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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2. 수요일

씻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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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놀이의 역사 1 - 위기의 메커니즘

돈놀이의 역사 2 - 모두의 "합리적" 사익추구, 재난이 되다







올해 7월, 도시바에서 회계 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무려 1.2조 원 규모의 이익이 7년에 걸쳐 부풀려졌다고 한다. 명목상의 이유는 핵발전소 사업에 투자했다가 원전사고로 인해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는 등 실적이 악화되자, 이걸 은폐하기 위해 약간의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이를 조사한 내부 조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거의 전 사업 부분에서 관행적으로 수익을 부풀려서 보고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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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loomberg>


근데 이게 도시바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과 4년 전 광학 기업인 올림푸스사에서 1.5조 원 가량의 회계 조작이 발생했었다. 일본에서 발생한 대형 회계 조작 사건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내용을 찬찬히 뜯어봤을 때, 두 사건엔 일련의 유사점이 있다. 핵발전소 사업에 투자한 도시바처럼 올림푸스 역시 메디컬 분야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봤고, 이를 메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익을 부풀려왔다는 점이다.


이런 회계 조작 스캔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좀 디벼 볼까한다.


먼저 회계 조작이란 게 뭐냐. 코스닥이건 코스피건 대부분의 상장 회사는 회사의 재무 상태를 나타내는 재무제표를 공시하게 되어있다. 공시란 전자공 시스템이나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무제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개된 재무제표를 가지고 증권사 애널들이 분석을 하고, 투자자들이 해당 회사에 투자를 할지 말지를 정하게 된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 숫자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막연히 대표이사가 나서서 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재무제표상에 수익이 얼마나 늘었는지 각종 경제지에 실리고, 주가에 바로 반영됨으로 좀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숫자들은 본인들의 성과급에 직접 연동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경영진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스탁옵션(현 주가와 상관없이 특정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이다)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니 성적표를 위조하고픈 욕구가 졸라 커지게 되는 거다. 도시바처럼 약간 손실일 때 매출이나 수익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페이퍼상 비중 있는 수익으로 바꾸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피어오르게 된다. 눈 딱 감고 약간의 창의성을 발휘해주면, 장부 고치는 것쯤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물론, 재무제표는 공시 전에 회계법인에게 감사를 받아야한다. 금융당국이나 주주도 호구가 아니니, 보통 이사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재무제표가 제대로 됐는지 회계법인을 통해 확인받는다. 미국 같은 경우엔 이사회 내에(참고로 이사는 주주들이 뽑는다) 감사위원회를 두어서, 회계법인을 선정하고, 내부 재무정보를 관리하게 된다.


이 회계법인이 주는 의견에는 총 네 가지가 있는데, 제일 좋은 게 적정, 즉 Unqualified이다. 근데 재밌는 건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으로 무려 99%의 상장사의 재무제표가 적정의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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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절대다수의 기업이 적정의견을 받았다는 건, 우리나라 기업들 재무제표가 졸라 정확하던지, 회계 감사가 완전 야매던지 둘 중의 하나란 소리다. 어느 쪽이던 간에 회계 감사 자체가 필요 없을 듯싶다.


회계 감사인이 이 말을 들으면 억울해서 복장이 터지리라. 사실 감사인이 의견을 표명하는 재무제표는 대부분이 감사인의 의견이 반영된 재무제표다. 감사인이 발견한 재무제표상의 오류(misstatement)는 회사 경연진에게 전달되고, 단순 오류일 경우, 경영진에서 지적사항을 반영한 재무제표를 보내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지나치게 많이 수정되는 경우다. 제대로 된 기업일수록 회계 부서에서 괜찮은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감사인은 오류만 바로잡으면 되지만, 규모가 작거나 회계팀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아예 재무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인이 재작성 하다싶은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감사인이 스스로 작성한 재무제표에 대해서 스스로 의견을 표명한다면, 당연히 적정 의견을 부여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재무제표 항목이 적정한지 감사인이 판단하기가 어려운 경우다. 예를 들어 기업 장부에 구조화 증권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이 있을 경우, 일반 회계사가 자산의 공정가격을 평가하는 건 어렵다. 규모 있는 빅펌의 경우, 내부에 자산가치평가 전문가가 따로 있어서 위탁을 하기도 하는데, 이 사람들한테 맡기면 감사비용이 늘어나는 데다가, 감사시즌엔 이 사람들도 졸라 바쁘기 때문에 찾기도 어렵다. 이렇게 복잡한 거래일수록 회계사가 파악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회계 감사의 근본적인 한계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유수임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감사인을 직접 선택하는 구조이다. 명목적으로는 이사회에서 선임결정을 내리지만, 우리나라같이 소유와 경영이 덜 분리된 지배구조에서는 경영진이 회계사에 비해 절대 갑이다. 감사인이 너무 빡빡하게 감사를 했다간, 바로 짤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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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 언급했던 도시바와 올림푸스 사태에 또 다른 공통점은, 오랫동안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K사가 감사를 하다가, 회계 부정이 적발되기 직전에 또 다른 4대 회계법인인 E사로 감사인이 변경됐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E사가 연속해서 두 번이나 K사로부터 폭탄을 떠안게 된 건 우연이겠으나, 회계 감사인이 부정적발을 전후해서 교체된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K사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경영진에 회계 부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고, 경영진은 감사인 교체를 결정했으리라.


