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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4.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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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일지 - 2. 영업비밀 겸업, 그리고 경업]

[컨설팅일지 - 3. 사장의 월급]

[컨설팅 일지 - 4. 혁신적 기술과 신제품을 위한 연구 개발]

[컨설팅 일지 - 5. 기술개발자금]








2014년 1월 :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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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body lies!"
-Dr. House-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참말일 거라는 전제보다는 거짓말일 거라는 전제로 상대를 가늠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적어도 끝없는 부의 유지를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자본가들과 또 그들과 결탁한 정치인들의 말은 거짓일 가능성을 더더욱 생각해야 한다. 

 

코레일, 민영화를 통해 더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헛되이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대통령과 사장,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든 더 얻어보겠다고 자신들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하는 일임을 자처한다. 공공 서비스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떠맡기는 것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녀들을 보며 분만 발라서는 요염하지 않을까 싶어 뻘겋게 입술연지를 처바른 천박한 창부의 이미지가 오버래핑된다. 이 사태를 보며, 온갖 감언이설로 기존의 직원들을 신규법인으로 재입사시키고 결국 그 신규법인을 해산해 버린 기업인이 떠오른다. 그는 언제나 직원들 앞에서 온화한 얼굴로 '아버지'를 자처하며 회사 내의 가족 같은 관계를 강조하곤 했다. 기업인 워크샵에선였던가 만취한 그 사장은 나 자신과 내 가족이 가져야 할 돈을 직원 놈들이 훔쳐가는 것이라며, 단 한 푼도 아깝다며 술주정을 했었다. 작은 자본가들, 깃털 정도의 힘을 쥔 권력자들. 그들도 거짓말을 한다. 그들의 거짓말이 두렵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나도.
 


 

2014년 2월 : 네가 컨설팅을 할 자격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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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나티파타 中-
 

 

정부는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화했고, 간이영수증의 인정 폭을 줄여나가고 있다. 사장들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전자세금계산서가 도대체 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전자세금계산서를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을 뽑으면 된다. 건설 면허 갱신을 위해, 순 자산 가치 평가에서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사채를 빌리고 채권을 사고 주식을 살 일이 아니다. 평상시에 자금 관리를 잘하고, 사장이 못하겠으면 유능한 관리직원을 뽑으면 될 일이다. 기장대행을 하는 세무사무소에 단돈 몇 푼이라도 더 쥐여주고 각별한 도움을 요청해도 일은 쉽게 풀린다. 윈도 XP가 종료되어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사장님들이 많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한민국은 기업 친화적이지 않으며, 생고생해서 직원들 먹여 살리는 자신의 노고를 몰라준다고 한다.

 
이들과의 만남은 불편하다. 직원을 뽑아라. 사장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부를 해라. 늘 잔소리를 하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선 자신의 무식을 깔보는 것 같고,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제 맘대로 내 소중한 돈을 남에게 나눠주라는 소리로 들리나 보다. 어떨 땐 그저 허허 웃으며, 얼마나 힘드시냐, 세상이 내일 아침에 무너지겠느냐, 어찌어찌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달콤한 위로나 하고, 반색하는 그와 어깨동무하고 룸살롱을 가고 골프채를 들고 필드로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내 능력을 다해서 도와도 서운해 하는 것이 컨설팅이다. 차라리 충분한 욕망의 동질감(?)을 보여주고 나도 그리 잘나지 않고 당신과 같다고 몸으로(?) 말하는 것이 일 해먹기는 편할지도 모르다. 이런 유혹에 빠질 때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났던 썩어빠진 컨설턴트의 변명을 계속 생각한다. 

 

"컨설턴트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고, 그저 나태 속에서 쉽게 찾은 길이라면 그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바로 컨설턴트다. 컨설턴트가 기업의 모든 현안에 묘책을 제시할 순 없다. 네가 컨설팅을 할 자격이 있느냐? 는 질문은 누구의 입에서 들은 적 없으나 항상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말이다. 어떨 때는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하고, 도움을 요청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내기 힘들 때도 잦다. 그때마다 이렇듯 마구니가 찾아온다. 내 안의 근심과 한계를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2014년 3월 : 욕망의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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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中- 

 

'나는 소비할 수 있다. 내 소비는 너 따위는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라고 떠들고 다니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사회를 통해 너와 나의 욕망이 모이고, 그 욕망에 언론은 시멘트 역할을 해서 높이 쌓아 올린다. 그 욕망의 탑, 아파트를 우러러보며 살아온 대한민국의 국민들, 그들은 행복한가? 국민들이 그리 행복해하고 원하는 아파트라면 나라에서 더 많이 지어 저렴한 가격에 분양한들 나쁠 이유가 있을까? 지인의 집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다 든 생각이다.

