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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7. 금요일
멀더요원
 

 

 

 

 


1. 근면, 성실

2차대전의 전쟁범죄자 중 유일하게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이라는 자가 있었다. 1906년에 태어난 그는, 26살인 1932년에 나치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보안경찰, 친위대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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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멀쩡하게 생겨서는

  

2차대전 무렵에는 유대인을 추방하는 '기관'(무려 정부 기관이었다.)에서 일했는데, 이 임무를 위해 히브리어를 배우는 등, 자신의 '업무'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그 분야의 '능력'을 업계로부터 인정받아, '유대인 색출 및 추방업'의 전문가로서 중앙보안국에서 유대인 재산몰수의 책임자가 되었다.

 

원래, 유대인 추방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었는데, 1940년에 프랑스가 항복하는 등 독일이 서유럽으로 확장함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유대인'을 두고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나치의 대안 중에는 유대인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시킬 계획도 있었으나(그랬다면 다행일지도) 이런저런 논의 끝에 1942년, 결국 유대인을 '최종적 해결(Final Solution)'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영어를 쓸 때 Final Solution이라는 표현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이히만을 포함한 나치 간부들이 이러한 유대인 말살정책을 결정하면서, 그에게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수송하기 위한 모든 권한이 주어졌고 교통국과의 협의를 통해 열차 등을 포함한 최적의 수송루트를 조직하여 서유럽의 유대인들을 동유럽의 가스실로, 2년간 500만 명을 매우 '효율적'으로 이송시켰다.


그 결과, 나치는 약 400만~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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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 해결(Endlösung der Judenfrage; final solution): 괴링이 하이드리히에게 명령


 


2. 단죄


2차대전이 끝나고 아이히만은 연합군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도망쳤고 1960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사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었다는 걸 CIA는 1950년대부터 알고 있었는데,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뭔가 나중에 필요할 때 써먹을라고 그랬는지, 어쨌든 묵혀뒀다가 1960년이 되어서야 그를 체포한다.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당시 나치 독일의 공무원으로서 당시의 법을 준수하고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였을 뿐이며, 자신에 대한 재판이 오늘날의 법으로 소급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은 당시에 없었던 나라이므로 자신에 대한 재판권을 부정하며 칸트의 정언명령까지 들먹였다. 뭔가 준비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히틀러의 그러한 명령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몰랐느냐는 질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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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 쪼갠다는 표현은 여기에나 써야 하는거다라는 걸 누가 새누리당에 얘기 좀 해줘라.

 


"그러한 구별이 책임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될 뻔했다."

 

라고 하기도 했으니, 이 재판에 임하는 아이히만의 당당한 태도를 본 사람들은 매우 분노했다. 반면 이 재판을 취재하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유대인 정치철학자는, 아이히만을 관찰한 결과 그가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을 제외하면, 특별히 유대인을 증오하거나 정신병이 있지 않다고 하며 그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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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악마를 알아? 악은 원래 평범하고 성실하다구.
(우린 평범하진 않아도 졸라 성실한 악마 새끼 하나 아주 잘 알고 있지ㅆㅂ)


 

이른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인데, 그런 엄청난 악행은 특별히 미친놈들이 아니라 체제에 잘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아이히만이 죄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견해와 상관없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치의 실정법을 준수하였으나 인류의 자연법을 거스른 아이히만에게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그의 죄는 '스스로 생각을 포기한 죄'였다.




3. 생각하지 않은 죄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믿고 있는, 최소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2014년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최근,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 구금해 기소한 수사기관이나 유죄를 선고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공무원의 고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고,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당시에) 선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스크린샷 2014-11-04 오후 1.32.45.png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2288.html

 

 

예컨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불법이지만, 어떤 법에 따르면 그것은 합법이다. 그런데 그 법에서 그 법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불법일까 아닐까. 전형적인 순환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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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완벽한 논리다.

 

이거 엑셀을 좀 써본 사람들은 가끔 볼 수 있는 오류 중에 '순환참조 오류'가 발생하면 계산이 똑바로 될 수가 없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생각하지 않은 죄'에 대해 '불법이 아니다'라는 사법적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4.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걸 하지 않았다면, 나 말고 누구라도 그걸 했을 거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유대인을 죽였을 거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일본에 나라를 팔았을 것이고, 어린 여자들도 팔았을 거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학생들을 데려다가 때리고 고문했을 거고, 사람들을 학살했을 거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4대강 조작을 했을 거고, 대참사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진실을 감추었을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일을 한 게 꼭 나의 책임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 그러고 나면 좀 낫냐?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거꾸로 얘기해보자. 너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일을 할거였는데 그걸 왜 너가 했어야만 했냐?

 



5. 법의 기능
 

법에는 크게 억지 기능, 활동촉진기능, 분쟁해결기능, 자원배분기능의 4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이 중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분쟁해결기능이나, 자원배분기능은 아닐 거고 그럼 그들의 판단이 정신 나간 공무원들이 '생각하지 않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억지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설마 활동촉진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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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닥치고,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맹목적으로 하라고?

 


설마 대법원이 그러기로 하셨다는데, 뭐 더 긴말 필요할까마는 적어도, 그들의 판단이 인간의 존엄성과 사상의 다양성을 촉진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사법적 실증주의니 뭐니 이런 건 일단 좀 접어두고라도 적어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규정했으면 상식적으로 니들끼린 좀 맞춰와야 하는 거 아니냐? 헷갈리잖어!

 

 






It had to be you.

 

 

 

 

 


멀더요원
트위터: @anarchyrok 


편집: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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