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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2. 목요일

워크홀릭









우선, 독자님들,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꾸벅.


전편까지는 글을 읽는 분들께서 어려운 용어에 대해 부담 갖지마시라고 지식재산권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쓰지 않고 특허권이라는 쉬운 말을 썼는데요.(본 연재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걸 우선으로 하기에 가끔은 정확한 전문용어보다는 대중이 많이 들은 말, 많이 쓰는 말로 단어를 선택할 때가 있으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재산권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게 '특허'이다보니 특허권을 지식재산권이란 단어 대신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특허권은 지식재산권의 여러 분류 중에서도 산업재산권의 한 가지입니다. 지식재산권에 속하는 하위 요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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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은 과거 '지적재산권'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Intellectual Property'라는 국제적 표현과 부합하는 우리말이지만 워낙 '지식'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국내 분위기와 정부 부처간 소관 분야 조정, 관련법의 개정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지식재산권'이라는 단어로 통일하고 있습니다.(특허청과 문화관광부 간의 업무 중첩 및 국제 조약까지 따져보면 아주 복잡해져서 이 정도의 배경이 있었구나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대화에서야 문제가 없겠지만, 적합한 단어 구사는 상호간 정확한 의사전달의 기본이 되는 만큼, 관련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되도록 지적재산권보다는 지식재산권이라는 말을 쓰시길 권합니다. 또한 '디자인 특허권'과 같은 단어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디자인권'으로 순화하여 쓰셔야지, '디자인', '특허권' 같은 단어들을 불필요하게 합성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지식재산권은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신지식재산권이라는 여러 가지 권리를 총칭하고 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세부적인 권리들은 무엇이고 관련 법이 어떤지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강의를 하러 가면 변리사님들이 제 앞 순서에서 강의를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이 "특허는 자연발명을 이용한 기술적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입니다"라고 얘기를 하기 시작하시면, '아. 변리사님 오늘 강의 매우 힘드시겠군'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어렵게 배우려면 끝없이 어려운 게 지식재산권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과감하게 특허는 뭐고 실용신안은 어떻고 이런 원론적인 부분 없이 바로 사례로 뛰어 들어갑니다. 사례를 통해 경각심을 갖고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사례 1. 훼이크다. 병신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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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료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껏 발효음식을 만들어 파는 마을기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만든 식품의 맛이 꽤 좋아서 식품박람회나 전시회에 나가면 사람들이 찾아와 레시피를 물어보곤 하는데 그게 참 부담스럽고 껄끄럽더랍니다. 특히 대기업에서 그런 질문이 있으면 기술을 뺏기는 건 아닌가 지레 겁나기도 하고요.


결국 마을 발전위원회 회장님, 이장님(CEO), 부녀회장님(공장장님)이 모인 회의자리에서 이런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제게도 의견을 물으시기에 저는 이 마을기업에 특허를 출원하시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1개 말고 여러 개를 출원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특허를 어떻게 출원하냐고 우리 마을의 발효기술이라봐야 옛날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방식이라 딱히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이 마을의 발효식품 제조방법이나 관련 물질은 특허를 받을 정도의 고도의 기술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런 제조방식을 택하고 있는 마을기업, 소기업, 중기업이 우리나라에만 수천 개는 있을 겁니다. 다만 발효식품과 관련된 제조방법은 기술적인 진보성이 없더라도 작은 차이와 노하우로 맛의 차이가 납니다. 이런 비법을 은근슬쩍 수집해서 정리하고 실험해보면 좋은 기술을 만들 수 있으니 이 마을기업에도 여러 사람들이 정보를 빼기 위해 접근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마을기업은 2개의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어떤 특허냐고요?


별로 의미없는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청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지 않았을까요?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하고 심사청구를 하지 않으면 특허청에서는 심사를 하지 않습니다. 심사청구는 필수가 아니거든요. 특허를 출원하고 5년 이내에만 심사를 청구하면 됩니다. 끝끝내 청구하지 않아도 되고요. 이럴 때의 장점은 출원된 특허기술은 심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거절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5년 동안 큰소리 치고 다니려고 특허 출원을 한 겁니다. 특허를 등록 받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정보를 빼가려는 사람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였던 거죠.


'우리는 특허를 2개나 출원할 정도로 기술의 관리가 되는 마을기업이다. 

우리 촌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함부로 우리 레시피 베낄 생각마라. 우리 특허가 등록되면 너네 가만히 안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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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제조 비법에서 작은 정보라도 빼내고 싶어 접근하는 이들에게 이런 무언의 압박을 보여주는 거였죠. 결국 날파리들은 이 마을 기업이 아니라 좀 더 허술한 먹잇감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겁니다.


그간 선비정신으로 살아오신 마을발전위원회 회장님이 이렇게 특허 내는 건 정직하지 못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셨지만 즉시 부녀회장님이 "하이고~ 우리가 지금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 놈들하고 싸우는 판에 무슨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소리여"라며 반박해주셔서 잘 정리되었습니다.


일종의 훼이크 모션이었던 셈인데 이런 것도 반칙인가요?


 




사례 2. 사업자 등록증에 있는 우리 회사 이름인데 왜 못 쓰냐고요?!


이번 사례는 제가 1년에 한 번 꼴로 겪는 일입니다. 우리 회사 이름을 왜 우리 제품의 상품명으로 못 쓰냐는 항의 말이죠. 최근 접했던 식품기업의 사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업명은 가칭입니다.)


