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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5. 목요일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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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도 어김없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예전에는 해가 가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쫌 서글프면서도 뭔가 새로운 에너지라든가 기대 같은 것도 있었는데, 이제는 묵직하고 둔중한 어두움이 주변에 드리워져 있다 보니 그런 것마저 느끼기 어렵다. 세상이 이러니 송구영신이니 하는 말도 어색하고, 해피 뉴 이어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무슨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위선인가 싶은 시절이다.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새해 벽두부터 제2롯데월드의 불안한 마천루는 기우뚱거리고 규제를 풀어준 아파트에서는 대형 화재가 일어나고 엘지 공장에서는 질소가스가 새어 나와 사람이 죽지를 않나,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들로 벌써부터 뒤숭숭한 2015년이다.


그래서 새해의 바람으로 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바라는 걸 이것저것 열거하기 시작하면 허황된 소리나 한없이 늘어놔야 할 처지고,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 이 나라 상황이 확 좋아지길 바라는 건 무리니 말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실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원은 이렇게 말해야겠다. 


행복하자고. 아니면 행복한 척이라도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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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행복하자는 말은 어색함을 넘어 죄스럽기까지 한 것 아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빠져 죽었는데 우리만 멀쩡히 행복하고 즐겁자고? 언론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가 말살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후안무치함이 자랑인양 나날이 뻔뻔해지고 있는데?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국정은 농단 되고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천박함의 끝판으로 치달아 가는데?


맞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 실낱같은, 깨알 같은 건덕지라도 찾아서 밝고 쾌활하고 즐거워야 한다. 아니면 제일 큰 적인 피로와 절망감, 체념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권 교체를 노려볼 수 있는 대선은 –암만해도 개헌으로 영구집권을 노릴 거 같다는 우원의 지속적인 우려와 달리 하던 대로 계속한다 한들- 아직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촛불 집회나 오체투지는 이제 효력도 없고 이슈도 되지 않는다|. 차벽과 인의 장벽, 그리고 무대뽀의 벽에 가로막혀 호소를 하든 항의를 하든 아무 울림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무장 봉기를 할 건가, 혁명을 할 건가? 


더 문제인 건 국민 상당수의 생각이 우리와 같지 않다는 거다. 방법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 아직도 ㅂㄱㄴ의 지지율이 40%대를 찍는다. 이 모든 어이없는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극우 세력들은 슬슬 조직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백주에 테러까지 감행하고 있다. 


나쁜 권력자와 그 일당만이 상대라면 87년처럼 어떻게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양상이 다른 거다. 자칫 국민들끼리 서로 몽둥이 들고 싸우게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고 후유증도 엄청나다.


이렇듯, 할 수 있는 게 마땅찮을 때 필요한 게 뭐냐?


바로 버팅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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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넘의 이름도 실은 버팅기기 호


세상 돌아가는 걸 외면하고 살자는 게 아니다. 피곤하니 잊지 않아야 할 걸 까맣게 잊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제는 상황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 모든 일을 넘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면 피로와 환멸이 몰려오기 쉽다. 그러다 보면 정신도 혼미해지고 건강도 상하기 십상인데, 이런 느낌 우원만 갖는 건 아닐 거다. 


이래서야 어떻게 이 힘든 시대를 견뎌낸단 말이며, 또 정말 필요한 때가 왔을 때 무슨 여력으로 힘을 낼 수 있단 말이냐. 


그리고 즐겁고 밝게 사는 건 조건과 무관하게 언제나 추구해야 마땅할 덕목이기도 하다. 지금 이런 상황이 3년을 갈지 30년을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합심해서 최대한 좋은 날을 앞당겨야 하겠지만서도, 그렇지 않다고 해서 긴 세월을 마냥 우울하고 어둡게 살아서는 곤란하다. 


