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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6. 화요일

범우









2015년이 시작되었다. 조금 늦은 아침으로 떡국 한 그릇을 먹고 집사람과 딸아이와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합동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행사가 있었다. 기자들 앞에 20명 조금 넘는 유족들이 피켓을 들고 두 줄로 서 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도, 귀마개를 하거나 얼굴을 가린 사람도 없어서 더 춥다. 거칠어진 얼굴로 행사 진행마다 눈물을 흘린다. 피켓에야 '261일차'라고 적혀있지만 그날의 슬픔을 하루하루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새해 첫 날이라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떡국을 먹자는 의미로 정치인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대통령 자리는 상석에 독상을 준비했고 국회의원들 자리는 테이블 당 10명 정도로 배정하고 테이블 위에 종이로 이름을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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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엄벌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올해도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은 현충원을 참배했다. 전날 공개된 대통령의 신년사는 경제회복과 통일이었다.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나가자는 흠잡을 곳 없는 좋은 말들이다. 다만 지금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발언은 없다.


이제 하루 참배객이 250명이 안되니 합동분향소를 축소하던가 이전해서 문화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줘야한다는 <문화일보>의 기사가 이미 10월에 있었다. 유족충, 시체 팔이, 예비 폭도로 낙인찍힌 부모들의 적은 숫자가 더 추워 보인다. 아직은 도시락 폭탄을 맞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안산에는 부쩍 공사가 많았다. 장기 미집행 사업이란 이름이 붙은 자잘한 토목 공사들을 안내하는 플랜 카드가 붙고, 인적이 드믄 하천변도 정비 공사를 했다. 노후한 주공아파트 출입문을 교차하는 공사에도 시 지원금이 배당되었다. 통상적인 예산집행이었을 수도 있다.


피켓을 든 유가족들, 그 숫자만큼의 봉사자들, 또 그 정도의 기자들 , 한쪽에 따로 서있는 정치인들 , 또 그만큼 되는 일반 추모자들이 모였다. 아무리 인심을 써도 200이 되지 않아 보인다. 딸아이 친구의 부모들은 아빠만 모임에 결합하고 엄마는 남은 자매들을 건사한다고 한다. 다른 유가족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공중파와 기자들이 왜곡시켜놓은 이미지들을 해명하러 다니고 있다.


세월호 진상조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분을 진상조사위원으로 만들어놓은 특별법에라도 한 조각 기대를 걸고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떡을 썰고 정치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찬바람에 상한 얼굴들이 자녀생각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이 불편해서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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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컨테이너는 전면 절반 정도가 통유리라서 내부가 보인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종교단체이름이 각각 적힌 컨테이너와 경기도 이름이 적힌 컨테이너에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합동분향소 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컨테이너는 한국 자유총연맹 안산지부의 이름이 적혀있다. 컵라면과 커피를 무료로 준다는 문구가 있고 건장한 남자 3명이 들어있다. 한 명이 나와서 중간쯤에서 행사장 사진을 찍고 다시 들어간다.


적십자 이름이 적힌 컨테이너 동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아있어서 무언가 중요한 업무를 보는 것 같다. 적십자 회비를 내지 않던 적십자 총재님이 생각났다. 괜찮다. 나도 적십자 회비를 내지 않은지 조금 됐다.


행사가 끝나고 분향소 안으로 들어섰다. 유가족들이 너무 오랫동안 고통 받지 않기를 방명록에 적었다. 스물 몇 개의 영정사진이 빠졌다. 일반인 유가족 중에 따로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끝맺음을 하신 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끝맺음을 서약해야만 지급되는 보상금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시신을 인양하지 못해서 안치하지 않았던 실종자들의 영정이 모셔졌다. 이런 자리를 피하려하던 딸아이가 사진 속 아이들을 설명한다. 착한 아이, 예쁜 아이, 똑똑한 아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이웃집 살던 아이와 사귀던 남자아이. 어렸을 때 싸운 기억이 있는 아이.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예쁘고 빛난다. 집사람은 시신을 건지지 못한 아이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다. 엄마를 닮은 야무진 입매가 어린 시절과 그리 변하지 않았단다. 안타까운 한숨을 남기고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바람이 더 차졌다. 따뜻한 국물을 얻어달라고 해서 떡국을 나눠주는 곳으로 가보니 한 솥을 나눠주고 다시 끓이기 시작한다. 600인분을 준비했다고 해서 남는 걸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남은 떡이 버려지진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 좀 기다려야한다니 국물을 마시겠다던 집사람 생각이 바뀌었다.


