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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1. 화요일

무천







먼저 박아두고 가자. 나는 필진 중의 한 분인 물뚝심송님이 지난주에 쓰신 '[논평]한명숙 구속 : 권력의 개들, 사냥에 성공하다'(기사보기)란 글이 불편하다. 그 글의 ‘전제’ 방식이 그렇고, ‘간주’ 과정이 그러하며, 상존하는 ‘진영논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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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편. 하. 다.


비록 물뚝심송님의 글과 내 글이 전체적인 내용에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더라도, 생각이 도출되는 과정은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동시에 보다 꼼꼼하게 디벼보고 공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이 반론에서 때론 보론의 스멜이 풍기기도 한다. 


참고로 본 글은 물뚝심송님의 글이 게시되기 전, 달랑 판결문 던져주고 분석을 사주한 (필자의 개인사정쯤은 가볍게 무시하는)너클볼러의 파렴치한 갈굼으로 잉태되었음을 밝힌다. 


그럼 시작하자.





1. 성진국의, 성진국에 의한, 성진국을 위한.


도그마(Dogma)란게 있다. 물론 밤내나는 성진국의 레전더리한 레이블 도그마를 떠올려야 마땅하지만 오늘은 그거 말고, 쪼매 지적인 컨셉으로 접근해 보자. 건더기만 건져내면, 도그마란 '의심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를 말한다.

 

 

서양 중세시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있어 도그마란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카톨릭의 신학을 뜻했다. 중세로 전생한 아이슈타인이 양자역학이 어쩌고 평행우주가 어쩌고 끈이론이 어쩌니, 그러한 현상들을 요로코롬 이래저래 갖은 논증을 붙여 증명을 한다 한들, 걸레로 성당을 닦던 복사아이 하나가 갑.툭.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글 쓴 적 있슴? 성경에 그런 말씀 있슴? 없슴? 꺼져!!” 라는게 가능했던 ‘지금’ 같은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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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그마를 흔든 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었다. 여러 물리법칙과 과학법칙이 발견되면서 기존의 아리스토횽의 철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해결되었고, 고대 그리스의 여러 철학자들의 글 또한 발굴되어 아리스토횽만이 독고다이로 옳은 게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축에서 인간사에 대한 여러 신학, 철학적 난제들을 견결하게 유권해석해야 할 교황청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개처발린지 오래였다. 그 틈을 타고 스캡티시즘(Skepticism) 곧 회의주의가 자리를 잡는다. 의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 도그마에 대해 회의(의심)함으로써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나 생각, 나 존재’ 데카르트 선생의 방법론적 회의론의 시작이다. 돌아오자.


노무현 이후 13년, 이명박 이후 8년, 박근혜 이후 3년이 지났다. 이쯤되면 우리의 도그마도 흔들릴 때가 되지 않았나?


절대악인 보수와 절대선인 진보.

보수의 패배 이꼬르 진보의 승리.

상대 존재의 부정이 내 존재의 의의인 자기파멸적인 전략. etc.


검찰이, 그리고 법원이 오랜 시간 잘못하고 잘못되었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성적으로 이를 상수화해서 ’전제’하는 것엔 반대한다. 작금의 야권진영이 초토화된 원인이 바로 그것 아니었나? 매너리즘에서 온 관성적 행태로 인한 궤멸 말이다. 설사 열에 아홉이 그러하더라도 모든 시시비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그마를 부정하고 합리적 의심으로 무장해 정치. 사회개혁으로 나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2. 걷는 이태임, 뛰는 예원, 나는 동영상


올 초 ‘띠동갑내기 과외하기’란 프로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적확히는 프로그램내의 여성 출연자들이었던, 이태임과 예원의 욕설논란이 그것이었는데, 뼈만 발라내면

 

ㄱ. 이태임이 빡쳐서 예원에게 욕을 했다.

ㄴ. 예원이 일방적으로 당했다.

ㄷ. 동영상이 터졌는데 알고 보니 예원이 이래저러해서 이태임이 빡쳤더라.


가 사건의 주요골자 되겠다.


위에 나열된 ㄱ 과 ㄴ 은 소위 팩트, 사실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ㄷ 이었다. 팩트의 나열은 진실이 아니다. 팩트는 진실의 한 조각일 뿐이다. 따라서 법정은 진실(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평면적인 여러 팩트를 짜기워 입체적인 실체적 진실로 복원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이 바로 공판절차 소위 우리가 재판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그 도구로써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 무죄추정원칙, 위법증거배제원칙 등이 쓰이는 것이다.





