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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6.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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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차 석유 파동은 선진 공업국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어. 인류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렇게 문명을 일구었고 그 힘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건 당연하며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어라? 화수분에서 꺼내쓰듯 하면 안 되는 거였어?' 하는 생각을 하도록 일깨워 주었지.


때마침 본격 상용화에 돌입한 미국의 경수로가 유럽과 선발 개도국들에게 불티나게 팔려 나갔어. 우리나라도 없는 살림에 고리에 두 기 들여놓기로 하고.


그런데 다른 대안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어. 그 중엔 북해의 바람을 막아선 유틀란트 반도의 시골 마을 대장간에서 출발한 베스타스라는 회사가 있어. 농기계 분야 중견 회사인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풍력 터빈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바람을 일으킨 과정을 함 구경해 보자구.




1898년 유틀란트 반도 대서양 바닷가의 조용한 농촌 마을 렘에서 22살의 핸드 스미쓰 한센이 동네 대장간을 인수해. 아마 처음에는 풀무로 화덕을 달구며 시뻘건 쇳덩이를 망치로 내려치던 옛날 시골 장터에 있었던 대장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나 봐. 한센은 풍부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고객 불만족에 즉각 대응하며 대장간을 안착시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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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한센이 아들 페더와 세운 철제 창틀 제조 회사 앞에서 한 장.


1928년 스미쓰 한센은 아들 페더와 철제 창틀을 만드는 회사를 세워 2차 세계대전 때까진 잘 나가다가 전쟁으로 철이 배급제가 되자 사업이 위축되었어. 전후에 아들 페더는 그의 동료들과 독일군이 남기고 간 막사에서 믹서와 주방기구를 만드는 회사를 만들어 다시 활기를 찾아. 처음에는 회사 이름이 길었다는데 나중에 이를 축약해 베스타스(Vestas)라는 새 회사 이름을 쓰게 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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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는 냉각 우유통 특허를 구매해 농민들의 요구에 맞춰 튼튼하고 실질적인 제품을 생산해 인기를 끌었대. 1956년에는 냉각 기술을 이용해 '부어마이스터 앤 베인' 조선소의 터보차저 쿨러 파트너가 되어 인터쿨러를 베스타스 포트폴리오의 베스트 셀러로 만들어.


1959년 동료들의 지분을 매입하며 승승장구하던 페더 한센은 호사다마라고 1960년 화재로 사무실과 공장이 전소하는 시련을 겪지만 경트럭용 수압 크레인으로 재기해. 1968년엔 이 수압 크레인이 베스타스 생산품의 96%를 차지하며 65개국에 수출돼. 1971년에는 크레인 생산을 위한 별도의 공장을 짓고.


이 때 처음으로 비오아 매슨이라는 기사를 채용하는데, 이 양반이 혁신가로서 풍력발전기 기술 개발에도 재능을 보였어. 베스타스는 비공개로 풍력터빈 실험에 착수했는데, 베스타스의 최초 모델은 다리우스형이었어. 얘는 그림과 같이 생긴 수직형 모델인데, 요즘 소형 풍력발전기에 채택되는 형이야. 하지만 1978년 첫 실험 설치한 녀석은 지속성과 경제성에서 불합격이었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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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형, 요즘은 소형 풍력기에 적용하고 있어.


그 해 다른 도시의 대장장이인 요르겐슨과 쉬티에스댈이 요즘 사용되고 있는 3익형 풍력 터빈을 개발하고는 자금이 없어 베스타스에게 도움을 요청해. 이 기술의 가치를 알아본 베스타스는 즉각 이들을 연구팀에 합류시켜. 그리고 이듬해 날개 길이 10미터에 30kW의 용량을 가진 풍력발전기를 회사 부지에 세워.


때마침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풍력발전 바람이 불어와. 1976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중점을 두어 1977년 에너지부를 설치하고 1978년 전력사업규제정책법을 제정하는 한편, 세금감면 등 재정적 유인책을 마련하여 재생가능에너지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이에 부응하여 캘리포니아주가 풍력발전 설치에 보조금을 주어 보급 확대에 나선 거야.