화장실을 들렀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경기도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훈기에 몸이 떨린다. 지역의 운동가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한다. 집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온다. 세상이 덜 망가지게 힘든 길 가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대답하니 가족걱정을 대신한다. 사람이 적어서 더 추워 보인다는 생각이 드니 굴뚝에 올라간 쌍용차 사람들과 찬 바닥을 기어가던 기륭전자 사람들은 더 춥겠다 싶다. 화성으로 움직였다.


화성 효원 납골공원에는 내 동생과 딸아이의 아버지와 2010년 파카한일유압 투쟁 중에 암으로 죽은 동료가 있다. 딸아이가 제 아비가 있는 곳으로 먼저 걸음을 향한다. 뒤를 따라 가보니 언제 혼자 와서 고등학교 명찰을 넣어 두었다. 애초에 아이들에게 바람막이 정도가 되어 주겠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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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사진 속 얼굴이 풋풋하다. 해가 갈수록 슬픔과 기억이 옅어지는 게 미안하다. 파카한일유압시절의 동료에게 인사를 간다. 엄마와 찍은 아이들의 사진이 장례식장의 기억보다 훌쩍 자라있다.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형편이 안 좋은데 3만 원을 해야 하나 5만 원을 해야 하나 순간 고민하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고민한 기억은 나는데 조의금 액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유가족들에게 그날 실질적 도움이 되었던 건 형편이 좋지 않던 노동조합 사람들보다 회사의 자비심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뛰어다니던 꼬마들은 잘 자라고 있다.


단원고 아이들이 이곳에 많이 와있다고 딸아이가 아는 얼굴들을 찾아 나선다. 어떤 식으로 배치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달래처럼 외롭지 않게 모여 있었다. 아는 아이들을 찾아 나서던 아이가 선생님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곱고 어리다. 초임이었단다. 순수한 열정을 아이도 느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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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안치단 빈자리가 보이고 메모지가 붙어있다. 납골공원에서 개인이 분양받은 안치단을 매매하겠다는 내용과 연락처가 적혀있다. 분양한 유골 안치단에 대해 납골공원은 관리비를 받는다. 더 이상 찾아올 여력이 없거나 망자를 놓아주고 싶은 가족들은 개인적으로 안치단을 팔아야 하는 것 같다. 나중에 소나무 아래 동생을 묻어주려면 저 짓을 해야하나보다.


유골을 담는 유골함은 2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다. 따로 금장으로 장식된 안치단과 쇼파와 탁자가 놓여있는 공간은 번호키가 달린 문이 있다. 죽음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지는 몰라도 장례절차는 자본만큼 계층이 있다.


납골공원을 나오는 셋 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제암리 유적지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신정과 설, 추석 매주 월요일에 전시관이 쉰다. 합장묘 앞에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비문을 읽다가 그래도 대통령에게 매달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생각난다. 제암리의 참상을 몰래 사진 찍고 기록해서 알렸던 석호필 선교사의 동상 앞에서 잠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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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3.1운동이야기를 하다가 민족 대표33인 이야기가 나왔다. 백성들은 죽어나가는데 자기들은 자수하고 한용운 한 명 빼고 죄다 변절해버려서, 궁지로 몰린 아래쪽 사람들만 어쩔 수 없이 독립 운동한다고 또 죽어나갔다. 최근까지도 어디 대표라고 나서는 사람들이나 정치하는 사람들 크게 변한 거 같지도 않다. 현명하게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가 감당해야한다.


그래도 학교 선생님들은 제일 5층 객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아이들을 구하러 아래로 내려가셨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목을 맨 교감 선생님도 있고, 순간 본능대로 살기 위해 선택을 한 사람은 차마 교사직을 계속하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만약 세상이 더 나빠진다면 나쁜 놈들 탓도 크겠지만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걸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


마트에서 담배를 사러온 늙은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50억씩 퍼주느라고 나라에 돈이 없어서 담배 값이 올랐다며 분노를 터트린다. 힘든 삶의 응어리를 보복 당할 걱정 없는 대상에게 증오로 풀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담배 값이 올라 분노할 남루한 노년들에게 50억 이야기를 만들어 준 사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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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