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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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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화창하고 따스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면 의례 그러듯이 나는 반팔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채 낡은 캠핑용 의자를 둘러메고 몇 블럭 떨어져 있지 않은 공원으로 향했다. 너른 길은 언제나처럼 한적했고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공원 한 가운데에는 채 10미터 높이도 되지 않을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잔디는 엉망이었지만 주변의 나무가 잘 자라 꽤 운치가 있어서 나는 이 곳을 희망봉이라고 부르곤 했다. 볕이 잘 드는 나무 사이에 의자를 펴고 기대 앉자 몸과 마음이 나른해졌다. 녹이 슬어 삐거덕거리긴 했지만 가볍지 않은 몸을 잘 받쳐온 오랜 친구 같은 녀석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작은 백팩을 열고 직접 담근 과일주 한 병과 약간의 견과류, 그리고 낡은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잠들 것이 뻔하지만 그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 저녁 무렵 서늘해 질 때까지 내쳐 자다가 주섬주섬 의자를 챙겨 들어가면 그만이다. 열 번도 더 읽은 소설책의 역할이란 어차피 그 이상이기 어려우니.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앙칼진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잠에서 깼다.

 


"이리 와. 그 사람 근처에 가지 마!"


 

술기운과 잠으로 멍해진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돌려보자 옆에 한 소녀가 물끄러미 서 있었다. 열 서너살쯤 되었을까, 깨끗한 단발머리에 누구나처럼 검은 바지와 긴 흰 셔츠를 입었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여자가 언덕 밑에서 다시 소리쳤다.

 


"얼른 오라니까!"


 

아이는 마지못해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나는 잠결에 일종의 착시를 경험했던 것 같다. 소녀가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던 것이다. 착시가 아니었다면 파리나 벌 같은 것이 그 애의 눈에 내려 앉았으리라. 저렇게 평범한 소녀가 내 곁에 가까이 온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개인적인 호감을 표현한다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우피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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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칭이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오래 전의 '히피' 같은 말에서 엮여져 나왔으리라. 이 히피라는 종족은 20세기 중반에 산업과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자연상태 그대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물론 오래 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책에서 얼핏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히피와 우피, 혹은 나는 분명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며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는 점이나, 그래서인지 자유시간이 무척 많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이상한 복장과 긴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옛날 히피들은 일종의 화학 약품을 먹고 환각을 체험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밖에 나와 햇살과 바람, 동식물에 함부로 몸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런 행동들이 실은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고 믿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물론 그들은 틀렸고 나는 옳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아마 소녀의 어머니일 여자는 불안한 듯 팔짱을 끼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서 무엇인가 더럽고 위험한 것이 옮지 않았을지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나오지를 말았어야지,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이유까지는 없었다. 나는 애써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책을 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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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산지 오래 됐기 때문에 이제 기억하기 쉽지 않다. 20? 아니, 40년 쯤은 되었을 것이다.

 

약이 처음 개발됐을 때 세상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정말 그것을 만들어 낼 거라고는 감히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이라고 칭송했고 실제로도 거의 그랬다. 지금은 없어진 한 유명 시사 주간지는 '과학이 존재했던 이유가 충족되다'라는 찬사까지 바칠 정도였다.

 

유전공학으로 합성된 그 물질은 면역질환 치료약을 만들던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심각한 면역체계 교란을 겪고 있던 흰쥐에게 이 약물을 투여했지만 병은 그리 호전되지 않았고, 그 쥐가 들어있던 중요하지 않은 케이지는 많은 실험용 동물들이 수용된 자동 축사의 한 구석에 방치되듯 놓여졌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이내 그것이 왜 거기에 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바뀌되면서도 그들은 이 작은 동물에 대해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다. 기계는 자동으로 물과 사료를 공급했고, 컴퓨터는 습관적으로 바이탈 사인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 상황을 처음 눈치챈 사람은 연구소에 갓 들어온 젊은 과학자였다. 컴퓨터 시스템을 교체하며 동물들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수명이 2년 밖에 되지 않는 흰쥐 한 마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전히 면역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쥐는 조금도 노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곧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고, 이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마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불로불사의 약은 순전한 우연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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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십만 달러의 고가에 팔리던 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과 인도를 시작으로 저렴한 복제품들이 등장했고, 약이 가진 효능과 의미 때문에 이내 모든 사람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단 한번의 접종만으로 노화를 멈추는 유전자 변형을 일으켰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도 필요 없었다.

