 합리라는 개념은 별로 쓸 데가 없다. 문화와 예술에는 절대선이라는 개념이 원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그는 먹고 사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외려 피해만 가득한 일들을 굳이 하고, 그런 발언들을 굳이 공론화시키고 살았던 셈이다. 대마초 합법화, 동성동본 금혼조항에 대한 문제제기, 음악 씬의 총체적 난국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대중에 대한 책임 묻기, 노무현 대통령후보에 대한 지지선언과 정치활동, 그리고 그 외에도, 그는 그가 생각하기에 이상하다거나, ‘옳지 않다’ 싶은 것들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삶에 대한, 그가 살아있을 때의 대중의 평가를 생각해보라. 역지사지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게 산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아름답게 봐 주지 않는다는 증거로 신해철을 가져다 써도 될 게다.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가수일 뿐인데 왜 저러는지. 그래서, 거기에 사람들은 이유를 생각해서 붙여놓기 시작했다. ‘뜨고 싶어서’, ‘주목받으려고등등으로. 그런데, 보통 그렇게 살다보면 대중적으로는 궤변론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는 담배를 끊을 정도로 자기경계에 삼엄한 인물은 아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궤변론자로 사람들에게 낙인찍혔다. 게다가, 그의 말은 연예에서 그대로 받아주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잘리고 재구성되어 다른 말이 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의 면전에서 그를 궤변론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궤변론자의 특성은 그 논의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다른 목적을 위한 변론을 한다는 거다. 신해철을 궤변론자로 몰았던 사람들의 논리는 그래서 결국 이거 이용해서 너 뜨려는 거지’, ‘대중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거지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신해철이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을 얻은 적이 있긴 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있다 해도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그 외의 경우에서, 신해철은 늘 져 왔다. 연예는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며칠 전부터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 대한 어떤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멘트가 인터넷 상에 돌아다닌다. 그의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캡틴 아메리카가 왜 대단한가 하면, 수십 년을 빙하에 얼어있다가 깨어났다. 그런데 깨어나자 마자 바로 앞에서 흑인이 나타나 니가 필요하다. 와서 일해라고 하고, 게다가 사이드킥도 팔콘이라는데, 흑인이야! 게다가 날아다녀! 그런데도 한 마디 말도 없이 적응하는 거다. (사실 마블은 앞으로의 캡틴 아메리카는 팔콘이 물려받음이라고 선언했다. 흑인 캡틴 아메리카 탄생이다. 스티븐 로저스는 슈퍼 세럼이 말라가고 있어서 노화가 진행중인 설정)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 로저스는 엄청나게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이야기가, 개그가 되는 거다. 보통 사람에게 이런 합리주의적 판단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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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개그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사회적으로 구별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채현국 효함학원 이사장과 한겨레의 인터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은 사람들, 많을 게다. 그거, 노인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공경이라는 키워드를 제외하고 노인들을 보라는 거다. 채현국 선생이 그럴 수 있는 건, 자신 스스로를 조명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나마, 내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 중에 이런 시선을, 권위와 위력을 무시하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신해철보다 명확한 사람을 못 봤다. 나에게 그는 캡틴 아메리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현실적, 상황적 인식에서 시작하는 전략의 설정

 

어떤 사람이 실제 현상을 통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을 때, 그 현상은 사회적으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즉각적이고 격정적인 변화여서 모두가 그 변화를 알게 되는 것이다. 흔히 아이돌 문화로 표현되는 음악계, 웹툰의 성장으로 이야기되는 만화계 등이 이런 특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스타를 만드는 거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이렇게 산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 이건 꽤 계산적이어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세상이 그들을 잘 써먹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고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았노라고. 사실은 그들을 이용해서 바꿔 먹은 거면서. 또는 서로 짜고 한 셈이거나.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한도전을 지나, 광고에 나오는 김연아를 보는 사람들은 이제 피겨스케이팅은 제외하고, 김연아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세상을 맞이한다. 그렇게, 김연아는 소비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저 돈을 잘 버는이상의 무엇을 하기는 어렵다. 김연아는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피겨스케팅이라는 새로운 사교육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역할로 소비되었다. 얼음 위에서 뛰고 돌고 있을 아이들이 행복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거기에 욕망이 새로이 작동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 그들 중에 스타가 될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 걸까.

