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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아기사슴 추천6 비추천0

2014. 11. 19. 수요일

그냥불패 타락한아기사슴






편집부 주


이 글은 그냥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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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따다 <1>

나는 왕따다 <2>






글 쓰는 속도가 굼뱅이라기 보다, 군대에서 컴퓨터 할 시간이 적은 게 연재가 뜸해지는 가장 큰 이유겠다. 아니 컴퓨터하는 시간은 있는데, 수기를 옮겨 적는 시간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눈 떠보니 8월도 꺼지고 있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8월에 투고되었습니다만 11월 중순이 된 지금에야 올려드립니다. 몬난 편집자를 둔 사슴님에게 정말, 미안하다!]


 


 한 여름밤의 술


0. intro (짝, 사랑이야기)


7월 중순 여름날 술 자리, 입대 1주년을 맞아 그리고 필자의 첫 짝사랑 K양의 생일 기념을 맞아 통칭 구인회 중 여덞 명이 모였다. (나머지 한 명은 전방에서 근무 중이다.) 나는 이제 휴가 나와도 나왔다 말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날 몰래 가서 모두를 놀래키고 착석한 거였다. 


사씀: 오늘 누구 땜에 모인거지?


K양: 야! 나 생일이라고!


사씀: 어, 그래 축하한다.


서로 툴툴대며 자리를 시작했다. 


벌써 2번째 생일을 챙겨주다니, 처음 봤을때 K양은 그리 예쁜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안경을 벗은 모습을 보고나니 얼마나 예쁘던지...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그런 장면처럼 빛이 났는데 지금은 별로 그런 느낌이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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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개를 들면...


대학 새내기 때, 둘이 밥도 먹고, 그녀 따라 교양도 바꾸고,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우연인 척 몰래 기다리고 했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미쳤냐고 버럭 화낼 거 같다. 물론, 이렇게 써놓고 막상 상황이 되면 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경쟁자가 나타났다. 한살 많았던 남자 놈, 그 놈은 정말 놈이다. 나쁜 놈... 아니 뭐, 나 보다 잘 생기고 키 큰 어쨌든, '놈'이라 칭하자.  


어영부영 때는 학교축제에 이르게 된다. 그 '놈'을 재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은 했던가. 축제가수들의 무대를 그녀와 단 둘이 보고난 후 학교 편의점에서 메로나 두 개를 사서 벤치에서 까먹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근래 메로나컵이 '와' 대신 나오는데 나는 '와'가 더 좋다. 메로나컵이 달콤하지만 여름과 같이 끈적거린다면 '와'는 말 그대로 아이스 샤베트 같다. 특히 PX에서 구할 수 있는 군대 짬밥 아이스류 중에서는 거의 최강자라 생각하는 바이다. 입에 넣으면 그저 단 한 마디 밖에 나오지 않는다. '와~'


K양: 나 있잖아, 그 사람(놈)한테 고백 받았어.


사씀: ...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두려웠고 싫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 여자가 되는 것도 내가 고백해서 거절당해 친구로도 지낼 수 없는 상황에 말이다. 겁쟁이였다. 그래서


"잘해 보든가." 


퉁명스레 내 뱉었다. 여러 날이 지나서 그녀는 그 놈의 여자친구가 되었고,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스무살의 나는 딱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지금이라면 "내가 더 널 좋아하는데, 나는 어떠니?"라든가. '입술박치기'라도 해서 빰이라도 맞든가 할 텐데. 


현재 K양은 그 놈과도 헤어지고 26살 군필자와 사귀고 있다고 한다. 하기사 한참 군필자가 좋을 때인 거다.



1. 24, 26, 30 (그래? ... 그렇구나.)


한참 무르익었던 자리의 분위기가 시들어 갈 즈음에 Y양의 발언이다. 


"여자나이 스물넷에 졸업하고 여섯 쯤에 공무원되어서 서른 쯤에 결혼하면 최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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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거참 재밌는 말이네'하며 한마디 툭 내 뱉었다. 


"그으래?" 


실제로 그럴까? 군 생활하며 취미 활동 등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학과와 꿈 그리고 목표를 물어본다. 물론 이 자리의 8명의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었다. 한 명도 정해진 꿈이 없댄다. 고작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취업과 졸업을 대비해, 토익과 전공공부를 하는 사람, 거기 좀 더 나은 녀석은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각자의 연애사업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정도였다. 물론 위에 열거한 것들 중 하나도 안 한, 혹은 못 한 나 같은 군인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갈리는 것도 내 나이 때의 남과 여라고 생각한다.


