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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망명자 <3>

2014-11-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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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1.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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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지난 기사


망명자 <1>

망명자 <2>









새터민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 교육공동체 중 '여명학교' 가 있. 탈북청소년들이 기존의 대한민국 교육체계에 녹아드는 것이 어렵다는 걸 확인하고, 이들을 모아서 학교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여명학교의 후원자 중 한 명은 틈만 나면 내게 제안을 해온다.

 

"OO씨가 걔네들을 한번 보면 좋은데... 걔네들도 OO씨 참 좋아할 텐데..."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난 그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내 비루한 삶을 그네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멘토놀이'는 한 번으로 족했다. 목숨 걸고 남으로 넘어 온 그들에게 내 바닥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딱 한 번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아이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 애들이 남한에 들어 온 경위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얘들이 백이면 백 전부 다 북한에서 바로 남한으로 넘어왔다고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과 탈북자들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든 이들이 북한에서 바로 남한으로 넘어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어떻게 남한으로 들어왔던지 기본적으로 중국을 거치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중국은 지옥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중국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예요."

 

의도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방어기제를 통한 기억 탈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중국에서의 기억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중국에서의 기억은 지옥이다.

 

김씨 아저씨는 북한 아이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남이든, 북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단지, 동포가 어딘가에서 고생하는 게 싫었다. 기왕 남쪽에 갔다면 잘 먹고 잘 살아야지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특히나 신경 썼던 게 청소년들이다. 자신의 아들이 생각나는지 김씨 아저씨는 탈북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에게 여명학교 이야기를 해줬더니 적잖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그에게 여명학교 아이들이 중국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히 쓸데 없는 걱정을 더 얹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 관한 이야기는 탈북자,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영원불멸의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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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愚問)을 던졌다.

 

"김씨 아저씨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맺혀있던 주름이 더욱 더 옹색해졌다. 게슴츠레 뜬 눈 사이에서 희미하게 웃음 비슷한 게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눈이 말하는 것과 성대가 말하는 것은 억양부터가 달랐다.

 

"중국을 오갔을 때지"


김씨 아저씨의 말에는 어떤 버릇이 있었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단어나 문장들 중 직접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말은 극히 적었다. 누군가를 '죽였다' 혹은 '죽이겠다'란 표현을 제외한 단어나 어휘들은 지극히 비유적이고, 우회적이었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없는 고급용어들을 무시로 사용할 때는 그의 배경에 대한 증거라 생각했는데, 진짜배기는 그의 언어구사력이었다. 단순한 습관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 봤는데, 그는 지극히 비유적이고 우회적이고 제한적으로 자신의 뜻을 피력했다. 그걸 알아들으면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지만, 못 알아들어도 개념치 않았다


정황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몇 번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느낀건 이런 언어 습관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나 활동이력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선문답과 같은 말들을 사용했지만, 국제정세나 외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지극히 냉철하고 명료한 단어를 사용했다.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는 나로서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언어습관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확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추레한 행색과 다르게 그는 지식인, 그것도 고급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한 "중국을 오갔을 때" 그가 스파이로 중국에서 활동했을 무렵을 말한다. 그는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라 군사정보와 기술을 목표로 한 특수한 목적의 스파이였다. 그렇게 훈련 받았으므로 군사기술과 외교에 대해서는 정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스파이였기에 개인의 처신은 적국 그 이상으로 중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 당의 '각별한 배려'를 받았다고 한다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그를 믿어주는 장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이 있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는 난생 처음 당의 명령을 거부할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 처음으로 아들 얼굴을 봤을 때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당의 각별한 배려추측컨대 특각 (김일성 별장으로 지어진 자모산 특각을 말한다)에서 휴가를 보내는 차원(스파이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특각에서의 휴가를 주는 것이 관례였다)은 아닌 거 같았다.  평양시민으로 입성한 건 기본이고, 지위나 가족들에 대한 어떤 보상이 있었던 듯 싶다.

 

김씨 아저씨는 그 짧은 얼마간의 안식을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3년 남짓한 기간이었다 한다.

 

김씨 아저씨 자신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주변 환경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자신에게 내려진 당의 명령에 충실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조국은 확실한 반대급부를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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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북한은 먹고 살만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 완벽하게 남한이 북한을 추월한 건 80년대부터였다. '고난의 행군'기간 동안 북한 체제가 버텼던 건 김일성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사회를 움직였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절 남한을 오갔던(?) 김씨 아저씨의 표현을 빌자면,

 

"남한이 못살긴 했지. 제주도를 가봤더니 돌무더기만 보이더군."

 

그가 갔던 또 다른 남한 도시의 모습도 과히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건 어떤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 그는 지금의 남한 발전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중국 방송에서 남한 연예인과 남한 드라마가 나오는 걸 보면서 그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건 70년대에는 확실히 북한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자존심이랄까? 그는 '조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 그의 주특기는 '여자'였다.

 

미남계라고 해야 할까? 그는 중국 여성을 유혹해서 정보를 빼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꽤 중요한 내용인 것 같았다. 그 중국 여성은 핵심 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 신뢰성도 높았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란 것과 북한의 당시 상황. 그리고 '전투기'란 키워드를 종합해 보면 아마도 MIG-21의 기술 중 하나 (MIG-21의 중국 카피판인 F-7B와 관련 된 정보일 수도 있을 듯) 아니면 다른 공격기의 정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시 김씨 아저씨는 꽤 오랫동안 스파이로 활약했고, 나름의 성과를 분명하게 거뒀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오점이었던 것이 마지막 임무였다.