 

이런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그냥 세계에 그런 대단한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뭔가 더 있어야 한다. 그 또 다른 요소, 대중이다. 대중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스타로 만들어내는 방법이자, 돈을 만들어내고, 소비를 기반으로 시장을 키워내는 방법이다. 이런 현상들은, 문화로는 기능하지만 예술로 기능하기는 쉽지 않다. 피겨스케이트 경기장에서의 김연아는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녀가 부르는 노래나 그녀가 나오는 광고가 예술이 되기는 난망이다. 그러므로, 스타는 예술가가 되기 어려워진다. 다른 영역에서, 그가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없는 영역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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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역시 이런 스타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스타가 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변화가 구현되려면 그 변화를 진행하는 데 조금씩 영향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실, 그냥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는 현재 상황을 인식하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음악이 이런 역할을 오랜 시간동안 해 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음악은 전파에 필요한 비용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예술에 해당되니까. MP3 논쟁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음악은 어떤 예술장르보다도 오랜 복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방송이라는 전파매체가 가장 처음 들여놓은 예술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음악은 장르라는 개념으로 소비자를 분화한 최초의 예술이다. 대개 다른 예술들은 생산자의 특성, 역사성, 사회적 관계 등으로 영역이 정해지는데, 음악은 이런 관계보다는 어떤 뿌리에서, 어떤 소비계층에서 나온 것인가가 장르가 된다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가장 단순한 단계에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아이돌 시장일 것이다.

 

그래서 신해철은 아이돌 시절을 지났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전제에서. 그가 수없이 이야기한 자신의 보컬로서의 자질과 문제에 대해,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그래도 내 목소리도 노래할 만 하다는 결론을 낸다. 가수 생활을 20년을 해 놓고서. 그리고, 이제, 기타를 땡길수 있는 상황이 되자, 아이돌을 폐업한다. 그만큼 통쾌하게 영역을 바꿔 활동한 사람이, 있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도구화하다

 

음악에서 한 사회의 문화가 시작되는 데는, 그 음악이 주장하는 의미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신해철은,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하는 게 아니라, 찾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는 아이돌로 가수를 시작했으나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기타를 들고 락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을 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돌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그 환경이 갖추어지자마자 아이돌로서의 자신을 버린다. 그러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서태지와의 비교를 해보자면, 서태지는 그 경계를 부드럽게 넘어가려는 노력을 오랜 시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진행했지만(같이 늙었지만), 신해철은 그냥, 할 수 있게 되자 바로 해 버렸다. 그러면서 계속 더 젊고, 더 어린 것들을 세뇌하려 노력했다. 이승환이나 서태지와 다른 신해철의 특성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해철은 공연장에서 아이돌 응원하듯 꺅꺅거리는열성팬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자 공연을 중단하고 스태프에게 환불하고 돌려보내지 않으면 공연 더 안 함이라고 지른 적이 있다. 보통의 연예인이라면, 이런 짓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런데, 신해철에게는 그게 을 만드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N.EX.T1<HOME>은 그런 의미에서, 앨범 자체의 가치 이상으로 신해철의 실험적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특히 당시까지의 LP 기반의 Side A, B 구성에 따른 자켓 디자인, 그리고 곡 배치를 보면, 신해철의 실험적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앨범을 신해철의 비판이라고 읽는 건 오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앨범은 그저,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대중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N.EX.T‘TV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에도, 이런 실험적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이 때 과자 광고 등등, 아직까지 신해철은 대중적 소비속성이 유지되는 아이돌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신해철은 방위 복무와 대마초 크리 2연타를 맞는다. 그리고 실험이 가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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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속화의 결과물로, 그는 본격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을 찾는앨범을 냈다. 2<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1994)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1995) 의 위용을 보라. 이 두 연작에는 199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의 근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말로 빼곡하게 차 있다. 아예 제목부터 존재세계’, 안과 밖, 인식의 근원과 인식의 재료. 아마도, 그 당시 10-20대들에게 인식인지의 영역을 분리하라고 이야기한 최초의 인물일 게다. 나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이 앨범 뒤에, <THE WORLD TOUR>, <N.EX.T IS ALIVE>, <HERE, I STAND FOR YOU>, <THE FIRST FAN SERVICE R.U.READY?>, 영화는 대차게 망했지만 김창완을 배우로 만들고, 음악만큼은 남은 <정글스토리>, 그리고 <음악도시> 시장님까지. 그는 가장 앞서가고 있는 입장에서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도로, 그야말로 쳐달렸다.’

 

지금도 2이라는 표현들이 그의 추모에 대한 글에서도 보이는데, 2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사실, ‘2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라디오프로그램에서 그 나이쯤에 겪었을만한 홍역의 사례들을 모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왔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사춘기에 생각하고 할 만한 것들을, 우리는 비하적으로 2이라고 하며, 그래서 실제로 중2 나이쯤의 아이들에게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경우는 잘 없지 않은가. 그때는, 다 그랬잖아. 나도 너도. 그래서, ‘2의 수식어는 아직도가 아닌가.

 

신해철의 팬이라면, 그가 라디오에서 진행했던 상담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2당연한 것이며, 2가 아니라도겪을 수 있는 것으로,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인지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절대 어른으로서 평가하지 않는상담이었다는 것이, 정말 고맙다.