3. 얼개


한명숙 전 총리의 사건’들’은 크게 2개의 재판으로 되어있다.


(1) 한명숙 vs.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2009.12 ~ 2013 03)

(2) 한명숙 vs.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 (2010.07 ~ 2015.08)


의 사건이 그것이다. 여기서 ‘진실’은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다. 이를 따지기 위해 금품을 수수했는지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1)번 사건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인사청탁을 빌미로 5만 달러를 뇌물로 수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소위 ‘총리공관 의자사건’으로 불리며 온갖 조롱을 듣다 결국 2013년 대법원의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번 한 전 총리가 구속수감된 건 이 의자사건과는 상관이 없다(사실 별건수사란게 있기는 하지만 넘어가자. 우리 뇌프로세스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은근히 곽영욱과 한만호를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예시해둔다.





4. 사실들


2010년 3월. MB 3년 차. 천안함 침몰으로 사회는 흉흉하고 서울시장선거는 100일 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문제는 한만호의 입에서 시작됐다. 검찰이 한신건영이라는 건설업체를 운영하다 부도를 내고 사기죄로 복역 중이던 한만호로부터 증언을 받아낸 것이다.


‘2007년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


1주 뒤 한명숙 vs. 곽영욱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올 텐테 수사결과는 후달리고, 패소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검찰에게 한만호의 증언은 가뭄의 단비 같았을 테다.


‘역전 끝내기 안타가 될 수 있다!’


통영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한만호는 급히 서울구치소로 이감된다.


쟁점은 다음과 같았다.


(1) 주요등장인물 : 한명숙 전 총리(이하 한명숙). 한만호. 한만호네 경리부장. 한명숙 비서관. 한명숙 동생


(2) 한만호는 검찰 조사에서 총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3차례에 걸쳐 한명숙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다.

 - 2007년 3월경. 현금, 수표1억, 미화를 합쳐 3억 원(*1차분)

 - 2007년 4월경. 현금. 미화 합쳐 3억여 원

 - 2007년 8월경 현금. 미화를 합쳐 3억여 원


(3) 한만호네 경리부장은 이 과정에서 여행가방을 구입하고 가방 안에 돈을 담는 일을 돕는다. 동시에 채권회수목록이라는 장부를 기록한다.


(4) 2008년 2월. 한신건영은 부도가 나고 회사부도의 충격(?)으로 입원한 한만호를 한명숙이 병문안 간 다음 날, 한명숙 비서가 한만호에게 2억 원을 돌려준다.


(5) 2009년.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2007년 3월경(1차분)의 금전 중 하나인 1억 원 수표를 한명숙 동생이 자기 전세금을 갚는 용도로 사용했다.


(6) 한만호는 검찰에서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한 진술을 1심 법정에서 거짓말이었다고 뒤집는다. ‘ 그 돈은 사업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줬거나 개인용도로 지가 썼어라’


(7) 담당검사는 안드로메다행 급행열차를 탄다.





5. 1심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되기 위해서는 2가지 ‘사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1) 돈을 준 사람의 증언

(2) 돈을 줬다는 것을 뒷받침 하는 객관적 사실


그런데 첫 번째 전제인 당사자의 자백이 법정에서 무너졌다. 한만호가 법정에 나와 검찰에서 한 자신의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라는 게 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들어와 정착시킨 것으로, 법관은 유.무죄를 판단할 때 법원에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를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검찰에서 제출한 수사서류만을 읽고 유, 무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검찰에서의 진술서는 진술하는 사람(피의자, 참고인)이 직접 쓰는 자술서가 아니다. 진술받는 사람(검사. 수사관)이 피의자 등의 진술을 듣고 이를 요약, 정리하여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술받는 수사관, 혹은 검사의 자의가 들어갈 여지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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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절대적 ‘을’인 피의자가 이등병 내무반 생활하듯 가뜩이나 쫄아서 검찰청 어느 조사실에서 읊어댄 것을 요약한 진술서와, 공개리의 다소 자유로운 법정에서, 위증 시 처벌을 받겠다고 선서한 후에 법관의 심문과 검사, 변호사 측의 심문을 통해 교차검증을 받으며 한 진술 중 어느 것을 더 신뢰해야 하는 가는 자명하다. 이 공판중심주의의 모범사례가 바로 한명숙 1심 재판이다. 170페이지에 달하는 1심 선고문에서 보듯이 23차례의 공판기일과 현장검증 등을 통해 최대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재판부의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만호가 판사더러, “제가 검찰에서 분 것은 다 구라였어요.”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쟁점은 (2)번으로 넘어갔다. 한만호가 사이코패스적 거짓말쟁일수도 있으니, 밝혀진 주요 객관적인 사실을 점검해 보자.

