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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2.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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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1> 일간지 1]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2> 일간지 2]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3> 일간지 3]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4> 일간지 4]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5> 프랑스 언론이 본 레이디가카]

[프랑스 언론의 스펙트럼 <6> 살해당한 자유, 샤를리 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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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쿠아시 형제의 총에 동료 8명을 잃은 <샤를리 엡도> 홈페이지는 온통 검은색 일색이다.
"나는 샤를리입니다"라는 문구 아래 "연필은 폭력보다 항상 우위에 있을 것이고,
자유는 범세계적 권리이며 당신들이 우리를 지지해 주기 때문에,
우리 "샤를리"는 다음 주 수요일에도 발간됩니다."라고 적혀 있고 
"<샤를리 엡도>, 살아남은 자들의 신문, 1월 14일 수요일"이라며 
이 주간지를 계속 발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2015년 1월 7일 오전 11시 30분경, 프랑스 파리 11구 니콜라 아페르 가 부근. 검은색 시트로앵 C3 승용차 한 대가 멈춘다. 차에서 내린 건장한 두 명의 남자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들고 10번지에 위치한 프랑스의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엡도> 로 향한다. 건물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그들은 길에서 마주친 집배원들을 위협하여 위치를 알아낸다. 들어간 4층짜리 건물에는 여러 개의 회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침략자들은 소련제의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으로 추정되는 무기로 건물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위협, <샤를리 엡도> 사무실로 향한다. 몇 개 회사의 문을 열어 보지만 허탕을 친다. 바로 그때 이들은 <샤를리 엡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코린 레이(Corinne Rey), 일명 코코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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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9일 방송된 프랑스 아르테 채널에 나와
동료를 잃은 슬픔과 언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코코.

그녀가 직접 그려서 나온 그림 속에서 "공격당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고양이는 <샤를리 엡도>를 뜻한다. 

여기서도 "멍청하고 심술궂은 유머"로 대표되는 샤를리 정신이 엿보이는데,

프랑스어로 암고양이를 뜻하는 'chatte'는 여성의 생식기를 뜻하며,

고양이의 대사를 직역하면 "만져졌지만 흐르지는 않았다"가 된다. 브라보!

 


공포에 질린 코코는 테러리스트들을 건물 3층에 위치한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데려다 주고,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문까지 열어 주었다. 범인들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서는 주간 미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총살이 시작된다. 목격자들의 증언으로는, 범인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한 이들을 비교적 명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5분여의 총살을 마친 범인들은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고 건물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급히 도착한 경찰과 마주한 거리에서도 총은 난사되었다. 한 경찰은 발에, 다른 경찰들은 방탄조끼에 총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튀니지 출신의 아메드 메라베(Ahmed Merabet)의 살해 장면은 동영상으로 공개되었다. (해당 동영상은 전편에 있다) 메라베는 먼저 총을 맞고 자리에 쓰러져 범인들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범인들은 그의 머리에 총을 쏘아 버린다. 테러리스트들은 자리를 떠나며 "무함마드의 복수를 해냈다!", "우리가 <샤를리 엡도>를 죽였다!"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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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에 한바탕 총기 난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경찰에게 총격을 가하는 쿠아시 형제.
먼저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메라베에게 "우리를 죽일 생각이냐!"고 묻더니,
메라베가 "아니, 이제 됐어, 대장(니가 대장이야)"이라고 말하자마자 머리에 총을 쏘아 사살해 버린다.
알제리 출신 이민 2세 쿠아시 형제가 테러범이 되었다면, 
튀니지 출신의 독실한 무슬림인 메라베는 경찰이 되었다.

 


이들은 사이드 쿠아시(Saïd Kouachi)와 세리프 쿠아시(Chérif Kouachi) 형제. 처음에는 범인들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지만, 도망친 이후 형인 사이드는 차에서 내리면서 자기 신분증을 챙기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이를 바탕으로 쿠아시 형제의 신상이 신속하게 파악될 수 있었던 것. 프랑스 사법 경찰은 범행에 고급 세단이 아니라 시트로앵 C3(프랑스 시트로앵 사에서 2002년부터 출시된 슈퍼미니카. 보통 젊은 나이의 초보운전자들이 몰기 시작하는 정도의 차)을 사용했다던가, 신분증을 차에 놓고 내렸다던가 하는 점을 미루어 이들이 제대로 훈련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TF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쿠아시 형제가 버리고 간 차에서는 지하디스트 깃발과 십여 개의 화염병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12명. 11명이 중상을 입었고, 그중 4명은 심각한 상태다. 이번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 중 기자는 8명이었으며 그중에는 카뷔(Cabu), 볼린스키(Wolinski) 등 프랑스 굴지의 시사만화가가 속해 있으며 경찰도 2명이나 된다. 그리고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er) 역시 목숨을 거두었다.


