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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수요일

메이비


























24년 전 기억인데다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해버리는, 자동수정기능을 갖춘 오류투성이 저장개체이므로 이 글은 공신력이나 신뢰 따위를 가지고 읽을 글이 아니야. 딴지를 보며 이상한 상상을 하는 애들은 없으리라 믿고 쓰니까 감안하길.


난 군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놈이야. 왜냐면 제대로 된 현역도 아니었고, 힘들긴 커녕 기무사 내에서도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분견대 출신이며, 마침 민주화 운동이 한풀 꺽여 짝퉁들의 시대가 유지되던 1990년대 초반에 근무를 하는 바람에 노동강도도 훨씬 약했거든. 게다가 그 당시는 모든게 무능해지며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했던 물태우시대니깐 말이야.


전두환 정부 아래 화려했던 8년을 보내고, 물빠져가던 제6공화국 3년차의 1990년대 초 기무사는 힘이 굉장했던 과거의 여력은 남아있었지만 견제를 받기 시작했지.


내가 거기서 근무하게 된 이야기를 털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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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안대




국군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때가 이 부대가 가장 힘쓰던 시대였어. 모든 지방 치안조직을 예하에 두고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제5공화국 시절이 보안대가 제일 화려하고 막강한 추억을 자랑했던 황금기였지. 난 위관급 하나가 난장친(?) 이후에 이름을 기무사령부로 바꾼 1991년도, 그러니까 황금기가 끝장났던 때에 들어갔어. 아직은 대부분 부대에서 보안대라 부르고, 공식적인 관등성명을 대거나 문서작업을 할 땐 기무사령부를 써야했던 묘한 호칭적 과도기에 근무했지.


내부 인원 모두가 사랑했던 이름 '보안대'. 모두가 어색하고 웃기다며 불렀던 '기무사'. 미군부대 출입시에는 약칭 'DSC'(Defense Security Command).


이런 시대의 보안대에 내가 들어가게 된 과정은 이래.


아주 쉽고 심플하게 설명하자면



1. 난 잘 태어났고

2. 아버지는 사회생활을 잘 하셨고

3. 아버지 후배들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각자 일을 잘 하던 분들이였고

4. 그 중 보안대 최고참 특무상사가 계셨으며

5. 내가 하필 공군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시작된 프로세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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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에서 저런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 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야. 알고 보면 그냥 집 위치만 좋아도 저런 인적 네트워크 달성이 가능하기도 하지. 옆집 할배 아들 중 하나가 장교면 패가 풀리는게 당시의 군대였으니깐.


여튼 그런 별거 아닌, 어쨌건 남들에겐 없던 유리함으로 육군을 갔다면 동사무소 방위 쯤을 갔거나 헌병대 파견대에 사무직 쯤 했을텐데 내 고향은 해안선 방어 취약 지역으로 공군부대도 있고 방공포대도 있는, 쉽게 말해 부대들은 많은데 인력은 딸리는 지역이었어. 그래서 방위병으로 필요인력 대부분을 돌리던 후방 예비사단 예하 경비 부대 성격이 많았지.


현역 대 방위 비율이 1:2에서 1:3에 가깝다 보니 해안선 철책을 지키거나 비행장 외광방어 경비를 하는 일은 방위가 대부분 2교대로 하고, 사무행정이나 주요 정비유지병력 및 내부 타격대나 스왓팀은 현역이 했어.


지금의 공익과 비견되긴 해도 방위는 실 병력이니깐 공익과는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르지. 대포도 쏘고 총도 쏘고 데모 진압도 나가고 뭐 이거저거 다하는 종합 노가다 병사랄까. 물론 비정규직이지.


그래서 필요한 수요가 많았던 만큼 방위도 공군과 육군으로 나눠 뽑던 지역이야. 공군으로 간다면 거의 철책경비를 서거나 삽질하거나 레이더기지의 따까리를 하는 일을 하게 되고, 아주 일부에 불과한 귀하디 귀한 대학생은 내부 행정사무를 하게 되고.


대부분 육군은 과격 상황시 의경이나 전경으로 힘들 때 투입될 예정이던 데모대 진압 기동대를 하거나 주요 방어거점의 경비, 시설의 방어전력으로 쓰여. 그래서 해안지역 쪽 방위들은 주/야간 2교대를 해. 6시라고 다 퇴근하는 건 아니지. 출근하는 애들도 있는거고.






