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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0.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이 글은 필자가 자신의 남아공에 거주 중인 한인 부부를 만나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맨손으로 남아공으로 건너 가 

고국 땅에서는 꿈도 못 꿀 일들을 이뤄낸 이들로, 

그들과 2주간 머물며 나눈 

남아공 사회에 대한 분석, 토론이 

한국과 남아공, 두 사회를 이해하고

새로운 공동체 생활 양식을 고민해 보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마, 이 정도 의도를 깔고 시작하는 연재라 하겠습니다.

 




지난 기사


1. 흑백 분리

2. 만델라도 해결 못한 문제

3. 흑인은 열등한가

4. 일부다처의 나라?






1952년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Alfred Sauvy)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지에 발표한 글에 '하나의 행성, 3개의 세계'라는 표현을 썼다. 제3세계(Le Tiers Monde)라는 개념은 당시 프랑스 식민지이었던 월남에서 격화되던 민족해방전쟁을 프랑스 혁명의 제3신분의 대두에 비유해서 칭한 개념이었다. 이후 제3세계를 규정하는 기준은 정치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 지배를 경험했지만 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미·소 냉전체제의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은 국가들에 해당되었다. 이렇듯 원래 냉전이라는 특수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출현한 개념이어서 1990년대 초의 공산제국의 붕괴 이후 그 의미가 사라져야 옳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여러모로 거시기한 나라들을 칭할 다른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아직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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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이 제1세계, 빨간색이 제2세계, 초록색이 제3세계로 분류되었다.


남아공은 제1세계와 제3세계가 '사이 좋게'가 아니고 '사이 나쁘게' 공존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나라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선진국이 갖출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부동산 가격이 싸기 때문에 웬만한 선진국의 평균 생활인이 남아공에 온다면 자기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단 다른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부패와 범죄와 불의에 대해서 둔감할 수만 있다면.


만일 한국에서 미국이나 호주 같은 더욱 선진적인 나라로 이민을 가면 일상생활은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오랜 역사를 거쳐서 꽉 짜인 그들의 세계에 편입하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선진국으로 이민을 간 대부분의 이민 1세대들이 몸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지만 남아공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서 그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고.


하루는 '구름'이 시청에서 공청회가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가면서 설명을 들으니 '구름'네 집 바로 옆집이 대형 유치원인데(물론 백인들이 이용하는) 확장을 하려고 한단다. 유치원이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유치원처럼 유치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남아공은 유치원도 엄연한 학교이다. '바람'네 집 동네에 있는 것은 대략 5000~6000평 정도 규모의 큰 유치원이다. 


공청회의 안건은 유치원이 정원을 늘리고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회의실에 가니까 공무원 책임자로 보이는 백인 남자와 실무자로 보이는 흑인 여자, 컨설팅 전문가, 이웃과 주변에 사는 백인들이 모여있었다. 유치원 확장 하나 하는데 환경 영향 평가, 주변 교통량 평가 등 온갖 것들을 다 논의하고 이웃들의 의견을 들었다. '구름'은 자기는 웃통을 벗고 일을 하는 때도 많고 하니 새로 확장될 경계에 큰 나무를 많이 심어서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해달라고 주문을 했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제1세계인 호주에서 벌어지는 세밀한 행정 집행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호주에서는 건물을 하나 지으려고 해도 이웃들에게 평면도까지 다 보내서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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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흔한 공청회 장면


남아공의 교육 역시 교육 지옥인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제1세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즉 강압적이고 통제하는 교육 방식이 아니라 창의성, 자립성이 기초가 되는 교육 환경, 주체성과 아이디어, 가치창조, 협동심이 바탕이 되는 리더십 함양 교육이란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초등 2학년 프로젝트 숙제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우선 일주일에 걸쳐, 모든 조류(鳥類)들에 대해서 컴퓨터로 조사를 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각자 원하는 한 가지 새를 선택해서 프로젝트를 만들도록 한다. 이렇게 각자가 조사해온 새들에 대해 학교에서 발표를 한 후에는 한 달간 새가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새장과 새 밥그릇까지 디자인하여 만들도록 한다. 그렇게 습득한 새의 정보와 친구들이 발표한 많은 새들에 대해서 공부를 한 후, 아이들은 직접보고 체험하기 위해 새들의 박물관으로 견학을 간다. 물론 백인 중심의 사립학교 이야기이지만 부럽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춘 남아공에서는 다른 제3세계들과 마찬가지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위험, 불법, 지저분한 일,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일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당연한 듯 벌어지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가끔 한국도 아직 제3세계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명색이 OECD 국가인데 그냥 후발주자라고 하자! 원래 후보로 있다가 실전에서 뛰려면 처음에는 경기 흐름에 맞추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 아닌가?)


