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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1.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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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와 R&B를 각각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제 생각에는 R&B를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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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보다는 R&B를 더 잘 설명하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민족에게 R&D라는 이 딱딱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근심 속에 며칠을 지냈습니다. 사전적 의미부터 짚어본다면 R&D는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로, 보통 '연구개발'이라 번역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말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당사자가 제 자신이 아닌 듯 헛소리를 하는 경우에 요즘 사람들은 '저 사람이 유체이탈화법을 하는 구나'라며 비웃습니다.


사장님들은 새로운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으라고 기획자와 직원들을 닥달하면서 우리는 왜 애플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느냐고 일갈을 하면서도, 자신은 스티브 잡스가 가졌던 철학의 1g마저도 배우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유체이탈 화법 사장님이라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릴 따름이지만 그러는 그들의 속마음, 아마 아래 사진 같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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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놓고 연구원들까지 동원해 고객응대를 해도 뒤 늦게 나온 대기업 제품에 고객을 뺏기기 때문에 신제품을 개발할 때면 이게 라이프 사이클이 얼마나 될까 항상 걱정이랍니다.


히트앤드런, 신제품이 히트하면 바로 후속제품을 내놓고 현재 히트친 제품은 버린다는 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사장님들도 있습니다. 어차피 대기업이 따라오거나 대기업들이 거느린 상사나 TF팀이 시험(?)삼아 시장에 진입해도 자기들은 망하는 거니까요. 


앞에서는 대기업을 욕하고 막상 자기 지갑을 열어 제품을 살 때는 중소기업 제품은 일단 제외하고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유체이탈 소비자들, 이런 소비자들의 냉대를 대할 때마다 사장님들은 소비자들이 대기업 브랜드에 맹목적으로 보이는 충성도가 한 없이 야속하겠지요.


정부 기관의 과장님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습니다.


"우리 기관에서는 매 해 엄청난 금액의 연구개발자금을 출연금 형태로 지급하고 있는데, 어떻게 성공하는 기업이 하나도 아 나옵니까? 아니 성공은 차제하고 상용화되어 팔리는 제품을 찾아보기 힘든 겁니까?"


참으로 답답한 질문이었기에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은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화를 내서 그이에게 도움이 될 것도 아니고, 세세히 문제점을 알려준들 이해할까 싶어 그냥 한두 가지 얘기만 해줬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통한 상용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연구개발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출연자금 수혜기업 심사 시에 구성되는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대학 교수 위주의 학계 전문가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로 짜여있어 이런 부분들을 지적하기 어려우니 산업계 전문가들을 포진시킬 필요성이 있겠습니다. 또한 연구개발 이후 상용화에 드는 비용을 기업들이 융자로만 조달하려니 그 위험부담이 너무 큰데 국가 모태펀드를 이런 기업들에게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조언을 드린 지 벌써 십년이 다되어가는데 그때에 비해 유체이탈화법의 공무원들만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만 정부 출연자금 지원 문제는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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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혁신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 해외 기업의 사례를 대면서 우리는 왜 못하냐고 분개하지만 막상 기술과 산업, 문화 혁신의 주체인 '나'는 유체이탈화법을 즐기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연구개발은 시행착오를 즐기는 일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실패로 인해 기업이 사라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도록 작은 실패(?)의 백신을 미리미리 맞아 두는 거죠. 


정부든 기업의 경영자든 연구개발의 결과물에 조급해 하지 않고, 기업의 일상적이고 당연한 업무분야로 인식하는 때가 오면 풀리지 않는 이 경제 문제가 조금이나마 풀려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의 사례는 연구개발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있던 회사와 아이디어만 있고 신규 사업을 위한 자금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기업의 얘기입니다.




사례 1.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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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얼굴에 오로지 정직과 성실이라는 신념 아래 믿을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사장님이라고 소개를 받은 O社의 사장님은 제가 보기에는 발이 지면에서 10cm는 떠 있는 듯 한 인상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여는 경영과 마케팅에 관련된 많은 교육을 받으셨고, 지역의 타 기업보다 앞서 나간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연 매출 8억원 수준의 식품기업이 구멍가게 수준이겠지만 시도 아닌 군급의 지자체에서 우물 안 개구리의 울음은 사자후로 들릴 수도 있는 일이지요.


신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세스는 사장님의 영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고, 기실 제대로 된 신제품이 나온 적도 없었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셨다는 사장님이었기에, 식품 관련 전문가가 따로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연구개발을 전담할 수 있는 직원을 두는 것도 아니요, 제대로 된 특허 하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현재의 상태에서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변할 것이 없었기에, 본인이 이끌고 있는 기업의 현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하고 이 사장님한테 중소기업 성공사례 대회에 나가자고 꼬드겼습니다. 사장님은 컴퓨터 앞에 앉고, 저는 옆 자리에 앉아 신청서 작성을 해나갔습니다. 젊은 사장님이라 컴퓨터 사용은 능숙히 해내는 편인데 작성이 너무 더딥니다. 왜냐하면 연구개발 능력에 대한 자체평가 항목이 사장님의 폐부를 사정없이 찔러 댔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당시 자체 평가 항목에서 나온 질문들입니다.