2. 아주 작은 이유로 시작된 보안대 행



군 자원이 남아돌던 시절이라서 군대 가고 싶다고 학교 휴학하고 대기하다가 한 학기 날려먹고, 군대 때문에 무려 4년을 휴학하는 운 나쁜 애들을 봤던 터라 기왕 방위가는거 빨리 마쳐서 복학대비 적응하는 기간도 두고, 여행 그러니까 당시에 유행하던 해외여행도 가야겠단 생각에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어. 방위라도 딱 2년안에 복학을 못하면 손해인 거니깐. 


겨울방학 내에 입영해서 후다닥 끝내고 나오면 6개월 정도 여유가 생기니 그렇게 갈 수 있도록 당겨달라고 했어.

육군으로 가야 할 원래 순서를 당기기 위해서 부탁을 하니 공군이 된 거지.


그래서 1월 군번의 공군 방위가 되어 18개월을 근무하게 되었어. 보직은 인사행정과에서 타이핑이나 치던지 간만에 뭘 그리던지 하는 일이 대기하고 있을거라 예상했지.


입영시기 당겨달라는 부탁만 접수하고 지나치기 뭐했던 아버지 후배는 아침 회의를 하다가 공군 기지에 파견나간 준위에게 한마디를 하게 되지. 아는 형님 아들이 공군 훈련 들어가니 지나다가 보면 챙겨 주라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말야.


근데 공군 쪽에 나가 있던 매우 유명한 그 준위의 머리속에선


아는 형님 = 돈이 많을 것 = 내가 챙겨 준다면 = 돈 = 빙고


이런 연산작업이 이뤄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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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버지 후배라는 그 특무상사가 알던 지역 형님들 중 대부분이 방위산업체를 가진 돈 많은 분들이긴 했어. 우리집은 방위사업과는 하등 연관이 없던 집이었고. 뭐, 착각의 날개는 스스로 다는 거니깐.


그래서 훈련받다가 전혀 계획에 없던 보안대 준위의 구보테러가 이루어졌지. 보안대 차가 훈련 도중 구보하던 부대 앞을 급 정비로 막아서서


"책임자 누구야? 나와!"


막강한 액면을 가진 준위가 방문해서 이런 소리를 지르며


"000이 있지. 000이 나와봐!"


라고 말하자 난 불려나가서 어깨에 소프트 터치 두번 쯤 받고 약속을 받았지.


"훈련 잘 받아. 데리러 올테니!"


뭐 이런 과정이 이어진거지.


없던 티오 빼느라 두 달쯤 남은 고참 하나는 그 준위에게 불려가서 


                     "야. 너 내일부터 나오지마. 문서하고 기록에 남기지 말고 와서 놀던지 가든지 해!" 


이런 말을 듣고는 그냥 술 먹다가 놀러오고, 닭 몇마리 사서 맥주까러 놀러올 때만 부대에 들러 놀다가곤 했지.


그렇게 훈련마친 후 보안대라 불리던 그 부대로 가게 된거야. 얼마나 절차상 계획에 없던 일인지 설명해 줄게. 


보안대에서 분견대에 근무할 행정병은 공식 인원이 2명인데 현역자원 중 보안대 차출인원과 교육인원이 여유롭지 못한터라 한명은 방위를 쓸 수 밖에 없어. 예비자원이 있어야 현역병하고 2교대로 24시간을 돌리니깐. 근데 보안대 일반병사는 보안등급이 높아. 당연히 부대 화장실 위치따위도 기밀인 오프라인 시대의 군대에서 별의별 문서를 다 다뤄야하는, 부대 이름마저 보안대였던 곳이니 최하 3급이지.


행정보직을 받으면 2급까지 인가가 난다고. 뭐 그래봐야 해당지역 문서가 대부분이라 거창한 기밀을 접하진 않지만 그래도 화약고 진입코드와 경비보안체계 지휘도 같은 건 보고 만졌으니깐 그 등급이 허접하진 않지. 그 화약고 날아가면 50km지역까진 여파가 미치는 곳이니깐.