다시 말해 질서가 잡힌 제1세계의 조건에서 무질서와 혼란의 제3세계, 이 간극이 문자 그대로의 넓은 틈으로 벌어져 사회 전반에 자리한 국가가 남아공이라 할 수 있다. 공기구멍도 없이 꽉 짜인 서구 선진 사회에서처럼 교육, 문화, 의료 등등을 이용할 수 있는 생활을 하면서 아직 꽉 짜이지 않아 허술한 구멍이 있어서 눈만 예리하게 뜨면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이기 때문에 틈새에 강한 한국인의 체질에 딱 맞는 곳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어떤 인간인가? '척'하면 3척이고 '쿵'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에 익숙한 눈치와 깡, 약싹 빠름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민족이 아니던가? 그런 까닭에 위로는 새벽 밥 먹고 먼저 온 유태인, 중국인, 인도인 형님들 사이에서도 생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실제로 싸우면서 건설해 온(예비군 표어) 민족답게 현재 남아공에 19개의 한국 기업이 지사 또는 주재원 형태로 진출해 있는 상태다. 그 중 12개 기업은 월드컵이 있던 2010년 이후 설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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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치안이 걱정된다고? 남아공은 단순히 한 국가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 돈이 모두 이곳에 모이고 흩어지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의 허브와 같은 곳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위험 하다느니 가난하다느니'하고 단순하게 평가하거나 단정 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위험한 가운데 안전한 곳도 있고 가난한 가운데 돈이 되는 것도 있는 세상의 모든 혼란이 존재하는 곳이다. 


물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선진국에 살던 사람들이 남아공에 만연한 부정, 부패, 가난, 범죄 등등의 제3세계적 현상을 직면할 때 처음에는 누구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오래 살다보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이게 적응의 차원이라면 긍정적이겠지만 부조리에 무감각해지는 거라면 긍정적으로만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바람'과 '구름' 부부는 호주에서의 내 생활과는 달리 현지의 교민들과 전혀 접촉이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한국인들이 남아공에 와서 오래 살다보면 흑인들의 생활의 낮은 수준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백인들처럼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재 함께 일을 하고 있는 30 명의 흑인들을 돌보기 바빠서 한국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아옹다옹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람 한 명에 대하여 신경을 쓸 여력이 있으면 흑인 100명을 돌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람' 부부는 20년을 살아도 무감각해지지 않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열악한 흑인들의 삶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노력하고 있다. '구름'은 흑인 집단빈민 지역 소웨토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양철집들을 보고서 "우리 직원들만 해도 이런 곳에서 살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다른 서구 선진국에 비해 실업률이 높은 남아공에는 도저히 직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직업들이 많다. 꼭 불법이나 범죄가 아니더라도 적은 액수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나마도 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몰려오는 이주노동자과 경쟁을 해야 한다.


어디를 가나 길에서 끊임없이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차가 질주하는 고속도로 옆을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황야 같은 시골에서 마치 느리게 돌아가는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남아공을 떠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잊혀지지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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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젊은이가 고향에서 수백Km 떨어져 있는 요하네스버그에 와서 정상적인 취업을 해서 월 30 만원의 월급을 받고 일을 한다면 교통비로 절반이 들어간다. 계산으로만 따진다면 고향에서 10 만원을 받고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시골에 있으면 삶이 달라질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도시로 몰려오는 것이다. 사업주로서 저임금 구조는 매우 유리한 일이지만 '바람' 부부는 그런 장점을 활용하는 데에만 치중하지 않고 고용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구상하고 있었다. 


