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사회]망명자 (6)

2014-12-03 17:18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P작가 추천9 비추천0

2014. 12. 03. 수요일


P작가










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지난 기사


망명자 (1)

망명자 (2)

망명자 (3)

망명자 (4)

망명자 (5)


















 

서울 명동 거리에서 평양 중구역에 있는 사람에게 송금을 할 수 있을까? 송금이 가능하다면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송금은 가능하며, 걸리는 시간도 처음 연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나절 안에 돈을 지급할 수 있다.

 

시스템은 간단하다. 탈북자 혹은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남한 사람이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남한 내 브로커를 찾는다. 브로커는 화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평양에 있는 친인척을 찾는다. 그들은 중국 국적이기 때문에 평양 내에서 활동이 용이하다. 핸드폰도 가지고 있기에 남한 내의 친인척과 통화도 시켜준다. 남한에서 돈을 송금하면, 이건 중국 계좌로 들어간다. 그러면 이 사실을 중국에 있는 사람이 평양에 있는 중국인에게 통보한다. 평양에 있는 중국인은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만큼을 (거의 반 가까이를 수수료로 떼간다) 현금으로 전달해 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남과 북은 놀랍도록 가까워졌다.


다만, 문제는 남과 북 사이를 가로막은 정치적 장애물 덕분에 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제적 이익들이 중국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동해어장은 중국의 대형 오징어잡이 어선들로 꽉 차 있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은 중국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미 중국의 인건비는 가파른 상승세를 찍고 있고, 그 빈 공간을 북한인들이 채우고 있다.

 

우리가 중국산으로 알고 있는 수많은 수산물 중 상당수는 북한산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벌어간다.'

 

는 말이 2014년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을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동아일보.jpg

출처 - 동아일보 



 

두만강을 넘고 난 뒤의 김씨 아저씨는 '생존 모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안전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최소한 직접적인 위해(危害)에서는 한 발 비껴난 상태였다. 생존에 대한 일정수준 이상의 확신이 들자 온갖 인간적인 욕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중 가장 먼저 고개를 들이민 건 배고픔이었다.

 

두만강 너머에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지만, 중국은 심각한 성비 불균형의 나라이다. 중국의 남성은 여성들보다 3,700만이 더 많다. 중국의 전체인구수를 보자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통계의 착각이다. 65세 이상 노령인구를 보자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 생산연령으로 나눈 각 세대별 남녀성비의 차이를 보면 중국의 성비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이 되면 중국의 25~35세의 남성인구는 11,200만명, 그리고 이들과 결혼할 20~30세의 여성 인구는 7,200만 명이다. , 혼인적령기의 남성이 여성보다 4,000만이나 많다는 결과가 된다.

 

시골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중국의 통계를 믿을 수 없다.' 는 경제학계 일각의 주장은 인구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계의 부정확성. 그 부정확성은 인구통계에 들어가면 확신이 된다. 중국은 농촌에 대해서 '한명 반 정책'을 펼쳤다. 첫째 아이가 아들이면 그 부부는 자식을 낳을 수 없지만, 딸이면 한 명 더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여아사망률이 올라갈 수 밖에 없고, 심지어는 첫 아이를 아들로 낳아도 딸로 신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농촌지역에서는 남아선호사상이 심각하고, 자식이 곧 노동력이기에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선의 여자들이 유입됐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북한여~4.jpg


 

조선족의 눈에, 중국인의 눈에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은 여자들이 어떻게 보였을까심각한 남녀성비의 불균형 때문에 결혼은 고사하고, 젊은 여자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동북3성의 노총각들에게 이들은 만만한 먹잇감이다.

 

개중에는 정말로 잘 풀려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북한 보다 낫다는 말을 한다.

 

"굶어죽지는 않는다."

 

라는 생각이다. 개중에는 어린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독특한 성적취향을 가진 이들도 있기에 (인구의 10% 내외는 동성애자이기에) 이런 사람들에게 팔려가는 남자아이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사창가로 끌려가 옷도 입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손님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탈북자들의 신분을 악용해 여차하면 공안에 넘기겠다며 이들에게 계속 윤락을 시킨다. 제대로 된 화대라도 받았으면 덜 억울했겠지만, 이 역시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탈북자이고 배고파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밥을 먹여줬으면 되는 게 아닌가란 논리다. 여차하면 공안을 부르면 된다.

