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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2. 화요일

필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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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남의 게임만들기 (1)






14.


와이프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육아휴직을 1년간 신청할 자격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육아휴직은 완전한 무급 휴직이다. 유일한 금전적 이득은 퇴직금을 정산할 때 육아휴직 기간도 포함된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가 받던 월급의 40%를 고용부에서 지급한다. 다만 최대 100만원이다.  


이 중 85%를 미리 지급하고, 나머지 15%는 회사에 복직해서 6개월간 일하면 몰아서 지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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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우리 회사에서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내가 두 번째(!)라고 들었다. 그리고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삼성전자에 근무했던 우리 처남의 말을 따르면 그 유구한 기간 동안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은 단 세 명(!)이라고 한다. 


사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한다고 해도, 직원이 천 단위를 넘어가는 기업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남자 직원의 커리어 단절으로 인한 본인의 불안감, 그리고 휴직 기간의 가계 생계 문제다.


후자의 경우는 굉장히 심각해질 수 있다. 여자는 출산 이후 당분간 일을 쉬고 육아에 전념하지 않으면 아기와 엄마 모두 너무나도 힘들다. 그래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도, 여자가 대신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주 어렵다. 즉,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대부분은 그 가계의 수입이 거의 없어지는 수준에 도달한다.


당장 우리 가정이 그랬다. 매달 들어오는 수입은 육아휴직급여 85만원, 그리고 양육수당 20만원이다. 이걸로는 각종 공과금과 휴대폰비 등만 내고 나도 남는 게 별로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그간 쥐꼬리만큼 모아 놓았던 돈으로 생활해야 했고, 1년이 다 지나갈 무렵엔 거의 돈이 떨어져 퇴직금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신청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금전적인 부분만 빼고 생각한다면 -이걸 빼고 생각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육아휴직은 굉장히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15.


나는 아기를 가지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경우 '반드시' 두 명은 낳아서 길러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별 생각이 없었기에 그 자녀계획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이 태어날 때가 되니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하필 창업을 생각하고 있던 시점이라, 아들의 탄생이 기쁨도 주었지만 솔직히 그 당시에는 부담이 더 컸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아들을 가진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와이프와 함께 아들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긴다. 아기가 자라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수많은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아내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에게 육아휴직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하지만 역시 육아를 하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앞서 말했듯, 정말 하드코어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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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단 우리에겐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둘 모두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외주를 맡기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샘플 이미지 등은 필요했다. 그 외에도 게임 내에 사용되는 모든 이미지를 외주를 줄 수는 없기에, 아내도 일정량의 아트 작업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전적으로 코딩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상황이 못 되었다.


두 번째로는 나의 작업이 자꾸 끊긴다는 점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는, 아내는 내가 출근했다고 생각하고 정말 긴급한 일이 아니면 부르지 않겠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언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원래 닥쳐봐야 아는 것 아니겠는가. 막상 아기를 키우고 있자니, 힘들어 죽겠는데 바로 옆에서 키보드만 탁탁 두드리는 신랑을 안 써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 번째가 가장 컸는데, 아들이 너무 무겁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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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를 정말 많이 닮았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늘어나는 몸무게와 덩치의 추이도 나를 닮았다. 3.3kg으로 태어난 아들은, 50일째에 6kg을 돌파했고, 100일째에는 10kg을 돌파했다. 우리가 볼 때, 아들은 그렇게 살이 많이 찐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정말 너무 빨리 자라고 있는 커다란 아기였다. 


머리가 안 난 것만이 아들의 유일한 아기다움이었다. 이미 몸무게와 덩치와 얼굴 크기는 돌을 지난 아내 친구의 딸을 능가했다.


여담이지만, 100일을 좀 지났을 때 아들을 안고 저울에 올라갔는데, 정확히 108.8kg가 찍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이것은 아들의 문제인가, 나의 문제인가...


어쨌든 아내의 가녀린 손목으로는 이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친 아내는 자연스럽게 나의 도움을 더 많이 요청하게 되었고, 나의 작업은 점점 더 많이 끊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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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프로그래머의 작업은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굉장한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프로그래머가 아니고서야, 이런 사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배려심 깊은 아내도 이런 부분까지는 공감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10kg의 아들을 매번 안아올리다 손목이 시큰해지기 시작한 아내는, 과장 좀 보태서 나를 10분마다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O<-<하게 누워 있던 아들을 >->O하게 돌려 눕히는 정도의 일에도 나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는 아니더라도 게이머였던 아내는, 내가 일하다 말고 잠시 LOL을 할 때는 한 판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나에게 아무 요청도 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였다. 게임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LOL 게이머의 도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나는 집에서의 탈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내에게 요청해 보았다. 집 앞에는 마침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하나 있다. 도서관에 출퇴근하는 형태로 작업을 하면 안 되겠느냐.


