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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4.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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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산 대표 소프트웨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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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닭살 돋지만 당시는 이랬다. 한/글 815는 1만원으로 애국하는 기회였다.



한/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V3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소프트웨어!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한/글을 컴퓨터에 포함된 OEM 번들 제품으로 사용하다 처음으로 손수 구입한 상품이 1998년 한/글97 815특별판이었다.(론 그 전에 OS/2용 3.0b를 번들 구매했었다.


당시는 IMF의 화마가 전국을 덮었을 때였고 한글과컴퓨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금도 모아서 국가에 바치는데 가진 금이 없어 차마 그건 못하겠고 우리나라 대표 소프트웨어에 1만원에 못사주나 싶어 기꺼히 바쳤다. 그 이후 한번 물꼬가 트니 정품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아 보이는 국산 프로그램을 정품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거원 제트오디오, 새롬 데이타맨 프로 등. 한/글 또한 직장을 다니기 전 2005 버전까지 별 필요도 없는 오피스까지 덩달아 정품으로 업그레이드를 연달아 했었다. 최근엔 맥용 한/글, iOS용 한/글을 구매했으니 국산 소프트웨어 회사 상품 중 가장 많은 지불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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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롬 데이타맨의 무려 'IMF' 버전의 위용.



지금도 필자에게 국산 대표 소프트웨어일까? 몇년 동안 애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업무용 소프트웨어로만 사용한다. 개인적인 문서를 만들 때 지금은 '절대로'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 때문일까?


한/글은 우리나라 IT 산업의 바로미터라 생각한다. 한/글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작된다. 젊고 명석한 4명의 개발자들이 의기투합하여 어려운 환경에서 불굴의 의지로 세계적인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었다. 그들은 노력의 결과 벤처신화가 되었고 전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아름다운 이야기에 갑자기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국가는 그들을 정책적으로 도와주었고 정부 표준 문서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작성된 문서는 한/글로 통일 되다시피 하였다. 적어도 정부, 국공립학교, 대학교에서 작성된 문서는 대부분 한/글이었다. 전 세계가 MS Word를 사용했지만 한/글의 위상은 국내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한/글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올라섰을까? 아니 국가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활성화 되었을까? 이젠 어느 누구도 한글과컴퓨터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지금의 한컴에 대한 무관심은 한 때 관심 받았던 이찬진 전 대표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한/글 외에는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815 애국심 마케팅은 이제 기한이 넘었다.





2. 한글과 컴퓨터, 한글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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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소 엉뚱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글이 대단하다고 몸소 생각한 건 세벌식 자판을 익히면서다. 현 표준 자판은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된 알파벳 체계를 본따서 만든 두벌식 자판이다. 지금 쓰고 있는 두벌식 자판은 왼손가락으로는 자음을 오른 손가락으로는 모음을 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알파벳과 같은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천지인, 즉,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되어 한 문자로 하나의 독립된 소리를 낼 수 있는 어쩌면 전세계 유일 문자이다. 한글의 다른 문자와 다른 독특한 지위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독보적인 이 문자는 기계화 및 디지털화 과정에서 두가지 아쉬운 점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한글 창제원리를 완전히 무시한 자판 채택이었다. 1969년 기계식 타자기 표준 자판은 현재 사료에만 있는 사용이 불편한 네벌식으로 정했었고 1982년 컴퓨터가 막 시장에 선보인 때, 현재의 두벌식을 표준으로 정하게 되었다. 두번째로 아쉬운 건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한글 표준 문자 코드를 지정할 때 2,350글자만 지원하는 완성형을 표준안*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한글 문자를 다 조합하여 표현하면 11,172글자가 나오게 된다. 완성형에서는 상당히 많은 글자가 누락되었다. 물론 완성형과 조합형의 논쟁은 유니코드 2.0 지원으로 종식되었지만 그전까지 상당히 첨예했었다. 어찌 되었든 한글 자제 원리와 표현을 제대로 표현 못한 두벌식과 완성형을 표준안으로 정한 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 한글 인코딩은 완성형이 표준안으로 채택되자 한글의 원리인 심플함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걷게 된다. 영어와 유럽어에서는 유니코드 도입 전에는 ASCII를 기준으로 확대 발전했다면 한글 인코딩 표준은 완성형 EUC-KR(KS X 1001, KS X 1003)으로 정해졌지만 MBC '똠방각하'의 '똠'자가 표준 완성형에서 지원을 못하게 되자 논란이 일어났고 IBM CP949에서 확대한 MS949가 MS 윈도우즈에서 사용됨으로써 사실상 표준처럼 사용하게 된다.(여기에서는 사안의 범위를 넘어서서 아주 간단히 적었다. 1974년 부터 시작한 어처구니 없는 한글 인코딩 역사는 추후에 함 다뤄보도록 하겠다.)







