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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7. 월요일

자유게시판 kvn






1.


저는 유럽 헝가리에 살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살았지만 이런 난리통은 처음 보네요. 올해 초로 기억하는데, 어느샌가 이국적인 생김새의 사람들이 집 근처 기차역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길을 가는 게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참고로 헝가리는 7개 국가와 국경이 닿아있는,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편한 곳이지요.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있진 않지만) 아시다시피 시리아와 그 외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까지 유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난민 수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유럽 전역에 불법 이민자(유럽연합 입장에선 불법 이민자가 맞습니다)가 늘어나면서 독일 메르켈 총리는 두블린 조약을 깨면서까지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을 했죠. 하지만 그에 따른 주변국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난민 신청을 할 땐 처음 입국한 유럽 국가에서 한다’


두블린 조약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와 상관없이 그냥 받아주겠다고 한 겁니다. 덕분에 난민들에게 유일한 목적지는 독일입니다. 다만 독일이 내륙에 있다 보니 다른 나라들을 거치지 않으면 독일로 갈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캠프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지만 절차가 느리고 오래 걸릴 뿐더러 여권을 비롯한 문서가 없으면 캠프에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난민들은 여행 문서가 없는 불법 입국자들이죠. 독일이나 다른 선진국을 바라보고 왔는데 헝가리의 수용소에 갇혀서 검사·감시 받는 것은 감옥일 겁니다. 이렇게 전쟁과 테러를 피해 떠나와서 독일로 가고 싶지만 헝가리에 발이 묶여 나가지 못하는 난민이 수천입니다.


그럼 헝가리는 왜 난민들을 독일로 안 보내주느냐.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그 나라에서 먼저 수용하고, 검사하고, 다른 나라로 나갈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유럽 연합 조항 때문입니다. 비용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연합의 조항 때문에 그냥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이유가 부딪히는 경우라고 봅니다,


헝가리는 최근 서유럽으로 나가는 국제 열차를 아예 막아버렸습니다. 며칠 전에는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멈춘 기차에서 난민이 잡혀, 가족과 떨어지기 싫어 통곡하는 동영상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현재 쉥겐조약(쉥겐 협약국을 여행할 때 국경이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한 조약)은 거의 붕괴 혹은 임시 붕괴 되었다고 보아야합니다. 각 국가로 넘어가는 이동 수단들의 제재와 감시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할 수 없습니다.



헝가리에 9년 살면서 느낀 건 헝가리는 심한 인종차별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총을 꺼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인 인종 차별도 직접 겪고 보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헝가리인들은 난민들을 골치 덩어리에 세금을 축내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고 있습니다. 헝가리 총리 빅터 오르반은 헝가리에 그만 오라고 공식 발표도 했죠.


물론 모든 헝가리인이 그렇진 않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곳곳에 퍼지고 있으며 특히나 북유럽과 서유럽 출신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도 저희 학교 학생회에 봉사활동 건의를 하긴 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는 못했네요.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난민들을 무조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난민을 두고 많은 토론과 갑론을박이 헝가리인들과 이 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매일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도의적인 차원에서 정치와 인종 등 모든 것을 떠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입장인데 헝가리인인 제 여자친구는 또 입장이 다르네요. 영화 <존큐>에서 덴젤 워싱턴이 외치던 ‘Sick, Help!’라는 문구가 생각나네요.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도움이 안 되더라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 있는 학생들도 함께 모아서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활동을 마련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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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유명한 사진이죠. 헝가리는 아니지만 제 페이스북에 불이 나도록 올라왔던 사진입니다.

헝가리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도움의 손길을 부른 사진입니다. 소년의 시신은 고향에 묻혔다고 합니다.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그냥 몇 개 퍼서 올립니다. 저희 집 근처인 서부역에도 역시 여태 보지 못했던 많은 난민들이 몰래라도 기차를 타고 떠나기 위해 진을 치고 있으며, 국제열차가 다니는 동부역은 난민 수용소가 따로 없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불안하긴 합니다.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불안감과 어떤 질병과 어떤 상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다가가기 힘든 것 같습니다. 동부역만 하더라도 작년에 새롭게 리뉴얼 되어 정말 깨끗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했는데, 잘 곳 없고 씻을 곳 없는 난민들로 난장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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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Migration aid’에서 나눠주는 음식과 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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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역 켈리티 현황. 여행 문서가 없으면 역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게 경찰이 막고 있지만, 당연히 많은 난민들이 몰래 들어가서 기차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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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죠. 관광으로 먹고 사는 헝가리인데, 관광객이 들어오는 기차역이 이런 난리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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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옆에서 시위를 하는 난민들인데 ‘음식도 필요 없고, 물도 필요 없고, 캠프도 필요 없고, 그냥 독일로 가는 기차에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언론에 어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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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인들에게 굉장히 반감을 일으켰던 사진 중에 하나입니다. 대부분 종교가 이슬람인 난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헝가리의 음식 대부분에는 다양한 형태의 돼지고기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냥 버린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


1) 도와줘도 이런 식이면 앞으로 안 도와주겠다. 너무 한 것 아니냐. 알라도 살기 위해 먹은 돼지고기로 그들을 벌하진 않을 거다.


