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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19. 월요일

trexx







0.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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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발표한 iTunes


21세기 1월의 대표적인 사건은 2001년 1월에 등장한 iTunes가 아닐까 싶다. 애플이 컴퓨터 회사에서 벗어나 컨텐츠와 개인용 모바일 디바이스 회사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했으며, 2007년 1월 9일에 이르러 21세기 가장 혁신 제품인 iPhone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2001년 1월에 등장한 iTunes가 아닐까 한다.(그렇다. 다음 주 상품가치전쟁은 아이튠즈다.) 애플은 아이폰이 공개된 같은 날, 회사 공식 명칭을 ‘Apple computer, Inc’에서 컴퓨터 명칭을 떼어 버리고 ‘Apple Inc.’로 변경하게 된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테크 역사를 살펴봤더니 2007년 1월에 발표한 아이폰과 19세기 1월의 통신과 네트워크 기술과 묘하게 연관 있어 보였다. 이번 편에는 19세기 1월에 등장했던 통신과 네트워크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들에 대해 대충 상기해 보려고 한다.


- 1838년 1월 6일 통신 네트워크의 시작을 알린 모스와 그의 재정 후원자 베일은 모스전신기를 세상에 최초로 공개 시연하였다.

 

- 1878년 1월에는 벨이 영국 여왕 앞에서 시연함으로서 유럽에 진출하는 관문을 통과하였고 동시에 전회기가 일반인에게 파는 상품이 되어 전화교환기가 최초로 미국에 설치되었다.

 

- 1881년 1월 25일 에디슨과 벨은 제3국에 전화기(교환기)를 팔기 위해 공동의 회사를 설립하여 상품 전화기를 전세계 시장으로 뻣어나가게 하였다.

 

- 1902년 1월 18일 불운한 천재 테슬라는 너무 앞선 나머지 무선 에너지 전송 특허 기술을 섣불리 내놓아 테슬라의 천재성을 이해 못한 사람들로 인하여 관련 특허를 12년동안 등록하지 못했다.


2015년에는 스마트 와치를 비롯 무선 충전 기술이 더욱 활성화 되지 않을까 싶다. 구현 방식이 어찌되었든 테슬라의 광적인 천재성은 1세기를 넘나든다. 


그럼 19세기 1월, 그 때로 돌아가보자.





1. 1838년 1월 6일 : 모스전신기 최초 공개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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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se Telegraph (1837)


* 1월 6일

사무엘 모스(Samuel Morse)와 그의 재정적인 후원자 알프레드 베일(Alfred Vail)은 모스가 고안한 ‘모스 부호’를 구현한 새로운 전신기를 뉴욕 모리스 타운에서 최초로 공개 시연하다. 모스 부호는 모스가 1832년 10월 19일에 구상하였고 1837년에 자신의 전신기를 특허신청하였다.


사무엘 모스(1791~1872)는 미국 최초로 전신을 만든 발명가이자 엉뚱하게도 화가였다. 매사추세츠 찰스타운에서 태어나 1810년 예일 대학을 졸업, 출판사에서 얼마간 일한 후 1815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초상화가로 성공하게 된다. 돌연 1830년에 전기에 관심을 돌리더니 모스 부호와 전신기를 개발하게 된다. 모스 부호는 점과 선으로 의사 소통을 한다. 1차원의 점(.)과 선(-)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이 발상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와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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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1차원인 점과 선으로 구성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아버지)은 5차원에 세계로 들어가 4차원 시간의 변위(Vector)를 통하여 1차원(모스기호)과 2차원(좌표)을 이용해 3차원 공간에 있는 딸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시계의 시침(4차원 축인 시간)을 이용하여 1차원 모스기호로 정보를 전달하는 이 발상은 기막히다.(다음에 상품가치전쟁 ‘기록’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상품가치전쟁 기사보기)





2. 1878년 1월 : 벨 전화기 시연과 전화 교환기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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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벨(좌)과 엘리샤 그레이(우)


* 1월 14일

벨(Alexander Graham Bell)이 1876년 3월에 발명한 전화기(특허명: 진보된 전신기) 를 영국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시연하다.


* 1월 28일

미국 코티니컷 뉴 해븐(New Haven)에 최초의 상업 전화 교환기가 설치되다. 수용 가입자는 21명에 불가 했다.


벨(1847~1922)이 최초의 전화기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엄밀히 말해서 최초로 특허를 등록한 사람이라 해야 옳다. 미국인 엘리샤 그레이(1835~1901)는 금속진동판을 사용해 전선을 통해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발명했지만 전문잡지의 혹독한 평가를 받고 발명을 잠시 접었다. 그 사이 벨은 1876년 가죽진동판을 사용한 전화기 특허를 속히 출원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그레이는 황급히 벨의 특허정지 서류를 제출하러 갔지만 벨이 그레이보다 2시간 먼저 도착하여 특허는 벨에게 귀속된다. 벨은 그 후 시연회를 하게 되는데 특허를 받은 가죽진동판이 아닌 금속진동판이 달린 전화기 였다. 그레이는 사기협의로 벨을 고소했지만 2년간 소송 후 패하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 회사인 벨의 시작이 아름답지 않지만 통신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걸음을 걸어왔다. 20세기 통신의 역사에서 가장 중심에 있었던 기업이 AT&T였고 (결국 독과점으로 회사는 쪼개졌다) 21세기 아이폰이 세상에 어려움없이 등장시킨 1등공신이 AT&T(Cingular)였다. 통신사는 폰 제조사에게 갑질을 하여 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신사 입맛대로 만들게 하는데 애플은 AT&T와의 3년 독점계약 조건으로 갑질을 금지시켰다. 결국 애플이 자신만의 모바일 폰을 만들게 된 건 AT&T 덕분(?)이었다. 창업자가 전화기 만든 회사여서 그랬을까?