작은 전문건설업 사장이던 P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접대와 출장을 핑계로 집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5시간 정도의 짧은 수면을 위해 집을 이용하는 것 같은 P와 그의 아내가 금실이 좋을 리 없었다. 어느 날 만난 그 부부가 전에 없이 다정히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보기 힘든 모습이라 무슨 얘기를 하나 봤더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아파트 재건축 허가가 나서 거길 다녀온 모양이었다. 재건축위원회에서 해야 할 일, 앞으로의 계획, 마진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를 하며 그 부부는 계속 웃었다. 저 부부가 아직 깨지지 않고 잘 살았던 이유는 욕망이라는 교집합 때문이었구나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2014년 4월 : 지식인, 사회의 찌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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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의 찌꺼기'다."
-롤랑 바르트-

 
이 사회는 아이들 봄 소풍의 들뜬 희망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경박하고 천한 몇몇 언론은 그 짧은 애도의 시간도 참아내지 못하고 '세월호 여파로……'를 떠들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 후 곡기를 이어가는 것도 부끄럽게 여기던 선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때문에 내수불황이 오고 경기가 나빠졌다고 떠드는 놈들은 더 많았다. 세월호와 경제 불황의 연관관계는 전혀 없다고 반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많은 경제계의 전문가와 학자, 연구원들이 잉여인간 임을 방증했을 뿐이다.
 



2014년 5월 : 아름다운 기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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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취업규칙도 근로기준법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최규석, '송곳' 中-
 

어느 기업을 가든 컨설팅을 위해 방문하면 취업규칙과 재무제표를 보여 달라고 한다. 한 번에 턱 내놓는 기업은 바라지도 않고, 두 가지가 다 있다(有)는 것만으로도 고맙기까지(?) 하다. 재무제표는 사장의 현란한 임기웅변에 속지 않고 기업의 현재를 볼 수 있게 해주고, 취업규칙은 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의 완성도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학력이 짧아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늘을 두려워하라고 상대를 겁박하지만,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법을 들어 사람들을 겁박한다. "사규에 따라 처벌한다.", "연봉제에는 그런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준엄하게 말하는 사장들의 얼굴은 직원들이 보기에는 근엄해 보이겠지만, 컨설턴트가 보기에는 소꿉놀이의 규칙을 정한 꼬마의 득의양양한 모습처럼 귀여워(?) 보일 뿐이다.

 

제약기업 출신이라 영업의 신이라고 불리는 사장, 휴대폰 전화부 안에 대한민국의 걸출한 사람들은 다 들어있다는 인맥을 자랑하는 사장들은 많다. 그러나 높고 아름다운 기업의 문화를 만들어낸 사장이란 칭송을 받는 사장을 본 적은 없다. 내가 컨설턴트로 일하는 동안 언젠가 한 번쯤은 "그까짓 노동법 따위는 우리 회사가 가진 휴머니즘이 철철 넘치는 사규에 비하면 가혹하지." 라고 배포 크게 말할 수 있는 사장을 만나길 희망해 본다.

 


2014년 6월: 갑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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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라디오스타 中-
 
예전에는 보통의 청년이 성장해서 갑(甲)과 을(乙)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였다. 요즘엔 '갑질'이란 단어가 흔해서 힘 있는 놈이 그렇지 않은 이를 괴롭히는 짓에 빗대어 으레 쓴다.
 
롯데 홈쇼핑의 갑질이 기사화되어 논란이 일었다. 어느 벤처기업 사장님께 들은 얘기다. 시골집에 내려가 자신의 사업이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노모를 안심시켰는데, 노모께서 하시는 말이 "아직은 멀은 것 같고, 너희 회사 제품이 홈쇼핑에도 나오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시더란다. 지방에서 일을 하다 보면 농업인들이 법인을 설립해 사업하는 경우가 많아 어르신들과 사업계획을 얘기할 때가 많은데 이분들 또한 자기네 제품이 홈쇼핑만 한 번 타면 사업 끝난다(?)고 당차게(?) 말하곤 하신다. 활자화된 인쇄물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던 시절을 지나 브라운관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 큰 믿음을 갖는 시대가 오다 보니 대기업이 가진 브랜드 파워까지 더해진 홈쇼핑에는 중소기업인들이 너도나도 제품을 들고 찾아드는 모습이 마치 어떻게 줄 좀 대보려고 조선 시대 고관대작 집 앞에 늘어선 이들을 연상케 한다.

 
사장님들께 용역사, 하청사, 하도급, 아웃소싱 이런 표현보다는 협력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드리곤 하는데 그 말버릇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분업화된 산업구조에서 하나의 완성된 상품이 나오고 판매되기까지 여러 기업이 서로 협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나 이런 단순한 이치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영 현실이다 보니 고질적인 갑질은 계속될 것이다.

