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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7. 목요일

젊은농부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나마 알 수 있겠지요.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 사후처리 과정 등에 그 사람의 생각이나 성격, 사고방식이나 행동 등이 묻어 있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누군가가 밭을 꾸려나가다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주인의 땅인데도 어떤 부분은 보다 더 비옥하여 작물이 잘 자라는데, 어떤 부분은 너무도 척박하여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문제를, 그 농부는 해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지요.

 

농부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일단 척박한 땅을 살리는 것입니다그 다음으로 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겠지요최종적으로는 척박했던 곳의 땅심이 살아나고 비옥해져 모든 땅이 기름지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위의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농부는 풍년가를 부르며 한 숨 돌리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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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 척박한 땅을 살리자.


우선 척박한 땅에 적극적인 투입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땅심을 키우는 데 좋다고 알려진 우분-돈분-계분 거름이나 퇴비 등을 넣어 밭을 갈아주어도 좋겠고, 야산이나 개울가의 풀들을 베어다 헐벗은 땅에 두텁게 덮어주어 땅의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초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때 발생하는 비용(거름값, 퇴비나 비료값, 기계 운영비 등의 농자재비)과 노동(농부의 일손)은 우선 농부의 몫일 것입니다. 당장 거둔 적 없고 앞으로도 거둘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을 살리기로 결정한 농부가 그 모든 투입을 책임지는 것이지요. 분명히 손익계산이 필요하고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나름의 방법을 찾아 반드시 진행해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땅을 버리는 농부는 없으니까 말이지요.


 

2단계 : 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자!


균형 있는 땅심이 텃밭 전체에 고르게 펼쳐 유지되는 밭과 그렇지 못하고 띄엄띄엄 들쑥날쑥 제각각인 텃밭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텃밭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작물 작부체계를 계획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텃밭 전체가 비슷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요. 균형을 맞춘다는 건, 지속 가능한 삶을 조율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텃밭이나 사람이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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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척박한 땅의 땅심이 살아나는 데까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동안 비옥한 땅은 그만큼의 생산을 분담해주어야 합니다. 농부의 식탁을 꾸려줄 먹거리, 장에 내다 팔아 생계비를 마련할 작물들을 잘 키워내야하는 중요한 곳이지요. 이곳의 비옥함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작물을 키워내는 데 농부는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비옥한 땅에서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이 그 자체로 텃밭 전체의 균형을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기여하는 것입니다. 우선 농부의 투입여건을 개선해줄 것이고, 잉여 생산물이나 수확 후 부산물들이 척박한 땅을 살려줄 퇴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간과하면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땅심을 착취하는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듬해, 그 다음해를 생각지 않고 땅심을 착취하기만 하는 농사를 지으면 농부는 그저 온통 다 척박해진 텃밭의 주인이 될 뿐이겠지요. 하향평준도 균형은 균형이라면 할 말 없지만그것은 균형이 아닌 파괴가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균형이란 모든 것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힘이며, 농부가 꿈꾸는 건 모든 텃밭이 비옥해지는 것, 상향평준화로 균형을 유지하는 기름진 땅을 얻는 것이니까요.


 

3단계 : ‘지속 가능하게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전답


더러는 힘들고 더딘 그 과정에 지치고 힘들 때도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는 농부가 정직하고 끊기 있게 텃밭에서 땀방울을 흘리다보면 머지않아 농부는 저 남쪽부터 북동서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는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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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이 상향평준화된 비옥한 토지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지금껏 이어온 시간들을 잊지 말고 늘 방일하지 않은 정성으로 밭을 가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시간은 즐거울 것입니다. 이미 비옥해진 토지의 수확물을 늘어날 것이고, 이미 기름져진 토지의 먹거리는 맛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물론 이것이 지속 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다면, 농부의 삶은 그야말로 풍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농부가 있다면 저는 농부의 그와 같은 문제해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농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현명하고 건강한 농부로군.’ 그렇게 우리는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 누군가의 일면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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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인한)기업 부담 줄이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검토중이라는 정부의 입장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화되어 기업들이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를 손 놓을 수 없으니까 그에 필요한 비용을 정규직 정리해고를 통해 충당할 수 있게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없는 말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지요. 저 위에 씌여 있는 기사의 제목 그대로입니다. ‘기업부담을 줄이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한다는 저 말에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숨은 뜻을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정규직, 정규직이란 이름이 부여받은 보장과 권리를 위해 많은 아픔과 시간이 쓰여졌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절규로,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의 투쟁과 누군가의 실천으로 이제 겨우 그 당연한 이름과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에 이르렀는데이 정부와 경제계는 정규직 유지를 위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이라는 기형적 일자리를 만들어 내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목소리가 울부짖으니 한참이 지난 이후에서야 묘안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저와 같은 것입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규직을...’