홍길동씨는 2009년에 (주)큰세상 이라는 식품회사를 차렸습니다. 단무지와 피클, 오이지 등을 제조해서 판매하는 회사였죠. 당연히 상품 포장에는 큼지막하게 '큰세상 짠지'라고 써붙였습니다. 2010년에는 상표 출원도 했습니다. 포탈에 키워드 광고도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청의 지원으로 기업 경영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경영 진단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지적이나온 겁니다.


"홍길동 대표님이 사용하는 '큰세상'라는 브랜드는 타인의 선 등록 상표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홍길동 사장님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노발대발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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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사장님은 크게 두 가지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첫째,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증의 상호로 쓰게 했다고 해서, 그 명칭이 상표의 권리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세무서에서는 지역 내에서 유사한 상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만 거절을 하는 것이지, 사업자등록신청시 내가 제시한 상호가 받아들여졌다고해서 그것이 바로 상표(서비스표)의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둘째, 상표는 출원 후 바로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출원 후 심사를 거쳐 등록이 되는 겁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하면, 상표는 소정의 심사를 거치고, 심사관의 판단으로 문제가 없을 때, 일반 대중에게 공고해서 이 상표를 특정인에게 독점배타적으로 사용하게 해도 되는가라는 소정의 사회적(?) 합의를 거친 후 등록해 줍니다. 당연히 출원에서 등록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지요. 


홍길동 사장님이 과거에 출원했던 상표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보니, 역시나 거절되어 있었습니다. 홍길동 사장님은 상표의 출원 및 등록 절차를 잘 모르셨기 때문에 상표 출원 이후 신경을 쓰지 않았고 거절된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다행히 '큰세상'이라는 상표를 등록하고 있는 권리자는 자신의 상표가 홍길동 사장님에 의해 침해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간은 무지해서 타인의 상표를 침해했지만 이제라도 침해행위를 그만두고, '큰세상'이라는 명칭은 기업의 상호로만 사용하고 회사의 브랜드는 '큰세상'이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네이미스트들에 의해 제안된 브랜드 명칭 후보 안들은 변리사의 선행 상표 조사를 거쳐 특허청에 출원하였고, 홈페이지의 도메인 명칭도 변경하고, 포털의 검색광고도 다시 걸었습니다. 물론 브랜드 명칭 개편에 따른 이벤트와 홍보도 병행했고요.


이 회사는 대략 4년 동안 회사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었는데요. 상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그간 들였던 비용 이상의 돈과 시간을 다시 신규 브랜드를 위해 쏟아 붓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셨듯이 창업을 하는 경우 회사의 상호를 정할 때는 상표적인 권리 획득을 감안하셔서 특허청의 무료 검색 서비스인 키프리스(http://www.kipris.or.kr)을 이용해 상표 검색을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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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 저작권 위반이라고 내용 증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례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접할 정도로 빈번히 발생하는 것입니다. 폰트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내용 증명이나 공문을 받고 걱정하시는 분들, 참 많더군요.


우선 저작권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시, 그림, 사진,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부문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죠.


예를 들어 서예가가 쓴 글씨는 미술 저작물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사진 찍어서 달력을 만들었다면 바로 저작권 침해가 되죠. (참고로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저작자의 사후 70년까지 입니다.)


그런데 폰트는 미술저작물이 아니라 프로그램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프로그램보호법은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램의 보호를 위한 것이고, 폰트 또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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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침해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경우는 컴퓨터의 Windows\Fonts 폴더에 폰트 화일을 불법복제하여 사용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부분이 미술저작물과 다소 차이가 나는 점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우리 회사가 게시한 현수막을 보고, "귀하는 (주)워크社에서 만든 '홀릭체'라는 폰트를 정당한 대가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으니 사용을 중지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주기 바랍니다"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칩시다.


우리 회사 컴퓨터 어디에도  (주)워크社에서 만든 '홀릭체'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대응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회사가 게시한 현수막은 디자인용역사인 '예쁜게시물社'에 제작 의뢰를 해서 만든 현수막이기 때문에 폰트의 무단사용은 나와 상관 없고, 디자인 의뢰를 했던 '예쁜게시물社'에 알아보시오."라고 대응하시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좀처럼 인지하지 못하면서 자주 범하는 폰트 관련 실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 말입니다.


"甲님, 저희가 PPT 예쁘게 준비했어요. 메일에 폰트화일 같이 보내니 꼭 깔아서 봐주세요. 헤헷."


네, 갑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는 동귀어진의 초식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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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는 프로그램보호법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파워포인트 자료를 주고 받을 때,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 화일등을 주고 받을 때 폰트를 함께 보내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한 폰트는 산업재산권인 디자인으로 보호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프로그램보호법과 달리 컴퓨터에 폰트가 있든 없든, 외관상 일치한다면 바로 침해가 성립됩니다. 특허청에 디자인 등록된 폰트를 임의로 사용했다가는 큰 고생을 할 수도 있으니 무분별한 폰트 수집으로 정당한 권리 없이 사용하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세 가지 사례를 알아봤습니다.


특허, 상표, 저작권, 프로그램보호법, 디자인 등 다양한 무형의 재산권리들이 튀어나왔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산권들이기에 뭐가 중요하겠나 싶어 소홀히 할수도 있지만 실상은 이렇게 사례에서 드러나듯 중요한 사업의 요소들입니다. 


어쩌다보니 눈에 보이는 현금과 자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체재산권 얘기를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현금과 자산 관리는 앞으로의 연재에서 차차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서두에서 언급드린 대로 위 사례들의 소개가 여러분들에게 지식재산권을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기 충분한 계기가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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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업비밀 겸업, 그리고 경업

3. 사장의 월급

4. 혁신적 기술과 신제품을 위한 연구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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