 


 
2014년 7월 : 먹고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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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지원했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고 설레는 마음 한편으로 정원 35명이라는 숫자가 부담이었다. 늘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느낀 그는 35에 집착했다. 그해 내내 35번째 안으로 출근했고, 심지어는 1번부터 35번까지의 버스가 아닌 36번 이후의 버스도 이용하지 않았다." 
-김정현, '아버지' 中-
 
먹고 산다는 것의 지난함은 자신을 동정하게 한다. 그 동정은 자존감에 균열을 주고 ‘먹고사니즘’이라는 기괴한 철학으로 위법하고, 부도덕을 행한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은 인문학을 외치는 뜻 높은 지성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들로 설파하는 철학과 윤리에 우매한 대중이 맞설 수 있는 단 하나의 방패이기도 하다. 이 방패를 들고 있으면 세상에 잘난 놈들한테 기죽지 않아 좋다. 그 사이 비겁해지고 무기력한 자신은 쪼그라들고 먹고사니즘이란 방패는 무럭무럭 자라 나를 가려준다. 먹고살기 위해 부도덕할 수 있으며, 비겁함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빠들, 사장들이 있다. 국가가 내 삶을, 내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현실은 더욱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가엾고, 안타까워 그들을 매정하게 비판하기 어렵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컨설턴트가 아니다. 인류애를 가슴에 품을 도량이 아니라면 측은지심 하나는 있어야 한다.


뜬금없이 엄마 부대 봉사단이라는 괴이한 단체가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컨설팅 분야가 확대된 계기 중 하나가 수많은 NGO와 자선단체의 출현 덕분이었다. 조직이 추구하는 사회적 기능을 다 하기 위해 내부의 시스템을 단단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자각 덕분이었다. 엄밀한 회계 관리와 조직의 문화 그리고 대외적인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가는 일은 NGO일지라도 기업과 다르지 않다. 만일 내게 엄마 부대 봉사단이라는 단체를 컨설팅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귀를 올려붙이는 거 빼곤 생각나는 게 없다.



2014년 8월 : 교언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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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있는 말은 결코 아름답게 장식하지 않고, 화려하게 장식한 말은 진실이 없는 법이다. 
-노자-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다. 그중엔 말과 글이 돋보이는 직업이 있다. 정치인, 경영인, 종교인.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몸을 써서 벌어먹는 이들은 말로 벌어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나 분명 그들도 말로 벌어먹고 산다. 막노동판의 일용직도 말재주 하나가 뛰어나면 이틀 일할 것이 일주일이 되고, 시장의 장사치도 말 한마디로 관급 납품을 따는 기연을 만난다. 경영자의 말 폼새를 보면, 그 기업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조직을 대표하는 최고 수장의 언사는 신중해야 하되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고 용감해야 한다. 많은 사장들을 만나보면 말의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을 용기가 없기에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수목적법인의 설립을 맡을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비겁하게 침묵하는 사람들이 시간은 자기편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끌기 시작하면 결국 연합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특수목적'은 물 건너가기 마련이다. 지역특화지구의 개발이나 특산물 가공센터의 준공 등에서 이런 사람들을 겪으며, TV 수상기를 힐끔 보면 거기에도 같은 모습의 비겁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벌써 여러 달이 지났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언영색, 현란한 말재주를 가진 자는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입을 열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은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불통과 미스 커뮤니케이션의 지속은 이 사회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성장이라는 위태로운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붕괴에 가까운 참사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14년 9월 : 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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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얼어 죽어 나무가지에서 떨어져 새조차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D.H. Lawrence, 'Self pity'-


하우스 푸어. 집 하나를 차지하면, 아니 두 개나 세 개면 더 좋고 거기가 행복의 고지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심장이 밀어낼 수 있는 산소를 모두 밀어내서 사지의 혈관에 주입해 기어오른 그 최고봉엔 그저 빚만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워킹 푸어, 성실과 근면은 아버지가 물려준 부끄러운 나의 계급을 한 단계 올리라는 믿음… 그 맹신 속에 달려온 사람들, 기나긴 수십 년의 자랑스러운 노력은 공교롭게도 아파트 경비원으로 마무리된다. 에듀 푸어, 빚을 내서라도 대학 4년을 마치면, 스펙을 차곡차곡 쌓으면, 금빛보다 더 휘황찬란한 파란 줄이 달린 보안 카드를 목에 메고 뉴욕 맨해튼은 아니어도 강남 아니면 여의도 한가운데 당당히 서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채권 추심 직원만 앞에 서 있다. 갖가지 이름의 푸어가 만들어지고, 그 푸어들의 비명과 눈물이 아비규환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삼 남매 키우며 살았던 단칸 셋방을 생각하면 너희는 천국인 줄 알아라."

