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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2. 금요일

필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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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남의 게임만들기 (1)

육아휴직남의 게임만들기 (2)

육아휴직남의 게임만들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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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즈 스토어 기준 인기 상위권 게임





33.


미팅을 요청한 퍼블리셔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길 건너에 있었다. 익숙한 길을 걸어가다, 나는 길을 건넜다. 나에게 미팅 요청을 한 담당자는 약속 시간 10분이 지나서 나타났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회의실로 향했다.



34.


미팅은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이날 미팅에서 나에게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두 가지 있었는데, 간단히 적어보겠다. 첫 번째로, 담당자분은 아직 게임을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프로모션 동영상과 게임 소개서만 보고 미팅 연락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소개서 내용을 설명해드리는 동안, 귀로는 얘기를 들으며 손으로는 게임을 진행하셨다. 워낙 바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바빠서 못 할 일이라는 건 없다. 미팅 시간은 요청을 주신 후 워킹데이 기준으로 이틀 뒤였다. 심지어 거절 메일만 보내온 퍼블리셔도 내 게임을 한 시간 이상 플레이하신 경우도 있었는데... 굳이 내가 설명을 하는 회의 시간에 동시에 게임 플레이를 진행했어야 하는 것일까? 만약 내가 그 담당자였다면,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람의 입장은 모두 다른 법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습이 미팅 내용과 무관하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미리 게임을 충분히 플레이하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셨던 카카오 게임 담당자분과 대조적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두 번째로는, 퍼블리싱에 대한 조건이었다. 담당자분이 얘기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사무실 임대 및 추가 인원 고용 등으로 회사를 키울 것이 계약 조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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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35.


1인 개발은 힘들다. 정말 힘들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한번 지금까지 했던 일을 돌이켜볼까? 몬스터 기획, 스테이지 구성, 스테이지 레벨 디자인, 스킬 및 전투 설계, 전투 화면 구성, 전투 밸런스 맞추기, 클라이언트 UI 기획, 서버 설계, 서버 보안 세팅, DB 구축, 로그 서버 구축, 클라이언트 각종 연출 구현, 서버에서의 전투 검증 로직, 법인 설립, 세금 어떻게 내는지 알아보기, 세금 납부, 똥 기저귀 갈아주기, 외주 알아보기, 외주 계약서 만들기, 외주 관리, 외주 미팅, 외주 발주서 쓰기, 서버와 클라이언트 통신 보안 처리, Cocos 2dx의 뜬금없는 버그 처리, 안드로이드와 IOS에서 튀어나오는 버그 처리, 인 앱 결제 구현, 푸쉬 알림 구현, 홈페이지 만들기, 약관 만들기, 카카오톡 붙이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테스트하기. 진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쭉 적어본 것인데 적다 보니 갑자기 오한이. 솔직히 말하자면, 저 많은 일 중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훨씬 많긴 했다. 하지만 하다 보면 당연히 "이건 누가 좀 해주면 안 되나 아 진짜..." 뭐 그런 일도 많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고용하고, 내가 하는 일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히 정말 바람직하다. 할 수만 있다면 왜 안 그러고 싶겠나.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우리는 사무실 없이 신혼집(*-_-*)에서 작업하고 있고, 근로자가 없는 대표 단독 법인이다. (저는 공식적으로 무직 상태입니다) 이 상황에서 1인이라도 고용을 하게 된다면 당장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사무실을 구축해야 하며, 그 외에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부터는 우리는 우리가 고용한 사람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저 퍼블리셔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가?







36.