사건 직후 프랑스 경찰은 쿠아시 형제의 행방을 뒤지는 동시에 제3의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 제3의 인물은 두 형제와 함께 차를 타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으나, 살육이 일어나는 동안 혼자서 야마하 T-max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떠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때 쿠아시 형제 중 동생인 쉐리프의 처남 무라드 하미드(Mourad Hamyd, 18세)는 사건이 일어난 날 밤 11시경, SNS에 자신의 이름이 수배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자진 출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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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 SNS에 떠돌아다니던 문서. 이것을 보고 하미드가 자진 출두했다. 
나중에 위조문서로 밝혀진 이 문서에는 사이드 형제 외에 무라드 하미드의 인적사항도 적혀 있는데,
생년월일 말고는 밝혀진 바가 없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노숙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하미드를 제3의 인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그가 자진 출두한 경찰서는 아르덴(Ardennes) 지역의 샤를빌 메지에(Charleville-Mézières)로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239km나 떨어져 있으며, 벨기에와의 국경에서 10km밖에 되지 않는 곳에 있다. 게다가 같은 반 친구들의 여러 증언이 SNS에 올라오면서 하미드의 혐의없음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하미드는 노숙자도 아니었다. 결국, 하미드는 48시간의 구류 끝에 1월 9일 금요일 저녁, 풀려났다. 그의 단 하나의 죄는 쉐리프 쿠아시와 가족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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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드 하미드가 구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 친구들은 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욕설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아이"로 알려진 무라드가
"사건 당일 그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으며,
"나는 샤를리입니다"와 같은 컨셉의 그림을 SNS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림의 글은 "무라드는 무죄입니다"

 


사건 발생 한 시간여가 지나서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는 파리시를 비롯한 일 드 프랑스 지역에 가장 높은 수준의 테러경계경보를 발령한다. 일 드 프랑스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한 지역 즈음 된다. 초기에 범인들을 진압하지 못하고 되레 죽임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범인들의 무장 수위에 '도망간' 프랑스 경찰의 무능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전문가들은 프랑스 경찰이 지능적이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만약 마치 미국에서처럼 테러 직후 막대한 경찰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다면 "프랑스의 강하고 위대함"을 보여주었을지는 모르나 어떤 식으로든 공분을 샀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 또한, 범인 뒤에 숨은 조직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결과적으로 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쿠아시 형제에 대한 추적은 파리 지역과 랭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쿠아시 형제의 가족과 측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범인들은 랭스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헬리콥터가 동원되고 최대한의 경찰동력 및 경찰특공대(RAID)가 파견되는 등 대대적인 수색이 진행되었으나 쿠아시 형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쿠아시 형제의 측근 총 9명이 구류되어 이번 사건과의 연관 여부를 조사받았다.


한편,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진다. <샤를리 엡도> 사건이 있은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1월 8일 아침 8시가 약간 지난 시각, 몽루즈(Montrouge)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몽루즈는 파리 남쪽의 소도시로 비교적 조용한 거주지로 알려졌다. 사건 몇 분 전에 발생한 가벼운 교통사고로 거리가 혼잡해 지자, 이를 정리하던 경찰과 옆에 있던 환경미화원이 길거리에서 총과 방탄조끼로 무장한 한 남성이 쏜 총에 맞은 것. 이 과정에서 숨진 경찰은 숨지고 환경미화원은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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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루즈의 거리 한복판에서 범인의 총에 맞아 숨진 경찰은 이제 막 경찰 시험에 합격하여
수습 과정에 있었던 25살난 클라리사 장 필립(Clarissa Jean-Phippe). 
마티니크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프랑스 본토에서 경찰이 되기 위해 유학을 와서 공부했고,
이제 막 그 꿈을 이룬 상태였다.