 

늙고 병든 자들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만성병 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집과 차를 판 돈으로 주사를 맞았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와 노화의 위협이 드디어 제거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기뻐 날뛰었고, 세계 곳곳에서 축제와 파티가 줄을 이었다. 그렇게 인류는 영원한 삶과 젊음을 함께 얻었던 것이다.

 

부작용이 보고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주사를 맞은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의 결벽증과 대인기피증 등 이상 심리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동안 무한한 행복감과 파티의 즐거움에 빠져 살던 그들은 이제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지도 않으려 했고, 모든 것에 극도의 조심성과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들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변해갔기 때문에 약의 부작용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른들은 일터에 가지 않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사회 시스템은 조금씩 붕괴되어 갔고, 산업도 사라져서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와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한 약의 제조와 공급을 위한 시설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도시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제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없다.

 

"우리 부모님도 그래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어요

엄마는 위험한 밖에서 돌아다니면 절대 안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잠이 든 모습을 보고는 병이라도 걸리실까봐 깨워 드리려고 했어요

저도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야하지 않았다면 이 공원을 지나다닐 일은 없었을 거에요."

 


소냐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 가 미소를 지었다. 친절함과 상냥함을 타고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그래. 요즘은 누구나 그렇지."

 

"그래서 약의 부작용이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퍼진 건가요?"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나왔다.


 

"이 이야기를 네가 이해할지 모르겠구나

너는 아직 주사를 맞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지?"

 

"네. 신체 발육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맞게 되니까요

아니면 어린 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하죠."

 

"나도 안단다

소냐, 노인을 본 적은 있니?"

 

"책에서만요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본 건 할아버지가 처음이에요."

 

"그래."

 


나는 과일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주사가 나왔을 때 노인들은 잘 맞지 않았지

늙고 아픈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악몽일 수도 있으니까

그들은 이제 대부분 죽었단다

젊은 사람들은 그때 다들 주사를 맞았으니 더 이상 늙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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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할아버지도 주사를 안맞아서 나이가 드신 거군요

그래서 우피가 되신 거고요."

 

"그렇단다."


 

소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늙는 게 좋아요? 죽는 게 무섭지 않고요

다들 우피가 미쳤다고 해요

늙어 죽는 걸 원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게 됐고 우리에게 병을 옮길 거래요."

 

"나도 늙는 게 싫단다. 죽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그보다 부작용에 빠지는 게 더 싫었던 거야

방에 갇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어."

 


나는 잠깐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지금 나와 보니까 어떠니. 정말 바깥이 그렇게 위험한 것 같니

이 햇볕이, 바람이, 맑은 공기가, 푸른 나무와 풀벌레가 무섭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그래. 난 이런 것들을 즐기며 살고 싶었을 뿐이야."

 


소냐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물었다.


 

"그런데 이상해요

늙지도 죽지도 않은 약을 발명할 정도였는데 그 부작용을 해결할 약을 못 만들어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음, 어떤 사람들은 그 증세를 연구하고 그럴듯한 약을 내놓았지

그 전부터 있던 다양한 정신질환 치료제들도 사용됐고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단다."

 

"약이 충분히 좋지 않아서 그랬나요?"

 

"그런 게 아니었어. 애당초 약으로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야."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해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사를 맞을 것이고, 그러면 그 증상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pro memoria, 진실은 기억되어야 하기에.


 

"소냐

불로불사의 약은 유전자를 변형해서 우리 몸의 노화를 영구히 멈춰 주지

그래서 모두 환호했고 기꺼이 그 주사를 맞았어

하지만 그런 후에 그들은 깨달았단다

늙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 곧 죽음을 온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야.

 

생각해 보렴

사람은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야

병으로 죽고, 전쟁이나 범죄로 서로 죽이고, 비행기나 자동차, 짐승의 공격... 

그 밖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사고로 죽어 왔단다

그랬던 것이 저 주사를 맞고 나서는 

이제 병만 걸리지 않으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위험한 짓을 벌이지만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거지.”

 

"네... 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들어 보렴

예전에 우리 인간에게는 용기라는 게 있었지

지금과는 달리 때로는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덤벼들곤 했단다

자기가 믿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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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럼 더 무서워해야 하지 않아요?"

