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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 금요일

편집부 독구








 



본 기사는 


영화 리뷰가 아닌

여성 딴지스의, 여성 딴지스에 의한, 여성 딴지스를 위한

영화 잡담으로

남성 딴지스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필자가 그 점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 내려간다면

여성 심리 이해에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외다.

                                                                                                 




 









 





4탄 <크랙> : 질투로 폭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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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랙>의 줄거리 


1934년 영국 스탠리 섬에 있는 성 마틸다 학교. 여자 기숙학교인 이곳엔 365일 엄격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하루가 이어진다. 이 숨막히게 정체된 공기가 산산이 부설질 때가 있으니 바로 미스 G가 등장할 때. 가늘고 긴 몸매, 매혹적인 얼굴, 세련된 패션감각. 도도한 행동거지. 선생님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미스 G는 치명적으로 알흠답다. 모두가 그녀를 우러러보지만 특히 미스 G가 담당하고 있는 다이빙팀의 여섯 소녀들에게 그녀는 살아있는 여신님 그 자체. 미스 G는 소녀들에게 욕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엄숙함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보여주는 도전과 열정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반장인 디는 다른 소녀들 위에 군림하는 레이디 가카 같은 독재자로, 미스 G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깃춘같은  애제자로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스페인 귀족 출신인 피아마가 전학오기 전까지는.

 

기품과 아름다움을 갖춘 피아마는 세계 곳곳을 여행한 희귀한 경험과 강단 있는 쿨한 태도 그리고 멋진 다이빙 실력으로 금세 미스 G의 시선을 잡아끈다. 미스 G의 사랑을 빼앗긴 소녀들은 피아마를 질투하고, 피아마에 대한 미스 G의 애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리고 피아마는 미스 G의 쌍스러운 비밀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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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이 전학생인 피아마 

왼쪽에서 세번재가 반장인 디 

회색 투피스를 입은 여인이 선생님인 미스 G 



2. <크랙>와 미스 G

 

리들리 스콧의 딸 조던 스콧이 감독을 맡은 2009년도 작 <크랙>은 고립된 여자 기숙학교에서 일어나는 여선생과 학생들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아시아 아르젠토(영화 <트리플엑스>의 여주인공)와 함께 퇴폐미의 쌍두마차라고 생각하는 에바 그린이 미스 G 역을 맡았다. 쎈 역할 특히 팜프파탈역에 발군의 연기력을 보이는 에바그린은 <크랙>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악하면서도 불쌍한 미스 G를 실존인물처럼 꼼꼼하고 섬세하게 연기한다.

 

미스 G는 꽤나 복잡한 캐릭터다. 사연있는 또라이라고나 할까. 영화는 그녀의 과거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도 한때는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

 

매력 쩌는 미스 G는 학교만 벗어나면 완전 딴 사람이 된다. 당당하던 그녀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을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면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주문을 하고, 동전이 사방에 떨어져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채 허겁지겁 도망쳐나온다. 집착하던 제자가 육지로 떠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배를 타지 못한다. ‘바다 따윈 상관없어라고 내 뱉지만 그저 말 뿐. 영화 마지막에 학교에서 쫓겨난 그녀의 불안한 모습을 보자면 이 여자가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학생들의 동경을 받는 미스 G는 베스트셀러에서 읽은 모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남의 물건(엽서 등)을 아무말이 없이 자신이 방으로 가져와 자기 것인양 전시한다. 허언증과 도벽도 있는게다.

 

또한 자신이 집착했던 학생(피아마)이 정신을 잃자 방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애무한다. 한마디로 성추행되겠다. 이 장면을 보고 일각에서는 미스 G가 레즈비언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레즈비언이라서 그랬다기 보다 그 정도로 지독하게 집착한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버젓하게 거짓을 일삼는 모습에 리플리 증후군 또는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했지만 전공자도 아니요, 지식도 일천하니 주제파악 못하고 우째 썰을 풀겠는가. 미스 G분석은 전문가한테 맡길란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는 미스 G나 주노 템플이 맡은 디 역할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니 피아마가 눈에 들어온다. 질투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한지, 그리고 질투라는 놈이 폭력으로 변질되는게 얼마나 쉬운지 막상 당하기 전에는 몰랐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아픔과 고통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순간 상상했던거 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다가온다. 문제는 본인이 당하기 전엔 모른다는거. 그리고 내가 정당하기에 남이 아픈건 당연하다고 여긴다는 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게 한순간인데 영원히 중립적으로 살 줄 안다는거.우리사회에는 질투를 너무 가볍게, 여자한테나 해당되는 하찮은 감정이라고 여기는 풍조가 유령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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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투 경험담

