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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금요일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1. 라이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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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해라도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있을까. 2014년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난 뒤 일본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2014년을 기억해 낸다면 그 책장엔 아마도 '이상한 기자회견이 많았던 해'라는 챕터명이 적혀 있을 것이다.

 

 

 

1) 사무라고치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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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18년 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명곡을 발표해 오던 작곡가가 사실은 귀도 잘 들리고 고스트 라이터(대리 작곡가)를 써서 곡을 발표해 왔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의 음악을 사랑해 왔다고 믿었던 대중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리고 그 작곡가가 자신은 귀가 잘 안 들리니 수화 통역자가 필요하다며 수화 통역을 대동한 채 기자회견을 열었는데(2014년 3월 7일), 기자가 "사과할 생각은 없나"고 질문하자 수화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뭘 사과하란 말이냐!"며 화를 낸다면.

 

일본의 베토벤이라고까지 불리던 사무라고치 마모루 씨의 기자 회견은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충분했다. 오랜 기간 그의 고스트 라이터로 활동하던 니이가키 다카시의 제보로 이미 여론이 떠들썩해진 상황에서, 그는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사실은 다른 누군가의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이제와서 그를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이유를 찾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2) 오보카타 하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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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9일,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 세포 리프로그래밍 연구그룹 주임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30세의 나이에 일약 세계 생명과학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세기의 연구자가 단 수 개월 사이에 일본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연구조작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었던 시점이었다. 일본 언론은 그녀가 좋아하는 캐릭터, 의류 브랜드, 할머니에게 물려 받아 연구실에서도 입는다는 새하얀 일본식 앞치마(얼마 뒤 그냥 도쿄의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이라는 정보도 흘러나왔다)까지 보도하며 국가적인 히로인으로 치켜 세우다가 점점 보도의 방향을 진실게임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른바 '만능세포'의 발견. 한국도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없을 많큼 많은 혼란을 경험했다. 오보카타 주임이 참가한 논문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논문대로 STAP 세포를 작성하려 해도 재연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화학연구소의 파벌과 알력에 대한 관심은 의심과 검증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과 세계가 마이크 앞에 선 그녀의 발언에 주목했다. 사과할 것인가. 미안하다고, 그냥 공명심이 앞섰다고 할 것인가. 나는 아직 젊으니 다시 똑바로 연구할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인가.

 

"저는 200번 이상 STAP 세포 작성에 성공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오보카타 주임이 이렇게 전면적인 진실게임을 요구하면서 여론은 상당히 악화됐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화학연구소는 엄격한 감시체제 하에서 검증실험에 돌입하게 되고 얼마 전인 12월 19일에 더 이상의 검증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STAP 세포는 재연되지 않았다.

 

 

 

3) 가타야마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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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부터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PC 원격조작 사건.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원격조작해 대량살인을 예고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검경이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자 진범이 인터넷을 통해 수사기관을 비웃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사건 초기 4명의 남성이 경찰에 오인체포 됐는데 그 중 한 명이 하필이면 꽤 유명한 애니메이션 연출가였다. 일본에서도 덕후문화에 대한 편견은 어느 정도 남아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직후 '역시 덕후들은 어쩔 수 없다'며 혀를 차던 자칭 교양인들은 이것이 원격조작 바이러스를 통한 누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자신들의 교양없음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면목이 없어진건 무고한 시민 4명을 체포하고 범인을 잡았다고 발표까지 했던 경찰이었다. 각 지방 경찰 책임자가 각각의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 직접 사과하는 이례적인 제스쳐까지 취하며 사태 무마를 위해 힘썼지만 진정한 명예회복은 진범 검거를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2013년 1월 5일, 범인은 언론에 세 개의 퀴즈를 보낸다. 퀴즈를 푸니 "에노시마(길고양이가 많은 곳으로 유명한 지역)의 분홍색 목걸이를 한 고양이를 찾아라"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쯤되면 정말 탐정만화의 영역이다. 일본 경찰은 진짜로 에노시마의 길고양이를 꼼꼼히 수색했고 한 고양이의 목걸이에서 바이러스 소스가 들어간 SD카드를 회수한다. 여기서 부터는 만화 보다는 좀 재미 없다. CCTV를 통해 고양이 목에 목걸이를 거는 어떤 남자의 모습을 경찰이 확인해 버렸으니까. 2월 10일, 합동수사본부는 도쿄에서 가타야마 유스케 용의자를 체포한다.

