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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6. 화요일

육두불패 잡부

 



 


편집부 주


이 글은 육두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 자주 찾는 육두에 올립니다. 

국한된 개인경험과 짐작 그리고 들은 것을 토대로 쓴 것이라 

틀리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1.

 

새벽 네다섯 시, 아직 도시가 잠든 시간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치열한 모양새의 간판들도 잠들어 있다. 물론 잠들지 못한 이들을 겨냥한 24시 편의점이나 해장국집의 간판들은 이 시간에도 뜬눈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는 동안엔 잠들지 못할 것이다.

 

하짓날에도 동이 트기엔 이른 그 시간, 밤새 계속된 술자리에서 첫차 시간까지 마시자며 동행이 징하게 잡아댈 이 시간, 혹은 지난밤의 숙취 속에 싸우나로 집으로 숙소로 찜질방으로 아니면 다시 회사로 향하는 이른 출근길에서, 무심코 차창 밖으로 보았으나 곧 잊혀졌을, 하루를 시작하는 간판들이 있다.

 

○○인력 △△인력 □□인력 ◇◇인력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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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붙여 이런 문구도 있었을 게다. '철거전문 일반공 기공 당일일당지급'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짐작으론 IMF시절부터 많아져 인력시장을 대체한 인력사무소이다. 업태는 직업소개소의 일종으로 사무실 내엔 소장 상담원 같은 구성원들의 사진 이름이 오른 명단이 벽에 걸려있다.


이른 새벽을 깨우며 땀에 절고 먼지와 때에 절은 작업복 안전화 각반이 든 배낭을 하나씩 맨 (배낭도 없는 이들은 쇼핑백 같은 곳에 담아 현장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마이크를 잡은 사무원이 송출을 시작한다.


"청담동 현대건설현장 ○○업체로 호명한 17명 늦지 않게 빨리 가세요!"


그러면 가본 적이 있는 어떤 이들은 다른 현장으로 보내 달라고 말해 보기도 하고, 통하지 않으면 하루를 공치게 된다. 혹은 정원이 12명인 봉고차에 짐짝처럼 부려져 서로 간에 시비가 벌어지다 보면 그냥 가는 사람도 있게 된다.

6시 10분경이면 대게 송출이 끝나고 이른 곳에선 5시 20분경 송출을 끝내고 사무실 셔터를 내린다. 그리고 남은 호명되지 못한 이들은 속이 쓰린 데마(편집자 주 : 허탕. 현장에서는 힘든 일 맡아 처리해주는 거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노가다 용어가 그렇듯 일본어에서 유래된 듯 함.)다.

 

데마난 사람들은 쓰린 속에 시린 소주로 마음을 뎁히고 쉰 새벽, 아니, 신(新)새벽을 터덜터널 걸어, 몸을 누일 집으로 향한다. 끝이 안보이는 터널 같은 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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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내야 할 현장이 있는데 사람이 부족한 경우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 급하게 전화를 돌려 재촉하기도 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인력사무소로 지원요청을 한다. (이 경우 일당의 1할인 소개료-속칭 일비 또는 똥값이라고 서로 부르기도 한다-를 사무소 끼리 서로 나누기도 하고 요청한 업체에서 추가로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역에 있는 J사무소는 주로 자기 오더 없이 다른 인력사무소에 부족한 인력을 대주는 일이 주종이며 이름도 지원인력이다.

 

인력사무소와 같은 중개업소를 거치지 않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만나는 인력시장도 남구로역에 있다. 서울시내에 이곳 말고도 시장이 서는 곳이 몇 군데 더 있다고 들었으나, 나가 보지는 못했다.


7∼90년대 초반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밑바닥 경제사정을 살핀다며 인력시장을 찾아 불가에 모인 인부들과 얘기하는 모습이 9시뉴스에 때가 되면 나오곤 했는데, 인력사무소가 주류가 된 후론 전통시장을 찾는 것으로 대체 되어버린 느낌이다.