그러니까 개 줄 것 밖에 없어 고양이 굶으랬다가 고양이 우는 소리 시끄러우니 밥그릇을 고양이 앞으로 밀어 놓은 것과 같은 생각을 이 정부가 해결책이랍시고 검토중이라는 것입니다. 개 짖으면 금방 개 앞으로 던져질 그놈의 밥그릇. 그래가지고서야 해가 바뀌도록 개와 고양이 어느 하나 밥 먹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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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예와 비추어 생각해보았습니다.


 

1단계 : 척박한 땅을 살리자 (비정규직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이상 미룰 일은 아닌 것 같으니 그리 해보아야하겠는데, 그러자면 내 돈 내 땀이 필요하니 농사짓기 싫은 게으른 농부는 선뜻 쇠스랑 들고 밭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다 묘안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2단계 : 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자! (사회구성원의 균형 있는 발전과 공생을 도모하자)


그렇게 다들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텃밭의 땅심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고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외쳐대니, 땅심이 형편없는 척박한 땅을 살리는 희생보다 그나마 괜찮은 토지의 땅심을 저하시키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꼴인 것 같습니다. 필요한 균형은 획일화와 동일화가 아닌 고르게 발전하여 비슷한 속도의 걸음으로 함께 걸어가자는 것인데, 이 어리석은 농부는 균형이란 그저 같거나 비슷하기만 하면 이뤄지는 가치로 여기는 듯합니다.

 


3단계 : ‘지속 가능하게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전답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


더이상 적을 가치가 없는 듯하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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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패한 정부로구나.' 이번 일을 접하며 저는 매우 강력하고 선명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전 분명 얼마 전 이와 같이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 사람들 무기계약직 되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 툭 하면 파업할 건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러냐. 또 그렇게 되면 산별노조,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하고 협상해야 되지 않나. 이런 복잡한 부분이 있는데 30년 넘게 큰 문제 없이 진행되어 온 부분을 왜 바꾸려 그러느냐

 

라고 말한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결론적으로 청소용역근로자의 직접고용 시기를 조정하거나 서울시 사례를 보고 충분히 검토한 후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라며


또 시행을 하더라도 시설관리용역근로자들과 같이 하거나 아니면 같이 안 하는 방향으로 가야 제일 중요한 형평의 원칙이 유지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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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아예 누구에게도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야할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과 이번 사안은 너무도 닮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 이러한 것들 까지도 넓은 의미의 평등과 균형이라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보장된 권리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지 말아야 형평성의 원칙이 유지된다는 생각이나어떤 이는 비싸게 구입하고 어떤 이는 싸게 구입하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비싸게 사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단통법이나정규직의 해고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이나 모두...


모두 모두 균형 잡힌 사고방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이 아닐까 하는 그런 비통한 생각이 듭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고통을 분담하여 함께 걸어가자는 말이 기다려집니다구조적인 문제를 방관하고 암암리에 장려해온 정부와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기업들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무에 책임을 느끼는 실천이 그리워집니다.


우직하지만 현명하고, 느리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농부와도 같은 정부그런 농부의 밭이 온통 검붉은 빛의 비옥한 토지로 변해가는 과정처럼, 우리 사는 이곳이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비옥해져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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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농부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