 

체포된 가타야마 용의자는 결백을 주장했고 유명한 변호사인 사토 히로시를 중심으로 변호인단이 구성된다. 사토 변호사는 "나는 그런 어려운 프로그램을 짤 줄 모른다"는 가타야마 용의자를 믿었고, 열성을 다해 변호했다. 범죄 자체는 보기 드문 복잡한 내용이었지만 사실 진범이 실제로 테러를 벌이거나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었다. 다만 경찰과 검찰을 조롱하는 범행수단이 문자 그대로 수사기관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일본의 사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지나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타야마 측의 주장에도 수긍할만한 면이 있었다. 가타야마는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4년 3월에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는 계기가 된다.

 

2014년 5월 16일, 가타야마가 재판을 받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진범을 자처하는 자가 발송한 메일이 각 언론사에 도착했다. 가타야마의 '알리바이'가 완성되면서 자존심이 상한 수사기관이 생사람 잡은거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되는 순간, 결정적인 반전이 나왔다. 경찰은 보석으로 풀려난 가타야마를 미행하고 있었고, 하루 전인 5월 15일에 가타야마가 도쿄의 어느 하천가에서 휴대폰을 파묻는 장면을 목격한 상태였다. 대포폰을 이용해 자신이 재판을 받는 시각에 메일이 발송되도록 설정하고 휴대폰은 파묻어 증거를 인멸한다는 반전 드라마를 쓰려 한 가타야마는 경찰의 미행 덕에 결국 스스로 진범임을 입증한 꼴이 되고 말았다.

 

가타야마는 5월 19일에 사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진범임을 고백했고 다음날인 5월 20일, 사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연다. 변호사로서 가타야마를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기자회견이었다. 2년간에 걸친 진실게임은 이렇게 끝났다.

 

 

 

4) 노노무라 류타로

 

한국에 고승덕이 있다면 일본에는 효고현 의회 의원 노노무라 류타로 선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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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활동비 300만 엔. 툭 터 놓고 3천 만원 정도 되는 돈의 사용처가 묘연해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솔직히 이 정도 돈은 일본에서 정치 스캔들 축에도 끼기 힘들다. 7월 2일, 일본에 43개나 있는 현 중 하나의 현(지방자치단체)의 현 지사도 아니고 현의회 의원 한 명이 기자회견을 열었을때, 사람들은 모두 그냥 그저 그런 공금 유용 사건이려니 라고 생각했다. 기자들도 마치 오래된 연인들이 때론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듯 취재장비를 챙겨 기자회견장으로 향했으리라. 자신들이 올해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특종의 현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리고 그들은 그 기자회견장에서, 노노무라 류타로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진정한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고작 300만 엔으로 일본 열도를 뒤엎은 영웅! 원래 고수는 쓸데없는 현란한 초식 따위 쓰지 않는다. 그의 초식은 단 두 개 였다.

 

누가 봐도 잘 들리고 있는 질문이 잘 안 들린다면서 귀에 손 가져다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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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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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울었다. 이것이 남자의 눈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 뒤 안 가리고 울었다.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우시는 것을 본 이후로 사람이 저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처음 봤다" 싶을 정도로 울었다. 너희들이 나를 의원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느냐! 나는!!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는!!