1980년 유럽의 풍력발전기 구매를 위해 미국의 존드 사가 네덜란드를 방문해. 이 소식을 들은 베스타스 사는 회사 쌍발기를 암스테르담으로 보내 존드 사의 구매단을 데려오고 마침내 2기의 판매 계약을 성사시켜. 그런데 이를 어째야 쓰까. 그해 가을 요란한 태풍이 불어와 본사에 설치했던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부러뜨렸어. 비에 젖은 날개 잔해는 회사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말이야.


디자인에 심각한 결점이 있음을 확인한 페더 한센은 어려운 결정을 해. 이미 주문받은 미국과 국내 풍력발전기의 설치를 중단하고 문제 해결에 몰두했지. 이듬해 베스타스는 유리섬유 부품을 이용해 전 생산 단계에서 고품질을 확보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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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올보르 근처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


자발적인 품질 개선 노력은 구매자들의 신뢰를 얻어 미국 존드 사가 1981년 155기를, 1982년에는 550기를 주문해. 이건 뭐 좁은 덴마크 시장에선 상상도 못 했던 물량이야. 베스타스 직원은 200명에서 870명으로 늘어났지.


1985년에는 처음으로 피치를 조정할 수 있는 터빈을 출시해. 피치 제어란 날개의 각을 조정함으로써 바람이 부는 세기에 따라 출력을 조정하는 방식이야. 말하자면 태풍이 불 때 날개가 돌아가면 걍 절딴나자녀? 그때는 날개가 돌아가지 않고 서도록 날개의 각도를 조정해주는 거지. 이렇게 베스타스는 끊임없이 기술을 향상시키며 경쟁자들을 앞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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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순항하던 베스타스의 풍력발전 사업은 큰 시련을 겪어. 미국의 존드 사가 1,200기를 12월 1일까지 납품해달라고 주문했었는데, 두 번째 선적 시 해운사가 파산해 풍력 터빈을 실은 배가 로스앤젤레스 외항에 묶여버린 거야. 존드 사는 기일을 넘긴 터빈의 인수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배달한 터빈도 결제를 하지 않았어.


다량의 재고를 다시 실어와야 하는 베스타스에게 1986년은 악몽의 해였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덴마크 정부는 세법을 개정해 과세 환급을 절반으로 줄여. 결국 베스타스는 10월 3일 지불 유예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러.


1987년 베스타스는 풍력발전에 집중하기로 하고 사업 부문을 정리해서 Vestas Wind System A/S를 설립해. 그리곤 덴마크 정부 출연 원조기구인 Danida가 인도에 후원하는 6개의 풍력 에너지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어.


세계적으로 풍력발전 설치가 본격화한 1990년대는 풍력발전산업계에도 경쟁이 치열해져. 베스타스는 날개의 무게를 줄이고 운영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등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지. 1995년에는 투노 크노프에 세계 최초의 해상 풍력 단지를 건설해 날개 길이 20미터, 500kW급 10기를 설치해. 1998년 베스타스가 상장할 때는 세계 시장의 22.1%를 점유하는 부동의 풍력발전 선두 기업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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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스페인 가메사 사로부터 1,800기를 수주하면서 점유율을 26%까지 올렸던 베스타스는 북해 혼스 리프의 해상 풍력 프로젝트에서 또 한번 귀중한 경험을 해. 2002년에 설치한 80기의 나셀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아 전량 수리해야 했어. 이때의 경험이 베스타스로 하여금 육상풍력에서 뒤쫓아온 경쟁자들을 해상풍력에서 앞서가게 하고 있지.


2004년에는 덴마크의 또 다른 풍력터빈 회사인 NEG Micon을 합병해 세계 시장 점유율 32%를 차지하고, 2007년에는 지구촌 어디에선가 4시간마다 베스타스 풍력발전기가 1기씩 설치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어. 2008년 5,524명의 종업원과 함께 6억 6800만 유로의 영업 이익을 낸 베스타스는 풍력발전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 산업임을 입증해. 중국 정부의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에 힘입어 중국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현재 베스타스의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떨어졌지만 기술을 선도하는 선두주자임에는 변함이 없어. 이런 베스타스의 오늘은 1973년 석유위기 때 재생가능에너지로 눈길을 돌려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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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몽골자치주 평원의 풍력발전기. 

