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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7. 월요일

소리지기







2013년 여름은 그야말로 한국축구 최악의 시기였다.


특유의 패스축구 스타일을 한국에 심어서 2014 브라질에 도전하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포부는 레바논 원정 참패와 일본에게 0-3으로 당한 삿포로 참사로 인해 도중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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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축협 회장 조중연은 죽어도 안 하겠다는 당시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을 어르고 달래고 소주를 먹이며 간청 같은 협박까지 하며 억지로 국가대표직을 맡겼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초유의 한시적 국가대표 감독 선언이었다.



예선용 감독(?) 최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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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최강희 감독은 첫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나면 감독에서 물러나고 전북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물러나도 월드컵은 외국인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조언까지 한다. 최강희 감독의 머릿속에 월드컵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에 2014를 대비한 장기적인 플랜이라던가 선수기용이라던가 할 생각을 안 하고 현재 상황에서 당장 뽑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수를 기용했다. 특히 최강희 감독 시절 좌우 윙백은 매번 바뀌는 포지션이었다.


그 과정에서 1년 전 런던의 영광(올림픽 동메달)을 잊지 못하는 몇몇 해외파들이 파벌을 형성했고 기성용의 결혼준비 과정에서 코칭 스탭과 선수 사이의 사이가 나빠지며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축협은 ‘설마 최강희가 월드컵을 포기하겠어?’하며 후임 감독 선임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손 놓고 있었다.


최강희 감독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지막 최종예선 3경기는 팬들에게 절망을 주었고 악화된 여론은 결국 최강희 감독을 전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홍명보가 감독으로 선임된다.



의리의 싸나이(?) 홍명보


홍명보는 축협이 U-20, 올림픽 대표팀을 맡기며 의도적으로 키운 감독이었다. U-20 월드컵에서 8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준수한 성적을 보였고 다음 차례는 무조건 국가대표팀이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1년만 남은 상황에서 떠밀려 감독을 맡아야 하는 2013년은 그 당시 감독을 떠민 축협도, 홍명보 본인에게도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음 홍명보에게 다가온 대회는 자국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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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은 2년마다 열리는 동아시아권의 축구 이벤트로 피파 규정상 선수 차출 의무가 없는 대회다. 유럽파는 차출 불가고 중동파도 힘들다. 때문에 자연스레 한중일 리그에 있는 선수들로 엔트리를 짜야한다. 사실 당시 동아시안컵 엔트리는 홍명보가 아니라 축협 기술위원회에서 짠 엔트리였다. 그가 감독에 취임하기 전 엔트리가 결정되었어야 할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기술위원회는 40명의 선수 엔트리를 제출하였고, 그 중 23명의 최종명단을 홍명보 감독이 선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이 잘 기억하다시피 2013 동아시안컵은 한국에서 열렸음에도 1승도 거두지 못한 뼈아픈 대회로 남았다. 호주전, 중국전은 잘 몰아붙였으나 골 결정력에 발목이 잡히며 무득점. 일본전은 윤일록이 홍명보호 첫 골을 신고하나 막판에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배한다.


그리고 동아시안 컵 종료 후 8월 14일날 열린 페루와의 평가전에서도 0-0 무승부를 거두게 된다. 홍명보호는 9월 6일 열린 아이티 전에서 첫 승리를 거두나 이어서 펼쳐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패배한다. 특히 크로아티아는 많이 봐줘서 1.5군, 실질적으로는 2군의 스쿼드였음에도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펼쳐 많은 팬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어느새 날짜는 10월. 월드컵까지 채 몇 개월 남지 않게 되자 홍명보는 초조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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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포탈코리아>


자신의 애제자이자 한국 미드필더 중 최고의 실력을 가졌지만 SNS 파동으로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던 기성용을 최대한 빨리 선발하기 위해 감독 스스로 나서 언론 플레이를 시도한다. 당사자인 최강희 감독이 간곡하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게 만들 정도로...


개인적으로 홍명보호의 월드컵 실패는 이때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몇 달 전 감독을 SNS에서 무참히 까대던 선수를 직접 옹호하며 데리고 왔다. 기성용과 친하게 지내거나 런던에서 함께 경기했던 선수들은 모르겠으나 그 SNS상에서 ‘너희는 우리와 달라’하고 지칭 당했던 국내파들의 심정은 어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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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거다 해외파의 필요성을 가만히 있었던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됬고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홍명보 감독은 런던 올림픽 엔트리 당시 “자신이 대신 군대를 가겠다”라는 발언까지 하며 박주영을 선발한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리수를 두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 하는 생각으로 밀어붙인 거 같지만 이 같은 상황은 후에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온다.


2014년 1월 월드컵을 앞두고 실시된 북미 전지훈련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유럽리그가 진행 중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국내파를 비롯한 동아시아 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경기력은 참혹했다. 시즌이 종료된 상황이라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기력했다.


만일 선수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북미 전지훈련은 어찌 결과가 나왔을까? ‘내가 여기서 잘하면 어쩌면 월드컵에 갈 수도 있어’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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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기성용을 월드컵 때 쓰지 말았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성급하게 너무 일찍 데리고 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홍명보는 3월 그리스 평가전 박주영 선발, 최종 엔트리에서 윤석영을 선발하며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소속팀에서의 출전 시간으로 인한 선수 선발’ 이라는 원칙도 스스로 어겼다.