다만 두 사태의 원인은 조금 다르게 진단해 볼 수 있다. 도시바 회계 조작 사건의 경우, 충격적인 것이 경영진의 조직적인 지시 없이 일선에 있는 부서들이 ‘알아서’ 매출과 이익을 조작해 왔다는 것이다. 아마 일선 부서가 작성한 최초의 장부부터 관행적으로 회계 조작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감사인들이 적발하기 더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 반면 올림푸스는 ‘도바시’라고 불리는 회계 수법(손실을 자회사로 떠넘긴다는 측면에서 엘론과 유사)으로 경영진 주도의 회계 조작이 일어났다. 이를 바지사장과 다름없었던 외국인 CEO와 감사인이었던 KPMG가 지적하자, 이들을 모두 교체해버렸다. 즉, 도시바 사태가 실적 제일주의와 같은 직원 전반에 걸친 문제라면, 올림푸스는 취약한 지배구조가 빚어낸 참극이라는 거다. 무서운 건, 한국 기업들이 이 두 가지 문제 모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회계 감사인과의 갑을관계가 더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게 감사료다.


한국의 회계 감사료는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다. 조세일보에 보도된 기사('비합리적인 감사보수, 경제 근간 뒤흔든다')를 보자



"권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약 228조원. 미국 GE의 1.6배에 달한다. 반면 감사보수를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37억 원에 그쳐 매출액 대비 표준화 후 비교해도 GE의 2~3%에 불과하다. GE가 삼성전자에 비해 약 23배의 감사보수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상장기업 평균 감사시간은 한국의 1~3배이다. 2012년 기준 감사보수는 상장기업 한 곳당 일본 4억6000만원, 한국 1억 1000만원으로 큰 차이가 난다."



사실, GE는 제조업 기업이긴 하지만, 웬만한 은행을 능가하는 규모의 금융 자회사들을 가지고 있다(최근 GE 캐피탈을 처분한다는 발표가 있기는 했다). 증권화 채권을 비롯, 온갖 복잡한 거래를 하기 때문에 단순히 23배라는 수치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기는 하다(위에서 살짝 적은 바 있지만, 복잡한 금융자산을 평가하는 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감사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회계 감사료가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데는 쉽게 공감 할 수 있다. 회계 감사의 예산인 감사료가 낮다는 건, 훨씬 덜 숙련되고, 적은 수의 회계사가 짧은 시간동안 때려 박아서 회계 감사를 한다는 말이다. 감사기간 동안 수많은 회계사들이 쉼없이 야근을 해대지만, 이렇게 비현실적인 감사료 속에서는 회계 감사의 질에 큰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회계 감사료가 오를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부실 회계 감사에 대한 처벌을 늘릴 필요가 있다. 미국 회계 감사료가 저렇게 상승한 데는, 사실 엔론 사태가 큰 영향을 끼쳤다. 매출기준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기업이었던 에너지회사인 엔론은, 2001년도에, 무려 40조 원짜리 회계 조작 스캔들에 휘말렸다.


워낙 다양한 회계 수법을 썼지만 그중 한 가지를 간략하게 다루면,


1.페이퍼 컴퍼니를 해외의 설립한다.

2.이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대출을 받는다.

3.대출금으로, 엔론의 부실 자산들을 비싼 값에 매입한다.


은행이 호구도 아니고, 자본도 자산도 없는 페이퍼에 많은 대출을 해준 것은, 대출과정에서 당시 엔론 CFO였던 Fastow가 이 회사에 대한 지급보증을 해줬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엔론을 믿고 대출을 해 준거였지만, 장부상으로는 이 채무관계가 드러나질 않으니, Fastow는 이점을 악용하여 엔론의 자산 가격을 오랫동안 떠받쳤다.


이 부정을 눈감아줬던 담당 회계법인이 Arthur Andersen이었다. 지금은 4대 회계법인이라 부르지만, 당시까지는 5대 회계법인 중의 하나였던 기업이다. 이 스캔들이 터지고 난 직후 엔론은 파산해버렸고, Arthur Andersen은 인실좆을 시전 당하는데, 먼저 주주들에게 집단 소송을 당했고 곧이어 회계 감사 라이선스를 자발적으로 포기했으며, 결국 공중분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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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ulsa world>


이후 살아남은 기업들에게도 보다 엄격한 윤리규정이 적용하는 SOX법이 제정되었고, 상장 법인들의 회계 감사를 감리하는 PCAOB라는 단체까지 생겼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회계법인들은 훨씬 더 빡세게 회계 감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감사료와 감사의 질이 올라갔다.


꼭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뼈아픈 외국 사례들이 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끔 시스템을 구비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감사료는 좀 더 현실화하고, 부실감사에는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업에 계신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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