 

그는 중국 여자를 믿었고, 여자는 정보를 건네 왔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조선은 외교적으로  큰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고 한다. 이게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고, 그는 본국으로 소환됐다. 문제는 이 중국 여자가 건넨 정보의 진위여부였다.

 

"F였었는데..."

 

라는 말은 그 정보의 코드인 듯 했다. 그는 회한에 사무친 표정으로 'F'를 말했다. 몇 번이고 말이다. 아마도 중국여자가 건넨 정보는 가짜였던 것 같다. 아니면 암호해독의 키워드를 잘못 전달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보는 잘못됐고 김씨 아저씨는 몰락하게 됐다끝났다딱 한 번의 실수로 김씨 아저씨는 모든 걸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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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처럼 자신의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다만 그의 '죽인다'와 '죽였다'란 표현과 그가 막 프랑스에 와서 있었던 사건을 통해 그의 경험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막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돈도, 가족도, 희망도 없었다. 만리타향이란 말이 이것과 같을까? 그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그가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말이 들리는 13구역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곳에서 날품팔이를 하게 된다그리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그가 프랑스에 망명신청을 하기 전에 일이 발생했다.


그는 프랑스의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불법이민자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던 식당이었는데, 그 역시도 살기 위해 이 곳에 몸을 의탁하게 됐다. 문제는 이 업주의 성격이었다. 업주는 불법이민자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특히나 프랑스어를 못하는 김씨 아저씨 같은 존재들은 만만한 '먹이'였다.

 

프랑스 업주는 김씨 아저씨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불법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는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그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다. 몇 달 동안 임금이 밀리자 김씨 아저씨는 돈을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욕이었다. 아저씨는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했지만, 나중에는 숫제 무시를 했다.

 

결국 김씨 아저씨는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성질을 보여줘야 했다업장에서 깽판을 쳤다. 그리고 같이 일하던 불법이민자들을 선동했다돌아온 건 폭력이었다아저씨의 거처를 알고 있던 업주는 프랑스 건달들을 동원했다칼과 총으로 무장한 20대의 건장한 청년 4명이 아저씨의 집 근처로 찾아왔다그들 입장에서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50살에 막 접어든 초로의 중늙은이를 총과 칼로 협박(혹은 살인)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 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네 명의 청년들은 지옥을 맛보게 됐다.

 

김씨 아저씨는 이 4명의 청년을 박살냈다. 그 중 1명은 중환자실로 실려 나갈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총 앞에서 겁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김씨 아저씨는 묵묵히 웃을 뿐이었다사건은 더 커졌다. 처음엔 단순한 임금체불 문제였던 게 살인교사까지 커졌다김씨 아저씨 표현으로는 당시에는 '잃을 게 없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업주가 보는 앞에서 식당을 때려부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당당히 임금을 요구했다. 결국 아저씨는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상황은 점점 더 커져갔는데, 경찰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 1명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13구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재미난 건 이때 13구역 사람들이 김씨 아저씨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13구역 주민들의 증언과 CCTV의 영상 덕분에 김씨 아저씨는 무사히 풀려나게 됐다. 다행인 건 그가 그 당시 프랑스에 망명 신청 중인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싸움을 잘하는 법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는 조용히 손을 보여줬다. 엄지를 편 상태로 손날을 만들더니 스윽 목덜미를 밀었다. 그 위압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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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그는 단 한 번의 실패로 공화국의 영웅에서 반역자가 됐다

 

폭발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폭발사고가 날 정도로 큰 난리가 있었고, 외교적으로도 적잖은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얻은 정보가 가짜였다는 것이다노동교화소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그는 그렇게 '폐기처분' 당했다.

 

어딘가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기억을 지우기 위한 고문, 기억이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고문이었다더 이상 스파이로서의 가치는 없었다고 한다. 대 중국용 스파이였는데,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였으니 이미 신분은 탄로 났고, 정보원이었던 여자한테 배신(혹은 여자도 중국 정부로부터 용도폐기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들고 온 정보가 가짜였으니)을 당했다. 더 이상 활용 방도가 없었다.

 

김씨 아저씨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아저씨는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간 거 같다그리고 몇 달인지 모를 정도의 시간 동안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약물은 물론이고(자백제인 듯전기고문은 수시로 당했다고 한다.

 

"내 머릿속을 지우려 하는 거 같았지."

 

김씨 아저씨의 기억은 이 고문의 후유증 덕분인지 지금도 토막토막 끊겨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총명했던 머리가, 고문을 당한 이후에는 백지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인 건 그곳에서 살아나왔다는 사실이다그 곳에서 그는 지옥과도 같은 반년을 보냈다.

 

긴 한숨...


그 긴 한숨 속에 회한의 느낌이 이라면, 2 정도는 안도의 느낌이었다

 

왜 들어갔는지는 안다그 '왜'가 얼마만한 파장을 일으켰는지도 안다그러나 그 '왜' 때문에 치러야 하는 셈에는 이의가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중에는 왜 고문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시간이 흐를수록 질문이 형식적이 됐다고문을 하기 위해 묻는 것 같았다더 나올 말도 없었고,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이미 모든 것이 결과로 나와 버린 후 였다.

 

나트륨 아미탈? 스코폴라민? 티오펜탈고문과 고문 사이에 계속해서 자백제가 투여됐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지금도 그것이 바로 '기억을 지우는 약'이라고 말한다. 자백제일 것이다.

 

고문을 통해 신체를 조각조각 해체해 놓고, 마지막으로 자백제를 집어넣는다몸에서 쥐어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을 얻기 위한 방법아니, 이제는 진실이 뭔지는 중요치 않았다그저 일상이 됐다.



고문의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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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 독구

짤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