3. 1881년 1월 25일 : 에디슨과 벨 공동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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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위) 벨(아래)


* 1월 25일

토마스 에디슨과 그레헴 벨은 오리엘탈 텔레폰 컴패니(Oriental Telephone Company)를 공동 설립하기로 합의 했다. 이 회사만 그리스, 트키 사우스 아프리카, 인도, 일본, 중국 외 다른 아시아에 전화기를 팔 수 있었다.


토마스 에디슨 또한 전화기를 만들었지만 엘리샤 그레이 처럼 아귀다툼은 안 한 것 같다. 타협과는 거리가 먼 에디슨이지만 전화기 만큼은 어느정도 양보하게 된다. 에디슨은 벨의 전쟁이라 불리는 600회의 특허 소송을 지켜보면서 벨이 에디슨 자신보다 더 독종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에 전화기 말고 축음기 관련하여 에디슨과 벨과의 재밌는 사연이 있다. 에디슨은 1877년 7월 최초로 축 음기 특허 신청하여 다음해 2월에 등록하였다. 에디슨은 발명을 했지만 어디에 쓸지 몰라 관련 기술에 무관심 했다. 겁없는 벨은 에디슨의 동판 유연식 실린더를 개선하여 재생 바늘과 밀랍을 먹인 실린더라는 새로운 개발품을 만들어 특허를 얻고 공개했다. (위 이야기와 거의 유사하지 않나?) 그렇지만 에디슨이 누군가. 아무리 여우같은 벨이지만 천하의 독종 에디슨과 타협하게 된다. 에디슨은 특허법 위반으로 물고 늘어지자 '에디슨-벨 축음기 회사'가 만들어진다. 물론 에디슨 원통형 축음기는 LP의 직계 조상인 원반형 레코드 디스크를 발명한 베를리너와 경쟁하게 된다. 에디슨은 자기 캐릭터 대로 특허를 매수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새로운 기술을 쏟아 부어 베를리너 원반형 레코드와 죽일 듯 전쟁하지만 결국 에디슨은 상처만 입은 채 축음기 사업을 접게된다.

 

유유상종이어서 그런지 에디슨과 벨은 서로서로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4. 1902년 1월 18일 : 테슬라 무선 에너지 전송 특허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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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좌)과 테슬라(우)


* 1월 18일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무선 에너지 전송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혁신적인 발상은 당시에는 황당한 발명으로 취급되었기에 승인하는데 12년이 걸렸다. 아직까지 테슬라 혁신적인 무선 에너지 전송 특허 기술 구현은 진행 중이다.



불운한 천재 니콜라 테슬라(1856~1943)는 괴짜로 유명하지만 우리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교류를 발명한 사람이다. (집안에서 쓰는 110V, 220V 전원 콘센트가 교류다.) 테슬라는 에디슨 직류 전원의 문제점을 해결 하기 위해 에디슨 회사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테슬라의 능력을 에디슨이 인정하여 보너스로 5만 달러를 약속했지만 에디슨은 무시하였고 빡돈 테슬라는 회사를 나온다. 투자를 받아 자기 이름으로 1887년 4월 회사를 차려 에디슨의 직류 전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교류를 개발하게 된다. 이에 에디슨은 교류를 비방할 목적으로 죄수들의 사형에 교류 전기 충격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는 등 교류의 우수성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테슬라는 전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에디슨의 GE는 광고 캠패인으로 교류를 자신의 업적으로 가로채고 만다. 전류 특허 소송에서는 테슬라에 손을 들어 주어 한동안 여유롭게 발명을 할 수 있었지만, 1895년 3월 13일 그의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실험기기(금액으로 치면 100만달러 이상)가 다 타버린다. 이 화재로 그가 연구했던 무선 통신, 무선 에너지 전송, 운송 수단 등을 비롯 X선 연구까지 모두 사라지고 만다. 파산 지경이 되었지만 지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연구를 하게되는데, 그가 계속 추구한 분야가 무선 통신과 무선 에너지 전송 분야였다. 1893년, 테슬라의 무선 통신 발명은 마르코니 보다 2년은 앞선 것이었지만 결국 영광은 마르코니로 넘어갔다.


괴짜 테슬라는 어느 방면에선 에디슨 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개발하고자 했던 무선 에너지 전송을 비롯하여 로봇공학, 원격조종장치 등에 대해 완성을 보지 못하고 86세에 뉴욕시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객사하고 만다.





5.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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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콜도라도 스프링스 연구소에서 무선 전류를 연구 중인 테슬라


19세기 기술 혁신을 이루웠던 모스, 벨, 에디슨, 테슬라 등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19세기 1월의 흔적을 찾아보면서 지금의 IT혁신의 토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모스와 벨의 유선통신을 거쳐 마르코니와 테슬라의 무선통신의 혁신으로 20세기의 통신 네트워크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벨과 에디슨은 성공으로 포장 되어 있지만 남의 지식을 절도하는 벨의 비열함과 남의 천재성을 인정 못하는 에디슨의 병신 짓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흑역사가 있다 하여도 지금도 위대한 미국 기업 GE와 AT&T의 위상은 흔들림없이 계속되고 있다.



2월에 보자. 커밍 쑤운~







 tre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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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