 

일본에서 사람을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실로 가뭄에 단비를 만난 형국이었다. 만약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에게 300만 엔 정도 그냥 대신 내 주겠다고 하고 싶었을 코미디언이 적어도 4명은 넘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모든 방송이 그의 기자회견 영상을 틀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통해 한 번은 웃었다.

 

이제 사람들은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의 엔터테인먼트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5) 도미타 나오야

 

9월 25일,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있던 일본 남자 수영 대표 도미타 나오야 선수가 무려 사진기자 취재석에서 한국 기자의 카메라를 훔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훔친 카메라는 캐논 EOS 1DX.

 

중요한 이야기라서 한 번 더 반복하겠다. 국제대회에 참가한 스포츠 선수가 기자의 카메라를 훔친 것이다.

 

CCTV에 범행 장면이 아주 잘 찍혀있었고(당연한 일이다), 도미타 나오야 선수가 범인으로 지목돼 체포된 뒤 수사를 받았다. 선수단 퇴출, 약식기소, 벌금형. 어이없는 사건이었지만 그나마 빨리 수습이 되는가 했다.

 

일본으로 귀국한 도미타는 11월 6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연다. 일본수영연맹과 일본올림픽위원회는 그에게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내린 상태였고, 자격정지에 대한 항소기간도 다 끝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의 최악의 타이밍에 기자회견을 연 그의 한 마디는 이랬다.

 

"저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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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세요. 좀 일찍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저 말이 나온 뒤의 그의 기자회견은 변명이라는 물감을 초등학생에게 쥐여준 뒤 추상화를 그리게 한 캔버스와 같았다. 그땐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통역이 일본어를 못했다(일본수영연맹측에서 이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통역의 실력은 문제가 없었다고. 누구 밥그릇을 뺏을려고 저러는지). 내가 훔친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가방에 뭔가를 집어넣었는데 난 그걸 쓰레기라고 생각했고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까지 쓰레기통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카메라라는 건 나중에 알았고 난 카메라에 관심이 없고 어쩌고 저쩌고.

 

수사를 담당한 인천남부경찰서는 즉각 반론했고, 결국 검찰이 '불만이면 정식재판 청구해라'라고 권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재판은 한국에서 내년 1월에 열릴 예정이다.

 

이상이 일본에서 망년회 시즌을 수놓고 있는 [올해의 기자회견]들이다. 부디 내년엔 좀 정상적으로 흥미로운 기자회견도 많이 볼 수 있길. 이대로 가다간 기자회견이라는 단어에 엔터테인먼트라는 의미가 포함될 지경이니.

 

 

 

2. 집단적 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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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일본을 되돌아 보려면 역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국은 '일본은 우경화 되고 있다'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일본은 우경화 되었는가'

 

나는 저런 질문을 받게되면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렇게 되묻곤 한다. "우경화가 무엇입니까?" 조금 무례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것을 제대로 확인해 두지 않으면 대화가 산으로 가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엔 조금이라도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친일파/민족의 배신자/한국을 안심시켜 일본의 재침략을 도우려 드는 스파이 3연타를 먹기 쉬운 분위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대답을 하기도 조심스럽고. 하나씩 살펴보자.

 

우경화라는 단어의 정치철학적 정의에 관한 논의에 정면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이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인 '일본이 지금 당장이라도 2차 대전 이후의 모든 제약을 풀고 완벽한 재무장을 이뤄 다시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는 우려가 참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만약 일본이 지금 한국이 가장 우려하는 [우경화 S클래스]까지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의 일부 여론은 일본의 우경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만약 그렇다면 아베 정권이 이렇게 고생을 할 일도 없다. 일본 국민의 생각과 여론이 정말 우경화 S클래스에 도달했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만 거쳤으면 된다.

 

우선 2012년 12월의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이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에서 헌법 개정 논의를 제기한다. 그 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2/3의 동의를 얻어 헌법 개정을 발의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전쟁 금지를 선언한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이 군대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군대를 보유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 자위대의 명칭을 자위군 정도로 바꾼 다음 일본 정부의 판단에 따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평범한 군대'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아베 정권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세계평화를 사랑해서?

