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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해고 지침의 도입을 반대한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 할아버지 등이 모두 계신 산소를 벌초하러 다녀왔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형제들끼리 모여 땀도 좀 흘리고 술도 한 잔씩 나누면서 사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 가급적 만사 제치고 참석하는 편이다. 물론 불만도 있다. 제일 불만인 점은 우리 형제는 4형제고 나는 그 중에 막내라는 점이다. 삼십대까지는 그래도 할만 했는데 사십을 넘어가니 엔진달린 예초기 들고 휘두르는 게 만만치 않다. 산소도 한두 개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에 작은 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등 이래저래 치면 조그만 동산의 반절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만큼의 풀을 깎다 보면 팔 근육이 후들거려 숟갈질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형들이 교대를 해주긴 하지만 형님들이 벌초하고 있는 걸 보는 게 더 불편하다.


막내라는 이유로 이 짬밥에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외치려는 순간, 올해 드디어 조카들이 참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젠 살았구나, 니들은 다 죽었어!’ 라는 건 물론 농담이다. 낫으로 하루 종일 풀 깎던 예전과 달리 예초기 들이 대면 두어 시간이면 벌초가 끝나는데 뭐 그리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겠는가.


엄살 부릴 일도 없어졌건만 마음은 여느 때보다도 더 무거워졌다. 즐거워야 할 가족들과의 만남에 왜 마음이 무거워졌을까.



조카는 귀족 노조


셋째 형님의 아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규모 공장에서 정규직 생산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한다. 요즘 대기업 정규직 자리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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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버지나 삼촌들 앞에서는 좋은 얘기만 하는 게 당연하다 싶어, 구석에서 담배 한대 나눠 피면서 얘기를 나눴다. 그 얘기를 재구성해봤다.


나: 요즘은 어떠냐? 할만 해?


조카: 뭐, 그냥저냥 다닐만 합니다.


나: 전에 사귄다던 아가씨하고는 잘 지내?


조카: 헤어졌어요.


나: 저런. 뭐 자세히 묻진 않을 테니 알아서 잘 해라. 회사생활은 할만 하고? 직급이 뭐야?


조카: 올해 승진 예정인데 어찌될지 모르죠. 승급 될 거 같긴 해요.


나: 착실하게 다니나보네. 그렇게 꾸준히 사는 거지 인생 머 있겠냐. 근데 니네 회사 요즘 노동개혁 어쩌구 하는 것 때문에 뒤숭숭하지 않아?


조카: 말도 마세요. 그거 때문에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거 얘기 꺼내면 욕만 먹어서 얘기하기도 싫어요.


나: 뭐 때문에?


조카: 우리가 다른 회사에 비해 돈 많이 받는 거 아는데요. 근데 이번에 나오는 얘기는 좀 차원이 다른 얘기에요. 우리만 당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당하는 거라니까요. 그런데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해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답답하죠.


나: 임금피크제 뭐 그런 문제 때문에 그러나?


조카: 아니요. 임금피크제야 낼모레 퇴직하실 분들이나 문제지 저희들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일반해고가 더 문제지.


나: 그래, 너도 뭐 좀 아는가 보다. 얘기 좀 해 봐라.


조카: 그러니까, 이젠 정리해고니 명퇴니 이런 거 다 없어질 판이에요. 근무평정 해가지고 저성과자는 3개월 교육시킨 후 자른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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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00>


나: 니네 회사에도 일도 안하고 매일 시간만 때우고 돈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잖아.


조카: 그러니까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일도 안하고 맨날 놀면서 수당 다 타가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회사 근무평정이 그렇게 엉망이라는 거잖아요. 윗사람 눈치만 보고 정치만 잘하면 고과가 잘 나오는데 일반해고 도입되면 어떻겠어요? 다들 일은 안 하고 윗사람 뒷바라지만 하러 다닐 걸요. 안 그러면 잘릴 테니까.


나: 그럼 노조에 가서 얘기를 해야지.


조카: 말도 마세요. 노조가 맨날 대화하자고 해도 회사에서 신경도 안 쓰고 미루는 이유가 뭐겠어요? 일반해고 도입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노조에서 뭘해도 아무도 못 가요. 저도 곧잘 따라 다녔는데 이젠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인사고과가 근무 태도나 실적으로 나겠어요? 노조 따라다니면 제거 1순위가 될 걸요. 이젠 무서워서 못 나가요. 저도 앞으로는 노조 일 하는데 안 나갈 거예요.


나: 야, 그거 진짜 심각한 문제구나.


조카: 그런데 그 얘기를 좀 하려고 하면 다 귀족노조 주제에 배불러서 그러는 거라고 해요. 이게 우리만의 문제에요? 아니에요. 하청업체 중소기업 다 무너지는 거예요. 이런 문제에 귀족노조가 어디 있고 비정규직이 어디 있어요? 어휴.


