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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9. 목요일

홍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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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세스 로건, 에반 골드버그

 

주연: 세스 로건, 제임스 프랑코, 다이애나 방, 랜달 김, 리지 캐플란, 토미 창, 찰스 라히 천, 도미니크 라롱드, 저스틴 리, 리즈 알렉산더

 

음악: 헨리 잭맨

 

촬영: 브랜든 트로스트

 

R (17세 미만은 부모 동반 하에 관람) / Color / 112분

 

원제: The Interview



<인터뷰> 목숨을 건 우스갯소리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국내 개봉할 일 없을 거 같은데, 스포일러 따져봤자 뭐하겄냐 싶어서 언급했습니다>


그 문제의 작품, 세스 로건, 에반 골드버그 감독의 <인터뷰>를 1월 17일에 감상했다. 얼마나 문제가 될만한 작품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무료 상영 하는 미국 웹 사이트가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년 개봉 전에 일어난 해킹 사태 때문에 손해를 입었을 것 같은 소니 픽쳐스에 대해 안타까움이 생겨나기도 했다. '어휴. 어떡하나, 소니 불쌍해서. 좀 나아지라는 의미로 우리나라 다음 대선에서 1번 찍어줘야겄네' 같은 생각을 했다가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부자는 망해도 3년 가니 말이다.


이미 줄거리는 충분히 알려진 바 있듯, 미국에서 말초적인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잘 나가는 (에미넴이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든가, 매튜 매커너히가 염소와 수간하는 걸 특종으로 내보낸다던가) 진행자 데이빗(제임스 프랑코)과 해당 쇼의 PD인 애론(세스 로건)이 김정은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얘기다.


김정은을 인터뷰 하고자 하는 계획이 세워진 이유는 자신들의 쇼가 1000회를 맞이하는 날이라는 것과 시사 프로그램 PD를 하고 있는 대학 동기 때문에 정치, 경제 분야에 대한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애런의 욕망이 작용한 결과다. 북한의 김정은이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을 안 데이빗의 영향도 있다. 그런데 가기 전, 두 사람은 미국 CIA의 요청을 받는다. 김정은을 인터뷰 한 김에 암살까지 해 달라는 것이다.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은 예정대로 평양을 방문하고, 애런은 거기서 김정은의 보좌관 중 한 명인 박숙영과 사랑에 빠진다. 데이빗은 자신의 팬인 김정은을 이해하게 되고 점차 친구가 되면서 작품은 더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공동감독이자 배우, 작가인 세스 로건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그는 에반 골드버그와 함께 2013년작인 <디스 이즈 디 엔드> 때부터 공동감독을 했으며, <인터뷰>는 그 파트너쉽의 두 번째 작품이다. 혹은 세스 로건, 제임스 프랑코의 배우로서의 파트너쉽이라고 봐도 되겠다. 이 쪽 역사가 더 길기도 하고. 


그는 13세 때 이미 자기 이름을 내 걸고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했으며, 16세가 됐을 때 주드 애파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함께 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스 로건은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만든 주드 아패토우 감독, 그와 관련된 다양한 감독들과 함께 배우, 작가 등으로 일을 한 일명 '주드 아패토우 사단'의 일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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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아패토우 감독 (오른쪽). 세스 로건은 그와 함께 <사고친 후에>, <퍼니 피플>, <나쁜 이웃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등을 함께 작업했다.


아패토우 사단의 작품들이 한국 극장 개봉을 한 경우는 무척 드물었지만, 그나마 그 작품들을 비롯해 2차 매체로 출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이거 한 감독의 작품 같은데?'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말 그대로 '아패토우 사단'의 것이라서다. 이는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면 영화사의 간섭이 덜할 것이라는 주드 아패토우 감독의 판단 때문이었고,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결과물이었다. 거기에다 흥행까지 성공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자가증식 하듯 그들만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역시 국내에 개봉하지 못했다. 해봐야 흥행이 안 될 거라는 게 이유였지만,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거 같아서라는 설이 있다. 독보적인 양아치의 성품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 정권답게 <인터뷰>의 개봉 전부터 그들은 여러 차례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으며, 소니 픽쳐스가 해킹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킹의 주체가 북한이 아니고 소니 픽쳐스의 내부 관계자, 혹은 그곳에서 나온 사람이 벌였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더니 이 작품이 독재 국가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졸지에 찰리 채플린이 감독한 <위대한 독재자>의 21세기 버전이 된 셈이다. 이건 뭐랄까, 서울이 낳고 가카가 키워줘서 차세대 대권 주자가 된 모 국회의원의 행보를 보는 듯한 느낌. 뭐 그런 거랄까.