3. 한글 타자기, 하드웨어 워드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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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 기계식타자기를 만든 안과의사 공병우



한글은 초,중,종성으로 조합하는 특수한 문자로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자판 조성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나왔다. 물론 영문자 또한 QWERTY와 DVORAK 자판 등 이 있지만 이는 글자의 위치만 사용상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바뀌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글은 위에서 말했든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된 문자가 아니었다. 처음 타자기가 등장했을 때는 종성에 해당되는 받침을 무시하여 만들었지만 이는 한글 창제원리를 전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었다. 한글 오덕 공병우 우안과의사는 한글 창제원리를 고스란히 기계식 타자기에 넣게 되었다. 바로 진정한 의미의 혁명적인 한글 타자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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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체 혹은 안상수체는 세벌식 타자기에서 유래된다. 어느 글자에서든지 초중종성 자소 크기는 같다. 

(현존하는 글자체 중 가장 정치적인 '체'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세벌식 자판이 인쇄 글자체와 달랐다. 조판을 구성시 세벌식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초,중,종성의 크기와 위치가 일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타자체’ 혹은 ‘안상수체’가 해당된다.


인쇄 글자체에서는 문자가 완성되면 자소의 위치에 따라 모양이 변하게 된다. 가령 '어'와 '엉'에서 초성 ‘ㅇ’과 중성 'ㅓ'의 크기와 위치가 달라진다.


인쇄 글자체 처럼 나오는 타자기를 만들기 위해 여러 다섯벌식 기계식 타자기가 등장하였지만 이는 사용하기 매우 까다로웠다. 세벌식은 현재 표준이 아니지만 컴퓨터 OS마다 자판을 지원하는데 익숙해지면 표준 두벌식보다 속도와 신뢰성에서 매우 우수했다. 그런데 정부는 세벌식의 우수성을 개무시하고 글자체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불편한 다섯벌식을 이상하게 변형한 네벌식을 표준으로 지정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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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볼래야 볼 수도 없는 다섯벌식 자판



공병우 박사는 타자기는 인쇄기와 달리 글자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성 속도'가 중요한 것을 내세웠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9년)


전자식 타자기 등장 이후 글자모양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고 정부에서는 사용하기 불편한 네벌식을 폐기해 버린다. 그리고 당시 많은 전문 타자수들이 세벌식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 자판을 모사한 두벌식을 표준으로 정한다.(1982년)


이런 배경 하에 하드웨어 워드프로세서는 미국에 비해 대략 10년 후에 등장하였는데 1983년 국내 최초의 하드웨어 워드프로세서 큐닉스 '글마당'과 연이어 발표한 고려시스템 '명필', 금성사 '장원', 라이카 '워드피아' 그리고 대우전자 '르모' 등 이 있었다. 전자식 타자기와 하드웨어 워드프로세서가 나온 후 초,중,종성 모양은 관심대상에서 멀어졌다.





4. 한글 소프트웨어 워드프로세서


고등학생 박현철이 만든 국산 최초의 소프트웨어 (1983년 MBC 자료)



우리나라 워드프로세서의 시작은 1983년 고등학생이었던 박현철 학생이 애플II에서 구동되는 프로그램*에서 부터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워드프로세서로 볼 것인가 텍스트 편집기로 볼것이냐 논쟁이 있었지만 최초의 한글을 입력하는 프로그램으로 애플 II에서 구동되었다. 이후 '한글 III'와 '중앙한글'이 나오는데 일조했다고 전해진다.




* 국산 최초의 소프트웨어, 한글 워드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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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전자부품부속가게에서 '박현철'을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교생으로 우리말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한 박현철(17세?서울북공고2년) 군은 전문가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1983년 1월22일자 동아일보 '금주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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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뒤의 박현철. (인터뷰 전문 보기)


