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산하 추천6 비추천0

2014. 11. 18. 화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지난 기사


[산하의 가전사]신기전으로 이인좌를 잡다

[산하의 가전사]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산하의 가전사]마그다의 빗나간 사랑

[산하의 가전사]1991년 5월 25일 김귀정의 죽음

[산하의 가전사]800년 전 고려에서 일어난 일

[산하의 가전사]영화 <명량> 개봉을 맞아

[산하의 가전사] 김취려 장군과 못난 최충헌

[산하의 가전사]거목 이병린의 슬픔

[산하의 가전사]슈바이처와 헬레네

[산하의 가전사]구르카 이야기

[산하의 가전사]모세 다얀, 애꾸눈의 바람둥이

[산하의 가전사]역대 명반 랭킹2위 유재하







 

스크린샷 2014-11-18 오후 1.47.28.png

 

 

 

나의 문학적 자산의 기본 베이스이자 솔직히 말하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어렸을 때 국민서관에서 나왔던 세계문학 전집 60권짜리 같아. 그 60권을 완독하던 날의 뿌듯함은 지금도 기억난다. 수십 년 전에 폐품 더미 속에 사라졌을 테지만 그때 그 책들에는 어린 날의 손때와 추억이 동시에 묻어 있었지. 그 전집이 소개한 작가 가운데에는 레프 톨스토이가 있었어. 애들 보는 세계 명작이니 <안나 카레니나> 같은 건 아니었고 <톨스토이 동화>라고 '바보 이반'이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동화들을 수록하고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고, 후일 머리가 굵어진 뒤에는 <전쟁과 평화>니 <안나 카레니나>니 <부활>이니 하는 그의 작품들을 기꺼이 읽는 계기가 됐지. 어떻더냐고? 음 그의 작품 세계 같은 건 나중에 노문과 친구 하나 소개시켜 줄 테니까 걔한테 듣도록 하고.



스크린샷 2014-11-18 오후 5.59.54.png

톨스토이


1910년 11월 7일 톨스토이는 휘황한 대저택의 침실에서가 아니라 우랄 철도의 작은 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의 침대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가출 중이었어. 아내에게 '나를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고 집을 빠져나온 그는 아내가 자신을 찾아내는 것을 피하려 3등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는 등 일종의 밀행을 거듭했지. 하지만 러시아가 좀 드넓은 땅덩이냐. 의사가 함께하긴 했으나 여든두 살 귀족 노인이 감당하기에 여행은 길었고 3등 칸의 불결한 환경은 건강을 해쳤어. 아스타포보 역장은 고열에 시달리는 노인을 보고 기절초풍을 했지. "이게 누구셔. 톨스토이 백작님 아니십니까." 그는 자신의 관사로 톨스토이를 옮긴다.

러시아의 시골 역이었던 아스타포보는 일약 세계적 뉴스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톨스토이 가출 후 여행 중 중태!""가출 이유는 가정 불화 때문?" 썬데이모스크바(?) 류의 잡지들부터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프랑스 뉴스 영화 촬영팀까지 와글와글 아스타포보로 몰려들었지. 물론 톨스토이의 가족들도 달려왔어. 그 아내 소피아도 당연히. 하지만 그녀는 톨스토이를 당장은 만나지 못했어. '톨스토이언'이라고 할 추종자들이 그녀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야. 톨스토이 자신도 만남을 원치 않았다는 말도 있고. 톨스토이의 신봉자들은 그녀를 톨스토이의 거룩한 뜻을 가로막는 악녀에 남편을 핍박한 끝에 가출케 한 악처 정도로 봤을 테니까.

실제로 세계 몇 대 무엇무엇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계 역사상 3대 악처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테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를 들기도 하는데 글쎄 세 여자 다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크산테페는 저 철학자라는 인간 돈 한 푼 벌어온 적 있는 줄 아느냐며 악을 쓸 것 같고 콘스탄체는 자신에게 씌워진 건 누명이고 오해라며 눈물바람을 할 것 같고 소피아 경우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악처라는 말을 부인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정말 톨스토이라는 거인하고 사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쉽지 않았어요.”

톨스토이는 나이 서른네 살에 18세의 친구의 딸을 아내로 맞지. 요즘 기준으로 보면 '특수절도'에 해당하는 도둑놈인 셈인데 뭐 당연하게도 귀엽고 발랄한 러시아 소녀의 매력에 흠뻑 빠지지.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의 모델이 바로 소피아라고 해. 유명한 영화 음악 <나타샤 왈츠>와 함께 톨스토이가 묘사한 나타샤의 무도회 데뷔 풍경을 떠올려 볼까. "공단 무도화를 신은 나타샤의 귀여운 발은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민첩하고 경쾌하게 움직였으며 얼굴은 행복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스크린샷 2014-11-18 오후 1.59.48.png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그런데 이 예쁘고 귀여운 초보 숙녀 신부에게 톨스토이는 엄청난 문서를 내밀어. 톨스토이 자신의 젊은 날의 방황과 유혹과 범죄에 가까운 실수들이 장황하고 리얼하게 나열돼 있었으니까. 톨스토이처럼 육체의 활력을 잘 묘사한 작가도 드물다는 평이니 얼마나 화끈하고 생생했겠어. 창녀촌 쫓아다닌 건 얘기 꺼리도 안되고 온갖 여자 섭렵기에 농노 여자를 임신시킨 일까지 말이야. 딴엔 고백이라고 내밀었을지는 몰라도 소피아는 황당했겠지. "아저씨 이거 뭐예요?" 이때 톨스토이는 정말 대문호다운 절묘한 맹세(?)를 한다. "앞으로 내가 스스로 만들지도,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을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영지에 여자를 들이지 않겠소." 이거 뭐지??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바람 피지 않겠소라는 건데

