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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추천1 비추천0

2014. 12. 18. 목요일

리뷰불패 홍준호






편집부 주


이 글은 뷰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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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 트 >


감독: 부지영
주연: 구로동 샤론 스톤, <숨바꼭질>의 그 집도둑, 임시완 어머니, 황정민(정청 말고), 한공주, 주영작, 

         으르렁, 안경이 네 단점을 잘 커버해 주네, <막돼먹은 영애씨> 그 이승준
음악: 이지수
촬영: 김우형, 윤영수, 이형빈 

12세 관람가 / Color / 104분






< 카 트 > 그리고 인간의 조건




(*주의* 스포일러 있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여러 명 모여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진다. 흔히 공감을 형성하는 대화와 경쟁하는 대화로 나뉘는데, 후자의 대화에서 흔히 나오는 테마 중 하나는 바로 '누가 더 고생하며 살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원래 다들 그러긴 한다. 결국, 이런 유의 대화가 '누가 더 밑바닥에서 살고 있나'를 최종적으로 가리며 끝이 나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밑바닥에 살고 있음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대접을 받으면 화를 낸다. 자신도 누군가에 비하면 위에 있어야 한다는 증명을 받길 원한다. 가진 자들의 전유물 같았던 '서비스업'은 그 틈새를 노려 하나의 산업으로서 정착했다. 그쪽의 종사자들이 존재하는 덕에 스스로 밑바닥에 있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한탄하던 사람들은 잠시나마 자신을 상전으로 대접해 주는 이들이 존재함을,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그 순간만큼은 더이상 자학의 장을 펼칠 필요가 없음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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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영 감독의 신작인 <카트>는 2007년에 발생했던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를 벌였던 실화를 원작 삼은 작품이다. 대형 마트의 직원들, 그러니까 청소부, 캐셔 등의 서비스업 종사자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서 마트에 자신을 바쳐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작품은 세 번째 장편이지만, 동시에 첫 번째 장편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장편이라 표현한 이유는 '첫 메인 스트림 진출작'이기 때문이다. 비록 제작비 펀딩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완성할 수 있었지만, 소규모로 개봉됐던 이전 두 작품과 달리 명필름이라는 유명 제작사와 많은 개봉관을 받았다. 소재로 보자면 결코 한국에서 많은 호응을 얻(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할 텐데 어떻게 나름 안정적인 개봉에 이르렀을까. 이는 심재명과 더불어 명필름의 공동 대표직을 맡은 이은이 과거에 영화제작집단인 '장산곶매'의 일원이었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장산곶매는 노동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유명한 일화와 의의를 많이 남겼던 <파업전야>를 제작했으며, 이은 대표는 그 작품의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작품의 개봉에 앞서 JTBC 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 룸> 에서 진행자 손석희와의 인터뷰를 위해 주연배우 염정아와 더불어 심재명 대표가 출연했었으니, 이 작품의 제작에는 분명 감독 외에도 기획사 나름의 의지가 있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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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 프로그램인 손석희의 <뉴스룸>에 출연한 심재명 대표와 배우 염정아

(출처: JTBC)



<카트>의 도입부는 산뜻하다. 최근 한국영화를 감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던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큰 부분은 작품의 제목이 뜨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다. 영화에서 오프닝 시퀀스, 특히 그중에서도 제목이 드러나는 부분의 묘사는 중요하다. 작품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가장 축약된 형태로 먼저 관객에게 제시할 수 있어서다. 과거 작품들을 생각하면 많이 발전하고 안정된 편이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에서 작품의 제목만큼은 검은 바탕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작 중에서는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가 그랬다.) 사실 단순히 검은 바탕에 제목이 뜨는 방식도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라면 하나의 연출로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한국영화에 이런 연출 방식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꼈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정확히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이 영화 속에서 제목을 노출할 때,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는 듯해 보이는 경우가 참 많다. 