글쎄. 말이다. 공무원... 밥그릇은 정해져 있는데 남녀노소 어중이 떠중이 다 덤벼들면, 정해진 수 만큼, 정원만큼 지 밥그릇 찾고 나머지는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닌가? 물론 본인 선택에 올곧이 책임을 지고 사는 게 어른이라고도 말하지만,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한 현실 속에서 공무원이 꿈도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어느새 '갑'이 되어있는 건 아닌지. 내 주위 여자들 중에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며 카랑카랑하게 말할 여자는 없어도, '나, 스물넷 졸업. 여섯 취직. 서른 결혼한 여자야!'라고 말할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를 일이니 말이다. 



2. 인연이든, 인맥이든 

 

파해가던 자리에도 술이 분주했다. 얼굴들은 하나같이 벌개져 있었다. Y양은 내게 쏘아 붙이듯 말했다.


Y양: 야, 너 전역하고 나서 걱정이다. 짜샤.


사씀: 왜? 뭐...


Y양: 뭐, 임마 너 동기 중에 친한 녀석도 별로 없고 전역하면 혼자 다닐꺼 아냐?


기분이 언짢았지만 잠자코 듣기로 했다. Y양의 장점 중 하나는 본인을 제외한 다른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잘하는 거니깐.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다. 


Y양: 넌, 너가 좋으면 다른 사람은 상관없잖아!


사납게 말하기에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러자 Y양은 내게 인맥관리를 연설하기 시작했다.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인맥이 필요하다고. 너도 쫌 인맥관리 같은 거라고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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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연을 이야기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인지 아님 영원히 모를 수도 있지만 그냥 딱 내 사람 같은 사람이 있다고. 그런 사람은 도움이 되든. 안되든. 그냥 품고 싶다고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듣다 Y양은 말했다. "야, 니가 아직 군인이라서 순진하거나 내가 너무 때 묻었나봐." 털털한 웃음이 번지자, 나도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입이 썼다.

 


3. 술자리 잔상

 

나는 술의 맛을 알지 못 한다. 간혹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속을 다 적시고 싶었지만 막상 들어가면 이내 입 안이 썼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돈 아깝다'하며 자책한 적도 있지만, 온 몸에 퍼진 기운은 나를 똑바로 두지 못했다. 흔들렸다. 흔들린 추는 균형을 잃어갔지만 넘어가지는 않았다. 음주 도중 소변은 언제나 불쾌한 냄새가 났다. 그럴수록 쓰디 쓴 소주가 그리도 맑게 보일 수 없었다. 


'이거.슬. 다 마셔 내 가.믄. 속도 말.게.하자!' 


술자리에 있었다. 허나 아무도 쉬이 잔을 채워 주지 않았다. 잔을 채웠다. 비웠다. 반복했다. 목이 타. 물이 급했다. 물잔을 들었지만, 이내 조금 흘렸다. 


"아, 미안해..." 


주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또 혼자 마시다 취했네." 


물이 목을 넘어간다. 입 안이 그리고 더 깊은 속이 진정된다. 온 몸이 달아오른 번개탄처럼 따스하다. 눈동자가 조금, 몸이 조금 더 풀렸지만, 정신은 조금도 풀리지 않는다. 지그시. 주변을 둘러본다. 술이 오고  간다. 말이 오고 간다. 내일을 모르고 두려운 자들의 위로가 오고간다. 하나가 오기에 하나가 간다. 늘어나는 건 술병이고, 줄어드는 건 침묵이다. 밖에서 보면 행복이고 안에서 보면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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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 "미안해"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 척 놀랜드가 구조되서 사회로 돌아오고 사회에서 자기 치아를 봐주던 의사 놈이랑 아내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사실을 알게 된 날, 밤 4년이라는 시간동안 무인도에 갇혀있는 내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던 아내 사진이 있는 팬던트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스탠드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 를 반복한다. 필자는 그게 바다에서 잃어버린 배구공 친구 '윌슨'인지 아님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아내'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감독은 이 점을 노린 걸까? 주인공은 말한다. 아... "미안해" 윌슨에게, 그리고 또 이젠 다른 사람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버린 사랑했던 여자에게, "미안해"


"윌슨~ 미안해... 널 구하지 못할 것 같아... 윌슨. 윌슨~!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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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outro 고마워 과연, 돈까스야.