 


이 사건의 범인은 아메드 쿨리발리(Amedy Coulibaly). 범행 이후 도망가는 과정에서 복면을 잃어버려 DNA 검사로 그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후 경찰은 쿨리발리의 동거녀 하야트 붐디엔(Hayat Boumeddienne) 역시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몽루즈 사건은 <샤를리 엡도> 사건과 상당 부분 유사했으나 사건 조사 초기에는 둘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하였다. 나중에 경찰 조사로 밝혀진 것은 쿠아시 형제와 쿨리발리와의 관계가 수감생활동안 시작되었고, 그 관계가 계속되었다는 사실. 실제로 쉐리프 쿠아시의 아내와 쿨리발리의 동거녀는 1년 넘게 지속해서 전화통화를 주고받았다. 이후 경찰 조사는 이 두 사건을 묶어서 진행한다.


쿠아시 형제의 행적이 드러난 것은 몽루즈 사건이 있었던 직후, 즉 <샤를리 엡도> 사건 다음날인 1월 8일 오전 9시경,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65km가량 떨어진 피카르디의 보시엔(Vauciennes)의 한 주유소에서였다. 여기서 쿠아시 형제는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해 음식과 차를 훔쳐 달아났다. 이들은 무장한 위험인물로 분류되었고, 파리 지역에 발령된 테러경계경보가 피카르디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경찰의 수색을 돕기 위해 군대가 파견되었고, 쿠아시 형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여러 대의 헬기가 동원되는 등 대대적인 수색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2015년 1월 9일 오전 8시 10분경, 쿠아시 형제는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45km 떨어진 몽타니 생트 펠리시테(Montagny-Sainte-Félicité)에서 여성에게 푸조 승용차를 훔쳐 타고 달아났다. 경찰과의 추격전이 벌어졌고, 9시경, 파리에서 42킬로미터 떨어진 다마르탕 엉 고엘(Dammartin-en-Goële)에서 정찰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총격전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쉐리프 쿠아시가 목 부위에 약간의 상처를 입는다. 그로부터 15분 후, 쿠아시 형제는 산업단지의 인쇄회사 건물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인질은 직전에 위협하여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서 인질극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경찰과 군대의 특공대는 이 건물을 에워 싼 상황에서 쿠아시 형제는 순교자로서 죽을 준비가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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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아시 형제의 행적



한편, 몽루즈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쿨리발리는 사건 다음날인 1월 9일 오전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어, 경찰은 측근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후 1시경 이페르 카셰(Hyper Cacher)라는 파리 동쪽에 인접한 포트 방센느(Porte de Vincennes) 근처 유대인 슈퍼에 나타난 쿨리발리는 두 개의 자동소총을 쏘아 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이 슈퍼에 있던 사람 중 세 명이 죽고, 한 명 이상은 도망쳤으며, 다른 사람들은 냉장실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출동하고 파리 외곽순환도로가 폐쇄되었으며 지하철 역시 운행을 중단하였다. 근처 학교들은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렇게 이곳에서도 인질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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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디 쿨리발리의 행적

 


같은 시각, 쿠아시 형제가 있는 다마르탕 엉 고엘. 총격과 포성이 계속된다.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쿠아시 형제가 특공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건물 밖으로 나왔고, 곧 사살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 특공대원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인질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쿠아시 형제가 무력화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쿨리발리 쪽의 특공대도 행동을 시작한다. 몇 번의 조명탄과 총탄 발사한 후 특공대가 진입한다. 17명의 인질을 잡고 있었고 그중에는 8명의 여성 및 1명의 사내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질은 구출되었고 쿨리발리 역시 총격전 끝에 사살되었다. 이 과정에서 4명의 인질이 사망했고 여러 명이 상처를 입었다.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난 구출작전은 올랑드 대통령과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부장관, 크리스티안 토비라 법무부 장관이 함께 내린 결정으로, 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면 상황은 더 극적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었다고 마뉘엘 발스 내무부 장관이 밝힌 바 있다.