 

예전에는 추석이나 구정 같은 명절을 앞둔 시기면 굴뚝이나 철탑 위에 오른, 밀린 노임을 받지 못한 건설인부들의 절규를 볼 수 있기도 했다. 막장인생으로 살다 다시 내몰린 막장 앞에, 목숨을 건 그들의 1인 시위가 방송되곤 했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엔 그 어떤 처연함이 있었다.너를 보는 (거울 속의) 나를 보는, 상황 입장 하는 일이 다른 내가 나를 보는 감정.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구조도 바뀌었다. 분명 일정부분 그 세월을 살아냈고 지금은 잊혀진 그 분들, 우리 아버지들 덕분이다. 한 걸음 뒤였기에 더 힘들고 눈물 흘렸을, 우리 어머니들 덕분이다.

 

지금 영하의 칼바람 속에, 물러설 곳이라곤 허공밖에 없는 굴뚝 철탑 광고탑 위에서 밤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삼보일배를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가로막힌 자리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거듭 삼보일배를 하고 오체투지를 한다.

 

바뀐 구조, 나아진 환경도 인력사무소가 많아진 원인 중 하나일 게다. 소개료를 떼기는 하지만 일당을 떼일 걱정이 없는 노동자와 인력관리를 대신해주고 노임을 어음으로 지급해 자금에 융통이 생기는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게다. 다종다양한 업계 특성상 수금이 잘 되지 않는 곳도 있으리라. 이제 그것은 인력사무소의 몫이 되었다.

 

이른 새벽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또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지고 인력사무소의 계단을 오른 이들은 싸인지를 받아 들고 현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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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연 없고 핑계 없는 무덤이 없겠냐만은, 일하다 담배 한 대를 피는 짧은 휴식 동안에도 서로 간에 살아온 사연을 묻는 일은 좀처럼 없다.

 

작업확인서 일명 싸인지엔 현장명, 작업자명단, 인원수, 노임 등이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사무소에 따라 찾아가는 교통편과 약도 대신 풀어낸 짧은 설명이 포함된 곳도 있다.


이곳에 그 날 일을 끝내고 싸인을 받아와야만 그날 노임을 지급 받을 수 있다.

 

내 경우 명동성당 부지내 성당 앞에 지하주차장과 신축건물 공사현장이었는데 조적데모도로 갔으나, 건넨 싸인지를 현장관리자가 분실해 사무실과 통화 후 확인자의 자필 작업확인서를 받아 간 경우도 있고 롯데월드 리뉴얼 현장(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곳은 잠실 제2롯데월드 현장이고 이곳은 舊롯데월드 놀이공원 현장이었음)이었는데 그 날 인원을 부르지 않았음에도 일을 하고 자필확인서를 받아가 노임을 받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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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사무실에 전화해 "누구인데 어제 일한 롯데월드 현장으로 바로 가도 되겠느냐?"고 물어 확답을 받고, 현장에 도착해 작업복을 갈아입고 조회를 본 후 일을 하는데,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러 나온 사람도 없이 혼자인지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일 해도 되는지 관리자에게 물어봤었다. 싫다는 표정을 보여주거나 대답을 해주는 건 아닌데, 분명한 상황 설명도 없어 전화해 보니 사무실에선 이곳에 나온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오더가 없는 현장에 가서 일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제 두 군데 인력에 오더를 내 두 사무실 사람들이 같이 일했고, 오늘은 일양이 적어 다른 인력에만 오더를 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싸인지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어도, 모두가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현장이 처음이고 원청이 대기업 계열사일 경우 안전교육을 받고 혈압을 재어 규정수치 안에 들어야 일할 수 있다. 같은 회사여도 현장마다 다른데 보통 최고혈압 150, 140까지 보는 곳도 있고 요새는 저혈압도 보는 곳이 늘고 있으며 심한 경우 맥압(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의 차이, 다녀본 현장 중 딱 한곳 있었음)까지도 본다.


하루치 근로계약서에 혈압측정용지를 붙이고 직종란에 용역이라고 쓴다.

 

일용직 용역 잡부


정규직은 언감생신 비정규직 파견직 기간직 계약직도 아닌 일용직 용역 잡부, 현장에서도, 밀리고 채여 온갖 잡다한 일, 힘든 일, 허드렛일은 다 하는 용역 잡부다.


현장에서 전날 사무실에 오더를 낼 때 일 내용을 말하기도 하나, 가는 업체에 따라 대게 하는 일이 엇비슷하다. 건축골조도 (하청)직영, 형틀, 철근, 공구리, 시스템, 해체, 정리, 비계 등으로 기능에 따라 미장, 쓰미(조적), 타일 하스리, 컷팅, 코아, 석재 바라시, 면갈이, 토리판 용접등으로 나뉘고 공종에 따라 토공사, 조경, 방수, 커튼월, 구조물, 인테리어, 전기 안전, 힘으로 한만큼 먹는 곰방, 그리고 철거는 리모델링 철거와 완파.