사실 이 상황을 보면서 많이 놀랐었다. 그건 내가 봤던 주드 아패토우 사단의 작품들과 <디스 이즈 디 엔드>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 작품 줄거리가 특히 경악스러웠는데, 지구 종말이 다가오는 배경 속에서 자기희생이라는 미덕이 발휘되어 천국으로 구원 받는 인물들을 그린 판타지 호러 액션 코미디였다. '몇 천 년 전 성서에서 나와 충분히 곰탕 우려내듯 우려먹었을 설정'이 여전히 그 동네에서는 잘 통한다는 점이 묘한 감흥을 느끼게 만들었다. 몇 백, 혹은 몇 천 년 전 논리인지라 질릴 법도 할 텐데 작품이 박스 오피스를 석권했으니.


ⓒ Columbia Pictures, Point Grey Pictures, Mandate Picutres. All Rights Reserved.

 <디스 이즈 디 엔드>에서 보여지는 자기희생의 순간. 천국에 계신 휘트니 휴스턴 여사님도 감동받으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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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세스 로건이란 영화인은 역겹고 어두운 요소들. 그러니까 대소변, 마약, 섹스, 살인, 음주, 폭력으로부터 웃음을 유발하는 센스가 엄청나게 독보적이다. 그러나 자유를 부르짖을 만큼 급진적이거나, 새로운 영화적 기법을 실험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그와 주드 아패토우 사단은 어딘가 미성숙하고 여전히 사춘기인, 혹은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듯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인생의 순환 마냥 꾸준하게 다룬 장인에 가깝다.


<인터뷰>도 사실 언젠가는 세스 로건의 손에서 한 번 만들어질 이야기였으리라고 본다. 2~30대에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고 전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스탈린주의 독재국가의 통치자' 김정은. 이건 딱 감독이 그전까지 다뤄왔던 캐릭터들 그 자체이지 않은가. 작품은 어쩌면 두 감독이 자기네 작품 속 캐릭터 같은 김정은을 인터뷰 하고픈 마음을 이야기 속 두 주인공에게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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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터뷰>는 동해를 'Sea of Japan'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개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로 가자는 제임스 프랑코의 다소 비하적인 대사, 한국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불분명한 발음만으로도 꽤 많은 악평을 듣는 듯하다.


혹시 <인터뷰>를 보면서 '북한'이란 국가를 바닥까지 들쑤시는 비판의식, 인권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기대했다면 그건 관객들이 잘못 생각한 거다. <인터뷰>는 쉴 새 없이 성적 상징과 잔혹한 고어, 약에 취한 등장인물들이 헐벗은 여자들과 놀아나는 행동들을 벌이는 인서트 컷을 인장처럼 삽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뿐인가? 심각한 상황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발기된 성기를 보고 발기 됐다 아니다를 가지고 몇 십 초를 싸워대는 시퀀스를 기어이 삽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미 <인터뷰>는 공식 포스터에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표현하고 있다. '이 무식한 미국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 라고. 나름대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지점도 놓치지 않으려 애는 쓰지만,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표피적이며, 또 우리가 다 아는 거다.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 역시 평양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주석궁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디스 이즈 디 엔드>도 그 고리타분한 '천국과 지옥' 이야기로 메워왔던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줄거리의 참신성이나 '북한에 대한' 풍자, 통찰보다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과 오직 한 몸 바쳐 웃기리라는 태도가 훨씬 크다.