 

공부를 지랄맞게 잘 한 것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운것도 아니고, 성격이 장보리처럼 싹싹한 것도 아니고,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 평범한 소녀였던 독구는 감히 누군가의 질투를 유발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평생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질투를 받았다. 딱 한번. 그 당시에는 흔해빠진 텃세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여인네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건 질투였다고 한다. 증거가 없으니 카더라이긴 하지만.

 

질투 가해자는 2명의 여인들, 촉매제는 남자, 피해자는 나.

 

호랑이 전자담배 피던 시절, 모 서비스회사 홍보담당으로 입사한 독구. 늘그막에, 서러운 백수생활에서 살아남아 겨우겨우겨우 잡은 직장이라 똥칠할 때 까지 있어보자는 장렬한 각오로 들어갔건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고객응대를 맡은 A씨와 고객 교육 프로그램을 맡은 B씨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문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독구를 애당초 동료로 인지하지 않았다. 텃세라고 하기도 뭣했다. 뭐 사람 대접을 해줘야 말이지. 모르는것 투성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봐야했던 독구는 단 한번도 따뜻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돌아서면 피식 웃는 소리나, 나지막하게 수군거리는 뒷담화만 들렸으니까. 쫄지않는 독구는 관련서적을 무지하게 사다가 공부했지만 늘 그렇듯 현장과 이론이 따로 노는 바람에 당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외롭고 슬펐던 독구는 매일 아침 한숨 백만번을 쉰 후에야 출근을 하고 집에와서는 술로 아픔을 달랬다. 남자직원 C랑 눈 맞기 전까지는.

 

술이 웬수다. 회식자리에서 생긴 오해가 러브러브로 진화하여 의도치 않게 입사하자마자 남자 꿰찬 년이 된 독구. 첨에 무시에 불과했던 A씨와 B씨의 감정은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질투로 발전했다.

 

성인이 된 자녀도 있는 A씨는 오랜 세월 함께 일해온 C를 아들같이 생각했기에 독구는 졸지에 아들 뺏아간 (친아들도 아닌데 된장) 년이 되었다. 이건 A씨가 나중에 직접 말한거니 사실이다.

 

그녀를 만나기 백미터 전부터 느껴지는 신경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거리 하는 파이터 기질로 대다수의 직원들이 기피했던 B씨는 아예 대놓고 독구를 싫어했다. 나중에 딴 직원한테 쟤는 처음 봤을때부터 싫었어라고 했다나. (쌍년아, 나도 너 재수없거든) 연애와 명품에 빠삭했던 한 여직원의 말로는 B씨가 C를 좋아했던게 틀림없다고 했다. 40살이 다되어가지만 연애 한번 못 해본(것으로 추정되는) B씨가 C의 자상한 배려 (C는 신입들의 사수 역할을 담당했다) 를 유독 크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고. 그런데 C의 사랑이 독구한테 갔으니 오뉴월에 서리 내리는게 마땅하지 않겠냐고.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주위에서는 그렇다 '카더라' 했다.

 

애초 우리의 연애가 발각된것도 B씨 때문이었다. C 앞으로 온 택배박스를 유심히 살펴보았던 B씨는 송장에 씌여있던 목걸이와 다음날 내가 하고 온 신상 목걸이를 매치시키는 기막힌 추리실력을 보여주었다. B씨의 비아낭은 이후로도 계속 됐다. 나와 C의 휴가기간이 겹치자 전체 회의자리에서 어머 신혼여행가나보네식의 말인지 빵구인지 모를 추임새를 들려주었으며, ‘누군 좋겠다, 빽있어서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몇 년 전 내 돈 주고 샀던 반지는 약혼반지로 둔갑했다. 온 동네방네 소문내는 바람에 회사 대표님과 단골 고객들까지 우리의 불장난을 알게 된 건 당연한거고.