원청직영으로 나가면 주로 청소이나, 나르고 옮기고 치우고 쌓고 어떨 땐 압롤박스(대형 폐기물 차량이나 쓰레기차의 분리되는 적재함) 안에 들어가 더 많이 넣을 수 있게 쓰레기를 분리해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하게 된다. 온갖 허드렛일에, 참도 없고 노임도 박하고 대우가 좋지 않다. GS건설이 그나마 가장 먼저 팔오(85,000원)로 올렸고 이젠 다른 데도 따라 올렸다. 근데 참 주는 것은 따라하지 않는다(GS에선 오후참을 줌, 사랑도 그러하듯 작은 것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외 신호수, 유도원 같은 일도 하며, 위 대부분의 일에 데모도(편집자 주 : 기능공을 돕는 보조 역할, 조공)로 나가고 맡아서 하기도 한다. 


물론, 업체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단가에 차이가 있고 힘든 일도 있다. 편한 일이더라도 현장 여건에 따라 힘들어지거나 힘든 일도 좀 수월해질 때가 있다. 힘든 일에 성질도 드러운 놈이, 잡부 단가에 얼렁뚱땅 기공 일에 속하거나 단가가 틀린 일을 시키면, 초짜가 되어 그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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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다녀 보면 똑같은 일을 해도 현장마다 조금씩 차이(일만 놓고 볼 때)가 있는 거다. (겹치고 다른 곳에 포함되는 부분이 있으나, 경력 잡부나 기공이 별도로 맡아서 나가는 일들도 나열했으며, 이 외에도 많으나 조금이라도 접해 보지 않은 곳은 제외하였다.)

 

가급적 잡부가 하는 일들을 빠뜨림 없이 나열해보려 했는데도 지금까지 해본 일에서조차 위에 포함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게 떠오른다. 서울시 청계천 관리처에서 발주한 준설공사였는데, 보통 산책로만 알지만 동쪽을 바라보고 서면, 오른편으로 숨겨진 빗물이 흐르는 커다란 박스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슬러지를 푸고 나르고 모으는 일을 했다. 어두운데 보이지는 않고 빠지면 인생하직하는 곳이 널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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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더 열악한 일이었는데 2012년 12월 21일 눈 내리는 동짓날, 양천구청에서 발주한 하수관로 보수공사로, 8차선 도로 위 맨홀뚜껑을 열고 내려가 시궁쥐들 사이에서 슬러지를 담고 나르고, 오후엔 장화, 하의, 상의가 원피스인 방수복을 입고 사다리를 내려갔는데 하수가 가슴까지 차는 곳이었다. 올라가려는 동료를 달래, 좀 높은 곳으로 옮겨, 여기저기 위 옆으로 하수가 떨어지는 곳에서, 슬러지를 마대에 담아 리어카로 날라, 하수가 흐르고 있는 곳에 쌓아 공간을 만들고 왔다. 

 

같은 해 봄엔 덕수궁 담장 기와교체공사도 했다. 담위에 기와 나무 흙을 걷어내니 폭이 8자 정도 되는 공간인데 두 사람이 누워도 될 정도였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 공사도 했고 용비교 개선공사 중 교각날개 갱폼 설치하느라(비계가 없어) 크레인추를 타고 오르내렸던 일도 있었다. (응봉교도 같은 현장인데 언제 완공될라나, 시예산사정 때문이라는데, 일을 가다 보면 또 끝내고 오다 보면 지금도 공사 중이다.) 한강변 아파트주민들이 앞에 짓는 건물로 일조·조망권이 침해된다며 공사현장 차량을 막아 달라고해, 사진을 찍고 막고 저쪽이 신고하고 경찰 달려오고 하루는 가고 일당은 받았다.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양천구청 하수관 공사 때 식당 주인 아줌마가 친절하고 사람이 좋았던 게 생각난다. 일은 힘들지만, 훈훈한 사람만 만나도, 그 날 하루는 견딜만하다.

 

(다음편에 계속)




 


육두불패 잡부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