이 둘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동안 프랑스의 뉴스채널 BFMTV가 쉐리프 쿠아시 및 아메디 쿨리발리 측과 전화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BFMTV 측은 인질극이 종료되기 전까지 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이는 경찰과 군대 특공대의 작업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인터뷰는 BFMTV 측에서 쿠아시 형제가 숨어 들어간 건물 쪽으로 오전 10시경 전화를 하면서 진행되었다. 쉐리프가 전화를 받았고, BFMTV 기자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싶으니 다시 전화를 걸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쉐리프가 수락했고, 그렇게 약 2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에서 쉐리프는 예멘에 있는 알카에다 조직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를 진행했고, 그에 대한 지원은 2011년 9월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살된 예멘계 미국인 알카에다 지도자 안와르 알 아울라키로부터 나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쉐리프의 형인 사이드 쿠아시는 2011년 예멘에서 알카에다와 관계된 이슬람 무장 세력의 지휘 하에 훈련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쉐리프는 <샤를리 엡도>에 의해 모욕당한 무함마드의 복수를 하고자 했고, 선량한 시민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지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죽인 "서양인"들을 비판하였다.


오전 3시가 약간 지난 시간, 쿨리발리가 BFMTV 쪽으로 전화했다. 그는 경찰 측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그 과정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이 대쉬(Daech, Etat islamique, 2014년 6월에 조직된 이슬람 무장단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활동)라는 단체의 명령을 받아 진행되었고, 이것은 프랑스 정부가 칼리파를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요구조건은 프랑스 군대가 그들 세력이 주둔하는 곳에서 철수하는 것이고, 자신은 협상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쿠아시 형제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으며 인터뷰 당시에는 서로 연락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샤를리 엡도>를, 나는 경찰을 겨냥했다"라는 워딩에 인터뷰어가 작은 소리로 '감탄' 섞인 욕을 내뱉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쿨리발리는 이번 범행이 팔레스타인에서 압제에 신음하는 무슬림을 위한 것이었다며, 이페르 카셰 슈퍼를 선택한 이유로, 이 장소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며, 팔레스타인과 같이 무슬림이 억압당하는 모든 장소를 대표하여 이곳을 골랐다고 밝힘. 일련의 사건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서 경찰 쪽으로 넘겨서 연락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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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질극이 모두 일단락된 이후 BFMTV에서 내보낸 인터뷰 내용

(프랑스어로 되어 있으나 범인의 육성이 궁금하다면,

1'23'' 쉐리프 쿠아시, 4'11'' 아메디 쿨리발리)


 

테러범들이 모두 사살되어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 쿨리발리의 동거녀, (종교적으로는 결혼했으나 법적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하야트 붐디엔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는 추가 테러에 대비하여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 파리 지역에 발령된 최고 수준의 경계경보를 유지한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로 쿨리발리는 인질극 중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테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멘의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전날 <샤를리 에브도> 테러범 형제가 경찰에 사살된 뒤 인터넷을 통해 낸 동영상 성명에서 프랑스에 추가로 테러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2015년 1월 7일~9일 3일간 총 17명의 시민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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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사이드 쿠아시, 쉐리프 쿠아시, 아메디 쿨리발리, 하야트 붐디엔


 

 



<참고문헌>


http://lci.tf1.fr/france/faits-divers/attentat-contre-charlie-hebdo-qui-sont-les-freres-cherif-et-said-8543948.html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08.OBS9554/hamyd-accuse-a-tort-d-etre-le-troisieme-homme.html

http://lci.tf1.fr/france/faits-divers/fusillade-de-montrouge-le-suspect-a-ete-identifie-8544589.html

http://www.europe1.fr/faits-divers/fusillade-porte-de-chatillon-deux-policiers-municipaux-a-terre-2338091

http://abonnes.lemonde.fr/societe/article/2015/01/08/clarissa-jean-philippe-25-ans-policiere-tuee-dans-l-exercice-de-ses-fonctions-a-montrouge_4552214_3224.html

http://lci.tf1.fr/france/faits-divers/en-direct-la-traque-se-poursuit-en-picardie-pour-retrouver-les-8544506.html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09.OBS9662/charlie-hebdo-vincennes-dammartin-recit-d-une-double-prise-d-otages.html

http://tempsreel.nouvelobs.com/charlie-hebdo/20150109.OBS9662/charlie-hebdo-vincennes-dammartin-recit-d-une-double-prise-d-otages.html

http://www.lefigaro.fr/actualite-france/2015/01/09/01016-20150109ARTFIG00404-a-bfm-tv-coulibaly-avoue-s-etre-synchronise-avec-les-freres-kouachi.php

http://www.lefigaro.fr/actualite-france/2015/01/09/01016-20150109ARTFIG00404-a-bfm-tv-coulibaly-avoue-s-etre-synchronise-avec-les-freres-kouachi.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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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