게다가 하나 더.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는 6월 2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대부분의 팀들은 대략 27명 정도를 선발하고 나서 2~3번의 최종 평가전을 치루고 23명으로 추스르는 마지막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지만 한국은 개최국 브라질에 이어서 출전팀 중 2번째로 엔트리를 발표한다.


박주호 부상에 대한 미스테리한 부분도 속칭 ‘엔트으리’ 라는 부분을 더욱더 강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당초엔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는 부상으로 인해 박주호가 탈락하고 윤석영이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5월 말 김진수가 부상당하자 그제서야 아프다던 박주호가 대표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 편집자 주: 윤석영, 박주호, 김진수는 소속팀에서 비슷한 포지션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윤석영은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자 홍명보 키즈로 기성용 사건 당시 sns에 최강희 감독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렸던 전적이 있었다.




슈틸리케의 도전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은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2014년 월드컵의 패배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다 한국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든 시간에 그 앞에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한 축구 대륙컵 대회인 아시안컵이 놓인 것이다.


2014 아시안 게임에서 그나마 잘하던 김신욱이 골절 부상을 당하며 아시안컵의 뛸 수 없게 되었고,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던 이동국마저 부상으로 선수생활 마지막 아시안컵 출장이 무산된 상황에서 슈틸리케는 k리그 경기장을 뒤지며 선수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발굴한 것이 이정협이다.


슈틸리케는 K리그 골수 팬들조차 생소한 이름인 이정협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는 확신을 했고 이정협은 평가전에서 골을 터트리며 아시안컵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며 신데렐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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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의 등번호 18번을 이어받은 이정협


얼마 전 중국에서 벌어진 2015년 동아시아컵 대회에서 한국은 1승 2무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차전 유럽파가 주축인 한국과 일본과 달리 국내파가 국가대표의 중심인 중국은 이번 동아시아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였고 개최국이었다. 많은 팬들은 2011년 동아시아컵의 0-3 패배가 재현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했지만...


A매치 첫 출전인 김승대, 이종호는 중국의 골대에 A매치 데뷔골을 넣었고 작년에 데뷔한 신인 이재성은 전성기 박지성의 투지를 보는듯한 플레이로 중국 미드필더 진을 그야말로 찢어 버렸다.


중국전에서 나온 이재성 -> 김승대 -> 이종호의 플레이


이후 벌어진 라이벌 일본전에서는 중국전의 엔트리 중 대부분을 바꾸는 실험을 하는 대범함을 보인다. 일본의 기습적인 중거리슛으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시종일관 일본을 압도한 경기였다. 최근 벌어진 일본과의 경기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경기일 것이다.


북한전은 이른바 ‘북폰’ 이라 불리는 북한 골키퍼의 맹활약 속에 결국 무득점하고 0-0에 그쳤으나 3경기 중 가장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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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폰(북한 부폰) 클라스


더 고무적인 것인 동아시아컵 엔트리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짜인 엔트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슈틸리케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훈련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자신의 축구를 이해시키고 동기부여를 실시했다. 이것이 먹히는 것은 이미 아시안 컵의 이정협이라는 선례가 존재하고 K리그 경기는 물론 J리그 2부 경기, 대학 리그까지 찾아가며 선수를 슈틸리케가 직접 살피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슈틸리케호에서 뽑힌 선수들은 자신이 좋은 플레이를 한다면 미래에 월드컵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하고 슈틸리케는 더욱더 그 선수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것이 슈틸리케 1년의 성공의 비결중 하나다.


브라질 월드컵이 실패로 끝난 이후 축협은 월드컵 백서를 내며 홍명보호의 실패 중 가장 큰 원인으로 4-3-2-1로 대표되는 하나의 전술만 고집한 것으로 평가했다. 1차전 상대인 러시아전에 모든 걸 맞추어진 전술을 그대로 알제리에게 적용했고 이미 1패를 가지고 있어 죽기 살기로 공격으로 나온 알제리에게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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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익숙한 요 포메이션


또한 다양한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 보단 하나의 포지션을 제대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을 중용한 홍명보의 특성은 이런 유연성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동아시아 컵 3경기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슈틸리케가 하고자 하는 축구가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원에서 패스를 돌리며 점유율을 높이고 그 사이 공격진은 움직임으로 수비를 교란 그 사이에 패스를 넣고 골을 노린다. 중간에 볼이 컷트되거나 패스미스가 있을 경우에는 각자 책임지는 구역에서 강하게 압박하여 다시 볼을 빼앗고 여의치 않으면 파울로 중단시킨다. 전성기의 스페인 대표팀이, 지금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운영하는 전술과 비슷하다.


이러한 슈틸리케 호의 전술적 실험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슈틸리케 호는 2018년을 향해 제대로 목표를 잡고 순항중이다.


PS : 2014년 월드컵의 실패로 축협 내부는 크게 개혁되었다. 더 이상 주먹구구식의 운영은 안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리지기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