 

답은 간단하다. 저런 절차를 밟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선 국회에서 "우리 다시 전쟁할 수 있도록 자위대를 평범한 군대로 만들자"는 주장을 펼쳐 2/3의 동의를 얻는 것은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억의 하나 중의원과 참의원을 어떻게 잘 구워삶아 헌법개정 발의를 했다 쳐도 그 뒤의 국민투표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민초들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생존해 있고 일본 사회는 적어도 자신들이 피해자 입장이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전쟁의 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후 일본의 교육은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헌법의 소중함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았다. 지금 당장 정상적인 국민투표를 통해 일본이 재무장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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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관저 앞으로 몰려든 반전시위자들

 

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냐고? 만약 저게 가능했으면 저 절차를 그대로 밟았을 테니까. 그게 아베 정권 입장에선 가장 속편하고 그들의 '꿈'을 이루는 최단거리의 방식이니 말이다. 저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일본이 그 아래 정도 되는 [우경화 A클래스] 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우리도 재무장하자' 정도의 주장을 했을때 찬성과 반대가 거의 반반에 가까워 잘 여론을 이끌어가면 재무장에 성공할 법도 한 상황 말이다.

 

2013년 일본을 뜨겁게 달군 [헌법 96조 개정론]의 요체가 이것이었다. 일본 헌법 96조는 헌법 개정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조건은 위에서 말한 대로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2/3, 그리고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이다. 어려운 조건이다. 그리고 우리가 요즘 매일 확인하고 있듯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데 미리 마련된 제도가 엄격한 기준으로 그것을 방해하면 그 기준을 낮추거나 무시하려 든다.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 정면돌파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자 "나에게 불리한 룰을 바꿔주마"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2013년 한 해 동안 일단 헌법 96조를 개정해 국회 동의 기준을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과반'으로 낮춘 다음, 국민 투표를 통해 이 문제를 돌파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도는 어마어마한 반대에 직면한다. 상황이 이쯤 되니 '주가 조금 올려줬다고 이 친구들 그대로 놔 둬선 안되겠구나'는 불안감이 일본 사회에도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과 사회 각계각층의 십자포화 속에 헌법 96조 개정론도 꼬리를 내리게 된다. 96조 개정을 통한 우회돌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아베 정권은 이 문제를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일본 사회, 일본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거부감]은 그들이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미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해외에서 어느 정도 군사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고 도움이 된다. 재정난으로 국방예산을 줄이고 싶은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자위대의 활동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자신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독자적으로 재무장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 보다는 '미일동맹을 강화해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쪽이 여론을 설득하기 훨씬 편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다른건 몰라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제약 정도는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구상이 나오게 된다. 집단적 자위권은 간단히 말해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일본은 지금까지 이런 식의 권리를 갖고 있으면 다른 국가의 전쟁에 자신들이 휘말려들 가능성이 있다며 포기를 선언해 왔다. 일본은 개별적 자위권 즉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만 무력을 행사하며 그것도 오로지 방어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전후 60년간 지켜온 '전수방위'의 개념이었다.

 

아베 정권은 자위대 창립 60주년인 2014년 7월 1일, 바로 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다는 각료회의 결정을 내린다.