<카트>는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제목을 노출한다. 등장인물들이 아침 일찍 마트에 출근해 영업을 준비할 때, 가지런히 동일한 모양과 형태로 배치된 카트들 위로 <카트>가 뜬다. 한국영화에서 작품 속에, 혹은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가는 타이틀 시퀀스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가지런히 정렬된 카트를 등장인물들에게 대입시키며, 잠시동안 이들이 회사에 가지는 맹목적 의지와 충성심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는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그 속에서 염정아가 연기하는 선희와 문정희가 연기하는 혜미. 그러니까 남편 없이 가정을 이끌어 가는 두 여인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카트처럼 묵묵히 일만 했으며, 그렇게 하면 정규직 자리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만다. 캐셔를 했든 청소를 했든 상관없이 모두가 마트 측의 단독결정으로 인해 해고당한 것이다. 카트는 묵묵하게 일만 한 그들에 대한 형상화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항의를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회사를 보며, 혜미와 선희, 그리고 김영애가 연기하는 순례가 주축이 되어 노조가 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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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이야기하면서 <파업전야>도 함께 언급된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의 반영일지 모른다. 1990년에 개봉된 <파업전야>로부터 사회적 여건이 딱히 더 나아지지 않아서다. 그리고 <파업전야>가 보여준 영화적 성취는 노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서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편견이 없는 사람들마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명료했다. 그리고 저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력으로 삼기 위해 투입했던 장르적 긴장감은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업전야>가 뛰어났던 부분은 등급심의를 거부하고 대학교와 강당을 돌아다니며 관객들이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당시 전경들과 헬기, 페퍼포그를 동원하며 작품 상영을 막으려 했(으나 본의 아니게 되려 작품 홍보에 도움을 주었)던 노태우 정부의 '적극적인 서포트'가 큰 역할을 했겠지만 이건 정말 유일무이했다. 후에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모두 장산곶매의 <파업전야>에 빚을 지고 있다. 동시에 그 작품만큼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흔히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감흥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아마 많은 작품이 1990년에 개봉한 <파업전야> 속 상황을 동어반복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작품 탓이기도 하고, 바뀌지 않는 시대의 무기력함 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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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장동홍, 장윤현 감독의 <파업전야>



 <카트> 역시 <파업전야>를 극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영리하게 그 작품의 적자가 되고자 노력한다. 특히 김강우가 연기하는 마트 측의 간부, 동진의 상황을 작품 속에 도입한 부분은 참신하다. 작품은 동진이란 인물을 밉살맞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마트 관계자 중에서 청소부들과 캐셔들을 가장 살뜰하게 챙기고, 그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인 동진 역시 구조조정을 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혼자 비정규직 노조들을 찾아간다. <카트>는 상생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이 시대였기에 논의될 가능성이 있는 화두를 하나 던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촬영되고 있을 때는 현 정부의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 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상황을 예견하고 대안을 제시한 셈이 아닐까? 노조라는 조직이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비정규직만의 리그라고 생각하는 점이 클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정규직의 경우, 자신들이 평생 밥통을 쥐고 있으리라 생각하거나 혹은 그 현실을 외면하려 드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회사의 입장에선 그들도 수틀리면 당연히 해고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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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 작품의 힘은 '남 일이 아니다'란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한 부분에서 나온다. '비정규직 캐셔'인 선희, 혜미, 복순, 미진. 그리고 '청소부'인 순례, '정규직'인 동진의 예가 그렇고, 또 선희의 아들인 태영(아이돌 그룹 엑소에서 '디오'로 활동하고 있는 도경수가 연기한다. 그는 <카트> 제작을 위한 모금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의 이야기를 굉장히 적절하게 끼워 넣는다.
 