2011년 동아일보는 29년만에 박현철씨를 인터뷰한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이내 씁쓸해졌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업적을 남긴 그가 세상말로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박현철은 자신의 실패를 ‘조언자’가 없었음을 탓했다. “조언자가 있었다면 안철수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실패가 살아왔던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아직도 친구없이 홀로 남은 고등학생 박현철이었다. 물론 그의 실패의 많은 책임이 척박한 우리나라 현실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근본적인 실패는 그도 우리도 이 나라도 ‘미성숙’ 그 자체에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실패는 시대의 실패이기도 하니 탓하는 것이 무리는 없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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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보석글. 순수 국산 프로그램이 아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되어 확산되는 시기는 MS-DOS가 확산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1983년 DOS 2.0과 워드퍼펙트 3.0이 전세계적으로 사용자가 확산 되자 한국에서 또한 MS-DOS에서 구동되는 최초의 소프트웨어 워드프로세서인 삼보컴퓨터 '보석글'이 1985년에 등장하였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마다 번들로 워드프로세서를 내놓았다. 금성 ‘가나다라’, 대우통신 ‘프로워드', 쌍용 ‘세종’, 현대 ‘바른글', 삼성전자 ‘글벗’, 테레비데오 ‘한글워드’ 등 대부분 외산 소프트웨어에 한글 처리를 할 수있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초기 워드프로세서는 글자를 입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린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윈도우즈와 달리 DOS 환경에서는 프린터를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따로 인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컴퓨터 혹은 프린터를 만드는 곳에서 워드프로세서를 제각각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중 삼보컴퓨터에서 만든 보석글이 저변을 넓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엡손과 손잡고 한글코드 처리가 가능한 엡손 프린터를 삼보에서 판매했었고 우리나라 프린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 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석글은 온전한 국산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 'T/Maker Research' 워드프로세서를 한글화 시킨것에 불과했다. 금성 ‘가나다라’ 등 프로그램 또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보기 어려웠고 한글화 및 프린터 지원에 문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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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하나워드



1980년 후반 가장 인기 있언던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금성 ‘하나워드’였다. 하나워드는 특히 관공서와 군대에서 사용하였는데 하나워드가 관공서에서 공통적으로 쓰였던 이유는 하나워드에서만 열리는 전용 파일 포멧 확장자 HWP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관공서에서 하나워드가 한/글에게 지위를 빼았겼던 이유는 한/글 2.0 이후 기능상 현저한 차이 때문이겠지만 파일 포멧 HWP에 기인한 면도 있을 것이다.


1988년 드디어 한글 코드와 프린터를 제대로 지원하는 워드프로세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린 상품이 한컴퓨터연구소에서 개발한 한글2000이었다. 두벌식, 세벌식 자판, 조합형과 완성형 인코딩, 레이저 프린터 지원 등 기존의 워드프로세서와 차별화된 기능을 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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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일전자 텔레비디오 컴퓨터



한글2000의 개발 배경은 한/글 개발 배경과 겹쳐진다. 한글2000은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20대 후반 3명의 고등학교 동창생이 ‘한컴퓨터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출시한 소프트웨어다. 엄밀히 말해 캐나다 혹은 미국에서 물건너온 소프트웨어다. 한컴퓨터연구소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한국인 텔레비디오 황규빈 사장을 만나면서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80년대 말 갑일전자가 팔던 텔레비디오 컴퓨터안에 들어있는 워드가 한컴퓨터연구소가 만든 제품이었다.


1988년 한컴퓨터연구소는 한글2000을 가지고 국내를 공략한다. 한국에 자리잡은 곳은 한글 오덕 공병우 박사가 몸담고 있는 ‘한글문화원’이었다. 이곳은 한글과컴퓨터가 처음 입주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글2000에 세벌식 자판이 당연히 들어간다. 또한 한/글도 세벌식을 지원하였다. 초창기 한컴 직원들 대부분이 세벌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글문화원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벌식이 컴퓨터에서 우수한 것을 몸소 알았기 때문이겠다.


한글2000은 다음버전에서 ‘사임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래픽과 사진을 삽입, WYSIWYG 등 구현하지만 한/글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1994년 한컴에 인수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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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추억 돋은 '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 한/글 시대


한/글의 탄생배경에는 한글2000에 대한 일화가 있다. 1988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학생이었던 이찬진은 한글2000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버그를 한글2000 개발자 강태진에게 알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에 빡친 이찬진은 대학교 컴퓨터동아리(컴퓨터연구회) 후배들 김형집, 우원식, 정내권과 함께 한/글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개발은 후배들이 하였고 이찬진은 경영을 담당했다. 명조, 고딕, 필기, 샘물 등 글자체 개발을 이찬진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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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51과 2.1 버전 1에서 2로 변화는 혁명이었다.



1989년 4월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3장자리 한/글 1.0은 용산전자상가 작은 유통업체인 러브리 컴퓨터라는 곳에서 10만원에 나왔다. 1991년 한/글은 1.5를 발표 후 5000만원 자본금으로 4평 규모로 한글문화원에 자리잡게 되었다. 1.5 버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글2000 등 다른 워드프로세서와 차별점이 거의 없었다. 한/글 1.5 또한 한글2000과 마찬가지로 조합형 지원으로 11,172 한글 모든 글자 지원하였고 세벌식 자판을 지원 하였다.