실제로 <인터뷰>가 미국 극장에서 개봉할 때의 풍경을 보도한 한 언론의 글에서는 '작품 속에서 북한의 문제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진지하게 몰입하더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의 문제에 관해서 듣기만 들었지, 남의 나라 일이라 크게 와닿는 게 없는 판인데 그들도 똑같을 것이다. 그러니 작품에서 묘사된 정도만으로도 받는 감흥이 크겠지. 그리고 요새 정부가 북과 다를 바 없으니 착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온전히 다 안다고 볼 수도 없을 듯하고. 농협 해킹 사건 같은 거 생각해보라. 그런 거 보면 남한의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북한이란 존재도 충분히 왜곡되고 뒤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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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극장 개봉일날 간판. 'Freedom Prevails' (자유가 승리한다) 란 말이 붙어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은 북한 그 자체보다, 북한을 그 꼴로 만든 김씨 왕조를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와 미디어 매체를 바라보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아마도 이건 작품 속에서 CIA라는 집단이 개입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CIA는 곧 미국의 음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작품에 대한 비판 중에 미국의 우월주의를 부각시켰다는 이야기들이 있던데, 내가 볼 때는 미국을 조롱했으면 했지, 절대 미국 우월주의를 표현하고자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관심과 묘사는 90년대 존 아브라함스 감독의 <못말리는 람보>에서 묘사된 중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부분을 놓고 사실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 그러냐면 만든 이들이 '정말 북한에 대해 나는 좆도 아는 게 없다' 라는 포지션을 대놓고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북한의 모습들은 별 탈 없이 구현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어떤 강대국으로서의 오만함이라기보다는 정말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스스로를 비하하는 느낌을 주기에, 측은한 마음에 우리가 가르쳐줘야 겠다는 생각이 더 드는 편이다. 사실 <인터뷰> 제작진의 전략이겠지만 어설프게 아는 척해서 마구 왜곡하는 거보다는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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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헐리우드는 김정은이 했을 법한 역할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게 맡기곤 했다. 

후세인의 콧수염과 듬직한 덩치, 그리고 새끈한 미소는 믿음직한 '악역' 으로 제격이었으니 말이다.

(후세인 후에는 오사마 빈 라덴)


이 중 패러디 계의 거장이었던 ZAZ 사단이 만든 <못 말리는 람보> 같은 작품이 주목할 만하다.

'독재자나 핵은 무슨, X까라 그래. 난 니들 이용해서 우리 나라 깔 거야. 1타 2피 할거야'

같은 패기가 돋보인달까. 위의 스틸은 <못 말리는 람보>의 한 시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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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가 사담 후세인을 이용한 것처럼,

요 몇 년 새 한국 정부가 '김 씨 부자의 북한' 을 이용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농협 전산망 해킹 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지.

돈 인출을 하지 않고 거래 내역만 지워졌다고 해서 상당히 껄끄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나서는 흐지부지 끝났다. 

이 사건에 대한 어떤 분의 댓글이 기억난다.

'부카니스탄은 김정일 위원장의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해킹능력만 과시하고 싶었을 뿐, 

자본주의국가 남한의 더러운 돈 따위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위의 댓글을 읽으며 '호오~?' 라고 외쳤다. 정부 발표보다 저 드립이 훨씬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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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All Rights Reserved.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아서인지, 사실 한국 문화권에 대한 작품의 희화화적 묘사는 굳이 오리엔탈리즘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냥 재밌게 다가왔다. 작품을 만든 이들이 한국 관련 문화를 단편적으로 끌어온 건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니다. 두 감독의 전작인 <디스 이즈 디 엔드>에 짤막하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사운드트랙으로 흘러나온 적 있었다. 그리고 세스 로건이 제임스 프랑코와 함께 배우로 출연했었던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파인애플 익스프레스>에서는 켄 정을 필두로 한국계 갱단이 나와서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작품은 탄탄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한 대우 라노스 차를 이용한 개그로 화룡점정을 찍었더랬지. 음.


비록 희화화이지만, <인터뷰>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수준이다. 이를테면 켄 정의 한국어 발음은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인터뷰>는 몇몇 대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리고 박숙영을 연기하는 다이애나 방이나, 김정은을 연기하는 랜달 김의 발음도 나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며 굉장히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한글의 오타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뭘 해도 리 타마호리 감독의 <007 어나더데이>보다는 나으니 됐다. 제임스 본드가 예비군 군복을 입고 나온데다, 한국어 대사를 했던 배우들의 발음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DVD 출시 때 성우들이 더빙을 해었지.


ⓒ Columbia Pictures, Apato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중에서.

"You just got killed by a Daewoo Lanos, mother fucker!"라는 대사로도 유명한 신이다.