세상이야 어떻듯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소리 아니라는 건 아실 거다. 그렇게 살 넘들이라면 이 글이 필요도 없고 지금 읽고 있지도 않을 테니. 그저, 우원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억울한 죽음, 세상의 불평등과 권력자들의 치졸함을 매 순간마다 생각하고 늘 그 어두움의 영향하에 사는 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거다. 산에 올라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즐기는 게 낙이라면 그 느낌이 세상의 지저분함과 추함의 무게에 매번 가려지도록 할 필요는 없다. 아기를 안는 것, 고양이와 노는 것,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바라보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갖고 싶었던 것을 구입할 때 괜한 우울함을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나처럼 그저 그것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괜찮다.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축복으로 여겨도 된다.


요컨대, 세상이 계속 이렇다면 마음 한구석에 비애는 남아 있겠지만 그게 내 삶을 온통 잠식해 들어가는 시커먼 그림자로 늘 꿈틀거려서는 곤란한 일 아니냐는 거다. 그렇게 보내기에는 우리 삶은 너무 짧다.


다만 이러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저러다가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돼 버리지 않기 위해, 요즘 잘 쓰는 말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지' 않기 위해 요즘 같은 세상에 버팅기면서 꼭 필요한 것.


바로 공부다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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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대단한 걸 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일단 뭘 읽으면 좋다. 세상이 수상하니 정치나 사회과학, 철학책 등 무거운 것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과학이든 문학이든 심지어 웹툰이든 뭐든 본인이 재미있는 분야면 된다. 


다만 아무렇게나 고르지 말고, 이제 우리도 애들이 아닌 만큼 가급적 전문가의 평판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인터넷 시대가 된 후에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면서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바람직한 모습만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사실이고 그런 걸 가진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훨씬 편하게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이득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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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이 풍진 세월을 버팅기도록 도와줄

것은 어쩌면 한 권의 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를 보자는 거다. 이것도 아무렇게나 보지 말고, 지나치게 시류에 편승하는 것들보다는 대단한 흥행작이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굳이 어렵고 난해하고 지루한 예술영화를 꾹 참고 보라는 소리는 아니다. 우원도 그렇게는 못하는 성격이다. 재미있고 가벼우면서도 울림이 깊은 영화가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영화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면서도 지성과 감성을 지속적으로 건드려서 메마르지 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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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람도 많겠지만, 열정과 절제 사이를 오가며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영화, Once.


그리고 음악을 듣자는 거다. 이것 역시 당장 유행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며 공인된 작품들을 한 번 건드려 보길 권한다. 꼭 어려운 클래식이나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게 아니어도 좋다. 조금만 신경을 쓰고 찾아보면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다는 것에 깜짝들 놀라실 거다. 다만 외국 곡의 경우는 가사도 꼭 같이 음미해 보면 더 좋다. (결과적으로 울나라 노래들 가사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후졌는지 절실하게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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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최고봉은 듣기에는 쉽지만

만들기는 어려운 곡들이다.

이 두 팀이 그 대표격. 밝고 환한 느낌이라면

ABBA 도 강추. 취향이 맞는다면 핑크 플로이드도.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림을 그리고 악기도 연주해 보자. 우원은 그림에 엄청나게 재능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그림을 좀 그려 보는 게 로망이 됐다. 인터넷에 잘 그린 그림이나 그림 그리는 과정 동영상도 꽤 눈여겨보는 편이다. 


악기야 기타를 오랫동안 해 오고 전공도 했지만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 좀 지친 감도 있고, 올해 내로 첼로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위대한 연주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첼로 소리가 좋아서다.


이 곡을 연주하는게 언젠가의 목표 되겠지만

안되면 포기할 생각. 취미인 이상 포기하면 편해.


우원이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지 알 거다. 연초인데도 덕담 한마디 하기 힘든 분위기, 그만큼 무거운 우리들의 마음. 하지만 그 어두움에 집중하는 게 꼭 힘을 주는 건 아니니 스스로에 대해 약간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어차피 장기전인 만큼 밝음의 에너지와 일상 속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그 속에서 조금씩 힘을 축적해 가자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올해를 조금은 가벼운 맘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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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