 


나는 의자에서 백팩에서 담요를 꺼내 다리에 덮었다. 저물어가는 해가 노쇠해 가는 몸을 차갑게 식히기 시작했다.


 

"실은 그 반대란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조금 앞당길지도 모를 위험에도 덤벼들 수 있었던 거야."

 

"그럼 그 부작용이란 건..."

 

"맞아

그건 약이 만들어낸 화학적인 영향이 아니었어

영생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조건에 지불해야만 하는 댓가였던 거지

다들 어렵사리 얻은 영원한 삶의 기회를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혹시 병을 옮길지도 다른 인간과 생물들로부터 멀리 도망갔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바깥 세상으로부터 꽁꽁 숨어 버렸어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 따위는 상상도 못하게 됐지

결국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 만 거란다."

 

어린 아이에게 괜한 소리를 한게 아닌가, 나는 약간의 후회 속에서 소냐의 반응을 살폈다. 소냐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땅바닥에 한 동안 낙서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죠?"

 


그래. 죽으면 어떻게 되던가. 오랜 세월 인류 문명과 문화를 사로잡았던, 하지만 이제 아무도 묻지 않게 된 그 질문.


 

"아무도 모른단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도 있고, 뭔가 다른게 펼쳐진다는 사람도 있지."

 

"죽어보지 않으면 모르겠네요. 그죠?"

 

"...그렇겠지."

 


소냐가 나뭇가지를 버리고 일어섰다.


 

"저 이제 가 봐야 해요.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이거든요

언제 또 나가실지 알 수 없으니 언제 다시 할아버지를 보러 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영영 못 올 수도 있고요."

 

"그래. 안다."

 

"저는 주사를 맞게 될 거에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옳았기를 바랄게요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르지만
바깥 세상은 무섭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우피는 미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자기 뜻과 믿음대로 사는 것 뿐이에요."

"그래. 고맙구나. 잘 가렴."

 


소냐는 전처럼 종종걸음으로 희망봉을 내려갔다. 돌아보며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그 의미 모를 윙크를 다시 한번 보내고 가는 것도 있지 않았다. 아마 다시는 저 아이를 보지 못하겠지.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등받이에 몸을 깊숙히 기대었다. 자기 뜻과 믿음대로 사는 사람이라. 글쎄.

 

만약 내가 오래 전 그날 그 쥐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보다 더 강렬했던 부와 명예의 욕망 속에서 그 약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늘 그랬듯이, 다들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나중의 고민으로 미뤄두고 하루하루를 바삐 살았겠지. 때로 지루하고 노곤한 일상이었겠지만 그 속의 소소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언젠가 떠날 날이 오면 모든 걸 내려놓을 줄도 알았을 테지. 그런데 영생을 얻은 지금은 오히려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며 산다. 전보다 훨씬 적어진 죽음의 위험에 대한 경계와 저항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가끔 의문이 생긴다. 나는 인류에게서 죽음을 제거한 구원자일까, 아니면 인류 전체를 영원한 영육(靈肉)의 무덤 속에 가둬 버린 악마일까?

 

소냐의 말처럼 머잖아 죽고 나면 그 의문의 답을 얻게 될까.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그런 일을 벌인 내게 영생의 자격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안식과 거대한 무책임의 형벌 중 하나를 얻게 될 죽음의 날을 나만은 피해 갈 수 없다.

 

냉기에 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제 들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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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시간에 해설이 이어집니다.

 


 

 





 


<공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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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가 책으로 나왔다는 말씀 아직 못드렸죠열흘쯤 전에 이렇게 나왔구요보다시피 아주 예쁩니다내부에 사진과 일러스트도 많고, 읽기 좋은 책이랍니다. 11일 현재 알라딘 과학 분야 12위를 기록 중이에요.

 

그래서 출간기념으로 알라딘과 함께 북 콘서트 '과학으로 사람되자'를 개최한답니다


12 19일 금요일 저녁 8, 당연히 벙커 1입니다. 


많이들 오셔서 기기묘묘한 과학 썰과 함께 해 주시라는.

 

책도 팔고 싸인 머 그런 거는 덤저희 벙커를 위해 커피 한 잔씩 드셔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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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코롬





딴지마켓에서 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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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