그런 사람의 보안등급 지급시 해야하는 조사는 원적까지 치고 올라가서 8촌 내에 행불 없고, 적 없고, 사고친 놈 없고, 사기 및 권력사칭형 공갈전과가 없어야 하거든. 근데 방위한테 그런짓까지 하기엔 웃기다 생각할테지만 그럼에도 해야해. 그게 군대니깐. 하려는 것은 해둬야하는.


난 내 보안등급심사를 내가 했어. 웃기게도. 내 친척들 전과를 내가 다 뽑아봤고, 내 집안의 비공식 기록들도 다 봤어. 망 조사라고 민간사찰 기록까지 다 있거든. 각 지역의 중요한 사람과 집안에 대한 기록은 다 해두던 시대니깐. 그러니 우리 집안에 대한 지역 평판까지 다 봤지. 그거 보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기도 했어. 할아버지 시대까지 이런저런 사연들은 물론 정치적 성향과 가담 조직과 활동내역까지도 알게되었지.


그렇게 내 조사를 내가 셀프로 해서 처음 배운 4벌식 타자기로 보고서도 써서 팩스 암구호 발생기 콘트롤을 배운 기념으로 첫 송부한 것이 내 보안등급 인가 신청서야.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그런 대단한 조사까지 마치고 주로 한 일은 우습게도 별거 없었지.


삼손처럼 머리가 길어야 힘을 쓰는 부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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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고식




고작 몇 줄인 전입신고가 대단한 일이던 보안대. 소령이 분견대장이고 각 과에 계장이 있으니 6명의 하사관 및 준사관이 있었지. 행정병으로 있는 현역병 한 명에 방위는 일곱 명. 방위 중 두 명은 행정보직을 받고 한 명은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이어야 했던 제약 탓에 늘 유학생 출신이 예정되어 있던 자리였어. 미군 OSI와 협업하는 일이 종종 있었거든.


나머지 한명은 시내에 있던 분견대 사무실에 현역병이랑 같이 마주앉아 행정을 하며 데모상황시엔 합동수사팀에 가서 안기부, 경찰과 같이 문서작업 및 데모대 분석작업을 했어. 주모자, 리딩그룹의 인적 분석, 데모대 활동영역 정리, 화염병 전단지 등의 시위 보고물도 정리해야 하고. 바로 내 보직이지. 밤 새던 일도 많고 안기부, 경찰에 비해 나이가 어리니 시다바리도 많이 해야 했던.


이런 여러 일들 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신고식



몇 줄의 전입신고 문장을 외우는 것이 참 힘들었어. 제5공화국 언론통폐합 시기에 사이비 기자들이 끌려와서 대가리 터지도록 줄빠따질을 당했던 지하실에 가서 외워야했거든. 신고식은 심심한 고참들의 흥미로운 행사였어.  3시간을 심문 의자에 앉아 곰팡이 쩔은 반 평짜리 심문실에 갇혀있는 동안 밖에선 담배피며 이중유리를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었고. 그 반평짜리 안쪽에선 숨쉬기조차 팍팍한 묘한 곰팡이 냄새에 차오르던 습도까지... 


스피커로 읽어주던 신고식 문장. 외우면 외우는데로 또 괴롭힐 억양과 성조. 뭔 중국어도 아니고.


여튼 하루짜리 도락이니깐. 그거 빼곤 갈굴게 서서히 사라지는 파라다이스 부대의 두어달에 한 번 있는 행사라고 할까.


갇힌다는 것, 그 좁은 곳에서 스피커로 윽박지름을 당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날 바라보며 낄낄대고 있다는 것.

내겐 힘이 없고 상대는 강력하다는 그 기분, 참 좋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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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손이야




신고식을 무사히 마치고 인상 좋은 공군 출신 소령인 대장이자, 사장님이자, 실장님인 분견대장과의 면접이 끝나고 업무 스타트.


4벌식 타자기 사용 기술 습득 시간 4시간. 암구호입력기 학습 2시간. 각 전화마다 다른 수신응대 방법 교육 2시간. 이후 테스트 2시간.


시작부터 야근으로 시작됐어. 내가 듣던 방위생활은 아니더라고. 밤 12시를 넘겨 집에 들어갔지. 그래도 운전병이던 고참이 집에까진 태워줬어.