 

ⓒ Columbia Pictures, Point Grey Pictures, Mandate Picutres. All Rights Reserved.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 감독은 전작 <디스 이즈 디 엔드>에 삽입한 '강남 스타일' 때문에라도 

한국이란 국가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쏟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가령 <디스 이즈 디 엔드>의 DVD/BD에 수록된 음성해설에서 두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극장 상영할 때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강남 스타일'을 대체할 만한 다른 수많은 노래들을 선곡해 봤다.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실시간으로 했었다. 근데 관객들이 '강남 스타일'을 졸라 좋아했다.

10억 뷰(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역시 틀리지가 않더라.

'강남 스타일'은 시바, 무슨 국가(national anthem) 같다."


<인터뷰>에서는 윤미래의 'Pay Day' 를 무단으로 삽입했다가 걸렸다고.


<인터뷰>는 또한 액션영화 수준으로 동적인 시퀀스들이 빠르고 박력있게 연출되어져 있다. 예컨대 (감독이 다르지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보면, 작품은 웃기되 중간중간 등장하는 액션 연출이 거의 늘어지는 수준이라 발군의 코미디 감각이 다소 무뎌지는 불상사가 생긴 적이 있었다. 비록 제임스 프랑코가 한 쪽 발을 차창 밖으로 내밀고 운전하는 헛웃음 나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뭔지 모르게 늘어진다. 해당 시퀀스의 카메라 앵글이나 움직임, 편집 등의 영화적 연출 모두 다.


ⓒ Columbia Pictures, Apato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당연한 말이지만 세스 로건이 관련됐다고 해서 무슨 영화의 완성도가 일부러 떨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던 이전작들이 그의 코미디적 감각을 온전히 살려내는 데 어딘가 부족한 부분들이 확실히 띄었다는 점이다. 작가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감독까지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세스 로건은 작가로도 모자라 온전히 자신의 의도를 살리고자 감독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디스 이즈 디 엔드>와 더불어 <인터뷰>는 기술적인 역량에서 많이 유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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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를 위해서 당신들이 연출한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봤어요. 특히 마일리 사이러스의 도끼자국 편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도끼자국' 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못 들어봤었는데, 방송을 보니 진짜 그녀의 성기를 잘 나타낸 단어인 거 같아요. 아주 깊었어요."


"맞아요. 아주 깊어요. 꼭 물소 발 같죠."


"미국인들은 성적인 표현을 하는 것에 아주 능숙한 거 같아요."


"맞아요. 우리가 전문이죠."


정확히 이 작품이 북한을 쓰는 방식은 일종의 저격총 같은 거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을 바라보기 위해 쓰는 저격총. 물론 그 총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가령 CIA는 애꿏은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와 PD가 눈엣가시 같은 김정은을 암살해주길 원한다. 결국 주인공들은 승낙하고, 자신들은 방송인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김정은을 없애기 원하지만 CIA 측 요원들은 극구 만류한다. 구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결국 미국이 개입했다는 흔적 없이 김정은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완전범죄다. 자신들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기를 꺼려하면서 위험한 일을 해주러 가는 사람들에게 방탄 조끼 하나도 제공하지 못한다.


데이빗은 포르노조차도 '머니 샷' 이라고 해서 결정적 순간들을 숨기지 않는데, 당신들은 그나마 포르노 만큼 당당하지도 못하다며 이들을 조롱한다. 개고기 먹는 나라를 조롱하며, 동해를 일본해로 알고 사는, 그래서 평양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말초적 TV쇼의 진행자이자 철딱서니 없는 무지렁이 미국인에게도 CIA는 문제 있어 보이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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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지렁이 미국인 데이빗이 잠시나마 자신의 무지함과 문화적 편견을 반추하고 극복하는 계기는 김정은을 만나게 되면서다. 자기보다 더 철딱서니 없는 놈을 만나 위로하는 와중에 성장하는 셈이다. 데이빗은 김정은을 만나러 가기 전 마치 소년처럼 들떠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김정은은 항문이 없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등등.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압권이다. 우리 지도자 동지께서는 내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절대 똥을 싸시지 않는단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터뷰> 속 김정은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케이티 페리의 음악, 그 중에서도 'Firework' 와 마가리타를 좋아하면서, 아버지인 김정일이 자신을 여자애처럼 봤던 기억이 컴플렉스를 만들었다고 데이빗에게 고백한다. 케이티 페리와 마가리타를 좋아하는 데이빗은 그건 절대 부끄러운 취향이 아니라고 김정은을 위로하며, 두 사람은 곧 친구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이 관계는 데이빗이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의 실상을 알게되면서 끝이 나지만 말이다.