베스타스는 2006년 텐진에 공장을 세워쓰.


베스타스의 성공은 한 기업의 승리만이 아니야. 대체 에너지로서 풍력에 주목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덴마크 정부, 즉 덴마크 민관의 승리이기도 해.


덴마크는 북해의 편서풍으로 사철 풍력이 풍부한 나라야. 19세기 말 전기가 보급될 무렵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보급에 나선 것도 덴마크의 라 쿠르가 처음이었어. 라 쿠르는 1903년 덴마크 풍력발전 회사를 설립하여 약 60개의 풍력발전기를 농촌 지역에 보급했대. 하지만 소형 디젤발전기가 등장하자 풍력발전은 설 자리를 잃고 이 회사는 1916년 문을 닫았지.


화석연료의 득세에 의해 주류 에너지의 자리에서 밀려나기는 했지만 덴마크에서 풍력발전은 꾸준히 연구의 맥을 이어와. 1917년 현대적인 양력형 날개를 가진 아그리코 풍차가 개발되고, 1950년 베스터 이스보 풍차와 1952년 보에 풍차를 거쳐 1957년에는 겟사 풍차가 200kW의 교류 발전기를 돌려 일반 송전선에 접속되는 최초의 풍력발전기가 되었대. 기술적으로 성공한 겟사 풍력발전소는 화력발전의 2배에 달하는 발전단가 때문에 추가로 건설되지는 못했지.


1973년의 1차 석유파동은 덴마크의 풍력발전 개발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어. 1975년 리세아는 자신의 뒷마당에 22kW의 풍력발전기를 세워 일반 송전망에 접속함으로써 개인으로서 최초로 계통망에 접속하는 사례가 되었지.


사회주의 교육 이념을 실천하는 덴마크의 포르케호이스코레(민중의 대학)의 하나인 트빈스쿨에서는 1975년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대형 풍력발전기를 계획했어. 사회운동으로 진행된 이 계획에는 후에 리소 국립연구소 테스트 & 리서치 센터의 초대 소장이 된 헤리에 페더센과 덴마크 공과대학의 울리크 크라베 교수 등 많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풍력발전 연구 개발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1978년에 완공된 트빈 풍력발전기는 탑의 높이가 53m나 되는 대형으로 450kW는 계통에 접속하고 450kW는 학교 안의 온수 공급에 사용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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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빈스쿨 풍력발전기 

출처 - 민들레 공동체


석유파동 이후 덴마크의 기술과학아카데미도 풍력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1975년 기초연구에 연구자금을 투입할 가치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정부는 이에 호응하여 1977년 풍력 프로그램을 확정하여 예산을 배정하고. 이 프로그램으로 겟사 풍차를 재운전하여 자료를 수집한 에너지부와 전력회사는 1977년 2기의 실험용 대형발전기 건설 계획을 세웠어. 이 계획으로 1979년에 완공된 니베의 풍력발전기는 로터 지름이 40미터에 630kW 출력을 가진 대형으로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덴마크를 동서로 양분하고 있는 2개의 송전회사에서 1980년대 후반에 대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었어.


풍력발전의 산업화는 1970년대 후반에 소형 풍력발전기에서부터 이루어졌어. 1976년 S. J. 윈드파워사, 1977년에는 소네베아사, 1978년에는 위드마틱사와 쿠리앙트사 등이 풍력발전기의 제조에 뛰어들어 10~15kW의 소형 발전기를 판매해. 1979년에는 이후 풍력발전산업계의 메이저로 성장한 베스타스와 노탱크(NEG미콘의 전신), 보나스 에나기 사가 풍력발전기의 판매를 시작하였어. 이 3개의 회사는 농업용 수송기계나 물탱크, 관개 설비를 제조하던 회사들로 모두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어. 기존 수요자인 농민들과 맺고 있던 네트워크가 풍력발전기의 판매와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었지. 풍력발전이 산업화 되면서 풍차 블레이드나 요 등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연구 개발도 촉진되었어.