 

탈북자라는 신분은 이들의 인권 자체를 무()로 돌려놨다. 이들은 공안의 눈에 띄면(그리고 뇌물을 줄 수 없다면) 재수 없으면 총살 당하고, 그나마 운이 좋으면 변방대 구류장에 끌려 간다고 한다. 변방대 구류장에 있다가 북송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들을 행운아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위키트리.jpg


출처 - 위키트리



그럼 성인 남성들은 어떨까?

 

"떼놈들이 인구가 많은 거 같지? 잘 뜯어보라우

내 말했지 않니? 눈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시골은 사람 없다. 어린것들은 전부 도시로 달려가 농민공 하고 있고

젊은 애들 찾기가 힘들다. 그럼 어카겠니

사람 손이 부족하다 이기다."

 

사람 손이 부족하다. 김씨 아저씨 눈에 비친 중국은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신장위구르나 티벳 같은 자치구의 독립, 혹은 민주화에 대한 요구? 아니다. 바로 돈 문제. 김씨 아저씨는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방치했다간 조만간 중국은 무너질 것이라 말했다.

 

"여자를 보면 안다."

 

여자?

 

"돈 있는 놈은 결혼을 한다

돈 없는 놈은 여자 근처에도 못 간다.

젊은 애들이래 이런 경우에 어떤 반응을 보이겠니?"

 

일베가 생각이 났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국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규제'의 흉내를 내고 '인권'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는 잡혀있지만, 중국은 그게 없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性善說)은 어쩌면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중국에서 탈북자는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01250099.jpg


 

지옥 속에서도 김씨 아저씨는 살아남았다.

 

동북 3성은 이미 탈북자들에게는 옥으로 변해 있었다.여자들은 대부분 연변으로 보내 그곳 조선족에게 팔아넘겼다. (당시에는 연변 지역이 안전하다고 했다. 지금도 연변 지역은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때문인지 탈북자 검문검색이 강화되면 연변부터 털린다고 한다.) 이때 몸을 파는 부류와 결혼하는 부류로 나눠진다고 한다. 결혼? 매매혼이었다. 중국인 남성들에게 팔려나가 강제로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 착한 중국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탈북자 부인'이라는 약점 때문에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매매혼이었기에 학대와 성폭력을 견뎌야 했단다. 결혼의 경우에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것이고, 아예 사창가로 넘겨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창가로 가기 전에 몇 단계에 걸쳐 팔리고 또 팔려나간다. 두만강을 넘어 랴오닝 성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중국인들에게 팔려나가다 보니 산둥반도의 칭다오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숫자는 최소 10, 최대 15만 사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이 모든 걸 보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한때는 조국의 엘리트라고 자부했고, 당을 위해 충성을 다했으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였지만, 그곳에는 조국도 당도 가족도 없었다.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넘었지만, 그곳에는 또다른 지옥이 펼쳐졌다.

 

"조선말을 쓰는 사람이 더 무섭다."

 

지린성 연변그곳에서 조선말을 쓰는 이들이(북한사람 혹은 조선족, 탈북남성들도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에 나섰다. 배고픔은 그 누구라도 악마를 만들어낸다) 기차역에서 여자들을 기다린다. 같은 말을 쓴다는 이유로 넘어간 북한 여성들은 그렇게 인신매매의 덫에 걸리게 된다. 순박한 탈북남성들도 여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68316244.1.edit.jpg

출처 -동아일보




김씨 아저씨는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지금 당장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에 부쳤다. 가족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니, 눈에 들어는 왔지만 그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지린성의 버려진 민가에서 감자를 씹으며 김씨 아저씨는 이제까지의 상황을 정리했다고 한다.

 



하나, 지금 조선은 국가로서의 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 자신의 숙청에는 모종의 정치적인 사인이 있었다.

(중국에서의 활동상황까지 다 나왔다는 건 이제껏 활동한 중국에서의 동료들 

아니, '목줄'이 자신의 덫이 됐다는 정황증거였다).