아내의 대답은 '노'였다. 흔히 하는 말로 단호박 같았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감히 어디 밖에서 작업을 하려고 하느냐. 내가 호출을 하면 재깍재깍 응답할 수 있는 10미터 반경을 넘어서면 안 된다.


...아무래도 근본적인 문제는 처음부터 우리가 육아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도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고, 나도 이렇게까지 일을 하기 힘든 환경이 될 줄은 몰랐던 거다.


그리고 아내와 나의 생각 차이도 있었다. 나는 물론 육아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더 중점을 두고 육아 휴직 기간을 보내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반대였다. 절대적으로 육아가 우선이고, 작업은 그 이후의 일이라 생각했다.


결국 긴 토론 끝에 룰을 하나 합의했다. 


최소한의 게임 틀이 갖춰지기 전까지, '인터럽트'라는 제도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간단하다. 아내는 나에게 하루에 세 번 인터럽트를 할 수 있고, 각 1시간씩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나눠 쓸 수는 없고, 한번 인터럽트를 하면 1시간을 다 못 쓰더라도 그 기회는 날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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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작업 진행은 훨씬 좋아졌다. 하루에 세 번만 인터럽트를 쓸 수 있다 보니, 아내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조금 신중해졌고, 내 작업이 중단되는 일도 줄어들었다. 아내 입장에서도 한 번 인터럽트를 사용하면 1시간은 쉴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기에, 큰 불만은 없었고, 나 역시 아내를 도와줄 때마다 까먹기 전에 빨리 다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초조해하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하다 보니 와이프는 내 작업을 배려하느라 하루에 인터럽트를 한 번도 안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와이프는 인터럽트를 안 썼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얼마나 나를 헌신적으로 돕고 있는지를 강조했기 때문에 까먹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배려해준 것이 솔직히 고마웠다. 표현은 많이 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와이프는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입장이 조금 바뀐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결과물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살면서 정말 한 번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고자 하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게임의 모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자, 아내도 조금씩 결과물 자체에 대한 믿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말 무언가를 만들어서 내놓을 모양이긴 한 것 같다는 그런 신뢰말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내 작업을 위해 배려하고, 도움을 주게 된 것도 있었다. 물론 언제나 육아와 가정이 우선이고, 게임 만들기는 다음 순위이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대한민국에서 남편이 인디 게임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와이프가 또 있을까? 단언컨대 우리 와이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8.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나는 게임 제작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진행해 나갔다.


처음 회사를 그만둘 때, 나는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이미 머릿속에 그려두고 있었다. 간단히 게임의 컨셉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퍼즐앤드래곤과 비슷하되, 이름의 자음과 모음을 토대로 전투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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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 덱에 '드래곤'과 '전사', '마법사'가 있으면, 'ㅅ'을 입력하면 전사와 마법사가 공격하는 식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당시 지인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으나, 재밌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지인은 거의 없었다. 우선 아내부터가 이 아이디어에 대해 격렬한 반대를 표명했다.


앞서 말했듯, 아내는 웬만한 남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코어 게이머였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편이었다.


기획을 혼자 한다는 것의 맹점은 혼자만 재밌는 게임이 탄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게임을 검토하면서 피드백을 주면, 그런 위험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렇게 검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면, 그 시간 자체가 프로젝트 완성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의미없고 쓸데없는 난상토론의 시간이 개발 기간을 잠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양날의 검이다.


아무튼, 와이프의 게임에 대한 감각은 굉장히 날카로운 편이었고, 나도 기본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일단 프로토타입을 플레이해보고 얘기해보자. 내 말솜씨가 부족해서 재미를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그리고 일주일 정도에 걸쳐 프로토타입을 대충 만들었다. 내가 먼저 플레이해보았다.


너무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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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재밌을 것 같은 것과 재밌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모두들 알고 있고 나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걸 실감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흔히 하는 말로, 이 시점에서 나는 멘탈에 약간 금이 갔다.