김정은은 적어도 데이빗에게는 작품 속에서 좋은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컴플렉스를 숨기기 위해서라면 북한 국민들을 다 죽여도 상관없다는듯 광기를 내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곧 나약함이라고 생각하며, 폭력과 괴롭힘으로 권위를 인정 받으려는 악인에 다를 바 없다.


ⓒ Columbia Pictures, Point Gr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터뷰>의 삽입곡 'Firework' 를 부른 미국 가수 케이티 페리는 실제로 

'10대들의 아이콘'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리한나와 더불어 라이브 못하는 가수로 자주 거론된다.

그래서 2~30대 나이 먹고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어째 좀 그런 감이 그네들 나라에도 있다고 한다.

저스틴 비버 수준까지는 절대 아니더라도,

미국 10대 남자들이 케이티 페리를 좋아한다고 하면 놀림 받기도 한다데.


그러나 우습게 볼 게 아니다. 'Firework' 가 수록된 그녀의 3집 앨범은

미국 빌보드에서 여성 가수로는 11년 만에 한 앨범에서 세 장의 싱글을 연속 차트 1위를 등극시키는 등

음악적, 판매수익적으로도 꽤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사실 <인터뷰>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작품 속에서 가장 이득 본 사람은 케이티 페리가 아닐까.

그녀의 노래는 작품 속에서 가장 성스럽게 묘사된다. 보고 있으면 그녀가 왜 인기 있는지 알 거 같다.


ⓒ Columbia Pictures, Point Gr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참고로 소니 픽쳐스는 <인터뷰> 개봉 전에 결말 장면에 대해 북한이 불만을 표시하자,

나름대로 순화도 시켰고 삭제까지 했다. 그러나 자사가 해킹당하자,

빡쳐서 김정은이 죽는 이 결말 장면을 유튜브에다 풀어버렸다.

덕분에 관객은 정식 공개 시에 이 명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작품에서 가장 압권인 순간들은 모두 케이티 페리의 노래로부터 등장한다. 그녀의 음악은 관객에게 두 가지 감흥을 준다. 첫 번째는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그나마 낫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나마 나은 사람마저도 '무식한 서부 자본주의 돼지'라는 점이다. 김정은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알게된 데이빗은 그를 죽이자는 모의에 동의한다. 숙영이 미국이 얼마나 더 많은 실수를 해야겠냐고 다그치지만, 데이빗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김정은은 죽어야 해. 그게 바로 미국식이야.'


난 저 대사를 정말 좋아한다. 정말정말 웃긴 대사인데 뼈가 있다. 그나마 상태 심각한 독재자를 보며 조금이나마 철이 들까 싶었지만, <인터뷰>의 데이빗이란 인물은 김정은보다는 당당하지만 절대 철 들지는 않는 인물이다. 위에서 존 랜디스 감독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작품 속에서 전개의 영향을 준 작품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데이빗과 애런의 관계는 작품 속에서 곧잘 프로도와 샘, 혹은 절대반지와 골룸으로 거론되는 편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프로도와 샘의 관계가 되며, 그들의 모험으로 거의 확정되다시피 한다. 김정은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반추할 줄 알았지만, 그는 북한에서의 일들을 '판타지 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미국의 대표 TV 쇼 진행자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제니 레인이 커버한 'Firework'가 울려퍼지며 김정은이 정말 '불꽃놀이'로 저 하늘의 별이 되는 모습은 솔직히 무지막지하게 웃기지만, 또 심란하기도 하다. 데이빗도 결국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TV에 방영되지 않았으며, 그와 애론은 앞으로 더더욱 미국의 제일 잘 나가는 미디어 셀레브리티로, 혹은 진정한 언론인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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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화장실 코미디의 익숙한 특성들을 유지하는 중에 일부러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골라서 철이 덜 든 주인공들의 모습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말하자면 관객을 상대로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에 와서 우리가 흔히 '미국식 코미디'라고 부르는 '화장실 코미디'는 대부분 미국 안에서 인물들이 뭔가 개인적 소동을 벌이는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서 그치기도 했었다.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는 <디스 이즈 디 엔드>에서는 묵시록을,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현실, 그리고 북한과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소재로 삼음으로 인해 자신들이 다루고자 하는 화장실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시키려 한다.