<카트>가 소위 '밀어주고 있는' 대사는 선희가 말하는 "회사가 잘 되면 저희도 잘될 줄 알았습니다." 이다. 혹은 순례의 대사인 "내 청소밥 20년에 악 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볼란다." 에서 작품이 주제의식을 전달하려 들런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카트>에서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많이 남고, 또 마음을 가장 많이 강타하는 대사는 도경수가 연기하는 태영의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유통기한 지난 건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김영애나 염정아보다도 유독 도경수 연기하는 태영이 눈물이 맺힌 채 외치는 이 대사가 가슴 쓰리게 다가왔다. 작품의 흐름에서 절반 정도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위치를 취하는 태영은 집 살림이 팍팍한 관계로 급식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며, 수학여행도 못 갈 처지에 이른 고등학생이다. 결국, 선희 몰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이로써 작품의 이야기는 한동안 둘로 나뉜다. 마트 노조의 투쟁기와 태영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이야기. 미성년자인 점을 숨기고 일을 하던 태영은 결국 아르바이트를 좋지 않게 끝내게 되는데, 악독한 업주에 의해 비용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구타까지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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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지난 건 먹어도 된다는 대사는 태영이 업주에게 대항하는 논리 중 하나다. 한국에서 노조의 역사는 그 어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논리를 들이대도 빨갱이라는 마법의 단어, 혹은 기업이 잘 되어야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사상의 주입을 능가하지 못한다. 전혀 설득을 시키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에 관한 <카트>의 대처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부각하는 것이다. 먹을 거. 살면서 사람이 가장 모멸감을 느낄 때 중 하나가 바로 먹거리로 곤란함을 겪을 때다. 그래서 태영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영이란 인물의 인상적인 점은 작품 속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는 행위를, 지극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팔리지 않은 음식을 폐기할 때는 보통 대형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러니 당장 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먹으면 탈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편의점 음식이 또 맛이 꽤 괜찮지. 하지만 그 음식의 부패상태나 맛에 상관없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식사든 간식이든 위장을 채우기 위해 먹는다.'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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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에는 두 가지 음식의 모티브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하나는 국밥이고, 다른 하나가 위에서 태영이 언급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국밥집은 마트로부터 해고당한 직원들이 모임을 가지려고 애용하는 장소이며 이후 여기서 노조가 결성된다. 태영과 선희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한 후에 화해하는 장소 역시 국밥집이다. 태영은 여기서 따끈한 국밥을 먹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한다. 국밥은 흔히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서민' 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 대부분이 국밥을 좋아하기는커녕 살면서 그 맛에 반해 먹으러 갈 일도 거의 없으리라 보는데, 사실 그런 점에서 국밥의 모티브는 의미하는 바가 너무 뻔히 보여 다소 도식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뭐, 하지만 어느 한 분으로 인해 국밥이 나라 말아먹기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 된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이 음식에 부여하는 의미가 지극히 건전한지라 마냥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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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먹방의 최강자는 이명박인데 그 사진을 쓰기 싫어 기어이 국밥이 등장한 시퀀스를 찾아냈다.



결국, 빛을 발하는 음식의 모티브는 태영의 대사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동시에 팔리지 못한 재고이며 폐기처분이 된다. 그 음식을 먹는 것은 개인의 의사이지만, 일단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음식을 식사의 대체재로 주는 행위. (태영은 집에 와서도 선희가 차려주는 밥을 먹지 않으며, 편의점에서 폐기처분 된 삼각김밥을 먹는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그것을 식사의 대체재로서 받아들인다는 행위에는 문제가 있다. 일하는 사람은 '폐기된 음식' 이 아니라 '정상적인 음식' 을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영은 편의점 사장 앞에서 그 권리를 증명하지 못한 채 편의점주에게 무참히 뺨따구 스매싱을 당한다. 한국에서 인간이 가장 지식적인 부분에서 뛰어나다고 자랑할 수 있는 시기는 고등학생 때일 것이다. '고등학생' 태영은 학교 공부는 할 줄 알지만, 정작 그 순간에 이르러 폐기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 알바생이라는 점을 말하지 못한다. 이건 비단 태영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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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이후로 본의 아니게 많은 공분을 산 그 남자
 

 
그나저나 작품이 캐스팅을 참 잘했다. 편의점주를 연기하는 배우에 김희원을 등장시키다니.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와꾸', 혹은 '방탄유리'로 통하는 그 남자를. 아주 찰지게 때린다. 비록 12세 관람가로 등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트>는 무엇보다도 가진 게 없는 자들이 권리를 요구할 때, 도리 없이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태영이 편의점 사장에게 구타당하는 시퀀스, 후반부에 이르러 선희가 마이크를 뺏어 말을 할 때 용역들에 의해 머리채를 붙잡혀 내동댕이쳐지는 쇼트들, 투쟁을 위해 마트에 세워놓은 천막이 용역 깡패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며 혜미의 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쇼트,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마트 측에서 보낸 살수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맞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해고 직원들의 모습은 감상하면서 나를 움찔하게 만든 대표적인 순간들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먹어도 된다는 말은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폭력적 발언이며, 마트 측이 파업을 일으킨 노조원들을 향해 비난하는 것과 경찰, 용역 등을 동원해 강제로 와해시키려 드는 순간들, 그리고 기어이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는 행위들은 자본을 통해 행사하는 언어적, 육체적 폭력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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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회에서 불합리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당하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부분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등급 문제로 인해 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는 할 수 없었겠지만, 최소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그 모든 '액션'들을 마냥 액션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게끔 애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적어도 한국영화에서 노동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섬뜩한 폭력들을 가장 괜찮게 재현해낸다. 그런 폭력들을 눈으로 보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테니, 결국 <카트>는 상당히 불편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 역시 등급에 맞춰 우리도 양보할 만큼 양보했으니,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라는 듯 그 한도 내에서 관객에게 최대한 불편함을 주려고 한다. 이 뚝심이 좋다. 실제 사건을 겪은 사람들마저도 그 답답함만큼은 정말 제대로 가져왔다고 했을 것이다. <카트>를 보며 느낄 관객의 답답함은 곧 실제 유사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의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그건 동시에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과하게 집중하는 바람에 정작 자신을 고귀하게 여길 줄 몰랐던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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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딱 하나 이 작품에 대해 만족할 수 없던 부분이 있었다. 그건 이 작품의 결말이다. 난 이 작품이 점수를 깎아 먹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결말 처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더불어 카트를 밀면서 스크린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포토제닉 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작품 속의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장엄한 성전'처럼 담아내고 싶어하는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항의하는 행동을 두고 이 사회는 얼마나 깎아내리고 비난하며 파묻으려 했던가. 실제로 뉴코아와 홈에버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사원들 700여 명은 당시 서울 상암동에 있는 홈에버 월드컵 경기장 점을 점거해서 512일 동안 농성을 시작한다. 결국, 농성은 마무리됐지만, 그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가 복직한 것은 아니었다. 농성을 주도했던 노조위원들이 퇴사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복직했기 때문이다. 뭔가 상처가 많이 남은 승리 같지만, 사실 그 정도의 결과조차 내기 힘들다.
 