, 장인과 가족들은 살아있다.

(단순한 감이 아니라,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증거였다

자신을 살려 둘 이유가 없다면 죽였어도 벌써 죽였다.

이제껏 살려 뒀다는 건 가족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 자신의 탈출이 가족들을 위협할 순 있어도 생존까지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다섯, 체력을 회복하고, 몸을 예전으로 돌려놔야 한다.


여섯, 이제까지의 중국에서의 선(: 중국활동 당시의 정보원, 연결책 등등)모두 폐기처분한다.


일곱, 돈을 벌어야 한다.



 


김씨 아저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다. 돈을 벌어야지 가족들에 대한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생각이 정리되니 선택지가 나왔다. 최단시간 안에 자신의 몸을 만들고, 돈을 벌어야 한다. 다행이라면 그때까지 정신만은 명료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첫째, 중국 공안의 활동이나 규제가 그리 빡빡한 건 아니었다. 물론, 탈북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겠지만 중국에서 활동했던 김씨 아저씨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 몸이 아프긴 했지만 이동에 불편을 주는 상황은 아니었다.

 

셋째, 조선족 행세를 할 수 있는(중국인 행세까지는 모르겠다) 중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북한에서 자신의 탈출을 인지 못했다는 정황증거가 있다. (지린성에 있는 모처의 움직임이 평소와 같았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한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수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국가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섯째, 나무를 숨기는 가장 좋은 곳은 숲. 그 숲에 대한 지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jpg

 


김씨 아저씨가 처음 한 일은 '도둑질'이었다. 우선 먹고, 입고, 몸을 추슬러야 했다먹을 걸 훔쳤고, 기운을 찾은 뒤에 씻었다. 영하 10도를 넘어서는 와중에 개울가에 가 몸을 씻었다. 그런 뒤에 옷을 훔쳤다고 한다.

 

"아무리 씻고, 옷을 차려입어도 딱 봐도 조선 사람인 게 티가 났지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훔치고, 씻었던 이유는 최소한 '지금 갓 탈출한 북한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조심했던 건 역 주위를 배회하며 여자들을 납치하는 조선남자들이었다. 그들 중 보위부 소속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꼬리가 밟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막상 부딪쳐 보니 제약이 많았다시골에서 겨울을 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목이 너무 많았다. 결국 창춘으로 향했다.

 

창춘에서의 생활. 그는 빨리 지린성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지린성 어디를 가도 조선말이 다 통하는 곳이기에 은신하기에 편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기 어려웠다. 아울러 공안들과 북한의 색출조들과 맞닥뜨릴 확률이 높았다.

 

처음엔 베이징을 생각했지만, 이 역시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남한으로 갈 생각이 아니라면 베이징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활동했던 영역이기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다.

 

그해 겨울 지린성에서 김씨 아저씨는 조선족 행세를 하면서 날품팔이를 했다. 닭도 잡았고, 자전거 배달도 했다. 몇 번인가 트럭 운전을 했지만 조폭들과의 충돌 때문에 트럭 운전은 포기했다고 한다. 운전을 하기에는 아저씨가 가진 약점이 너무 많았다. 그는 중국인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착실히 몸을 만들고 (옥수수와 두부 으깬 깻묵 같은 걸 있는 대로 다 먹었다. 걸신들린 듯 먹었다. 아니, 우겨넣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일단 뱃속에 집어넣고 봐야했다. 몸을 만들어야 했다) 정보를 취합했고 돈을 모았다.

 


4bab638ccc287.jpg

 



그가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에 대한 패배를 선언한 건 한국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장백산(백두산)을 가겠다고 혹은 하얼빈을 가겠다고, 아니면 북한을 보겠다고(온성, 함경북도 온성에서 지린성 투먼 사이를 잇는 두만강 철교가 있다한국 관광객들과 방송사들이 수시로 지린성을 찾았다.

 

북은 살겠다고 두만강을 넘어 지린성으로 왔고, 남은 그런 북한을 보겠다고 지린성을 찾아왔다.

 



 









P작가


편집 : 독구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