 

 

상황 확인과 실패의 선언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의 시작은 상황에서 오고 그 진행은 당황에서 온다. 정확히 말해, 상황에 가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가 위기라고 느낀다. 아니, 가 대응을 못하는데 우리가 위기야?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거든. 그러니까, 내가 , 조때꾸나할 때,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 조때꾸나하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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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상황에도 살아나가는 놈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이런 넘들은 아까, 위에서 이야기한, 실제 현상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두 번째 경우다.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나 점진적이고 천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변화의 현재 상황과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안목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 이제 조때겠구나...’ 라고, 그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 다른 현상들을 보고 생각하는 감각이다. 마치,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늙은 농부처럼 말이다. 사실, 진짜 훌륭한 예술가들은, 이런 거 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꽤 계산적인 수준이 아니라 머리 꼭대기쯤 앉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세상이 그들의 인지를 못 따라가는 수준으로 비상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는 진짜 의미는 이런 거다. 예술은 정치가 망쳐놓을 세상을 미리 보고,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 증거들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때, 무엇보다도 쉽게 사용되는 방식이다. 밥 말리, 존 레논, 핑크 플로이드, U2... 그러고 보니 다들 음악가네. 어쨌든. 그런데,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다? 바꿔야 할, 문제가 심각하고 명확한 현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문제에 오랜 시간동안 상처를 받아온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음악에서 이런, 즉각적이고 격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노래가, 한국에서 이런 예술이 있을까? 별로 없다. 그나마 민족민중미술의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이 비슷하게 간 정도일까. 지금 몇몇 작가들이 그러고 있는 정도일까. 음악으로 한정하면 더욱 그렇다. 김창완의 <아니 벌써>, 한대수의 <물 좀 주소>, 부활의 <행진>, 서태지의 <시대유감>, 김민기의 <아침이슬>, 백기완과 김종률의 <임을 위한 행진곡>도 이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 앞에 서서, 미술사적 의미든 음악사적 의미든 기타 등등 복잡다단한 거 말고, 그냥 보고, 들으면서 를 깨닫는 순간을 주는 작품들은 보기 어렵다. 물론, 도구적 역할은 해왔다. 지금도 시위 현장에서는 이 노래들이 울려퍼지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이 노래들을 부른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선, 그 예술 씬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의 계몽의 기능성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런 노래들 역시 누군가의 주제가가 되지 못했다. 물론, 신해철의 그 많은 디스코그래피 속에도 그런 곡은 나오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에게도 그런 곡이 있었지만그 곡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신해철은 그런 노력을 했다. 신해철은 <Lazenca - A space rock opera> (1997)로 신해철의 밴드로서의 정점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한국 음악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앨범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평가가 일치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상황을 인지하고,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 동안, N.EX.T로 한 실험이 실패했음을 선언하며, 그는 팀을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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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굳이, ‘실패를 선언하고 해체를 말했는가이다. 대개 음악을 하다가 팀이 해체한다고 해서 실패를 선언하지는 않는다. 대개 연예인으로서의 고독이라든가, 창작의 어려움 뭐 이런 이야기들 한다. 그런데, N.EX.T의 해체 기자회견에서 신해철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공룡으로 N.EX.T를 비유한다. 다시 말해, '이 노력에도 판이 깔리지 않았고, 판이 없는 상황을 특수한 상황으로 이해해야 할 근거(N.EX.T)를 실험을 통해 확보했으니, 이제 그만한다'로 요약할 수 있는 그런 기자회견이었다. 이 때 신해철을 욕하던 사람들, 많았다. 왜 그만두느냐고. 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이상 대신해주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신해철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굳이, ‘실패라고 선언하면서 알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공부 못해도 좋고, 돈 못 벌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아라

 

근래 신해철은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방송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팬들이라고 해서 이런 방송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사람, 많지 않았을 거다. 그는 여기저기서 아프지만 말아라라는 말을 했다. 남에게 씌우는 욕망을 좀 덜 씌우고, 그저 아프지만 말아라라고 하는 사람들의 관계들이 필요하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의 팬이었던, 그와 함께 늙어가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10, 그리고 20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예로 형이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어머니에게 형처럼 너도 사시를 패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동생의 상황을 들었다. 그는 형이 했으니 너는 뭐 안해도 된다. 그냥 건강하게 해라라고 말하는 어머니가 필요하지, ‘너도 무조건 패스해야 해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그런 상황이 무서운 거라고 말을 했다.