톨스토이는 원래 성적 욕망이 비정상이라고 할 만큼 강한 사람이었어. 소피아는 무려 13명의 아이를 낳아야 했다. 감독과 코치 포함 완벽한 축구단을 만들 수였지. 물론 그중 6명은 일찍 죽긴 하지만 그야말로 톨스토이는 ‘지칠 줄 모르고’ 소피아에게 달려들었고 애를 만들었어. 애가 열세 명이라면 일단 임신 기간만 13년 아니냐. 그야말로 애만 낳다가 세월 다 보낸 것 같지만, 소피아는 그야말로 엄청난 일을 병행했던 여자야. 천재는 악필이라고 (그래서 내가 천재라는 말은 아니지만) 톨스토이는 대단한 악필이었고 그 개발새발의 필체를 일일이 다듬고 교정해서 출판사로 보낸 게 바로 소피아였던 거야.

<전쟁과 평화> < 안나 카레니나> 같은 인류사에 빛나는 걸작들은 소피아를 거쳐 빛을 봤어. 애를 열셋 낳고 직접 젖을 먹여 기르고(톨스토이는 엄마가 애들을 길러야 한다며 유모를 못 두게 했어) 남편의 악필을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봐야 했던 소피아는 하루에 다섯 시간을 넘어 자 본 적이 없었다고 하네. 소피아는 이렇게 탄식했어. 


"나는 자동인형처럼 살고 있다. 걷고 먹고 잠자고 목욕하고 남편의 글을 옮겨 쓴다. 사생활이란 없고 독서도 놀이도 생각에 잠길 수도 없다.....이게 도대체 무슨 삶일까?"



20140620_161014_1841763054.jpg




그런데 젊어서의 난봉꾼 톨스토이, 광폭한 수컷으로서 자신 주변의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후리고 다녔던 저 욕망의 화신 톨스토이는 나이가 들면서 금욕주의자로 변신해. 하지만 이것도 모순이었지. 그는 자신의 난봉을 반성한 게 아니라 자신을 그런 유혹에 빠뜨린 여자들을 혐오했거든. 막심 고리키가 "톨스토이는 여자에 대해 무자비할 만큼 적대적"이라며 혀를 찰 만큼. 고리키는 이렇게 정리했지. "쾌락을 만끽하지 못한 수컷의 적대감" 또는 "육체의 음탕한 충동에 맞선 영혼의 적대감"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예담 중) 나이 여든한 살까지 나는 여자 없이 힘들다고 말한 정력의 화신께서 '이런 유혹을 나에게 주는 여자이란!'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양상.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았던 러시아 백작 톨스토이는 만년에는 조직화된 정부와 일체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농부의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반전을 기록하지. 그는 일종의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무정부주의자(그가 자처한 적은 없으나)가 됐고 교회로부터도 파문당한다. 그는 전 재산을 버릴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소피아와 격렬하게 부딪치게 돼. 나는 솔직히 소피아 편이 된다. 이때 소피아가 했을 얘기는 안 들어도 뻔하니까. 이렇지 않았겠어.

"좋아요. 젊어서 난봉꾼이었고 결혼 후엔 '결혼은 합법적인 매춘'이라며 나를 모독하신 고명하신 남편 톨스토이 백작 나리.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든 당신 재산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에요. 당신 애 열셋을 낳고 일곱을 기른 나도 권리가 있고 내 아이들에게도 권리가 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톨스토이를 존경하는 이들에게 이런 아내의 앙칼진 모습은 당연히 '악처'로 비쳤겠지. 늙은 톨스토이가 16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들볶이는 게 노인학대(?)로 비쳤을 테고. 재미있는 건 내가 어릴 적 본 <톨스토이 동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은 이때 쓰인 것들이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 저작권을 두고도 아내와 갈등을 벌여. 톨스토이는 비밀리에 자신을 이해하던 유일한 가족이라 할 막내딸 알렉산드라에게 저작권 일체를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소피아가 이를 알아 버리지. 소피아는 눈에 불을 켜고 이 새 유언장을 찾았고 이 모양을 본 톨스토이는 마침내 최후의 가출을 감행하게 됐어, "아내가 나와 내 집안을 망치고 있다!"고 절규하면서. 글쎄 그럴까요 톨스토이 백작 나리.
 
톨스토이의 죽음 이후 톨스토이 전집을 펴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진력한 사람은 그의 아내 소피아였어. '악처'라는 비난 속에 그녀는 뭔가 사무친 듯한 글을 남기기도 했어. "진실로 위대한 한 남자와 천재의 아내로 살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던 이 여인을 세상 사람들이 부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어. 남편도 그녀를 사랑했고. 하지만 톨스토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영혼을 담기에는 그녀의 그릇은 평범했지. 그러니 넘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그릇의 작음을 탓하고 그런 작은 그릇에 부어지는 톨스토이가 아깝다고 혀를 찼지. 그 와중에 소피아는 악처라는 누명까지 쓰게 됐고. 5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둘은 죽어서도 떨어져 묻혀 있다.

나중에 딸 시집 보낼 때 피해야 할 군상들 바람둥이, 알콜릭, 도박꾼 하나에 더하여 천재라 불리는 인간들.
 


 스크린샷 2014-11-18 오후 1.51.24.png

 

 

 

 

 

 

 

 

 

 


산하

트위터: @sanha88


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