아내와 나는 의견이 종종 엇갈리기도 했지만, 이 지점에서의 의견은 서로 완벽히 합치했다.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투자를 받게 되면, 더는 내가 만드는 것은 인디 게임 Independent이 아니게 된다. 투자받은 돈을 쓰는 순간 결정권은 더는 나에게 있지 않다. 돈을 낸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프로젝트를 수정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돈을 냈으니만큼, 자기 입맛대로 게임을 디렉트할 권리가 있다. 세상 대부분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것이 싫다면, 돈을 낸 사람을 설득해야 할 일이다. 남의 돈을 썼다면 그 정도의 노력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예전에도 얘기했듯,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냥 잠깐 생각해봐도, 보나 마나 전형적인 개발자답게 퍼블리셔와 대판 싸우고 계약이고 뭐고 다 엎어버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 내 게임은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퍼블리셔가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그 요구를 철회하게끔 내가 설득을 하지 못한다면, 내가 받은 돈은 족쇄로 변해 나를 옭아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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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다면 왜 퍼블리셔를 구하려 했느냐고 질문하실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냥, 내가 알기에는 수많은 퍼블리셔가 있는 만큼 성향 역시 천차만별이라고 들었다. 개중에는 게임의 방향성 등을 충분히 존중하여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개발의 주 흐름을 게임사에 일임하며 마케팅에 최선을 다해주는 퍼블리셔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미팅한 퍼블리셔는 왠지 그런 퍼블리셔는 아닐 것 같았다. 당장 조금 전에도 경험하였지 않은가? 내 게임을 한번 해보지도 않고 미팅을 신청한 선택을. 결론은 그렇다. 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냥 재밌는 인디 게임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 회사가 커지고, 회사 가치가 높아지고, 내가 소유한 지분이 얼마가 되고, 상장하고... 솔직히 나는 이런 건 관심 없다. 그냥 내 게임을 많은 사람이 재밌게 하면서 게임을 업데이트할 수 있고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돈 정도 벌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었을 뿐이다.



37.


결국, 우리는 퍼블리셔가 요청을 하더라도 계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 걸로 봐서 우리의 이 고민은 "아이고 의미 없다." ^^;

아무튼, 퍼블리셔를 배제하고 나니 가야 할 길은 더욱 명확해졌다. 게임 출시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진행하기에 난감한 부분은 바로 CBT, 즉 클로즈베타 테스트였다. 나는 CBT는 반드시 해봤으면 했다. 내가 만든 서버-클라이언트-DB 구조는 예전 회사에 다닐 때 사용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라이브 테스트는 꼭 필요했다. 그리고 QA를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굉장한 불안감이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든 테스트와 아내와 나의 지인들에게 맡긴 최소한의 테스트 진행은 있었지만,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프로그래머라면 다들 공감하실 것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언제나 버그는 있다."

죄송한 얘기지만 클로즈베타 테스터분들이, 이러한 일종의 QA 역할도 해주셨으면 했다. 아무튼, 우리는 마케팅비로 어느 정도 예산을 책정해놓았긴 했으나, 클로즈베타 테스터까지 모집할 돈은 없었다. 이걸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우리는 공짜로 클로즈베타를 진행해주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바로 "네이버 앱스토어 베타존"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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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대부분 회사 및 단체, 인물을 이 글에서 익명으로 쓰고 있지만, 이 "네이버 앱스토어 베타존"만큼은 실명으로 기재하겠다.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약간의 홍보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 "네이버 앱스토어 베타존"은, 말 그대로 네이버 앱스토어에서 베타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좋은 서비스다. 베타테스터 고객을 위해 네이버에서 100만 원어치의 네이버 마일리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리고 베타테스트를 진행하면, 네이버 메인의 게임 카테고리에서 1~2일 정도 무료로 노출해준다. 너무나도 좋은 서비스였기 때문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입점이 확정되었고, 검수를 거쳐 베타테스트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을 스토어에 등록하고, 2시간 후. 그동안 퍼블리셔나 테스트를 위해 부탁한 내 지인만 접속하던 게임에 내가 모르는 유저들이 접속하기 시작했다.



39.


내가 만든 게임은, 다음 세 문장으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꿈을 꾸고 있어요.

언제부터 꾼 걸까요?

언제 깰까요?"