여기서 내가 택한 방법은 일단 쉬어가는 것이었다. 일단 게임 제작을 중단하고, 나는 재미있어 보이는 모바일 게임을 생각없이 쭉 플레이해보았다. 세상에 정말 많은 모바일 게임이 있지만, 우선 나는 퍼즐 RPG 형태의 게임을 만들고자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는 퍼즐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기본적으로 퍼즐 RPG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퍼즐앤드래곤이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재미있게 플레이한 모바일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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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가장 많이 해봤고, 잘 알고, 재미있어하는 장르를 만드는 게 좋을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게임을 하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나는 출퇴근하며 전철에서 모바일 게임을 즐겼는데, 자동 전투를 켜놓는 건 너무 지루했다. 최소한 플레이에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이었으면 했고,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RPG였으면 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교집합은 퍼즐 RPG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는 이 게임 저 게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좀더 방향을 틀어보았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없이 책도 읽고, 만화도 보고, LOL도 하고, LOL도 보고... 한 달 정도 그냥 정말 신나게 재미있어 보이는 문화 컨텐츠를 소비했다. 와이프가 보기엔 게임을 포기하고 그냥 노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꾼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무엇을, 어떻게 만들면 재미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타짜의 영화 제작 소식을 듣고 타짜 2부를 다시 주행한 어느 날.


나는 포커의 룰에 기반한 퍼즐 RPG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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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포커 게임은 사람을 설레고 흥분되게 하는, 그런 원초적인 재미를 갖고 있다. 7장의 트럼프 카드를 펼쳐서 패를 맞추고, 좋은 족보가 등장하기를 두근거리며 기대하는 그런 짜릿함... 고스톱이나 섰다와는 다른 종류의 '재미'를, 포커 게임에서는 느낄 수가 있다. 


라프 코스터가 재미 이론에서 언급했듯, 인간은 근본적으로 패턴을 파악하고 풀어내는 데에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포커라는 게임은, 트럼프 카드 54장에서 조합되어 나오는, 각종 패턴의 총체가 아닌가. 본연적인 게임의 재미를 지닌, 매력 있는 카드 게임이다.


나는, 그 포커 패턴 자체의 오롯한 재미를, 한번 게임에 담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커를 기반으로 한 퍼즐을 새로 만들었고, 와이프에게 플레이를 한번 시켜보았다. 와이프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음... 이건 괜찮을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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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람들을 만나며 이 퍼즐을 보여주며, 나는 점점 자신을 얻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반응이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게임의 굵직한 방향성 하나는 확정된 셈이었다. 하지만 게임 제작을 혼자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다른 일들을 진행해야 한다. 그 중에서는 내가 서투른 일이나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있는 법이다.


해보지 않은 일들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디자인의 외주를 구하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게임에는 적과 내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고, 둘 다 '아트 리소스'가 필요하다. 나는 퍼즐앤드래곤 형태의, 애니메이션 없는 2D 일러스트로 적과 아군을 표현하기로 했다. 대신 일러스트를 카드 틀에 담고 그 틀 자체에 동적인 표현을 주는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기본적으로 서버 개발자였기 때문에 클라이언트 애니메이션까지 할 자신도, 시간도 없었기도 했고, '포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카드에 일러스트를 담는 것이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형태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유저들의 흥미를 잡아둘 만한 충분한 양의, 퀄리티도 훌륭한 일러스트가 필요했다. 이 정도 분량의 일러스트 작업은, 지인을 통해 소개받는 정도로는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결국 모 카페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분들을 공개 모집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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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많은 돈을 쓸 수는 없었다. 


앞서 얘기했듯,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별로 없었다. 내가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기존에 갖고 있던 돈, 그리고 퇴직금으로 반환할 생각으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었다.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 게임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와이프에게는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금 와이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왠지 와이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 같다. 와이프가 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감사하는 것도 맞다.


아무튼, 구해야 할 일러스트는 많고 비용은 적었기에, 작가분들에게 많은 돈을 지급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있는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고, 와이프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가운데 40명 정도의 작가분들을 선별해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작가분들과 오프라인 계약을 진행했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도 커피를 많이 마시다 보니 밤에 너무 피곤한데도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아무튼, 많지 않은 금액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보니, 최대한 다들 즐겁게 작업하실 수 있도록 배려하려 했다. 구체적인 설명은 줄이고, 간단한 컨셉만을 드리고 작가분들께 작업을 전적으로 맡겨드렸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일러스트를 다들 완성해 주셨다. 1차 일러스트 제작에서 40명의 작가분들 중, 펑크를 낸 분이 단 한 분도 없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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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론 모든 일이 평탄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공개 모집이다 보니 첫번째 작품 하나는 샘플링으로 받아서, 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와 같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지의 여부만 보고자 한 것인데, 아무래도 작가분들 입장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그리게 되는 것 같더라. 그러다 보니, 첫번째 작품의 퀄리티는 굉장히 뛰어난데, 이후 더 단가를 높게 책정한 그림이 오히려 아쉬운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게임 초중반의, 유저들에게 첫인상을 심어줄 일러스트들의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물론 꾸준히 잘 그려 주신 분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UI 진행에서 발생했다.


(다음 편으로...)








필리온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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