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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이 글은 필자가 자신의 남아공에 거주 중인 한인 부부를 만나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맨손으로 남아공으로 건나 가 

고국 땅에서는 꿈도 못 꿀 일들을 이뤄낸 이들로, 

그들과 2주간 머물며 나눈 

남아공 사회에 대한 분석, 토론이 

한국과 남아공, 두 사회를 이해하고

새로운 공동체 생활 양식을 고민해 보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마, 이 정도 의도를 깔고 시작하는 연재라 하겠습니다.

 




지난 기사


남아공을 알려주마 (1) - 흑백 분리







만델라도 해결 못한 문제


내가 다녀온 직후 만델라가 사망했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바탕 굿을 치렀다. 여기서 말하는 굿은 미신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을 풀고 신명을 내는 긍정적인 의미를 말한다. 지구촌의 인류가 만델라라고 하는 '세속적 성인'의 이름으로 각자의 마음 속에 쌓여있는 한과 원을 풀어내기를 소망해본 굿이었다.


언젠가 호주에 유료 강연을 하러 온 만델라가 "아프리카에서 온 은퇴한 실업자 영감을 이렇게 환영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해서 청중을 웃겼던 적이 있었다. 참으로 소박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만델라처럼 전 지구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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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언론은 한 목소리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편집자 주-Apartheid, 남아공 백인 정권이 모든 국민을 백인, 흑인, 컬러드, 인도인 등으로 나눠 주거구 등을 극단적으로 분리하였던 노골적 백인지상주의 정책)의 종식과 민주주의 확립을 만델라의 공적으로 돌렸다. 27년 간의 감옥생활을 겪고도 마침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극적인 드라마!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종식시킨 이는 만델라라고 하기 보다 세계의 압력을 받은 백인 부르주아지와 지배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물러난 뒤 만델라가 선택 받은 것이 그의 고난과 고통에 걸맞은 보상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그는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인종 차별 정권과 결별한 이후 사실상 완전히 새 나라를 건설해야만 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는 미심쩍었다. 다른 신생 독립국들처럼 독립의 영웅이 독재자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만 그 나라는 지금도 극심한 불평등과 가난에 시달린다. 아무리 만델라일지라도 한 번의 임기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만 어쨌든 만델라의 지도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정권이 흑인에게 넘어가면서 가장 예민한 문제는 실제적으로 공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백인 집단의 문제였다. 이 문제를 다루는 어려움은 권력이양기에 친일파를 다루는데 실패한 우리 역사가 잘 보여준다.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무력으로 저항하여 정권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한 흑인 집권 세력은 백인 경찰 간부들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제시하면서 조용히 물러나게 하는 회유책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 갑자기 치안을 담당하게 된 흑인 경찰들의 지도력에는 예전과 같은 백인들의 경찰력 같은 강력함이 없었다. 왜냐하면 흑인들 문화의 특성상 공정한 채용보다는 연줄로 자리가 채워졌었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경찰력이 행사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남아공에서는 지금도 공무원 채용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원칙이 매우 잘 지켜진다고 한다.


그런 경우의 아주 좋은 예가 만델라의 추모식에서도 나타나서 남아공의 체면을 만천하에 실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름이 아닌 추도식에서 수화 통역가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추도 연설 등을 엉터리 수화로 전달한 사건이었다. 다음은 국내 통신사의 보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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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이 사건은 남아공의 위신을 세계만방에 떨어뜨린 참으로 남아공스러운 사건이었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그가 수화를 제대로 하는지 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실력과 무관하게 뽑아 앉히기에 좋은 자리인 만큼 채용 과정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원칙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건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시드니에 어려서 이민을 와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40대 농아 여성이 있다. 그녀는 수화가 아닌 구화를 해서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알아보기 때문에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는 정면에서 해야 한다. 한 번은 그녀가 한국말을 잘 모를 것 같아서 영어로 이야기를 했더니 나 보고 한국말로 하란다. 물론 그녀는 구화로 한국말과 영어를 다 할 수 있지만 한국인이 영어를 하는 것이나 혹은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것은 알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입 모양이 정확하지가 않아서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만 전달이 부정확해져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저런 식의 수화 통역가 채용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세상에는 대강 넘어 갈 수 있는 일도 있고 넘어 갈 수 없는 일이 있다. 대강 넘어갈 수 없는 일을 대강 넘어가고 대강 넘어갈 일을 대강 넘어가지 않는 곳이 바로 후진국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방의 어느 나라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러나 백인 경찰을 해고하고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들로 그 자리를 대체하다 보니 경찰은 무능해졌고, 반대로 일자리를 잃은 백인 경찰들은 범죄조직에 흡수되는 모양으로 흘러버렸다. 이것이 마치 구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변하면서 KGB가 마피아로 변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정권을 잡은 실세들은 과거 백인 독재 정권에 의해 수십 년 동안 감옥을 드나들었거나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혔던 사람들이라 범죄자들에 대하여 동병상련의 공감이 있었던지 지나치게 관대했다. 사형제가 폐지된 것은 물론이고 최고형이 징역 5년 정도로 형량이 바겐 세일 가격 마냥 대폭 낮아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넬슨 만델라의 팔순 생일 기념으로 9,000명의 범죄자를 사면시켜준 적도 있는데 이렇게 사면 받은 사람들 중에 강간범이나 살인범도 끼어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불거졌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아프리카 신흥 개발도상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단기간에 신속하게 흑인과 백인간의 소득 불균형을 수정하려다 보니 흑인의 경제력을 강화한다는 핑계로 정부가 흑인이 소유한 여러 대기업의 뒤를 공공연하게 봐주면서 뇌물 축재 및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흑인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불러올 리는 없는 거였다. 자본이 언제 색깔을 구분하던가? 고용주는 경비가 드는 고용인에 대한 훈련이나 교육을 강화하기보다는 쉽고 쓰고 버릴 수 있는 질 낮은 노동력의 고용을 선호하게 되는 법이다.