 

 

1) 일단 여러 가지 금융정보로 미루어 위 9억여 원에 가까운 돈이 유사한 기간에 조달이 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 한만호네 경리부장이 여행가방을 구입한 사실과 영수증이 있고, 해당 돈을 여행가방에 넣을 당시 한만호가 (주어없이) 의원과 한명숙의 비서관에게 갈 돈이라는 말을 했다는 경리부장의 증언.


3) 경리부장이 기록한 채권회수목록에 ‘의원, 5억 원 표시’라는 내용이 적혀있다는 사실.


4) 한 전 총리 비서관이 한만호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사무실 운영경비 및 한 전 총리 경선활동비의 용도로 한신건영의 법인카드를 받았고 이를 이용해 2900여만 원을 사용했다는 사실. 또 같은 해 6, 11월 같은 용도로 5500만 원의 현금을 받고, ‘그랜저티지(TG)’ 승용차나 대형 버스 등을 무상 지원받은 사실. 그리고 이러한 금품 등의 상당액을 개인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


5) 같은 비서관이 한명숙이 한만호를 병문안 간 다음 날인 2008년. 한만호에게 2억 원을 갚았다는 사실.


6) 2007년 3월경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전달했다는 금액 중 1억 원의 자기 앞 수표가 2년 뒤인 2009년 한명숙의 동생의 전세금 지불용도로 쓰였다는 사실 등이다.

 


분명히 석연찮은 정황은 있다. 특히 한명숙 비서관과 한명숙 동생에 관한 대목은 더 그렇다.


일단 소거법으로 단순화 시켜보면,


1) 9억여 원이 조성된 사실 : 2. 3차 분은 마- 의미 없다. 조달된 6억이 한명숙에게 전달됐다는 연결고리가 없다. 문제는 1차분 3억이다.


2) 경리부장의 증언은 간접사실 되겠다. 특별히 위증할 이유가 없어보이는 경리부장의 증언이고 실제로 한명숙 비서관에게 돈이 전달된 사실이 있다. 최초 검찰에서 진술한 여행가방도 등장했다. ‘의원 5억’이라는 문구도 있지만, 한명숙에게 특정되지 않았다. 어느 의원이긴 한데 홍준표도 될 수 있고, 김무성도 될 수 있고, 박근혜도 될 수 있다. 여행가방으로 비자금을 담았다는 것 까지는 접어주더라도 한명숙까지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없다.


3) 문제는 비서관이다. 한명숙의 비서관이 한만호로부터 금품 등을 제공받은 사실은 여러 증거로 입증이 됐고, 그 용도 또한 ‘한 전 총리 사무실 운영경비 및 경선활동비’ 였다. 다만 이 중 상당부분이 비서관 개인용도로 쓰였다. 사실상 배달사고다.(이로 인해 이 비서관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4) 2008년경 비서관이 한만호에게 2억을 돌려준 정황도 의심스럽다. 한신건영은 2008년 2월경 부도가 나고, 이에 충격을 받은 한만호는 병원에 입원한다. 한명숙은 한만호가 입원한 당일 직접 병문안을 가는데, 그 다음날 문제의 비서관이 한만호의 운전사에게 2억 원을 돌려준다. 한 전 총리 측은 이 2억이 비서관이 사적으로 한만호에게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지만, 2억 원을 돌려준 당일, 같은 시각에 한만호와 한명숙이 통화한 사실이 밝혀진다. 여기서 2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가설1) 1심에서 유죄를 받을 정도로 금전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해당 비서관이 한명숙의 이름을 업고 2억 원을 한만호로부터 빌렸을 수 있다. 일종의 호가호위형 금전대차다. 부도의 충격으로 입원한 한만호를 찾은 한명숙이 한만호로부터 이 사실을 듣고 비서관을 불러 문책 후 반환을 지시했을 수 있다. 의심스러운 것은 2억이라는 거금을 비서관이 하루 만에 마련해서 갚았다는 점이다. 아니면 우연히 비서관이 돈을 갚으려고 했던 때와 그 시기가 맞물렸을 수 있다.


(가설2) 2억이 비서관을 통해 한 전 총리에게까지 연결된 돈일 수 있다.


분명 꼬리한 내가 풍긴다. (가설1) 일수도 있고, (가설2) 일수도 있다. 결국 2억 원을 갚은 주체(비자금을 받은 당사자)가 한명숙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1심 법원은 판단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꼬리하지만 알 수 없다 정도?