한/글의 버전 중 국내 아니 모든 워드프로세서에 비해 기능적으로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되는 버전이 1992년에 발표한 2.0이다. 한/글 2.0의 디자인과 기능은 워드퍼펙트에서 많은 부분 차용하였다. 한/글 2.0에서 글자크기 1~127포인트로 가변조정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윤곽선 폰트, 칼라 프린터, 글상자, 그림 등 GUI에서 지원되는 웬만한 기능을 한 프로그램에 모두 지원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DTP(탁상출판)의 대표주자인 맥킨토시 보급이 더디게 된 절대적인 이유가 한/글 2.0 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93년 2.1, 95년 3.0이 DOS용으로 기능이 추가되어 나왔지만 2.0에서 특별히 발전된 모습은 아니었다. 그 후부터 한/글은 관공서와 대학에 밀착하여 마케팅 함으로서 국내 시장에서 매우 잘 통용되는 독자 전략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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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즈용 한/글 3.0b는 도스용 3.0을 그대로 포팅하였다. 디자인은 NeXTSTeP에서 가져왔다.



DOS의 시대는 저물고 Windows 시대가 왔지만 한/글은 Windows 3.0가 나온 후에야 도스용 프로그램 한/글 3.0을 그대로 포팅한 3.0 제품을 선보인다. Windows에서 돌아갔기만 했지 시스템폰트, 자판 등 OS에서 지원하는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상품이었다. 물론 윈도우즈 폰트를 사용한다면 한/글의 장점인 조합형을 구현할 수 없기도 했다. 윈도우즈 95가 발표한 같은 해에 한/글 3.0b를 발표하여 국내 윈도우즈 환경에서 성공하게 된다. 


3.0b 이후 한/글이 윈도우즈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관공서에서 한/글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글 표그리기, 단축키 등 기능에 익숙해 있었다. 물론 조합형 글자 코드 또한 한 몫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한/글은 2.0 때의 혁신 보다는 MS Word 등 프로그램을 기능적으로 따라가는 형국이 되었다. 물론 OS와 유기적으로 통합해가는 MS Word가 윈도우즈 발전과 더불어 함께 앞서 발전하고 있었기도 했다.





6. 결론, 플랫폼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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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와 모바일에 적극적인 MS Office는 사실상 iOS용 Office를 공짜로 풀었다.



한/글은 윈도우즈 뿐 아니라 90년대 부터 OS/2, 리눅스, 맥오에스 등 멀티플랫폼 전략을 세웠다. 초창기에는 윈도우즈 프로그램을 그대로 포팅하는 수준이었다. 멀티플랫폼 전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부터 맥용 한글을 다시 내놓았고, 얼마전에 리눅스용 한/글뷰어를 발표했다. 한/글이 플랫폼의 의지를 다시 일으키는 것일까?


1990년대 후반 한컴은 당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컴이 어려워진 이유는 외부적인 환경 뿐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주력 제품인 한/글에 기술개발 하는 것 보다는 네티앙 같은 포털사이트 등 사업다각화를 무리하게 하였고 모두 실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컴오피스 96은 MS Office에 밀려 기업시장에서 처절하게 실패하게 되고 개인용 시장에서는 불법복제로 수익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법복제로 한/글이 무너졌다고 단정하면 안된다. MS Office의 경우 또한 개인사용자가 정품을 사용하는 것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글은 대학과 관공서에서 절대적인 위치였다. 한컴이 1996년 이후 기울어진 이유는 ‘불법복제’만의 문제로 돌린다면 그들의 '방만한 사업 다각화와 더딘 기술 개발'에 대한 내용은 쏙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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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과 순이익은 ‘11년 이후 늘었다. 계속 그럴지는 모르겠다.



지금 한/글은 적자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글의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지 않는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시대에서 오피스 제품들은 더이상 캐시카우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플은 2013년 말에 모든 iWork 제품들(Pages, Numbers, Keynote)을 공짜로 풀어버렸다. 그리고 웹브라우저에서 편집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2014년 11월 6일 Office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MS는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하는 MS Office for iOS를 사실상 무료로 풀었다. 환경변화에 따라 한/글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비즈니스를 구글, 애플, MS는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은 지역 상품으로 더 고립되고 있다. 그들이 멀티플래폼을 지향하든 말든 말이다. 아직까지 윈도우즈 환경이 지배하는 국내 구조에서는 한/글은 상품으로 남아있겠지만 그 시간이 별로 안 남은 것 같아 보인다. 늦은 것 같지만, 지금 한/글은 새로운 기술혁신이 필요한 때다.



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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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