남아공의 흑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난 100년간 백인들에 의해서 도시화되어 버렸다. 전통적으로 자연 속에서 촌락 생활을 흑인들이 아무 것도 없는 농촌에서는 살 수 없도록 유전자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아무 기술이 없이 무작정 도시에 흘러 들어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청소부나 가정부 정원사 등 단순 노동직종일 뿐이다. 때문에 도시는 일거리를 찾는 단순 노동자들로 넘쳐난다. 이 말은 아주 단순한 기술만 가지고 있어도 먹고 살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단순한 기술을 배울 곳이 없는 것이다. 교육기관이 있다 해도 가난한 이들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든지 졸업장을 팔아먹기만 하는 엉터리 학원들이다. 아직 국가가 면허를 취급하고 검인증할 만한 표준화화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면허라는 제도가 없고 관련 학교 졸업장이 면허를 대신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국제 기준으로 분류한다면 고급으로 분류될 기술도 있고 낮은 등급으로 분류될 기술도 있지만 중간급의 기술이 없다는 특징도 있다. 더 이상 상급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계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에 있어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지금 한국이 산업화 시대에 공고에서 가르치던 기초기술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기계들이 이곳에서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구름'이 공장 모터를 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라면 버리고 새것을 쓸 법한데 그는 반나절을 걸려서 고쳐 쓰는 것이었다. 남아공에 수리공이 부족하지만 수요는 많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여느 사회가 그러하듯, 남아공도 교육이 빈부의 격차를 벌어지게 만드는데 크게 공헌(?) 하고 있다. 국립 초등/고등학교에는 자격과 능력이 있는 흑인 교사가 너무 부족하고 대학과 취업용 사립 교육시설은 너무 비싸다. 남아공은 한국의 공고처럼 공교육에서 기술 교육을 담당하지 못한다. 있기는 있지만 엄청나게 비싼 학비 탓에 개인이 감당 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구름'은 그들의 힘으로는 평생을 가도 감당할 수 없는 고등교육을 받아서 신분상승을 이루는 비현실적인 방법 보다는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키는 것에 뜻을 두고 있다. 즉 처음에는 일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단순한 일거리를 주고 미숙련 단순 노동자에게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쳐서 기술자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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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게는 지금 시설도 기계도 교사도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자기 공장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직접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흑인 직원들은 컴퓨터를 잘못 만지면 망가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컴퓨터를 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타자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컴퓨터를 한 대씩 사 줄 수는 없지만 키보드를 하나 씩 사주고서 집에서 타자 연습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만일 PC방이 많은 한국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PC를 남아공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공고에서 쓰지 않고 버려진 기계들을 남아공에 가져 올 수 있어도 최고의 기술학교를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있다면 이런 일들을 추진할 수 있을 터인데 갈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직원들이 이런 '구름'의 자세에 감사하는 마음은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보람을 느낄만큼 노력해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구름'이 직업교육에 대해서 아무리 필요성을 주장해도 정부 관리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부족단위로 살고 있는 시골로 들어가면 족장들은 관심을 가져서 땅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해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를 연다고 해도 문제가 많다. 도로변의 전화선을 끊어 가는 수준이니 어떤 시설이라도 해 놓으면 보존 될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지역을 위해서 기술학교를 하려고 하면 먼저 그 지역 주민들과 깊은 유대와 이해가 있어서 주민들이 스스로 시설을 보호하려고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 교육 이전에 공동체를 성숙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고용인들 가운데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기술자로 양성을 하는 것이 최우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강자의 입장에서 무조건 베풀어서 흑인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었던 백인 선교사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수입의 1%를 내게 하고 그것으로 다시 교재를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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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흑인들을 교육하고 훈련을 시켜 그들의 살 길을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바람'의 꿈과 '구름'의 꿈은 차이가 있다.


'바람'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가서 큰 땅을 구입해 직원들과 가족들이 모두 같이 모여 살면서 외교와 국방 외에는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불안한 사회에서 작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겠지만 돈이나 물건을 나누어주는 것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다. 즉 재화의 소비 못지않게 용역의 소비도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즉 남아공에서는 한 집에서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를 고용해주면 그 만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가서 고용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교육이나 훈련을 시켜 준다면 예수가 따로 없는 것이다.