아무리 한 바탕 신명나는 굿을 벌렸다고 해서 현실이 변할 수 없듯이 세계가 화해와 평화를 희구하는 듯한 감동적인 장례 이벤트를 연출했지만 남아공의 대부분의 흑인들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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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기다리는 흑인들


인간이 숨 쉬고 사는 곳은 어디나 빈부 격차 문제가 생긴다. 남아공에서도 물론, 당연히, 가난한 자의 대다수는 흑인이다. 게다가 주변 국가에서 일 자리를 찾아 몰려든 흑인들은 더욱 가난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아공에서는 더 이상 '흑인=가난'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즉 빈부의 차이를 인종의 문제만으로는 설명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백인 거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흑인의 나라가 된 남아공에서 도태된 백인들의 삶은 어찌 보면 더 처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전기, 수도 등 공공시설이 없어도 아무데서나 움막을 짓고 자연스럽게(?) 살아 갈 수 있지만 백인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인이라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어서 '바람'네 회사에도 30명 직원 중 백인이 세 명인데 두 명은 급여가 중간 정도이다.


남아공 시내에서 굴러다니는 차 중 가장 흔한 브랜드는 한국 돈으로 최하 5천만 원, 웬만하면 억 대가 넘는 BMW와 Mercedes Benz다. 그런 차들의 반 수 훨씬 이상이 흑인들이 몰고 다닌다. 새 차라면 거의 흑인이 차주라고 보면 된다. 연 수익이 1억이 넘는 흑인의 수가 한국의 고액연봉자와 비슷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남아공에서는 자기 차에 운전사를 따로 두는 사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동양 여자이기도 하고 언제나 피곤에 쩔어 있는 '바람'은 부득이 흑인 운전사를 데리고 다닌다. 남아공에서는 원초적으로 무료 주차가 존재할 수가 없다. 차가 주차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지키는 사람이 있다. 남아공에서 주차는 단순히 주차뿐만이 아닌 차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부가기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주차 공간이 충분하게 설비가 되어 있는 대형 쇼핑센터라도 반드시 차를 지키고 차가 잘 드나들도록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친절(?)을 강제로 베푸는 인간에게 얼마간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남아공은 여자는 55세 남자는 60세가 지나서 달리 가입한 연금이 없다면 한국 돈으로 20만원 넘는 연금 무조건 받는다. 이 점에서는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줄 돈이 있니 없니 하고 있는 우리가 잘 아는 나라 보다 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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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실업률이 높은 남아공의 인력시장은 경쟁이 심하다. 산업예비군은 넘쳐나지만 그 수에 비해 일자리는 적어 임금이 계속 낮아진다. 도심에서 밀려난 가난한 흑인들은 더욱 일자리 부족에 시달린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더라도 알선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받는 일당이 약 5불 정도이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라도 매일 있는 게 아니고 오고가는 교통수단도 문제다. 최저수준 임금의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선 그 만큼의 교통비를 써야 한다.

서울처럼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택시라고 부르는 봉고 승합차를 타고, 걷고 해서 일터로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 수단의 열악함은 흑인 밀집지역의 판자촌에 사는 이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그래서 일부 구직자는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아예 거리에서 노숙한다. 교통비 문제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고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도 교통수단은 여전히 문제이다.