5) 의문스러운 점은 또 있다. 최초 진술에서 한만호가 검찰에서 2007년 3월경 한명숙에게 전달했다는 금액 중 1억 원짜리 수표를 한 전 총리의 동생이 2009년 사용한 것이다. 한 전 총리 측은 비서관으로부터 동생이 빌린 돈이라고 하지만, 이전까지 비서관과 한명숙의 동생과는 금전거래가 없었다. 또한 한명숙의 동생이 비서관에게 돈을 갚은 방법도 계좌이체 등이 아니라 6장의 수표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평범한 금전거래 방식과는 달랐다. 다만, 문제는 1억 수표의 흐름이, 한만호 -> 김비서관 -> 한명숙 동생까지는 이어지지만, 한명숙 동생 -> 한명숙으로는 이어졌다는 증거가 없었다.


결국 법원은 2011년 10월. 정치자금을 제공한 당사자의 부인과 정황증거만 있고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한명숙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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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의 주요요지. 출처 경향신문)





6. 재판은 이것처럼


한명숙 vs. 한만호의 1심판결의 무죄선고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상기시킨다.


(1)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2) 유죄의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3) 공판중심주의

(4) 증거재판주의


사실, ‘라면은 김치와 함께~ ‘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당연하지 못한 세상에 사는 죄로 당대의 명판결이 되어버린 사례다.





7. 2심. 그리고 3심.


2심이 유죄로 선고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바로 3심인 최근 판결로 넘어가자.


3심이 2심과 다른 것은 법률심과 사실심의 차이이다. 거칠게 말하면, 2심까지는 법원에서 검찰과 피고인이 제기한 사실관계를 따지지만, 3심은 앞서 법원이 판결한 결론에 법률적인 문제가 있는지만을 따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법원의 판단대상이 검찰과 피고의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에서, 하급심 판사가 내린 판단의 옳고 그름으로 쟁점이 바뀌어 버린다.


결론부터 짓자.


전문증거, 즉 법원에서의 한만호의 진술을 부정하고, 검찰의 진술만을 인정한 2심은 위법하다. 형사소송법 제 244조의 4 제3항의 위반해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하는 진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관련해서 후술한다). 이는 위법이다. 끝.


그리고 이를 법리 오해로 지적해서 2심을 파기환송하지 않은 대법원의 다수의견도 위법이다. 즉 이번 한명숙 판결(대법원 2013도11650)은 명백히 위법한 판결이다. 이것은 주장이 아니다. 소수의견에서 5명의 대법관도 이는 위법이라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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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문 중에서...


2심(원심)이 검찰 측의 증거를 받아들인 과정도 위법이다. 증거를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게 법관의 재량이라 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논리와 경험의 법칙과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다. 2심은 이를 위배했으니 이 또한 위법이다. 이를 수긍한 대법원 다수의견도 위법이다.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란 판사가 지좃대로 마음대로 증거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후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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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문 중에서...


따라서 한명숙 재판에 있어 2심(2011노 3260)과 이번 대법원의 제3심(대법원 2013도11650))은 모두 위법한 판결들이다. 이 점을 명심하자. 법원에서 위법한 판결을 했다.


그럼 이런 위법은 누가 바로잡음??? 이런 범죄는 누가 처벌함???


각론으로 들어가자.


앞서 정자법(정치자금법) 위반이 되려면 2가지 사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정치자금을 제공한 당사자의 자백과 둘째, 정치자금이 제공된 객관적인 정황들이다. 2심과 다수의견(대법원은 총 13명의 판사 중 8명이 2심의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5명의 대법관이 2심과 다수의견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하 다수의견, 소수의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만호의 검찰진술을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1) 한만호의 진술번복 문제


1) 한만호가 수십 회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일관되게 한명숙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사실.

2) 한만호가 1심 법정에서 한명숙을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라고 표현한 기록도 있으므로 존경하고 자부심을 가진 정치인 한명숙에세 허위의 진술로 죄를 덮어씌울 리가 없다는 것.

3) 한만호가 어떠한 이익을 얻기 위해 허위. 과장. 왜곡된 진술을 할 특별한 정황이 없다.


다수의견 등의 위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깔끔하게 처발린다.


1) 한만호가 수십 회에 걸친 검찰 조사에서 일관되게 진술했다는 것은 검찰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 검찰은 한만호를 수사하는 과정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위법이다.