이제 술 자리 얘기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렇다. 필자의 휴가징크스를 소개하려고 한다. 휴가징크스란 휴가를 떠나기 전 날 저녁은 언제나 돈까스란 점이다. '돈까스'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자 다 같이 소리내어 읽어보자. 돈.까.쓰.  영어로 풀이하자면 어렵지만 해보겠다. 


don't gas 되시겠다. (pork cutlet 이라고 외치시는 분들 뭘 기대한거냐? 이 글은 기대 따위 하지 않아야 되는 글임은 초장부터 밝혔다.)


don't gas 해석하자면 무척이나 어렵지만 족집게 선생님처럼 풀어보겠다. 


'까쓰 부리지말라' 


이렇게 해석된다. 까쓰는 무엇일까? 된 발음을 빼고 순하게 표현해 보자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 되도록 말이다.


까.쓰. 


까.아.쓰 


ㄱ가.아.ㅅ스 


가. 아. 스. 


가.스. 


불필요한 것들을 지우고 보면 '가스'가 남는다. 보이시는가? 이제 독자의 의문은 '대체 웬 '가스'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로 넘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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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란 무엇일까? 정의 내려보도록 하자.


가스 : 군대 내에 심하는게 폭언, 욕설, 협박부터 약하게는 혼내는 걸 통칭한다. (대체로 언어폭력이라 이해한다면 쉬울꺼 같다. 물론 그 이상도 있겠지만 가스가 심화된 상태를 '핵가스', '독가스' 등으로 칭한다. 실제로 생활에서 쓰자면 '저기 누가 가스를 먹고 있다던가', '가스 뿌린다' 정도로 쓸수 있겠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일요일 저녁의 돈까스는 휴일이 끝나고 일과(*일과: 작전, 근무, 작업, 군대에서 일하는 것을 통칭)를 받는 주중으로 넘어가기 이전, 선후임간에 서로 가스를 덜 뿌리고 덜 먹자는 대한민국 육군 창설과 더불어 가지게 된 모종의 암묵적인 협약이자 전통인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필자의 휴가 직전 최후의 만찬은 언제나 돈가스라는 것을, 소설적 표현을 빌려 표현해본다. 일요일 저녁 돈까스를 맞이하는 느낌은 이러하다고 할까나?



 아아,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햇지만. 

 결국 나라는 인간은... 

 그래서 울컥 돈까스를 보며. 

 겨우 이런 말이나 하는게 고작이지만.


 고마워, 과연 돈까스야


(박민규 단편소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인용)


 


편집부 주 - 지난 기사 끝에


아직은 못했지만 꿈꾸는 노력들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전역 후 내가 다녔던 초,중,고를 찾아 홀로 외롭게 있었던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글을 쓰는 것이다. 꼭 하려고 한다. 내 과거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고 웃으려 한다.


라고 이야기한 필자는 지난 11월 14일 학교를 찾았다. 



[사씀회고록]학교를 가다<1> (링크)






P.S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속에서


내 미래가 될 뻔한 22사단 임병장에게. 


22사단 GOP에서 자살한 이등병에게. 


28사단 구타로 인해 죽은 윤일병에게. 


28사단에서 동반외박을 나가 휴대폰에 '힘들었다. 죽고싶었다. 홍길동 죽이고 싶다.' 단 세 마디를 남기고 스스로 목매 숨진 두 친구에게. 


내 캐캐묵은 회색수첩 일기에도 당신들이 남긴 세 마디가 새겨져 있음을. 


상관의 성추행때문에 자살한 여군중위에게. 그리고 내가 모를 수 많은 친구들에게. 


난 놈들이 저기 저 밤 하늘에 자기 별을 가질 때, 저 별들 사이를 매꾸는 칠흑같은 어둠들에게. 


죽어서 어둠은 칠흑으로 완성되고, 별의 주인은 바뀌지만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은 더욱 빛나기에. 


해피해피 쫑쫑... 강한친구 대한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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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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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불패 타락한아기사슴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