 

"게으름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더라. 어차피 썩어질 몸뚱이. 움직여 돈을 벌어야지."

 

"배워서 남 주랴."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지 못하고 폭식하듯 앎을 먹어 치우며, 무식이 곧 무능이라 타인을 손가락질했었다. 천국에 살았던 사람들, 아니 자신만의 천국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 바로 곁에 있던 지옥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 그들이 무저갱으로 추락한다. 그들의 자기연민을 보면 로렌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동정한다.


 
 
2014년 10월 : 멋있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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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봐. 거리 천지에 남자들 투성이야. 
모두 나보다는 나을거야." 
-첨밀밀 中-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번민하던 여자는 현재의 애인을 찾아와 눈물 흘린다. 경찰에 쫓겨 도피 중이던 남자는 그 여자를 안아주며 다독여 보내며 말한다. 세상 어느 남자도 나보단 나을 테니 이젠 마음 편하게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고…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멋진 남자가 되는 방법은 많은 것 같았으나 어느 순간에 멋진 사장이 되는 거 빼곤 그리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인생을 헛되이 보낸 것 같지 않은데 어느 순간엔 그랬다. 사장이 된 이유를 물어보면 뒷간에서 밑 닦을 만큼 많을 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멋지게 살고 싶었다.'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사장 H는 담백한 남자였다. 그는 사장에게 있어야 할 능력이란 능력은 모두 갖춘 듯했고, 기백이 넘치는 기업가 정신은 더는 미국이나 유럽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신기술과 신제품을 쏟아 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성공을 기원했으나, 기업의 성공은 염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패했다. 다만 그는 실패의 과정에서도 그만의 담백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 월급을 챙겨 주며, 끝까지 남고 싶다는 직원들에게 좌초하는 배에는 선장 하나만 남아 있으면 된다며 등 떠밀어 내보냈다. 선배처럼, 형처럼 생각했던 사장을 채권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사무실에 홀로 두기 미안해 직원들은 퇴사 후에도 음료수를 사 들고 계속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까지 정리하고 나자 사장은 직원들의 집에서 동가식서가숙하며 재기를 노렸다. 하룻밤을 신세 지고 직원의 집을 나오던 아침, 따라 나온 직원은 그에게 조카들 과자나 사주라며 돈 5만 원을 쥐여주었다. 그 5만 원이 직원이 타고 있는 실업급여라는 걸 H는 모를 리 없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묘한 미소로 화답하면 고마움을 표시한 H는 길을 나섰다. 지금 H가 재기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또 어떤 고난을 만났더라도 극복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멋진 남자의 주변에는 그만큼 멋진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테니까.

 



2014년 11월 : 탐욕의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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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란 좋은 것이야. 이젠 그것이 합법화되었군."
-Money never sleeps 中-

 
이 사회의 계급화는 더 뚜렷한 계층 간의 차이를 원하고 있다.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인공위성을 만들어서라도 저 아랫것들과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세상은 서민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의 모습으로 느껴지나 보다. 영화 엘리시움의 거대한 인공위성은 이미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보지 못한 곳, 보지 못했으나 들어서 갈망하는 곳, 그곳의 모습은 허상이다.

어쩐 일인지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병석에서 병문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다는 전언 외에는 일절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대중들은 그가 포르말린 액에 담겨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미 사망한 가족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가족에겐 어떤 벌이 내려져야 할까? 탐욕이 합법화된 국가에서 과연 그런 벌이 내려질 수는 있을까?
 
 


2014년 12월 : 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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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는 종(種)은 강한 종이 아니고, 또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찰슨 다윈-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컨설턴트가 신의 사자이길 바라는 것 같다. 그 기업들이 있는, 출구를 찾기 힘든 현실을 장밋빛 미래로 바꾸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신의 권능을 빌려야 할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컨설턴트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도 되는 양 진지하게 한 마디로 자신에게 깨달음을 내려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부담스럽고 난감한 일이나 언제나 그들이 들어온 답을 짧게 반복하기 미안해 나는 내 경험을 말해주며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길 권한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아는 답을 헛갈려 하며 답안지에 쓸까 말까 망설이는 인생을 사는 내 얘기는 이렇다.


극한 심적 불안정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심리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소를 찾았었다. 심리상담사와 한 시간여의 상담을 마치고 문을 나서다가 나는 문밖까지 배웅 나온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변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왜 안 물어보나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답했다.
 

"본인이 변하길 원하다면요"


원한다면 변할 수 있다.

 


[P.S] 


한 해 동안 딱딱하고 어려운 컨설팅 일지를 읽느라 고생 많으셨을 것 같아 이번 회에는 부끄럽지만, 일기형식을 빌어 한 해 동안의 일들을 정리하며, 더불어 컨설턴트의 속내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
2015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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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CEOJeonghoonLee


편집: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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