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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시선]국밥

2014-11-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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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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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 한겨레




자신의 시신을 처리할 사람들에게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 분의 기사를 읽었다. 사연을 읽어가면서 그냥 담담했다. 사는 게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의 사연이 더 이상 통증 같은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무뎌지고 냉정해져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은 68세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라는 글을 보았다. 기억에 묻혀있던, 타인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 택했던 죽음 이야기와 감정들이 기억 난다. 우울한 주제로 우울한 이야기를 쓰다보면 우울해져서 힘들기도 한다.


십 여년 전에 지하방에서 살며 병든 아내를 간병하던 노인분이 아내가 죽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남겼던 유서를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고, 인간이하로 내려가 짐승이 되어간다고 느껴져서 사람으로 죽음을 택하신다고 했던 것 같다. 시간이 기억을 조금씩 왜곡하겠지만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병수발을 들어주느라 어쩔 수없이 살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준 의무와 책임을 마치고는 더는 구차 하게 살기 싫어 죽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가엾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땐 뭔가 그냥 먹먹했었다. 스스로도 가치를 두는 품성인 책임감과 자존심이 느껴지고, 어쩌면 나의 마지막도 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남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사느라 잊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하던 시절 암에 걸린 한 늙은 아버지가 치료비와 남은 가족들 걱정을 하다가 산에 올라갔다.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주변 풀을 깎고,  나뭇잎을 치우고  구덩이 안에 들어가서 몸에 불을 질렀다. 유서는 구덩이 근처 소나무에 묶여져 있었다.


장례비마저 부담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노인의 유서에는 그냥 타서 재가 된 유해에 흙만 덮어 달라는 말과 자살 장소로 택한 곳에서 혹시 타인에 대한 피해를 끼쳣을까봐 미안해하는 말이 적혀있었다. 불탄 시신을 발견한 발견자에게 놀람, 당혹감을 주는 것 혹은 남의 땅을 무단으로 이용한 것 같은 것들에 대한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가난함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을 미안해하며 정규직 취업이 되길 소망하는 글을 남겼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욕이 튀어 나왔었다. 씨발 정규직 그러니까 동네 농공단지 공장 말고 대기업 정규직 같은 거겠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정규직 말이다. 어차피 답도 없고 그냥 곱게 죽어주면서 선처를 바라는 마음이 법원에서 손해 배상을 뚜두려 맞고 곱게 목을 메다는 노동자들 죽음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올랐었다. 이제 그만 곱게 죽어 드릴 테니까 남은 가족들은 그냥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읍소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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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했다. 남의 땅이었을 구덩이, 그러니까 본인이 풀 베어내고 다듬어 선택한 묘자리에 묻힐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그 아들이 잘 살아질까 하는 생각이 나곤 했다. 홍석동씨 아버님 사망기사를 보고 그분이 남긴 읍소가 적힌 유서를 보고 가끔 궁금해 하던 생각을 다시 했었다. 홍석동씨 아버님이 죽어가며 감사를 표하고 부탁을 했던 기사를 쓰신 기자님들은 그 죽음의 무게를 어찌할까 생각했다. 


얼마 전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곱게 봉투에 담아 놓고 죽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세모녀의 이야기도 많이 아팠다. 죽어가면서도 살아가려고 바둥거리다 삶이 버거워 죽음을 택하면서도 돈의 무게에 허덕이던 무거움이 너무 짙게 남았구나 싶었다. 삶에서 돈이 너무 버겁고 무거워서 행여 집세 못 받아서 자신들의 버거움을 그대로 겪을지도 모르는 늙은 집주인을 걱정했었구나 싶었다.


가수 신해철의 죽음소식을 들었을 때, 쇼파공장에 나갔다. 하루 종일 타카를 박다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뉴스를 들었다. 한때 그의 노랫말이 위안이 되는 시절이 있었고 아직 좋아하던 구절을 가끔 흥얼거릴 때도 있었다.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뉴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도 그 순간에 큰 충격이나 슬픔을 느끼진 않았다. 말없이 밥을 빨리 먹은 사람들은 쉴 자릴 찾아 곤한 몸을 눕혔다.