불과 4달 전에 나왔던 대법원 2015.4.23. 선고 2013도3790 판결을 기억하고 가자. 이 사건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올라온 사건이다. 당사자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자세한 관계는 지루하니 워프하고 핵심요지만 따지면 이렇다.


“피고인이 아닌 자(즉 여기서는 유동천 제일저축은행장)가 수사과정에서 진술서를 작성하였지만 검찰이 그에 대한 조사과정을 기록해 놓지 않았으면 이는 형사소송법 제 244조의 4 제3항의 위반이므로 ‘적법한 절차와 방식’의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


땅! 땅!


넉달 전 대법원 판결이다. 주소지도 같다. 컨버팅하면


‘어이- 검사. 너 수사하는 동안에 조사과정을 기록하거나 촬영해 둔 것 있어? 형소법에도 꼭 기록하라고 적혀있지? 만호가 명숙이에게 돈 줬다고 한 게 니가 줘 패서 그런 건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 만호가 제정신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를 들고와. 뭐라고? 그런 거 없다고? 이거 형소법 위반맞지? 그럼 그 진술은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어!’ 


가 되겠다.


결국 2심에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마땅한 한만호의 검찰진술을 인정한, 명백한 위법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여기서 게임셋이 되어야 했다. 나머지는 살펴볼 필요도 없이 이 하나만으로 2심은 파기환송되는 게 당연했던 거다. 물이 없으면 라면을 끓일 수 없는 거다. 그런데,


2) 다수의견은 한만호가 1심법정에서 한명숙을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존경하므로 그가 괜히 한명숙에게 허위로 죄를 덮어씌울 리가 없다는 논리를 계속 편다. 하지만 다수의견이 애써 무시하는 사실이 또 있다. 한만호는 바로 그 1심법정에서 위증을 할 시에는 처벌을 받겠다는 선서를 하고도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이다. 즉 한만호의 진술번복은 위증으로 인한 처벌을 무릅쓰고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상식적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와 한 증언과 감방 가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증언 중 어느 것을 신뢰해야 할까? 게다가 위증이 밝혀질 시에 자기를 처벌할 검사가, 방금 자기가 날린 싸다구에 맞아 시퍼렇게 독기를 품은 채 눈앞에 앉아 있는데!


3) 한만호가 허위, 과장 진술을 할 정황이 없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당시 한만호는 사기죄로 통영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9억의 사용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횡령죄로 추가 기소되는 게 뻔했다. 금융정보 등으로 입증된 9억의 돈을 어디 썼는지 하나하나 밝히는 것 보다, 통째로 한명숙에게 줘버렸다고 하는 게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는 거다. 즉 검찰에게 절대적 ‘을’로 있던 한만호가 자신의 횡령죄 처벌을 면하거나 감경하는 조건으로 허위. 과장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상식적으로 불과 부도가 나기 1년 전에 전년도 매출의 1/6이자 순이익의 4배가 넘는 9억 원을 당내 경선 주자에 불과한 한명숙에게 정치자금으로 올인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다수의견은 ‘물이 없어도 라면을 부숴서 쪼개 먹으면 뱃속에서 삶아진다’는 논리를 계속 펴고 있는 것이다.


한만호의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다수의견의 자뻑은, “이 사건의 핵심은 한만호의 검찰진술과 법정진술 중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가 아니라, 한만호의 검찰진술의 신빙성이 있냐 없냐다” 에서 절정을 맞는다. 위법한 증거를 인정한 ‘2심의 위법한 판결’을 칭찬하는 것에 서 한술 더 떠, 법원에서 밝혀진 증거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더 믿을 수 있다고 ‘자폭’한 것이다. 요컨대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의를 부정해 버렸다.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한 증언은 무시하고 남의 나와바리에서 한 증언만을 믿겠다니... 검찰의 사법부 우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명숙 원 포인트로 대법원에 낙하산을 탄 검사 출신 대법관의 위센가보다.

 

그러니 소수의견이 빡쳐서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했든 다수의견은 법정진술보다 검찰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동의할 수 없다” 고 즉각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어떤 수사를 동원했든...’이라며 점잖게 말했지만 이를 일상어로 컨버팅하면 소수의견은 다수의견더러 개소리라고 쳐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법연수원 성적


1등 법원,

 

2등 검찰,

 

3등 변호사


의 카스트적 서열구조가 당연한 사법귀족들 앞에, 한명숙 원 포인트로 대법원에 낙하산을 탄 검사 출신 신참 대법관 하나가 겨 들어왔다고 ‘법원은 좃밥이래매요’ 하고 외치고 있으니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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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팀킬...