1부에도 간단히 썼지만, 다시 옛날 얘기를 해보자. 나는 왜 게임 개발자의 길을 택했을까? 중학교 때 나는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PC 통신 천리안에서,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게임 제작 동호회에 가입해 있었다. 당시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던 GW-BASIC으로, 그래도 나름대로 완결성이 있는 게임을 세 개나 만들어 자료실에 올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올린 게임은 그럭저럭 반응이 괜찮았다. 팬메일도 무려 열 통이 넘게(!) 받았고, 자기와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참고로 그 게임의 제목은 "구름의 눈물" 손발이 오그라든다. 아무튼, 내가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그런 거였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만들어낸 조잡한 세계를 플레이하면서 "재밌다"고 말해주는 것. 게임이라는 매체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타자와 소통하는 것. 중2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중3짜리 소년이던 나는 그게 너무나 좋았고, 그렇게 내 인생을 게임 개발자라는 길로 보냈다. 그리고 클로즈베타를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내가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를 새삼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게임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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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클로즈베타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우리를 지지해주는 유저분들이다. 게임을 만든 사람은, 유저가 자기 게임을 플레이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법이다. 그런데 게임 플레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유저가 있다면, 그 고마움은 정말 말로 표현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카페를 개설한 이후, 미처 가이드를 올리기도 전에 올라온 유저분의 팁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한 대로, 혹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게임을 잘 플레이해주시는 분들. 응원글 및 덧글로 우리 부부를 응원해주시고, 개선되었으면 하는 사항들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주시는 고마운 분들. 우리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클로즈베타를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다.

두 번째는 정말 많은 버그의 개선이다. 나름대로 그래도 테스트를 많이 진행했기에, 어느 정도 버그는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클로즈베타를 하고 많은 유저분들이 다양하게 게임을 하다 보니, 역시나 수많은 버그가 발견되었다. 개중에는 사소한 버그도 있었고, 이대로 출시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의 버그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투기장에서 꼴찌를 하면 튕기는 버그였다. 나와 와이프는 나름대로 테스트용 아이디로 100번 이상 투기장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그 와중에도 우리는 승부 근성을 발휘한 나머지 단 한 번도 꼴찌를 한 적이 없었다. "꼴찌를 한 것도 서러운데 튕겨야 한다니..." 이런 댓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건... 정말 대단히 죄송했다. 아무튼, 이러한 버그들을 대부분 수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클로즈베타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카페 및 설문 조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버그를 알려주신 유저분들의 덕이 가장 컸다. 클로즈베타를 하면서, 우리가 구할 수 없었던 QA 역할을 대신 해주신 테스터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게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아주 많은 분이 게임에 접속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을 설치한 사람 중 30%가 넘는 분들이 게임을 제법 플레이해야 하는 설문 구간까지 플레이를 진행해 주셨다. (물론 마일리지의 힘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저분들 중, 98%에 달하는 분들이 게임이 출시되면 해보고 싶다는 응답을 주셨다. 게임이 재미있고 기대된다는 반응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그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마치 클로즈베타를 통해,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정말 클로즈베타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네이버 앱스토어 베타존"을 선택한 것은 이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클로즈베타를 무사히 마친 우리는, 이제 런칭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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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발사



41.


지금 글을 쓰는 이 시점은 2014년 12월 12일 새벽이다. 아내와 아기는 자고 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시간은 대체로 사랑스러운 두 가족이 잘 때다. 아기는 정말 잘 때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같다. 물론 깨어 있을 때도 사랑스럽지만. (아내가 아기를 잘 못 봐주는 나에게 약간 화가 나서 "아들이 그냥 아주 종일 자면 좋겠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 하루에 3시간 정도만 깨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제, 게임은 카카오톡 검수를 모두 통과하고, 애플 검수를 기다리고 있다. (애플 검수에 통과한다면 안드로이드와 IOS 동시 출시를 하겠지만, 실패한다면 안드로이드를 일단 먼저 출시하게 되겠지. 왠지 애플 검수는 실패할 것 같아서) 어찌 되었든, 아마도 열흘 안에 게임은 출시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기를 키우며, 아내와 같이 만든 이 게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조만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잘 될지, 잘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확률적으로는 잘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회사에 취직해야 할 것이고, 다시 팀에 속해 열심히 게임을 만들며,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게임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그리고 올라가는 전세금과 커가는 아이 등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겠지.

그렇지만 한 번쯤은 꿈을 꾸어보고 싶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나는 그렇다. 아기를 키우며 아내와 함께 아웅다웅하며 게임을 만들어온 이 시간. 삶을 살면서, 한 번만이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지나올 수 있다면. 남김없이 나 자신을 던져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한 번만이라도 살아볼 수 있다면. 그런 꿈을 꾸는 찬란한 시간을 한번만이라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일이 아닌가.

 


42.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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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입니다!








필리온


편집: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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