 

각료회의(각의) 결정은 말 그대로 일본 정부, 더 좁게 말하자면 수상과 그가 지명한 대신(장관)들이 결정을 했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자민당은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설득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했으나 그것도 미리 도출된 결론으로 가는 '길'을 마련한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 외의 민주적인 절차, 국회의 동의나 국민 투표를 통한 동의 따위는 얻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적인 동의를 얻으려 해도 적어도 현재의 일본에선 그런 민주적인 동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일본이 전쟁에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그것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편법을 동원해 야금야금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일본의 많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고, 일본에서 보기 힘든 대규모 항의 시위까지 벌어지게 한 원인이 된다. 물론 시위 몇 번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긴 하다. 이후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지가 일본 국민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일본이 우경화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겠다. 나는 지금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런 경향이 보이긴 하지만 일본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은 우경화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다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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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결론은 아주 많은 관계자들이 "도대체 왜 선거를 한 건지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내 쉬는 중의원 선거가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여당은 우세하고, 여전히 일본 국민들은 내각을 별로 지지하지 않으면서 대안이 없어 여당에 표를 주고 있다. 투표율은 낮고, 전쟁은 싫지만 주가는 올랐으면 하는 국민들이 다시 망년회 자리로 향하고 있다.


 

 

3. 유튜버

 

다른 딴지 필진들은 이런 식의 자화자찬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내가 대신하자면, 딴지일보는 개인이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등장해 그것을 증명해 보인 매체다. 그리고 나꼼수는 개인이 방송국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 보였다. 한국 사회의 미디어가 두 번의 큰 변화를 겪는 동안 딴지는 항상 가장 앞자리에 서 있었다. 항상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는게 아쉬울 뿐.

 

한국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자리는 팟캐스트가 차지했다.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이라면, 팟캐스트를 통해 세상과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유튜버가 있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투고하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유튜버'라는 단어가 2014년 한 해 동안 크게 유행했다. 사실 유튜브는 수익성은 둘째치고 이미지 면에서 고전을 겪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동영상'이라는 새로운 대화법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고, 휴대폰으로 찍은 누군가의 파티 영상이나 누군가의 자녀의 유치원 학예회는 2분 이상 보고 있기 힘들었다.

 

결국 유튜브는 한 때 불법 업로드 된 TV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쇼, 영화 영상으로 누군가가 조회수를 벌고 저작권을 가진 회사들이 삭제 요청을 하는 저작권 침해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이 드디어 '개인이 제작하는 동영상'이라는 새로운 대화법에 익숙해진 사람들, 유튜버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튜버 라이언 히가의 동영상을 하나 보고 가자.

 

[제1세계의 고민들]

 

 

이렇게 저작권상 문제가 없는(본인들이 찍은 거니까) 재미있는 동영상으로 조회수를 끌어모으고, 채널 등록을 통해 고정적인 시청자를 모으는 사람들은 유튜브 입장에선 희망의 빛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구글이 광고에 힘을 쏟으며 개인 유튜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슈퍼마켓 점원을 하면서 밤에 비트박스 영상을 올리던 것이 대박이 나서 지금은 채널 등록자 185만 명을 자랑하는 유튜버로 변신한 히카킨 씨의 히카킨 TV.

 

 

화장과 패션 강의를 하는 사사키 아사히 씨의 '5분 메이크업' 신공.

 

 

일본식 가정요리 채널을 운영하는 오치케론 씨.

 

 

영어 회화 채널의 선두주자 치카 씨.

 

 

등등, 이 외에도 수 많은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조회수에 따라 산정되는 광고 수익이다. 그리고 이 광고 수익만으로도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 유튜브 채널의 대단한 점이다.

 

물론 이런 특성 때문에 자극적인 영상(유튜브의 특성상 여기서 선정적이라는건 성적인 의미 보다는 '기행'에 가깝다)을 올리는 친구들도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늘 소개한 분들 가운데는 그런 분들은 없지만, 한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생각해도 이런 식의 발상 자체는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자신만의 방송국 채널을 가질 수 있고, 자신있는 컨텐츠가 있다면 그걸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직업, 유튜버라는 직업이 탄생한 것이니까.

 

2014년은 이 유튜버들이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기념비적인 한 해 였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지, 혹은 일본의 미디어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2014년의 일본은 이렇게 비교적 평화로웠다. 독자제위 모두 즐거운 연말 맞이하시길. 내년엔 좀 더 자주 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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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 @unknownbeholder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