'바람'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할 일이 눈에 보이는데 함께 힘을 모을 사람이 적다는 것.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생업을 하면서 뜻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바람'과 '구름'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야 하는 현재의 사업을 운영해 나가기도 벅차서 마음속에서 꿈꾸고 있는 '구름'의 직업학교나 '바람'의 생활공동체나 추진해 나갈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 같이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여지 저기 공사판을 많이 전전해서 현장 경험이 많은 데모도라면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다. 문제는 이 데모도가 연식이 많이 나가다보니 동력이 떨어져서 또 다시 개척자의 길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10 년만 젊었어도'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실 나는 공동체 운동에 1/4은 미친 사람이어서 오랫 동안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쏟아 왔지만 기회가 너무 늦게 와서 안타깝다.) 


그들은 막연하게 꿈같은 이상을 함께 쫓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흑인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꿈꾼다. 


몇 해 전 세계를 뒤흔든 '월가를 점령하라!'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무리 시위를 하고 죽고 발악을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서 탈출 방법으로서 유일한 대안은 공동체운동이다. 돈과 싸우려면 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은 존재 할 수가 없으니 가능한 한 돈이 적게 필요한 사회, 즉 공동체적인 삶을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다. 즉 스스로 먹을 것을 기르고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형식, 즉 과거 중세시대 수도원 개념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방법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지만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세시대에 신앙의 타락을 경계하고 청빈한 삶의 추구를 했던 수도원 중심의 비주류 종교인들이 있었다면 자본주의가 종교처럼 되어버린 현대에는 공동체가 수도원 역할을 한다는 비유가 적절할 것 같다.


호주의 한 공동체를 방문했더니 1.000불을 주고 산 헌 차를 고치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차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헌 차를 싸게 사서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동체들은 가급적 소비 생활을 피하고 노동하며 자급자족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옷도 직접 만들어 입거나 빈민들을 위해 자선 기관에서 운영하는 가게를 통해 중고품들을 산 다음 세탁해서 입는다. 그들이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자본주의적 삶의 가치와 방법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이야말로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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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일이 쉽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인류는 성숙하지 않고도 공동체로 살아왔었다. 인류의 역사 중에 가장 오래된 가족형태는 대가족제도였다.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3, 4대에 걸치는 노인과 아이들, 삼촌, 사촌들과 함께 살면서 서로 배우고 때론 다투기도 하며 살았다. 대가족 공동체 안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사로 다른 타인과 어떻게 소통해야하는지는 알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배울 수 있었다. 속칭 싸가지를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더 이상 그런 형태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핵가족을 넘어 혼자 사는 사람도 생기고 살다가 헤어지는 가족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함께 사는 부족시대에서 완전 콩가루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가족제도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류의 이상향이다. 남아공이란 사회는 눈만 뜨면 하늘과 땅 만큼 큰 빈부의 격차를 현실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꿈을 버릴 수가 없다.


공동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맞다. 그 길은 그리 쉽지 않다. 아니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는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모든 인간이 미국인들처럼 소비하면서 사는 시대는 자원의 한계 때문에 결코 올 수 없다.


어차피 집 한 채를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는 법이라 함께 살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공동체가 되면 가장 좋은 것은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가족 제도의 부족 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지금은 연변 사람들처럼 부부가 다 도시로 돈 벌러 나가고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돌보는 콩가루 가족이 되어 버렸다. '바람'은 이렇게 헤어져 있는 가족들이 다 모여 함께 살며 일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다. 


제 밥도 못 차려 먹는데 무슨 인류 타령이냐고? 그렇다. 제 밥을 못 찾아 먹는 사람은 우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다른 것이 죄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 부부는 신학대학을 나왔지만 교회 보다는 함께 먹고 사는 일에 더 매달리는 것이다. 자기가 서 있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해서 옛날 서구 선교사들이 하던 대로 흑인들을 죽은 다음에 천국에 데려 가려 하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돕고 지구를 살리는 것, 그것이 그들의 신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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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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