2)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입장에서 알았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등의 의견이 나옵니다만 제 생각엔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한국과 당연히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탓인지 ‘난민’을 검색해도 생각보다 많이 이슈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눈으로 본 소식과 개인적인 의견을 더해서 조금 더 알려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물론 저도 얕은 지식과 몇 가지 뉴스, 의견란들을 보고 배운 것이기에 100% 확실한 정보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시 유럽에 오실 분들은 ‘더럽다’, ‘위험하다’는 인상보다 그들의 상황을 먼저 인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했는데, 저희 학교 학생들(주로 미국, 북유럽계)은 9월 4일 밤늦게까지 부다페스트 동부역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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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목요일, 헝가리는 불법으로 서유럽을 향해 이동하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부다페스트 동부역에서 출발하는 서유럽행 기차를 모두 운행정지 했습니다. 일반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오스트리아나 체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헝가리 지방 소도시까지 먼저 이동한 후 환승해서 가야합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개방하겠다고 밝힌 이후, 부다페스트 동부역에 거주하고 있던 대다수의 난민들이 걸어서 고속도로를 이동하여 비엔나를 향해 갑니다. 밤이 되어서야 헝가리 정부는 난민들을 오스트리아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형버스에 난민들을 태워 오스트리아까지 이동하기 시작했고, 9월 4일 밤부터 난민이 오스트리아로 이동 중입니다.


9월 5일 아침, 여자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동부역에서 난민들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청소하는 사람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헝가리는 난민 문제에 대해선 당분간이지만 한시름 놓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난민들이 헝가리를 거쳐 갈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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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점심시간 이후 도보로 난민들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여쭤보시는 것 중에 하나가 ‘왜 헝가리로 오는 거냐’인데, 중동의 부유국들인 기름국, 즉, 두바이, UAE, 쿠웨이트 등은 전혀 난민 망명 신청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수치도 0명이고요.


유럽연합으로 이동을 하는 난민들은 터키를 지나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땅에 내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유럽연합이지만 다른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붙어있지 않은 섬과 같은 곳이라, 난민들은 비교적 건너기 쉬운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한 후 더 북쪽으로 올라와 세르비아를 통과합니다. 그러면 나오는 게 헝가리죠. 헝가리는 주변 7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헝가리에만 도착하면 다른 EU 국가로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합니다. 난민들의 첫 번째 목적지가 헝가리가 되는 이유지요. 이에 따라 헝가리 총리는 세르비아 국경을 넘는 난민을 막기 위해 철책을 설치했습니다.


여하튼 헝가리 정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를 오스트리아로 떠넘긴 셈이고 난민들은 원하던 서쪽으로 향할 수 있으니 서로 좋게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뉴스에서도 쉽게 접하실 수 있는 내용이고요, 사실 9월 4일 급하게 이들이 떠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9월 4일 저녁 8시 45분부터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UEFA 축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예선인지 뭔지는 축구를 안 봐서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두 라이벌 국가의 경기인지라 축구 팬들의 열기가 뜨거웠고, 전날인 3일 저녁 시내에서 폭동이 있었습니다.


축구를 지지리 못하는 축구 고자 두 나라가 자존심을 걸고 하는 경기다 보니 숨어 지내던 빡빡이 극우파들도 9월 4일에 길거리를 활보했다고 하네요. 다른 헝가리 딴게이의 소식통을 전하자면 약 200여명의 빡빡이들이 경찰의 에스코트(혹은 시민 보호)를 받으며 시내를 활보했고 켈레티 방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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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극우파들이 난민들을 향해 폭죽과 폭약을 던지기도 했고, 위 사진과 같이 전기톱을 들고 쌍엿을 날리는 등 도발과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축구 경기장과 동부역이 가깝다 보니 경기가 끝나기 전부터 끝나고 한참 뒤까지 동부역 주변이 전면 통제되었습니다. (차량 진입 및 지하철 포함 대중교통이 모두 통제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헝가리 정부는 버스를 이용해 난민들을 오스트리아로 이동시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돌려보낼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과 달리 9월 4일 저녁, 첫 버스가 무사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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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드디어 떠나는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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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역에 남아있는 난민들이 남기고 간 글귀입니다. “We are not terrorist.” 가 가장 눈에 띕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또 헝가리를 향해 올지 모르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1차적인 해결책과 EU, UN에서의 합의와 해결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합니다.


이상 헝가리에서 ‘kvn’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P.S


헝가리가 보기만큼 위험한 나라가 절~대 아닙니다. (여성분들 혼자 여행하시는건 전 세계 어디나 저는 비추천하지만) 유럽 대부분이 관광 특수다 보니 관광객을 상대로한 소매치기, 절도, 강도 등이 많이 보고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빼고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부다페스트 여행은 매년 10월 23일만 피하시면 체감상 위험한 날은 없습니다! 10월 23일은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의 모티브가 된,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났던 1956년 10월 23일 '헝가리 혁명'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잘 모르시겠다 하시는 분들도 유튜브에서 탱크 시위 영상은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몇 년 전 시위대 사이로 탱크를 끌고 나온 그 영상이요. 박물관에 있는 탱크에 기름 넣었더니 가더라카던...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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