21세기의 10년 동안 화장실 코미디계에서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에 존 허위츠, 헤이든 쉬로스버그 감독의 <해롤드와 쿠마 2 : 관타나모로부터의 탈출> 같은 작품이 있는데, 한국계 미국인 해롤드와 인도계 미국인인 쿠마가 주인공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던 이 작품은 2편에 들어와 주인공이 백인이 아니기에 더욱 더 테러리스트로 오해한 미국 정부의 편견으로 인해 정치범 수용소인 관타나모 감옥에 갇혀 수난을 겪는 설정을 보여준다. 테러리스트가 있어야 밥줄이 끊기지 않는 미국 안보부서의 계산 때문이기도 한데, 그닥 웃기지 않은 화장실 유머로 인해 골 때리는 아이디어가 다소 빛을 바랬던 속편이었다. 흔히 똥 싸려다가 설사 싸는 것처럼 속편들의 딜레마에 갇혔다고나 할까.(래리 찰스 감독의 2012년작인 <독재자>가 잘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내가 아직 그걸 못 봤다. 그래서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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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허위츠, 헤이든 쉬로스버그 감독의 <해롤드와 쿠마 2 : 관타나모로부터의 탈출> 포스터.

한국 관객에게는 리부트된 <스타 트렉>의 술루 역으로 익숙한 존 조가 출연한다.


<인터뷰>는 소니 픽쳐스의 해킹 사태 때문에 가장 과격하고 문제 많아 보일 것 같았을 뿐, 오히려 적절해 보이는 작품이다.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가 과거부터 다루던 인물 유형들이고, 철저히 배 잡고 웃으려는 목적으로 봐도 그 퀄리티는 전작들의 센스를 유지해내는 수준이다. 특유의 더러운 화장실 코미디 역시 그만큼 더러운 내막과 문화를 숨기고 포용할 줄 아는 미국의 미디어와 정보기관들을 길동무 삼음으로써, 나름의 완충제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인터뷰>는 문제작이다. 이 작품을 만든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 제임스 프랑코는 흔들리지 않은 채 화장실 코미디의 또다른 광맥을 장인의 자세로 뚫는 중이다. 그 장르의 특성상 만약 이것이 활성화 된다면, 관객들은 수많은 감독들이 만든 꽤 많은 수의 졸작들을 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트리오의 다음 작품만큼은 기대된다. 영국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 급은 아니더라도 세스 로건은 나름의 웃음이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코미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s.1 - 미국 공식 포스터에서도 작품의 이름이 한글로 떡하니 <인터뷰> 라고 되어 있는데, 왜 우리나라 언론들은 <더 인터뷰>, <디 인터뷰> 라고 붙여대는지 모르겠더군요.


p.s.2 - 'Sea Of Japan' 대사 논란은 이 작품 만든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표기 되어 있는 자료들이 배포되지 않도록 더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정부가 앞장서서 말을 해야 하는데, 하고 있는 꼴을 보면 현재로서는 많이 힘들겠죠.


p.s.3 - 가끔 느끼는데, <인터뷰>의 해킹 사태는 북한이 한 짓이 아니라 VOD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한 소니 픽쳐스의 자작극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정확히 미국 내에서 '영화를 극장 뿐만 아니라 VOD, DVD/BD로 동시에 공개하자'는 논쟁이 처음 벌어진게 제 기억으로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버블> 개봉 때였던 걸로 아는데, 그 이후로 미국 영화계는 나름대로 작품 공개를 위한 배급망을 실험 중이었죠.


VOD 개봉도 함께한 <인터뷰>가 그 분야로 벌어들인 수익이 지난주에 4천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그로 인해 벌인 자작극일까 싶기도 합니다. 근데 또 그리 생각하자니 소니 픽쳐스의 기밀들이 마구 누출됐었으니 아닐테고, 대북 제재를 위한 오바마 정부의 행각이라 보기도 그렇고.


p.s.4 - 세스 로건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폭격에 서명한 영화인들 중 한 사람이라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거에요.


p.s.5 - 작품 속에서 기타 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이 영상을 참고해서 구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터뷰>의 이 시퀀스가 표현수위와 상황 자체가 굉장히 잔인한데, 원본 영상은 그와 다르게 대단히 섬뜩한 구석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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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