정부는 1978년 리소 국립연구소에 테스트 & 리서치 센터를 설치하여 풍력발전기와 관련 장비의 성능을 검증하는 서비스를 시작해. 1979년에는 풍력발전 소유자에게 건설자금의 30%를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이 지원율은 차츰 줄어들어 1989년에 폐지되었는데 초기 풍력발전기의 보급에 큰 힘이 되었어. 1979년부터 1985년 사이에 약 1,300기의 풍력발전기가 이 지원금의 혜택을 받아 건설되었대. 1970년대에는 주로 농민이 자신의 밭에 한두 대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80년대가 되자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풍력발전기를 구입하는 사례가 늘었어. 1985년에는 협동조합에 의한 설치가 개인의 설치를 넘어섰지.


연구와 검증 기관을 설립하고 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덴마크 정부는 1981년 '에너지정책 81'에서 6만 대의 소규모 풍력발전기를 설치하여 2000년에는 총 전력의 8.5%를 풍력이 담당하게 한다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해. 1984년에는 공공전력협회와 풍력발전기제조자협회 사이에 ‘10년 합의’를 체결하여, 풍력발전기의 일반 송전망 접속 비용의 35%를 전력회사가 부담하고 생산된 잉여 전력은 소비자 전력요금의 85%의 값으로 전력회사가 매입하기로 하였어. 1985년에는 에너지부와 전력회사가 1990년까지 매년 20MW씩 총 100MW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고. 1992년에는 풍력발전법을 제정하여 전력회사는 풍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소매가격의 85%에 구입하도록 법제화했지.


이와 같이 민간 기업의 창의성과 정부의 지원, 제도적 밑받침이 한 데 모여 덴마크의 풍력발전기는 한때 6000여 기에 이르러. 2011년 6월 말 기준으로 덴마크의 풍력발전기는 404기의 해상풍력발전기를 포함하여 모두 4,984기이며 총 발전용량은 3,802MW에 달해. 이는 원자력발전소 4기에 해당하는 설비용량이야. 설치 대수가 줄어든 반면 발전용량이 늘어난 것은 교체되는 풍력발전기가 성능이 개선되거나 대형화하였기 때문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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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스 사를 비롯한 덴마크의 풍력발전산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였으며 2011년 기준 약 2만 5천 명을 고용하고 연간 60억 유로를 수출하는 기간산업으로 자리를 잡았어. 오늘날 덴마크의 풍력발전 산업을 세계 1위로 만든 것은 풍력이 농촌 지역의 대체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투자한 민간기업의 노력 위에 개발과 보급을 위해 지원과 보조를 아끼지 않은 정부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야.


이렇게 재생가능에너지는 우리 곁으로 다가와 어느새 에너지 공급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어.


재생가능(renewable) 에너지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해도 또 주어지는 에너지란 의미야.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쓰고 나면 쓴 만큼 없어지지만 풍력이나 태양에너지는 일정 시점에 우리가 그 에너지를 사용해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 언제까지? 태양이 팽창해서 지구를 삼켜버릴 50억 년 후까지.


재생가능에너지에는 이제 기존의 발전원과 경쟁력을 갖춘 풍력 외에 태양에너지, 지열, 소수력, 해양에너지, 바이오 에너지가 있어.


태양에너지는 열에너지를 바로 이용하는 태양열과 태양전지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분야로 나뉘어.


지열은 땅속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에 사용하거나 발전하는 방식이야.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화산대나 지진대에 있는 나라들은 뜨거운 온천수로 발전까지 해. 필리핀에도 지열발전소가 많아.


소수력은 10MW 이하의 작은 수력발전소를 말해. 큰 수력발전소는 그만큼 대형 댐을 필요로 하는데 대형 댐은 대규모 수몰지구가 발생하고 하류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지.