(2) 여타 증거들


위에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이야기하며 진실(실체적 진실)은 사실을 짜깁기해 복원한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은 진실을 짜깁기하는데 필요하지만, 어떤 사실은 진실과 무관하거나 반대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고려해야 하는 사실을 선별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태임은 혼자 빡친것일까. 아니면 예원이 자초한 것일까.


1심 법원은 예원이 빡치게 했다고 판단하고, 2심과 3심은 이태임이 혼자 빡쳤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바로 법관의 자유심증의 영역이다. 주어진 사실(증거)들을 배제하거나 채택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판결의 2심과 다수의견은 바로 위의 법관의 자유심증에 전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2심. feat. 다수의견’


“(1)부터 (6)에 해당하는 사실이 있었고 나는 그 사실 중 유죄에 유리한 사실만을 채택하겠다.” - “응!. 그래도 돼!’


“검찰의 진술만을 인정할 것이며, 법원에서의 진술번복은 채택하지 않겠다” - “고럼, 고럼, 법원은 좁밥이래매요~!


“같은 정황이라더라도 한명숙에 관한 정황은 그 신빙성을 엄히 따지고, 한만호에 관한 정황은 그 신빙성을 너그럽게 판단하겠다” ” - “고로췌~ 우리 맘이지!”


“왜??? 우리는 사실(증거)에 기반하고 판단했으며, 이는 법관의 자유심증 영역으로 판사의 당연한 재량이다!” = “에브리 바디, 판사가 왕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이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비록 법관이 증거를 배제하고 채택할 전권이 있다하더라도 그 판단은 형사소송의 기본원칙 및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도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하는 한만호의 진술을 인정한 2심의 법리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다. 한만호가 법원에서 한 진술을 별다른 근거없이 부정한 2심을 인정해서 공판절차의 원칙을 위배했으며, 핵심쟁점인 한만호의 증언의 신빙성을 위해 한만호를 불러 증언을 듣지 않아 직접심리주의를 위반한 2심의 판결을 지지했다. 더 위험한 것은, 신빙성이 의심되는 한만호의 검찰 진술과 증거 등을 채택함으로써 그에 대해 검찰이 져야 할 입증책임을 피고 즉 한명숙에게로 떠 넘긴것이다.


“니 죄는 이러이러하니, 너는 요로저러한 처벌을 받아야 해”란 현대 형사법체계를 역주행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란 조선시대의 사법체계로 회귀하게끔 한 것이다.


그 밖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라는 무죄추정원칙을 파기한 것도 이번 판결의 심각한 문제다. 단언컨대, 이번 한명숙 판결에 있어서 2심의 법리오해도 그렇지만 다수의견의 고의적인 오심은, ‘범죄’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다.





8. 사법부의 범죄단체화


사실, 사법부는 구조적으로 가장 비민주주의적인 기구 중 하나다. 시민에 의해 직접 선출방식을 거치는 입법부 및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그 수장의 임명방식이 국회의 동의 및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간접방식을 거친다. 게다가 조직 또한 정부기구 중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다.


법관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막대한 신분보장이 한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사법부의 엘리트 의식과 반골기질이 묘하게 섞여 정통성 없는 친일정부와 쿠데타 정권을 제어하는데 일익을 했다. 계층 간 사회이동에도 기여해 개천에서 난 용이 대통령까지 되는 기적도 낳았다.


하지만 이도 옛말이다.