길을 지나다 보면 별의별 방법으로 돈을 벌어 보려고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흑인들은 작은 액수라도 돈이 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도둑이 되거나 동냥을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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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둑질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해봐서 안다. 군대에서 신병 훈련소 시절 퇴소를 앞두고 소대별로 제물조사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이 재물조사라는 것이 아주 웃기는 것이었다. 소대 내무반 안에 있는 물건이 어디로 가겠는가? 40년 전 이야기이지만 신병 교육대 기관병들이 갓 입소해서 어리버리할 수밖에 신병들에게 대강 대강 인수를 시키고 퇴소를 할 때에는 장부대로 조사를 해서 실제로는 처음부터 없었던 재물을 찾거나 해서 없으니 변상하라며 훈련병의 호주머니를 터는 행사가 이 재물조사였다. 우리 내무반의 경우는 이미 돈을 걷을 만큼 걷었음에도 장부에서 세수 대야가 한 개가 모자랐던 적이있다. 이 때 또 돈을 걷기가 귀찮아서 분대장을 맡았던 내가 훔치기로 구국의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방법은 도둑질의 아주 초보적인 방법이었다. 혼잡한 아침 세면 시간에 우리 보다 낮은 기수의 중대로 가서 얼굴에 비누를 잔뜩 묻혀서 눈을 감고 있는 훈련병의 세숫대야의 물을 엎어 버리고 들고 뛰는 것이다. 그러다가 걸리면 몰매를 맞아서 최소한 중상이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한다. 대야의 물이 아닌 세면 바닥을 느낀 훈련병이 '도둑놈 잡아라!' 소리를 지르면 전 소대원이 뒤를 쫒아온다. 그 때 즘이면 나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서 우리 소대 내무반을 통과하면서 대야를 집어 던지고 후문으로 나가서 잠시 몸을 피해야 한다.


그러면 내 뒤를 쫒아 우리 내무반에 들이닥친 후임 기수 훈련병들은 선임 기수 훈련병에게 '이 새끼들이 어디 들어와?'하는 욕설만 듣고서 투덜대며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설령 자기네 내무반장에게 보고를 해도 똑같은 훈련복 복장에 박박 깍은 머리의 범인의 얼굴을 식별할 수도 없을 뿐더러 훈련소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이처럼 도둑질을 하려면 모험심, 개척 정신, 적극성, 창조성, 근면성,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여기는 폭 넓은 안목'에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체력까지 고루 갖추어야 한다. 남아공의 모든 빈민들이 이런 걸 매일 반복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동냥을 하는 수밖에.


남아공에서는 동냥의 방법도 그 비참한 모습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광경에서 부터 상상하기 힘든 기상천외의 방법이나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복잡한 4거리에서 쓰레기 봉지를 몸에 두르고 신호 대기 중인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운전자가 건넨 쓰레기를 치워주며 몇 푼씩 동냥을 구걸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저 것이야말로 '창조경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흑인들이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눈물겨울 정도로 노력을 하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일요일에 '바람' 부부와 500Km 정도 떨어진 백두산과 같은, 해발 2,700 높이라는 근처의 산에 갔다. 동물도 없고 식물이랄 것도 별로 없는 돌투성이인 산, 그런 산도 그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공은 고원의 평야 지대이다. 실제로 높아서 파리와 모기가 별로 없다. 나는 요한네스버그의 대부분의 집들의 창문에 모기장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호주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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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높은 지대라서 그런지 파리와 모기도 별로 없다. 

나는 요한네스버그의 대부분의 집들의 창문에 모기장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호주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남아공의 또다른 도시, 케이프타운)


가다가 물을 보고 싶다고 해서 저수지에 들렸다. 그야 말로 물만 있을 뿐 햇볕을 피할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관광지도 아니어서 오는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한 흑인이 진흙을 가지고 자기 손으로 만든 조그만 동물들을 일 열로 세워 놓고 팔고 있었다. 우리가 안 사주면 아무도 사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절박한(?), 그러나 나름대로 처절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여행객인 내가 사줄 수도 없어서 난처한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구름'이 한 참을 골라서 몇 개를 샀다. 깨어지기 쉬운 진흙 장식품이기 때문에 운반을 잘해야 하는데 아무런 포장 방법이 없어서 내가 차에서 빈 도시락 반찬통을 가져가자 흑인은 자기 옆에 모아 두었던 덤불로 사이를 메워 주었다. 가진 것을 다 팔아도 만 원도 안 될 장식품을 팔기 위해서 그는 사람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이 어디고 어떻게 오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1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한 없이 길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다닌단다.