해양에너지는 시화호 조력발전소 같이 댐을 만들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조력발전, 명량해전으로 지난해 극장가를 석권한 울돌목 마냥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는 조류발전, 밑으로 내려갈수록 차가워지는 해수온도차의 활용,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힘을 이용하는 파력발전 등이 있어. 이 중에 조력발전은 경제성과 환경 피해를 잘 따져봐야 해.


바이오 에너지는 식물이 만들어놓은 탄화수소화합물을 이용하는 거야. 장작이나 숯도 여기에 포함돼. 사실 이 넘은 인류의 에너지 역사를 함께해온 녀석인데, 걍 갔다 때는 재래식 방식보다는 바이오 가스화, 에탄올이나 바이오 디젤같이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연료 등이 관심의 대상이야. 그런데 바이오 에너지는 식물 생태계가 재생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해. 그 이상으로 사용할 경우 식물 생태계는 점점 줄어들게 되니까 말야. 옛날처럼 민둥산이 되면 안 되잖아.


재생가능에너지의 특징은 첫째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라는 점이야. 지열을 제외한 모든 재생가능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야. 지열은 대부분 지각과 맨틀에 있는 방사성 물질의 방사성 붕괴열이래. 풍력은 태양에너지가 대기를 불균등하게 데움으로써 나타나는 대기의 운동에너지이고, 수력은 태양에너지가 물을 증발시켜 비로 내려줌으로써 생긴 위치에너지야. 해양온도 차 역시 태양이 데우는 차이에 의한 거고, 이로 인해 해류가 생긴 것이니 조류 역시 태양에너지에서 비롯된 거야.


아, 조력은 달과 태양의 인력이 작용한 것이니 얘도 예외. 하지만 바이오 에너지는 태양에너지를 식물이 화학에너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니 재생가능에너지는 지열과 조력 외에는 모두 태양에너지가 변환된 형태인 셈이야. 그래서 얘들은 내일 아침에도 태양이 떠오르는 한 쭉~ 'Tomorrow is another day'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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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의 웹툰, '무한동력'의 한 장면.

재생가능에너지는 무한동력은 아니지만 

50억 년 동안 공급할 수 있으면 거의 무한한 에너지라고 봐야지 뭐~


두 번째 재생가능에너지의 장점은 연료 값이 들지 않는다는 거야.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는 매장 자원을 채굴한 뒤 정유하거나 농축해서 쓰니까 원료 값이 들어가지만 재생가능에너지는 그냥 주어지는 에너지를 변환해서 쓰는 거야. 그러니까 변환하는 비용만 들어가지. 덴마크에서 풍력에 주목했던 것도 이 대목이야. 지금은 덴마크도 북해의 산유국이지만 1차 석유파동이 왔을 땐 80%를 수입하는 처지였었거든. 당근 자연에서 풍부하게 주어지는 풍력에서 수입대체 에너지원을 발견했던 거지. 이제는 27.8%의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는 덴마크, 96.5%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과연 고유가 시대에 누가 더 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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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안 팔아주면 우리 막내딸 마르다 식비는 어쩔~


세 번째는 지속가능성이야. 재생가능에너지는 에너지 변환 과정에서 폐기물을 내지 않아. 화석연료든 원자력이든 재생가능에너지든 발전기를 만드는 과정에는 폐기물이 나오지. 시방 얘기하는 건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말하는 거야. 화석연료는 이산화황이나 산화질소물 등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원자력은 10만 년이 지나야 원상복귀하는 폐기물을 내놓지만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은 그렇지 않아. 재생가능에너지가 현재 에너지원 중에서는 지속가능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야. 바이오 에너지는 연소 시 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해. 다만 만들어질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결과적으로 탄소중립적이라는 의미에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끼워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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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이 산 하나 맹그는 건 일두 아녀~


하지만 세상만사 길고 짧은 게 있는 법. 재생가능에너지는 양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지역에 고루 주어지다 보니 소규모라는 점, 분산되어 있다는 점, 또 기상 상태에 따라 에너지 공급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단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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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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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