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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 추천4 비추천0

2015. 01. 22. 목요일

딴지팀장 꾸물









백남준

[ Nam June Paik, 白南準 ]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이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 네이버 두산백과


 


 

서양화 전공을 하긴 했지만 백남준 아저씨 작품의 예술성이나 미술사적 의미는 잘 모르겠어. 어렸을 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아저씨의 작품 <다다익선>을 나선형으로 된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 건 꽤나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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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를 보는데 세월이 흘러 이 작품의 브라운관 모니터 수명이 다해가꼬 여기저기 많이 꺼져 있다고 하더라고. 이를 두고 모니터 교체 여부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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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관련 기사 - KBS (링크)

 

 

모니터 교체에 찬성하는 쪽은 디지털시대에 맞게 LCD로 바꾸는 것이 작가의 진취적인 생각과 부합한다는 입장이고, 반대하는 쪽은 완벽한 대체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미술품의 노화 과정 자체도 예술의 일부라고 주장한다고 해.


뉴스를 보면서 난 아무 고민 없이 ‘고장난 걸 왜 바꿔?’하는 생각을 했었거든? 근데 뉴스가 끝나고 야동을 다운 받으면서 할 일 없이 있다 보니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미술품 복원에 대한 생각. 영화 <인사동 스캔들>이나 <냉정과 열정사이> 같은 소설에 뭔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의 직업으로 등장하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 있잖아.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만화에도 주인공 언니가 이 일을 할거야.


선배랑 동기도 이 일을 공부했었고 예전에 미술품 복원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조색해서 그림과 같은 색을 맞추는 건 기본이고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에 쓰이던 안료로 색을 만들어 쓰기까지 하더라고. (복원은 서양화 뿐만 아니라 동양화도 하고) 미술작품 복원을 그렇게 신경써서 오랜 기간을 두고 하는 만큼 그 의미나 중요성은 클 거야. 당연히 훼손된 작품을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복원해서 지금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거고. 암튼, 이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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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복원처럼 손상된 작품을 복구 한다는 쪽으로 접근하니까 원래 백남준 아저씨가 만들었던 상태로 고장난 걸 교체하는 게 맞는 거 같더라고. 근데 뉴스에 나온 LCD로 바꾼다는 얘긴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모르겠어. TV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화면만 브라운관 대신 LCD로 바꾼다고 하는 얘기일 텐데(설마 LCD 모니터를 고장난 TV자리에 교체하겠다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런다고 했을 때도 문제는 발생해. 같은 화면이라도 브라운관으로 보이는 색감과 LCD로 보이는 색감의 차이랑 선명도 차이가 분명히 있을 거고 브라운관의 곡면과 LCD 평면의 괴리감도 있어.


반대로, 고치지 않고 노화과정 자체를 예술로 놓고 보자고 한다면 뉴스 속 인터뷰한 시민의 얘기처럼 ‘왜 꺼져 있는 것인지, 전체적인 조화를 못 이루게 꺼져 있는 건 뭐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백남준 아저씨를 모르는 꼬꼬마들이 처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거나 부모나 보호자가 원래의 작품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들에겐 저 작품이 군데군데 혹은 무더기로 꺼져 있는 화면과 화면이 나오는 TV를 쌓아놓은 탑의 모습으로만 알게 되겠지.




그럼 이걸 뭘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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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으론 걍 내비뒀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작품의 처음 모습이 담긴 디스플레이와 현재 고장나서 화면이 꺼진 상태에 대한 설명이 작품 옆에 안내 돼야 할 거야. 안 그럼 바로 앞서 얘기한 것 처럼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게 뭐지? 좀 이상하게 화면이 꺼져 있는데?’하는 생각을 갖게 될 테니까. 아님 꺼진 상태 그대로를 보고 ‘음... 좀 특이한 작품이네’ 하겠지. 것도 아님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작품의 노화과정 자체로 이어지게 설명 없이 지금처럼 쭈욱 놓아둘 수도 있을 거고.


고친다고 하면 난 이런 방법을 제안하고 싶어. 기사에 나온 것처럼 LCD로 고칠 게 아니라 같은 사이즈의 브라운관을 찾아서 교체하든 다시 제작을 하는 거야. 새로 교체한 브라운관 화면이 더 쨍한 느낌일 테지만 LCD 보다는 낫지 않겠어?



재미도 없게 주절주절 말이 많았는데 사실 하고 싶었던 얘기는...


소비의 사회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현대 사회에서 많은 것들이 소비되고 그만큼 많이 버려지는 것 같아. 어떨 때는 더 사용하고 싶고 고쳐서 쓰고 싶어도 그를 지원하는 부품이라거나 장비, 장치들이 어느샌가 생산이 중단돼 버리고.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내던 예전과 달리 질은 낮아도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만한 값싼 물건들이 소비되고 실증나면 버려지고 그러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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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남준 아저씨 작품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봤어. 최초 원본의 모습이 있을 텐데 더 좋고 진취적이라며 작가의 의도나 생각, 작품의 본질이 변형 될 수도 있는 방법을 주장하거나 오래된 건 오래됐으니 그냥 고장난 상태로 두자는 상이한 대립과 입장의 차이가 '무엇을 두고 싸우는 것'인지만 다를 뿐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이 딱 정해져 있으면 이번 백남준 아저씨 작품 논쟁이나 개인/사회의 논쟁, 편 가르기 없이 참 편할 거 같긴 한데 그럼 또 재미는 없겠지. 발전도 없을 거 같고.



급 마무리를 억지로 하자면, 작품 이름이 <다다익선>이잖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맨 처음 얘기한 것처럼 난 작품의 의미나 그 예술성은 몰라. 그냥 어제 뉴스를 보고 이 기사를 쓰면서 문득 ‘다다익선’이라는 작품 이름이 백남준 아저씨가 의도했든(그럴 리는 없겠지만) 의도하지 않았든 '사람들의 많은 생각과 서로의 입장, 많은 얘기들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인식을 좋아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오글거리는 교과서적 정리를 해봤어.


암튼, 백남준 아저씨는 살아 계셨을 때도 이래저래 화제도 되고 센세이션도 일으켰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도 작품으로, 그것도 작품의 변화로 또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네.




일반적으로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우리는 완성될 작품의 대략적인 비전(미리 그려진 이상 또는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이데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작업 과정은 이러한 이상적인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실험적인 텔레비전 작업에서 그 과정은 완전히 다르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그려진 어떠한 ‘비전’도 갖지 않는다. 아니, 가질 수 없다. 우선 나는 ‘방법’을 찾는데, 그 방법이 어디에 이르게 될 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 ‘방법’이란 회로를 연구하고, 다양한 ‘재생’을 시도하고, 어떤 부분을 잘라내고 거기에 다른 파장을 집어넣거나, 파장의 위상을 바꾸거나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 백남준,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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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 작품 <다다익선> 앞에선 백남준 / 2010 - 출처 : 뮤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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