그렇게 다음날 아침 출근을 했지. 빵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어. 모닝세트라고 토스트와 야채스프가 나오더라고. 

아침을 안 주는 줄 알고 사 먹고 출근했는데. 이런 된장.


라면이 그렇게나 산처럼 있는 곳인 줄 몰랐지. 보급대를 얼마나 털어댔을지... 식당을 차려도 좋을 부엌 저장고 상태라 계란은 상해서 버릴 정도였고 라면은 뭐 브랜드별로 와장창. 아침부터 콩나물, 김치, 호박채를 넣은 해장라면을 끓여먹는 게 보안대의 아침인건데 그걸 내가 해야하는 거더라고. 식당 취사병이 있기는 해. 4명의 방위, 운정병, 행정 2명을 뺀 나머지 전부가 그냥 무 보직의 잡부인거지.


라면 끓이고, 자기들끼리 밥 해먹고, 행정병 현역애 먹일만한 작품이 나오면 좋고, 실패하면 중국집이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키는 특이한 식당시스템.


제발 백반 같이만 해달라며, 시켜먹는 거 너무 지겹다던 현역 녀석도 정상은 아니었고. 자기는 아마 알콜중독으로 죽을 것 같다며 종종 내게 음식해달라고 진지한 부탁을 하곤 했지. 그 녀석... 


불러주는 음식이 아구탕, 매운탕, 감자탕. 당연히 소주1병은 기본. 맥주는 짝으로 가져다 먹는 부대니깐. 방위 중에 세무서장 아들이 있어서 주류도매상에 주면 배달해주던 박스쿠폰이 참 많았거든. 그러니깐 술에 쩔어 지냈지. 모두들 말야.


이렇게 재료만 풍부하고 돌아가지 않던 엉망상태인 주방은 내가 오면서 꽃이 피었지. 찌개와 반찬이 만들어지고, 라면도 때마다 다른 컨셉으로 해장라면과 볶음라면까지 만들었어. 순전히 내 욕구 때문에 벌어진 조리실의 부활은 결국 4명의 내 고참들이 장기 두고 바둑 두며 포카를 치게 만들었어.


식당쪽도 내 공간이 된거지. 식재료 버리기 싫어서 고구마 맛탕 만들고, 유통기한 다 되가는 라면으로 뽀빠이를 만들었어. 밀가루랑 된장 등 규모가 큰 건 동네 중국집에 팔아넘겨서 몇 번 요리랑 밥 시켜 먹는 걸로 퉁치고, 이리저리 정리하다가 너무 많이 발견한 마패 브랜디(골패라 불리던)는 시장통 룸까페에 가져다주고, 종종 고참들과 가서 술 퍼마시는 행사를 하는 걸로 대체. 그런 아이디어를 잘내던 고참이 칼자국 있던 형인지 뚱땡이 형인지 기억이 애매하네.


여튼 난 순진한 스물하나의 신참으로서 할 수 있던 건 요리와 잡일 뿐.


왜냐면 난 머리가 짧았거든.



머리가 짧으면 = 군인같다 = 그러므로 일을 안시킨다



이유는 보안대 일은 군인 같으면 못하는 일 투성이였거든. 데모대 따라다니며 자료조사하기도 애매하고 다른 부대에 일보러 나가도 신참 티가 나니 권위가 안 서고.


그래서 최하 3개월, 가르마가 생기는 그날까진 내부 대기를 하게 되는거야. 해서 가르마 빨리 생기라며 매일 드라이어로 머리 길들이고 라면이나 수시로 끓여댄거야.


동시에 먹는 법이 없어. 다들 곱게 자라서 지 멋대로거든. 입맛도 다르고. 누군 계란 넣고 누군 넣지 않고. 누군 국물이 졸아야하고 누군 한강첨벙이고. 그게 계장급까지 몽땅 그래서 운 없는 날은 라면을 10번 넘게 끓여. 오전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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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라면과 타이핑, 암구호에 전화질로 3개월은 휘리릭.


드디어 찾아온거지, 삼손타임.


4월, 꽃이 피어나던 시절. 난 삼손라인을 넘어 첫 외근을 나가게 되.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메이비 


편집 : 독구

Profile
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