산재로 죽은 처남 장례식 일을 봐주고 헬쓱해진 얼굴로 만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서른도 못 넘긴 죽음은 안타깝지만 부럽다는 생각도 들더라며, 자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하며 한숨을 쉬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래도 큰 회사 일차 하청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오고, 부조금도 꽤 들어왔다고, 안타깝지만 남기고 간 가족들은 살 수 있을 거라며 담배를 권해왔었다.


무감각한 얼굴의 지친사람들을 보며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신해철의 삶과 노래를 기억하고 죽음을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의 죽음이 그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몸이 지쳐서 그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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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근육과 같다. 의식적인 외면과 집중으로 기형으로 발달 할 수도 있고 단련을 멈추면 작아진다. 감정은 신경감각과 같다. 되풀이 되는 자극에 무디어진다. 좀 덜 벌고 덜 쓰더라도 책을 조금 읽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조금 쉬면서 좀 덜 버는 자리를 알아본다는 소리를 했을 때, 걱정하는 표정과 불안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집 사람의 얼굴이 조금 걸렸지만 허락을 받았다.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은 68세 노인분의 기사를 읽었을 때는 머리로만 상황을 그려보았다. 슬프고 아픈 감정은 움직이질 않는다. 가고 싶은 곳도, 갈 곳도, 방법도 없이 퇴거하라는 통지에 '내일 퇴거하겠습니다' 하고 이승에서 퇴거준비를 하셨다. 행여 시체 치우느라 놀라고 욕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개의치 말고 국밥이나 한 그릇들 드시라고 빳빳한 신권으로 준비하신 마음도 이해가 가고 , 가장 싼 코스를 밟았을 때의 장례비 백만원과 본인이 사용한 공과금도 빳빳한 신권으로 남겨놓은 마음을 난방비 무료혜택을 당연하게 받아드리시는 사회지도층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긴 하다.


돈이라는 것, 재물이라는 것이 사유재산이라는 신성한 의미도 있지만 돈과 재물로 유지 되는 것들에는 공공재라는 것들도 있다. 무임승차자라는 도둑님들이 남의 몫을 먹어치우면 얼마 안 되는 몫으로 나눠야하는 분배의 맨 아랫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그 부분이 서로 서로 미안하고 참혹해서 나 살자고 남의 몫을 못 뺏어 먹는 거다.


못 사는 게 무조건 선한 건 아니라서 떼나르디에(레미제라블의 악덕 여관주인_편집자 주) 같은 사람들도 없진 않지만, 삶을 그렇게 사는 분들도 있다. 내가 덜 먹으면 다른 사람의 몫이 많아지고, 내가 더 먹으면 다른 이들의 몫이 적어진다. 통화론자들이 통장에 찍히는 동그라미를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겠지만 아랫 쪽 사람들의 통장에는 도달하지 않고, 어차피 현실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


오늘 열두 살 딸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3명이 연탄가스를 이용해서 죽었다. 빚 생활과 남겨진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일가족 동반 자살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생활고에 지친 엄마는 죽음을 선택할 마음을 먹고, 아이는 엄마와의 죽음을 선택하고 저에게 잘 대해줬을 선생님을 그린 그림을 남겼다. 엄마에게 뒷일을 부탁받은 아빠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옆자리에 누워서 시신이 되었다.


피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가 안타깝지만 어쩌면 함께 죽은 게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이제 힘없어서 죽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잘 죽었다는 생각을 한다. 씨발 이러면 안 돼는 거잖아 하는 묵직한 욕이 치밀어 오른다.


경제구조의 아래쪽 사람들 중에 요령 없는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 착한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냥 곱게는 안 죽을 사람들만 남아서 당분간 굽신거리는 시늉을 하긴 할 것이다. 운전기사와 정원사가 주인 목을 자르고 약한 척, 선량한 척하던 사람들이 폭도가 되어 사모님과 아가씨를 윤간하고 죽이던 일들이 몇 해 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었다. 보고 배운 게 있으신 분들이니 방비는 하시겠지만 모르겠다. 멕시코는 개인경호원에게 총을 지급한다고 해도 판검사님들이 죽어나가고 부자들의 납치 살해가 일어난다. 물론 가난한 이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훨씬 많긴 하지만 말이다. 


내일은 3,900원짜리 국밥이나 쳐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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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