- 귀사는 연구전담반이나 부설연구소를 두고 있습니까?


- 귀사의 종업원 총원 대비 연구개발 전담인력 비중은? 


- 연구개발 전담인력의 평균 근속연수는?


- 전년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 연구개발을 위해 종업원들에게 교육훈련을 시행한 회수는?


- 연구개발의 결과물들을 문서화, 전산화 하고 있습니까?


- 경쟁사의 산업재산권(특허 등) 동향을 분석하고 있습니까?


- 귀사는 종업원의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을 시행하고 있습니까?



기업의 연구개발은 좋은 영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노동자에 대한 대우이기도 하고, 컴퓨터와 SW의 준비이기도 합니다.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비용도 마련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교육도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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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어떠한 기반도 마련되지 않은 조직에서 영감에 기대어 혁신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그 영감이란 것은 기업이 또는 경영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무위(無爲)에 대한 죄책감이 만들어낸 변명이기도 하고, 거짓 전문가들의 말에 현혹되어 무지개 밑에 있다는 보물상자를 찾아나서는 어리석은 짓이기도 합니다.


위에 잠깐 보여드렸던 질문지는 기업이 혁신을 위해 갖춰야 할, 기업 상황에 따라 늦어지더라도 언젠가는 갖추고 있어야 할 시스템입니다. 잘 갖춰진 연구개발 시스템은 누가 앞장서서 이끌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연구소장이, 최고경영자 만이 기업의 혁신적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모든 자원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합리적인 시장 예측이 가능한 마케팅 담당자가 신기술과 제품의 개발을 요구하는 것은 안전한 신제품 런칭의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타 기업과 경쟁기업의 구매 동향을 꿰고 있는 구매담당자가 특정한 부품의 추세를 분석해서 기술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 또한 대단히 신뢰도 높은 미래예측입니다.




사례 2. 대박 아이디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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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컨텐츠 서비스를 하는 작은 회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어느 날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SNS와 인터넷서비스와 관련된 온라인 플랫폼이라고 합니다. 


내부에서 직원들과 모여 검토회의를 해봤는데 시장성이 대단히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는 변리사님께도 의견을 여쭤봤는데 그 분도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극찬을 했다네요. 그런데 저를 찾은 이유는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기술자가 회사에 없어서 개발력이 있는 다른 회사에 개발의뢰를 하려고 하는데 그 방식을 묻더군요. 


이제부터는 A라는 회사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회사, B라는 회사가 개발력을 갖고 있는 회사라고 하죠. 


개발비를 지급하고 외주개발 형태로 하면 간단할 일이나 A회사에는 그 만큼의 자금이 없다고 합니다. B 회사에게 개발비를 줄 수 있는 방법은 개발을 다 한 후에 A 회사가 서비스를 런칭하고 그 수익금을 나눠주는 방식이 있습니다만 이 제안은 B가 탐탁해 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B 회사에서는 신규법인을 설립하고 그 회사의 지분을 요구했으며, 해당 지분에 대해 일정기간 지분율 보호 및 유지를 요구했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B회사에서 특허를 출원하고 가치평가를 해서 자본금으로 전입시켜서 신규법인에 참여시킬까요?


아니면 A회사가 인터넷 유명성이 있으니 주식 스와핑(swapping)을 할까요?


이런 얘기들은 가끔 신문에서 볼 수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현업에서는 결코 이뤄지기 힘든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법률과 사례에서 나타나지 않은 매우 선진적 기법(?)을 써서 억지로라도 이 일을 성사시키려 해도 두 회사는 전혀 그런 모험을 겪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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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B사의 플랫폼 개발비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고, 더구나 A사는 개발비용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분위기였습니다. 뭘 알아야 프로젝트 원가에 대한 검토를 하는 것이죠. A사에는 컨텐츠 개발을 직접 할 수 있는 개발자 출신의 PM(Project Manager) 또한 없습니다.


B사의 일정기간 지분율에 대한 보호 및 유지 요구는 자신의 주식가치가 최고의 금액이 되도록 신규 투자 유치(유상증자 및 채권 발행)를 막아내겠다는 욕심이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은 막연한 것이었지, 컨텐츠 사업의 특성 상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많은 광고비와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으려면 필수적인 자금 확충, 그것도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해주는 위험자본의 진입기회를 자신들이 스스로 막아버리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좋은 개발자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력 있는 경영진이 없는 기업이란 확신은 들더군요.


더군다나 대화 내내 제가 느낀 것은 A와 B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저의 컨설팅 보고서는 이렇게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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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한 줄로 요약하면, '돈 없으면 그 사업하지 마세요'가 되겠군요.


'그것 참 야박하다, 이 사례가 나와 비슷해서 어떻게 잘 성사되었는지 궁금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다음 시간에는 연구개발을 위한 자금을 이끌어 내는 방법과 아이디어의 보호를 위한 특허 출원에 대한 얘기들로 이어나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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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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