언터처블 수준의 신분보장과 폐쇄적인 사법부의 조직구조가 공인된 현대판 음서제인 로스쿨과 결합하면서 법원이 사법귀족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의 애비, 에미를 둔 금수저들이 법원의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사법부의 카르텔화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복잡한 시스템과 여러 단계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입법, 행정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비교해, 사법부의 판결은 독자적이며, 효과는 즉각적이다. 일단 법원이 깽판을 쳐서 3심을 거쳐 확정을 해버리면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입법과 행정의 복잡한 의사결정으로 되돌아가 그를 물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론상 헌법소원이라는 마지막 방법이 있지만 이런 경우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허락한 전례가 없고, 그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전 총리 측이 꼭 헌법소원까지 제기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물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요컨대, 시’발’ 컨트롤(Civil Control)이 안되는 것이다. 군부에 있어(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 문민통제 같이 카르텔화된 사법귀족들 앞에 보통 시민들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것이다. 결국 권력분립을 위해 분가를 시켜 기껏 독립적으로 만들어놨더니 얘가 너-어무 독립적으로 커서 애비, 에미를 마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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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의 사회, 정치적 의미는 자유심증주의란 미명하에 법관의 무소불위 재량권을 법원이 선언한 것이다. 다수의견대로라면 사실(증거)로서 존재하기만 하면 그 사실들의 배제와 채택은 법관의 몫이니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선택할지 불리한 증거를 선택할지는 오롯히 판사의 마음에 달린 게 된다. 피고인의 생사여탈권을 판사가 갖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판사님이 자의에 따라 지좃대로 증거를 선택하고 판결을 내리시면 무지렁이들은 아.닥.하고 감사히 받습니다.’ 하고 공식 인터뷰를 한 셈이다.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인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 적법절차주의, 무죄추정원칙 등 이 모든 것을 파기하고 선고를 내려도 현실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다.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은 수감되어야 하고, 판사들은 귀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뿐인 것이다. 후일, 정권이 바뀌어 재심이 받아진다 한들, 인혁당 사건과 같이 사법살인으로만 규정될 뿐, 정작 살인을 한 당사자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두.렵.게.도. 이번 한명숙 판결은 사법귀족화된 법원이 카르텔화 후 범죄단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입법부가 제시한 법률해석의 한계를 교묘하게 이용한 법기술자들이 권력과 손잡고 ‘고의적으로’ 사법 범죄를 자행한 것이다.


또한 우려스러운 것은, 법원의 검찰화이다. 헌법이 검찰과 법원을 다른 구조 안에 둔 것은 서로의 견제를 위함이다. 검찰의 수사결과와 기소를 법원에서 크로스체크함으로써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려 함이다.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검찰은 법치의 창이다. 이 창은 2가지 방식으로 구현된다. 위법한 자를 처벌하는 것과 위법하지 않은 자를 보호하는 것. 적극적으로 기소권을 발휘하여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는 공익의 대변자와 소극적으로 기소권을 사용하지 아니하여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는 공익의 보호자, 검찰은 오른손과 왼손이다.


형사소송하에 법원은 법치의 방패다. 공익의 대변자로서의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법관의 양심 앞에 판단함으로써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다. 공익의 방어자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방어의 목적은 검찰의 부당한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러다 부득이하게 저지하지 말아야 할 공격을 막을 수도 있다. 바로 진범을 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10명의 진범을 풀어주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법원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이번 한명숙 사건을 보면 검찰보다 법원이 더 피고인의 처벌을 위해 혈안이 된 듯하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92년 이후 국회의 대법관 임명동의표결에 역대 최저투표수를 기록했으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에 일조한 혐의가 있고, 한명숙 재판을 위해 원포인트로 투입된다는 의심이 있는 검사 출신의 박상옥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을 강행했다. 법원에서의 증거보다 검찰에서의 증거를 우선하고, 검찰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위법적인 검찰의 기소에 위법적인 법원의 판결로 맞장구치고 있다. 마치 특수부 위에 중수부, 중수부 위에 법원을 보는 듯하다. 악독하게 구는 시누이를 가끔 야단도 치고 타이르기도 하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미쳐서 팥쥐네 엄마로 돌변해 날뛰는 셈이다.


권력의 개들이 사냥에 성공했다는 물뚝심송님의 글은 반만 맞다. 한명숙은 검찰에 사냥당하고, 법원에 유기당한 것이다.





9. 결론


내가 물뚝심송님의 해당 글이 불편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전원합의체 심판에 참여한 법관들은 소수의견에서 검찰이 어떤 깽판을 치고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소수의견을 낸 법관들)은 한명숙을 옹호한 것이 아니다. 법원의 권위와 질서를 무너뜨린 검찰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을 뿐이다.”


법률심인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깽판을 친 것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다. 거의 커맨드 센터에 핵 떨구고 아비터 소환한 후에, 템플러로 SCV를 찌진 것이나 마찬가지의 사고를 쳐 버렸다. 그렇기에 소수의견이 3심 판결문의 절반을 할애해서 ‘검찰이 아니라’ 역대급 깽판을 쳐버린 다수의견을 낸 ‘동료 대법관들’을 디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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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태클...


그런데 게다대고 검찰의 깽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엄한 구멍이 아니라 남의 구멍에 들이미는 것이다. 남의 구멍 옆에서 함부로 얼쩡대다가는 조뗀다. 강용석 봐라.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대법원 '2013도11650'의 한명숙 판결의 본질은 검찰의 깽판이 아니라 법원의 판결이 위법하다는 게 핵심이다. 한명숙의 유죄여부에 대한 물뚝심송님의 판단도 그렇다.