 

그는 한 쪽으로는 그렇게, 자신의 영역인 음악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윤상과의 프로젝트인 <노땐스 : 골든히트 1>, 그리고 재결성한 N.EX.T5집은 모두 신해철이 자신의 리소스를 최소한으로 투자하며 만들어낸 앨범들이다. 이미 그는 할 수 있는 끝까지 음악의 질을 높이는 작업들을 해 보았던 사람이고, 그런 걸로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의 한 방법으로 이런 앨범들을 기획하고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싸게 만들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해보라고.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바 어쩌라고라고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사용한 악기와 구성을 신해철만큼 명쾌하게 밝혀온 음반 제작자이자 가수, 작곡가이자 퍼포머, 몇 안 된다. 그리고 이 앨범들에는, 20년이 넘게 음악을 한 신해철의 개인적 생각들이 한 곡 한 곡 쌓아올려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절대 안 뜰 곡이지만 내가 죽고 나면 묘비에 새길 거고, 그러고 나면 뜰 곡이라고 말했던 <민물장어의 꿈>이 세 장으로 이루어진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중에 <HOMEMADE COOKIES>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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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싸이렌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만들어 가수들을 키워내고 있었고, 한국에서 특수한 상황에 있는 인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명확하게 장르가 구분된 음악을 하는 친구들까지도 모두 인디로 쓸려와 있다고 말하며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아이돌 음악이 이들을 몰아낸 게 아니라, 그 쪽에서 그만큼 간 건 그거대로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을 키울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말하던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우리 음악계에서 대중의 문제에 대해 가장 명확하고 능동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연예인은 대중을 비판하지 않는다. (굳이 하려면 사생팬등으로 분류하고 나서 한다) 그들에게 대중은 절대적 존재가 되어있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클릭을 하고, MP3을 다운로드 받는가가 문제이며, 어떤 예능에 나와서,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새 작업을 홍보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들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이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이, 그의 팬들은 이제 그를 잊기 시작했다. 10대와 20대 시절의 영웅을 계속 좋아하기에, 그는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는 부모가 되었고, 자신이 가지는 자신의 불안함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불안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에 대한 고려가 뒷받침되고,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HOMEMADE COOKIES>에 함께 수록된, ‘90%만 되면 그냥 레코딩을 저질렀기때문에 늘 아쉬웠던 곡들에 시간이 지날수록 원한이 쌓이게 된다고 말하며 다시 부른 <일상으로의 초대>는 더할 나위 없이 느끼하며 순진하다.

 

사실은, 우리가 변했다. 그땐 미쳤었지. 하면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만한, 절대점으로서의 신해철을 상대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사람이 있고, 사람은 음악을 듣는다

 

신해철이 늘 하던 말이라 한다. 사람은 음악을 듣는다. 에반게리온에서 나기사 카오루도 그랬지. 음악은 인류 문명의 극치라고. 신해철이 믿었던, 저 말. 사람이 있고, 사람은 음악을 듣는다. 저 말은 사실,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래서, 이 말을 믿고, 그래서 음악을 한다고. 진중권과의 대담에서 진중권은 신해철에게 욕계의 왕마왕이라고 소개한다. 고양이를 기르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을 이야기하던 마왕은 이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마왕을 처음으로,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나는 여기 있고, 나는 음악을 듣는다.

 

나는 신해철의 음악을 빼먹지 않고 들어왔다. 나는 그를 공연에 세워본 적도 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사람으로서의 태도이자, 동시에 그의 음악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가 역지사지를 기본적으로 장착한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생각하고, 그가 가진 합리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서의 태도를 배우려 애썼다.

 

그는 여전히, 어디에선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슈퍼히어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REBOOT MYSELF>라는 앨범을 내 놓고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고, <REBOOT MYSELF>를 내놓은 시점에서, 그 이전의 <MYSELF> 시절을 복잡한 강남역 사거리 센터에 서서 이리저리 오가는 버스와 택시, 복잡한 인파를 바라보고 있던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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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이 걸려 만들어지는 장르가 하루 아침에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에서, 3분이나 4분 이내의 대중음악, 유행가를 내놓으라는 강요를 받던 상황에서, <MYSELF>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이 만들어낸 균형이 재미있는 게 있었고, <MYSELF> 앨범의 성공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사반세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상당히 괴로운앨범들을 만들었다며, 이번에는 이제 그 사거리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의미로 앨범을 냈다고 말한다. <REBOOT MYSELF><MYSELF>의 리부트이자, 신해철 자신의 리부트라는 의미로 설명한다.

 

우리는 이제 그의 리부트, 슈퍼 히어로가 어떻게 지금의 시대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싸워 나갈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놀라운 일들, 세상에 만들어놓은, 사실 우리도 잘 모르고 있는, 그것들을 다시 찾아서, 다시 하나하나 생각해 볼 기회만이 남았다.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 OST를 만들어주던 슈퍼 히어로는 없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사람일 거고, 앞으로도 음악을 들을 거다. 잘 가라. 나의 영웅. 나의 슈퍼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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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ryruns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