 

A씨와 B씨는 독구가 다른 직원들과 달리 옷을 야하게 입는다고 (레깅스와 목이 늘어나서 가슴 위쪽이 살짝 보였던 티셔츠가 고작. 내가 빤스라도 보여줬음 억울하지도 않지.) 초장부터 입방아를 찧어댔다. 연애와 명품에 빠삭한 여직원은 자기도 입사 초반에 몸매 드러나는 옷 입었다고 지적질당했다고 했다. 그녀 왈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야. 딴 년, 특히 비슷한 연배의 년이 여자냄새 풍기면 질색하거든."


급기야 퇴근하는 C를 불러내 술 한잔하며 내 욕을 안주를 삼는 대동단결의 자리까지 마련했다. C가 뭣모르고 그날의 대화 내용 중 하나를 나한테 이야기했다가 며칠간 나한테 디지게 갈굼당했지. 


질투와 텃세로 범벅된 나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A씨가 B씨와 대판 싸우는 바람에 독구와 C의 지지자가 되었다가 계약종료되어 퇴사했고, B씨는 혼자 고립됐다가 사무실의 공공의 적인 상사 D(평소 B씨가 어마무시하게 욕을 했던)와 절친이 되었지만 결국 계약종료되어 회사를 떠났다. 그후 일 년도 안되어 나도 C도 모두 그곳을 떠났다.

 

이것이 독구가 겪었던, 앞으로는 겪을 일이 없을거라 예상하는 질투의 전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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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투를 유발한 내가 나쁜 년?

 

다행히 독구는 <크랙>의 피아마처럼 집단구타도 성추행도 당하지 않았다. 그냥 가쉽의 주인공이 되어 욕만 진탕 들어먹었다. 당시 내가 하루에도 수십번 되뇌었던 질문은 이거였다.


내가 나쁜 사람일까?”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왜 매일매일 뒤에서 욕을 들어먹고, 비아냥을 들어야하나. 단지 누구랑 사귄다는 이유로, 일하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정신적 고통을 받아야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사생활이 까발려져야하고 내 옷차람이 비난받아야할 타당한 근거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비난받는게 마땅한 삶을 살아왔는데 나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 내 본모습을 보지 못했던건 아닌지 무서워졌다. 질투로 촉발된 몇 달간의 공포는 내 인생 전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소소한 따돌림과 괴롭힘은 일일이 나열하는것도 좀스러워 하소연할데도 없고, 막상 하소연 한다고 해도 나만 못난 년이 되는것 같아 가슴속에 꾹꾹 눌러담아야했다. 질투란 귀로 듣기엔 보잘것 없는 감정에 불과했지만 몸으로 와 닿는건 무섭도록 생생했다.  

 

A씨나 B씨는 자신들의 언행이 나에게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게다.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힌건 아니니까. 끝까지 그들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그 고통스러운 일들이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상처럼 무의미한, 별 생각없이 툭 내뱉고 행동했던, 그래서 생각의 귀퉁이에 남아있을 가치도 없는 그런 일이었지 않나 싶다. 그들은 무심코 돌을 던졌고, 나는 그 돌에 맞았다. 그 뿐.

 

당시에는 그게 질투였는지 텃세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미움 이었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걍 따돌림이었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일을 익히기에 너무 바빴으니까. 


그들이 왜 내게 질투를 품었는지도 하마 분석하고 싶지도 않다. (질투에 대한 끝내주는 분석은 인터넷에 많다) 그게 동경이든 다름에 대한 처벌이든 무슨 이유로 행해졌든지 간에 바뀌지 않는것은 누군가 얼마동안 대인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고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그때의 감정이 희미해졌고, 기억의 몇 조각은 좋게 윤색되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도 질투를 받는것도, 질투 하는것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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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독구


트위터 : @zorbaji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