...과연 한 전 총리는 그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는가? 잘못이 아주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정치인생을 끝장내야 할 정도로 잘못하지는 않았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이걸로 부족하다. 수표 번호 하나로 한 명의 정치인의 정치인생을 끝장내 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수표번호 이외에는 대로 된 증거는 아무것도 내밀지 못했고, 법원은 기각되었어야 마땅한 증언과 증거를 채택해 버린 것이다...


물뚝심송님이 인용한 3심판결의 소수의견도 한만호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줬다는 ‘2007년 3월경. 현금, 수표1억, 미화를 합쳐 3억 원’에 대해서는 ‘전원동의’로 정치자금법 위반임을 인정했다. 소수의견이 부정한 것은 그 외의 2차에 걸쳐 한만호가 건넸다는 6억여 원의 정치자금에 대한 것이었다.


증거도 있었다. 


(1) 실제로 비서관이 한만호로부터 금품을 건네받아 유용한 것이 밝혀졌고, 

(2) 한만호가 입원한 당일 한명숙이 병문안을 하고, 병문안 다음 날 바로 비서관이 2억 원을 갚았다는 사실, 

(3) 비서관이 한만호의 운전기사에게 2억 원을 건넨 시각에 즈음하여, 한만호와 한명숙이 2차례에 걸쳐 통화했다는 사실, 

(4)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한명숙 동생에게 문제의 수표가 건너갔다는 사실, 

(5) 돈을 빌려주고 받았다는 비서관과 한명숙 동생 간의 관계가 정상적인 금전거래 방식과 어긋난다는 사실 

(6) 한명숙의 병문안 직후 비서관이 반환한 금액인 2억과 한명숙 동생이 쓴 1억을 합치면 대략 3억 원으로 초기 한만호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사실


등은 간접사실이라는 이유로 1심에서 배제되었지만 유력한 증거가 된다.


만약, 검찰이 무리하게 추가 6억여 원 부분을 기소하지 않고, 한만호의 검찰진술 부분과 1차분 3억여 원의 돈 흐름을 좀 더 보강할 수 있었다면 한명숙 재판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갔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 거물급 정치인인데 돈 몇억 안 받았겠어?” 법원에서 역시 법 논리를 떠나 그 ‘정서’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는 식의 소위 국민의 법감정 하나만 믿고 그대로 들이받은 게 아니다. 물뚝심송님의 오류는 1차분 3억여 원에 대한 증거를 근거로 증거없는 2, 3차분 6억여 원의 정치자금 수수를 간주해 버리는 원심 및 다수의견의 오류와 그대로 일치한다. 한명숙이 2, 3차분의 정치자금을 받은 증거가 없다고 해서 1차분의 정치자금 수수의 객관적 증거들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니 두루두루 물타기가 돼서 너도 잘못, 나도 잘못으로 늘 결론 나는 것이다. 


시작하며 도그마(Dogma) 이야기를 했었다. 수천 년을 따라온 의심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알고 봤더니 구란 것 같다는 의심이 방법론적 회의론의 출발이었다.


오만잡다한 진, 보수이즘 중에 합의된 진보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수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여당과 야당의 경계가 뒤섞인 지도 오래다. 야당 대표보다 여당 원내총무가 더 야당 같은 웃픈 현실. 여기 어디에 도그마가 있을까.


정치꾼들이 틈만나면 외치는 저쪽과 이쪽의 경계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 저쪽과 그 이쪽이 내 저쪽과 내 이쪽과 겹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위처럼, 마치 내 것이었던양 찾아와야 한다는 그것. 권력.


이 상황에서 뺏아온들 그리 좋을 것 같지도 않다. 날카로운 검은 강도의 손에 들리면 남을 해치는데 쓰이지만, 서투른 검객의 손에 쥐이면 자기를 베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의당이 당명을 개정할 수 있다면 혹은 가성비 좋은 제3당이 나온다면, 그 당명이 ‘이합집산당’ 이였으면 좋겠다. 왜곡된 절대적인 선악구도에서 벗어나, 오직 시민의 복리와 행복추구만을 목적으로 이 당에 붙었다, 저 당에 붙었다 연합, 연대하며 정책을 펴는 영악한 당이 나왔으면 좋겠다. 적을 적이라 부르지 않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강퍅한 부정보다는 끈질긴 연대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손쉬운 관성보다 불편한 의심을 늘 견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를 마주보고 싫다고 말할 때,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인정을 하던 하지않던, ‘니가 싫으니까 싫은 거야'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니가 싫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뒷 쿠도 볼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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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천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