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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9. 금요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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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데일리


통합진보당이 해산 선고를 받았다. 위 기사는 선고문 전문이다. (필자 주: 이 시각 선고문 전문이 올라온 언론사가 오직 '뉴데일리'뿐이라는 사실. 언론인들 반성들 좀)


아는 분덜은 알다시피 나는 올해 통진당에 대해 그닥 우호적이지도, 대놓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이 건은 분명 현 정권이 진보정당을 위협함으로써 정권의 권력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기도 하고, 또한 문제가 된 통진당 내 인사들의 실제 사상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은 것만도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이 판결이 나기 전, 이렇게 마음먹었었다. 판결 결과 자체보다는 선고문을 보리라. 어떤 결과가 옳은지는 미리 판단하지 않으리라.


선고문에 따르면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 흐름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전제
-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자주파(NL계열)라고 판단
- 이 자주파는 북한의 체제를 추종한다고 판단
- 이 자주파는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입장을 지닌다고 판단


특정활동 평가
- RO회합에 대해, 통진당의 당 차원 활동에 귀속된다고 판단
-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 폭력사태 등에 대해 선거제도를 형해화한다고 판단


결론
-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여 이를 폐지하고자 하였으므로, 정당해산의 필요성이 인정됨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8:1로 결정됐다. 그 1에 해당하는 반대 입장은 김이수 재판관이다. 그의 의견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목적

- 통진당의 당 강력 내용 자체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음
- 통진당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려한다는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 자체가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이나, 청구인(필자주:정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음.
- 통진당 내 일부의 지향을 당 전체의 정견으로 간주해서는 안됨.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실제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음
- 폭력에 의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음


활동
- RO회합의 내용 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배된 것이 맞으나, 이 내용이 통진당의 기본노선과 현저하게 다르고, 이 회합 참석자들이 통진당을 장악했다고 볼 수 없으며, 통진당이 이 내용을 승인하였다고 볼 수 없음
- 부정경선, 중앙위 폭력사건, 여론조작 등의 활동은 문제가 인정되나, 이것이 통진당이 반민주주의적 목적을 지니고 이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이 아님


결론
- 통진당의 문제활동들은 형사처벌 및 정당의 정치적 책임 문제로 해결해온 점을 고려, 통진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해산의 필요성 인정되지 않음.



8:1 양측의 논리적 흐름은 이렇다. 문제시되는 활동은 RO 회합의 내용, 그리고 몇 가지 부정 및 폭력행위. 8명의 재판관은 이 문제활동들의 주체가 '통진당의 주도세력'이라고 보고 있다. 즉, 이 세력이 통진당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보는 것. 또한 과거 민혁당과 영남위원회, 실천연대, 일심회, 한청에서 이어진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종북이들이 완장 찬 정당이니 정당 전체가 주사파라는 얘기. 1명의 재판관은 이에 대해, 해당 세력은 당 전체에서 소수에 불과하며 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과거 주사파에서 이어진 목적을 공유하는 정당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본다. 즉, 종북이들은 있으나 그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당 자체의 정체성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는 판단.


이 두 주장은 사실, 통진당에 대한 여론의 양극이기도 하다. '결국은 주사파인 당'과 '주사파가 소수 있는 진보정당', 이 둘 중 통진당은 어디에 해당하는가의 논쟁. 내가 판결 결과가 아니라 선고문을 보려 했던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양극을 어떤 토론을 통해 어떻게 정리되는가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과 자체는, 그 토론 과정의 논리성에 따라오는 것일 뿐이라고 봤다.


내가 헌법재판소에 기대한 건, 이런 거다. 말하자면 짬뽕과 짜장면으로 양극화된 여론 사이에서, 엄정한 법적 차원에서의 토론을 통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논리로 결론지어질지에 대한 레퍼런스 역할. 혹은 짬짜면과 같은 새로운 결론이 나올지에 대한 기대감. 내가 너무 많이 바랐나 보다. 결국 판결 결과는 저 둘 간의 논의 과정이 녹아들지 못하고, 그냥 양극 중 한쪽에 8명 다른 쪽에 1명이 선 것으로 끝났다. 두 입장 사이에서 논의가 이뤄지면서 합의안을 찾아 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릿수로 채우는 '다수결'로 결론 났다. 최종 선고문에는 반대 측 1명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돼있지 않은가. 최소한, '이러한 반박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근거로 그 반박이 캔슬됨'이라는 꼭지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이러한 내 실망의 증거다. 하물며 '추운 겨울이니 금방 굳는 짜장면 보다는 얼큰한 국물의 짬뽕이 낫다는 견해도 있지만, 히터가 잘 들어오는 식당이므로 성립하지 않음' 정도의 최소한의 뭔가는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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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정도 바람도 큰 거였다.



나는 법 전문가가 아니므로, 내가 가졌던 기대가 법리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해 현재로써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법리를 떠나서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한 국민으로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의견이 대립될 때 냅다 쪽수로 밀어붙이는 다수결은, 진지한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과정에 비해 훨씬 초보적이고 후진적인 민주주의 방법론이라는 사실이다. 최소한, 다수측이 소수측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도 없이, '그냥 우리가 쪽수 많으니 꺼지셈'은 누가봐도 후지니까. 성숙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국가들이, 갈수록 보다 소수의 의견과 권리를 살피고, 다수의 폭력성에 대해 되돌아보는 추세는 누가봐도 확연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소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법리적인 차원에서는 모르겠으나 민주국가 국민으로서의 상식에 의거하면, 헌재는 내 기대보다 구리다.


벌써 수많은 기사가 반대표를 던진 김이수 재판관의 신상을 캔다. 전북 정읍 출신이니 분명 수많은 보수단체에서는 지랄 맞은 지역감정을 들이대겠다. 이 외에도 한국 언론 전매특허인, '진지한 사안에서 자극적인 꼭지 뽑아내기'가 며칠간 넘실대겠다. 땅콩에 통진당에, 누군 참 좋겠다. 아마 진보진영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해석으로써, 21세기식 독재의 재현이라는 견해, 결국 RO 회합이 통진당을 죽였다는 견해, NL 내부의 비민주적 역사가 맞게 된 처참한 말로라는 견해 등등 수많은 의견이 오갈 거다.


그냥 시발 다 됐고. 나는 그냥, 무려 '헌법재판소'가, 내 상식으로는 너무도 구린 민주주의를 품고 있다는 게, 그게 제일 묵직하게 아려온다.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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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