남아공에 오기 전에는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흑인들이 당해 온 참혹한 일들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한 번쯤 흑인들이 세상에서 힘 좀 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품었었는데 정작 와보니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에 있는 것은 자원뿐인데 이 자원이란 것은 애초에 개인들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고 권력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이 정당하지 못하게 행사될 때 자원은 내 땅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닌 것이다.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 야자유, 황금, 다이아몬드 등을 가져가고 그 대신 국경, 관료제, 국가. 중앙은행, 관세, 세금 등의 제도를 남겨 놓았다. 그것들은 근대국가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아프리카인들의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타율적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이 그 제도를 운영하려고 할 때 특권에 의한 부정부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최근 10년간 평균 6%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면 국민의 삶의 질도 당연히 높아져야 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독자들은 충분히 짐작하리라 생각된다. 정부가 부패하다 보니 성장과실을 국민이 아닌 일부 특권층이 독식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부패는 있지만 아프리카 정부의 부패는 단순히 떡고물을 챙기는 부패가 아니라 국부를 팔아먹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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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는 두 종류의 강도가 있는데 면허 있는 강도와 무면허 강도로 나누인다. 남아공에서는 범죄현장에 경찰이 나타나도 도둑보다 경찰을 지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속도위반으로 우리 차를 잡은 노상강도의 첫 마디가 "속도위반, 7만 5천원"이라고 했다. 즉 75,000원 벌금 낼래? 나에게 얼마 주고 적당히 끝낼래? 하는 뜻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역할이 이렇게 된 것에는 흑백분리정책이 작용했던 시대로부터 내려온 잔재 탓이 크다. 당시 대부분이 백인이었던 경찰은 흑인 사회의 범죄나 질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직 백인과 관계있는 범죄나 백인의 안전만을 위해서 역할을 했었다.


흑백분리정책이 철폐된 이후 경찰이 대부분 흑인으로 바뀌고 백인이 관여된 일만 개입하던 경찰력은 이제 돈이 생기는 일에만 개입하고 있다. 백인 대신 돈을 지키는 경찰이 된 것이다. 실제로도 흑인 사회의 대소 범죄까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전혀 경찰력이 작동하지 않는 시절 흑인 사회에서는 자기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군중 재판이 성행했었다. 군중 재판은 남아공뿐만 아니라 지금도 인도 같이 공권력이 발달하지 못한 후진사회에서 흔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범죄가 발생하고 범인으로 지목되어 의심을 받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분위기로 판단을 하는 사법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공정성이 전혀 없어서 흥분한 군중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잔인한 결과가 벌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법제도이기도 하다.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단 유죄로 판단되면  현장에서 폐타이어를 목에 걸어 놓고 휘발유를 끼얹어 화형을 시켜버리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그런 현상이 벌어졌었지만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경찰이 개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왜냐하면 돈 생길 일이 없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려졌던 'OJ 심슨 재판'을 기억하시는가? 미식축구 인기스타 OJ 심슨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애인 로널드 골드먼이 흉기에 찔린 채 사체로 발견됐다. 숱한 증거와 합리적 의심에도 불구하고 '드림팀'이라 일컬어진 심슨의 변호인단은 유색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 유죄를 확신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런데 남아공에서 이것과 대비되는 세기의 제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호주를 비롯한 서구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남아공 판 세기의 재판. 바로, '기적의 아이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자신의 집에서 여자 친구인 모델 리바 스틴 캠프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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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1년 이상 이 사건의 재판의 모든 과정이 상세히 서구 세계의 뉴스 시간에 보도되었는데 남아공의 사법체계가 서구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한 편에서는(흑인들 세계이지만) 사형(私刑)이 공공연히 집행되고 있다. 남아공의 문제는 제도가 구려서 일어나는 게 아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남아공에서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제도의 혜택을 잘 받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역시 무법천지의 효과는 가장 약한 자에게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동네 재판이 주변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유입되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경계 내지는 배타적인 심리로 작동하여서 소수에 대한 배척 혹은 집단 따돌림의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실 남아공에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극단적인 적개심과 폭력행위는 이웃 나라인 짐바브웨 이주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더욱 증폭됐다. 짐바브웨 이주민들의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영어를 잘 구사하며 남아공 국민보다 열심히 일해 지역의 고용주들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남아공 원주민, 특히 흑인 빈민층은 한정된 자원을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한다는 피해의식이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이렇게 얼핏 살펴본 것만 해도 남아공의 사회적 해결 과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빈부 격차와 실업 문제, 그리고 공권력 부패와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 등. 더 나열할 수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치고 못 다한 얘기는 다음 연재에서 계속 이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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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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