<카트> 예고편을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쇼트는 아래의 것이었다. 살수차의 물을 맞아가면서 카트를 밀며 돌진하는 선희의 모습. 소재도 소재였지만 사실 이 한순간을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볼 때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했다. 또 이 쇼트는 2013년에 개봉한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탐욕의 제국>의 몇 쇼트와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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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영 감독의 <카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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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근로자 백혈병 사망 사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인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 중에서. 
위에서 소리치고 있는 여인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급성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근로자 황기웅의 부인인 정애정이다.
 

 
내게 <탐욕의 제국>은 공포영화 같았다. 그건 위의 쇼트가 줬던 감흥이 있었다. 작품이 촬영하고 있는 미망인 정애정은 농성하면서 자신의 남편을 죽게 만든 회사를 향해 분노어린 절규를 한다. 그런데 <탐욕의 제국>은 이 순간 작품을 무성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반려자를 죽게 만든 회사를 향한 누군가의 분노는 이렇게 공허한 외침이 되어버린다. 관객의 힘을 있는 대로 다 빼놓는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는 저런 쇼트들에서 일종의 지속성을 느껴왔다.
 
그리고 <카트>에서도 기대했던 부분들은 위의 저런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 이다. 그러나 작품은 카트를 밀며 돌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프리즈 프레임시켜 버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포토제닉 한 효과가 등장한다. 염정아와 문정희의 어정쩡한 표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들이 현재 하는 행동에 대해 구태여 막판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쇼트를 넣으려 드는 모습이 과하게 계몽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은 결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미 그 나름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충분히 관객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되게 어정쩡한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 이런 거대하고 위대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며 굳이 관객에게 외치려 든다. 아니면 정말 위험한 결론인데, "우리는 이 정도로 할 만큼 했다. 잘 싸웠어.. 그러니 이제 됐어.." 같은 류로 추억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비록 작품 속의 실제 사건은 결론이 났지만, 유사한 상황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카트> 같은 작품들이 처하는 한계는 극장 밖을 나오는 순간 그래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에 따라 더 보기 싫어진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를 전해줄 필요성이 있다. 그걸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마지막에 이르러 그런 의도의 힘이 다소 빠진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이 노동을 소재로 하거나 사회고발을 소재로 한 작품들 축에서는 상당히 세련된 축에 든다는 점에서 이 안타까움은 크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는 그것뿐이다. 밀면 스르륵 밀리고 넘어뜨리려 힘을 주면 넘어진다. 대다수 사람은 그 무기로 두꺼운 방패를 뚫어야 한다. 그렇기에 <카트>는 절대 멈춰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끝까지 계속 뚫으려고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는 생각을 들게 하여야 했다. 잘 만들었으나 마지막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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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카트>를 극장에서 보다가 깜짝 놀란 순간이 있다. 태영이 가출하기 전에 선희에게 반항하는데, 사실 그때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잠시 극장 안에서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는데 태영이 뺨을 맞았다. 손바닥으로 맞은 거야? 근데 뭔 주먹으로 맞는 효과음이 나. 여튼 도경수 씨 고생하셨다.


p.s.2 - 작품을 보면서 천우희 님의 역할이 그리 크게 돋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20대'의 현실을 대변하는 캐릭터인데.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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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불패 홍준호


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