나: 그거 참 막막한 일이구나.


얘기는 한참을 더 이어졌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는 답답한 이야기였다.



일반해고, 놔두고 볼 것인가?


정규 노동계약을 통해 고용된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법엔 ‘징계해고’와 ‘정리해고’가 있다. 직원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횡령 등의 불법행위를 해서 사법처리가 될 때, 사규를 위반해서 징계대상이 될 때, 규정에 따라 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라 해도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사업규모를 축소해야 할 때에는 정당한 규정에 의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


만약 회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수시로 해고를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노동자도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없으며 해고된 이후의 생계에 대해 항상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는 사측에 비해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임과 동시에 전체 노동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상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그다지 전문적인 논의가 없어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그 벽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사측은 언제나 ‘고용유연성’이라는 개념 하에 그 벽을 허물고 싶어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장의 교란을 일으켜 회사에게도 해가 될 일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랬다. 근시안적인 판단이며 노조에 대한 원초적인 적대감의 표현이라고 밖에 보기 힘든 일이지만, 정부까지 나서서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노동법을 고치기 힘들면 지침 등의 꼼수를 부려서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기업가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를 개악하려 한다.




그 와중에 폭탄 같은 얘기가 나온다. 바로 ‘일반해고 지침’이다. 노동개혁을 외치면서 임금피크제 같은 혼란한 주제를 들고 나와 사람들의 시선을 흐리더니, 결국은 올게 오고 있다.


막아야 할 일이지만 막는 게 가능할까?



막을 방법이 없다


‘일반해고’라고 해도 내킨다고 무조건 해고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작업장에는 일정비율로 게으른 노동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근무평정을 하고 인사고과제도를 시행한다. 남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뺀질거리며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업무 저성과자로 제대로 분류한다면, 그리고 그들을 재교육해서 다시 현업에 복귀시킬 생각이라면, 현재 있는 제도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보발령을 내고 교육 이수를 권하는 등의 조치는 지금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재교육의 결과에 따라 해고도 가능해진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방식에 따라 해고를 당한 후에야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무기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노사의 관계에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한다.


조카의 얘기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이제 사측은 모든 사원에게 “넌 언제든지 잘릴 수 있으며 너를 자를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라는 점을 은연중에 얘기할 수 있다. 노조가 있어도 소용없고 행정소송을 해도 소용없다. 사측의 공적인 권력이 엄청난 폭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노조와 노동자의 권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사협상인들 온전히 가능하겠는가? 노조가 주관하는 투표가 온전히 가능하겠는가? 하다못해 노조 결성이 온전히 가능하겠는가? 노조가 벌이는 행사는 치러질 수 있겠는가? 기울어진 권력의 추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굴종을 요구한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이다.


일반해고 지침의 도입을 앞두고 사측은 거의 모든 대화를 중단하고 연기하고 있으며 젊은 노조원들은 노조의 일에서 속속 손을 떼는 중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노동계에 핵폭탄급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혁명적인 ‘노동개악’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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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80년대 노동 대투쟁 이후 빈약하게나마 쌓아올렸던 노동운동의 성과가 남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실질적인 동력을 잃었으며, 정치권은 제 살길 찾아 헤매느라 정신이 없다. 과거 방식의 민주화 투쟁은 더 이상 적용하기 힘든 시대이며 그런 투쟁의 방식을 여전히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약자들은 연대할 줄 모른다. 누구나 마음은 있으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 상처내고 싸우기 바쁘다. 정권은 순식간에 유신시대로 퇴행하고 있고, 언론은 광고 영업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을 역사속의 일로만 여기고 있다. 당대표는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대놓고 외치는데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서 사진 찍기를 즐긴다. 외교 또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검찰은 권력의 시녀가 되어 반정부적 인사들을 얽매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법원은 법원대로 권력의 의중에 맞는 판결을 내리면서 스스로를 모욕하길 즐기고 있다.


우리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시대에 사는 중이다. 그래도 막아야 할 것은 막아야 하는 법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지 않은가.


끝.




뱀발:


이 글을 쓴 직후, 9월 7일 노사정위원회 주최로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 토론회>가 열렸다. ‘일반해고 지침’건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한다고 해도 기대효과는 미지수이고 갈등만 양산할 수 있으니, 장기적인 논의를 거쳐 법령의 개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다수의 노동전문가들은 이 쟁점과 더불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건’ 역시 문제가 많은 내용이니 중장기 과제로 미룰 것을 주장하며, 청년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 당면 현안을 먼저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 제안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밝히면서 “이 과제들이 논의 의제로 반드시 포함돼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공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