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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2. 월요일

김현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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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십 대는 힘들겠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서른이 넘으면 편해진다고 하던데 삼십 대 초입을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 여전히 산다는 건, 시지프스가 굴린다는 바위처럼 곧 역주행해서 나를 깔아 뭉갤 것만 같아요. 미는 손을 놓아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 어차피 애 낳고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살아낼 자신도 능력도 없어서 진작에 포기했기에 그나마 다행인 건 임신과 출산을 하고 싶다는 초조함에서는 자유롭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니 이십 대와는 또 다른 괴로움이 있더군요. 이제 나는 더 이상 매력이 없는 게 아닐까.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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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훅...


물론 외모만이 사람의 매력은 아니고 천상 노안이라 18살 때부터 이 얼굴이었으니 소위 훅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요. 남자는 나이 들면 아버지, 여자는 나이 들면 어머니를 닮는다고 하죠.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판박이처럼 닮았는데도, 올해 찍은 사진을 보니 정반대로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나오더군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가 나이 들었구나. 그러면서 이십대의 세월이 아까워졌어요. 더 놀 걸 그랬냐구요? 고학과 집안 형편에 시달리느라 남들 다 가보는 해외여행 같은 것도 꿈도 못 꿔 보고 중국집에서 이과두주를 곁들이는 게 최고의 도락인 시절들이었지만, 바쁘게 일했고 바쁘고 마셨고 바쁘게 사랑했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돌아가도 다시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다만 내 몸을 잘 알지 못한 게 아쉬워요. 활발한 성생활을 할 기회는 아무래도 이십대에 많으니까요. 예쁘고 어리고 이런 걸 떠나서 일단 기운이 넘치니까, 나가서 놀 일도 많고 일로든 뭐든 이성을 만날 기회도 많고 사랑할 기회도 많으니까. 한 시간에 버스가 몇 번 다니는 천안 산자락 아래 처박혀 사는 지금 돌아보면 꿈같은 날들이네요. '그러면 기회가 있을 때 실컷 하지 그랬냐'라고 물으신다면 거기에도 마땅한 대답은 못 하겠어요. 활발한 성생활을 할 기회는 됐는데 그 분야에서는 소극적으로 사는데 온 힘을 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구세대적인 정조 관념이 있냐구요? 그럴 리가. 혼전순결주의냐구요? 그럴 리가. 원나잇이니 엔조이니 퍽버디(제 친구 하나는 ‘떡친구’라고 하더군요) 같은 건 싫지만 마음 가는 남자한테 안기고 싶은 그냥 여자죠. 근데 그 골치 아픈 이십대를 싫어! 라고 말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던 게 억울해요. 털털한 성격 때문인지, 아이라인이 너무 진했는지, 상스럽게 말해 ‘잘 주게’ 생긴 건지. 알면 나를 얼마나 안다고, 바에서 킵해 둔 양주 찾듯이 이러는 인간 참 많더군요. 


야, 한번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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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는 '로맨틱'


물론 정확한 단어의 사용이 꼭 이렇지는 않았지만 요점은 그냥 그거였던 말들, 날들. '그래서 싫어!'라고 하면 '죄송합니다'라고 물러가는 신사는 한국에 별로 많지 않아요. 야 그러지 말고 한 번 달라, 응? 응? 응? 응? 응? 싫다고 하면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기 때문에, 결국 저는 수없이 자기검열을 하곤 했죠. 또 조금만 천박하게 말할게요. 느낌 확 오라고. 바로 이런 검열이죠. 내가 줄 것처럼 하다가 안 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안 그랬는데, 그리고 그렇게 구는 여잔 나도 싫은데. 그래서 안 해, 안 해, 안 한다고! 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20대의 많은 날들을 보냈네요. 그러니 언제 내 몸을 알고 즐거워해 보겠어요? 게다가 성교육 지침이니 노조 같은 게 안 되어 있는 손톱만한 회사에 다니면서 술이 몇 순배 돌면 제 손목을 자기 것처럼 주무르던 박 차장이니 이 과장이니 하던 인간들, 어두컴컴한 호프집에 앉았을 때 허리께를 슬슬 더듬던 최 부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의 손가락.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고 싶은데 또 지겹게 찾아오던 그놈의 자기검열. 어떤 자기 검열이냐구요? 이런 거죠. 


'내가 그렇게 싸 보였나?'


그래서 여자인 걸 이용해 볼 기회나 속셈을 품기는 커녕, 내가 여자인 게 항상 싫었어요. 아니면 청순가련한 여자라서 그런 수작을 감히 못 걸 타입이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여러 번 했죠. 그런데 청순가련한 친구들도 맘고생은 많더군요. 그런데 딱 한 번, 모르는 남자들 손을 덥석 잡아 주고 싶은 때가 있어요. 아니, 내 손을 살짝 만진 남자한테 그냥 실컷 잡으세요, 자 여기! 하고 내밀어 주고 싶은 때가 딱 한 번 있었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때는 몇 년 전이었고, 대학원을 휴학하고 새벽에는 녹즙 배달, 저녁까지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때였죠. 몇 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요. 우연히 장기수 돕기 일일호프가 열리는 걸 알게 됐어요. 자원봉사자를 구한다고 하길래, 쉬는 날 기꺼이 호프집을 찾아갔어요. 자원봉사자가 많지도 않았지만 대부분 갓 대학 1학년이 된 어린 학생들이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일솜씨가 빠릿빠릿하질 않아서, 현직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던 제가 쟁반 들고 부지런히 왔다갔다하게 되었죠. 100평 쯤 되는 넓은 홀이라서 한참을 정신없이 다니다가 한켠에 좀 묘한 손님들이 있는 걸 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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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불교인권문화제에 참석한 비전향장기수들


그런 일일호프 같은 곳에는 대부분 손님들이 저녁 때 오시잖아요? 문을 열자마자 얼굴에 주름이 고랑처럼 깊게 팬 할아버지 몇 분이 앉아 계시더군요. 보통 한국의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술을 몇 잔 하고 나면 TV조선 음량처럼 사운드가 커지잖아요? 그런데 정말 묵묵하고, 정숙하게 술만 드시더군요. 친구들끼리 자원봉사를 온 대학 새내기들이 까르르거리다가 이분들의 주문을 놓쳐도, 이 어르신들은 그냥 빈 잔을 쥔 채 기다리기만 하시더군요. 어쩐지 보기에 딱해서 그쪽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아예 이 테이블 전속으로 시중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과묵한 이 일행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마다 뭔가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그건 ‘고독’이었던 것 같아요. 고독은 돌림노래처럼 다른 고독을 지닌 사람을 부르죠. 


그래서 제가 그 테이블에 유독 입의 혀처럼 굴었나봐요. 아직 비어 있는 홀에서 묵묵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 어르신들이 누군진 몰라도 그냥 놔둘 수가 없더라구요. 좀 이상했거든요. 보통 어르신들은 이거 가져와라 저거 내와라 사람을 턱으로 부리는 데에 능한데 주문할 때도 어쩐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질 않나, 접시나 컵을 내갈 때 몸이 닿을라치면 확 움츠러드시질 않나. 어딘가 좀 묘했어요. 그럴수록 웬지 마음이 짠해서, 서비스직으로 단련된 미소도 열심히 발사하고, 뭘 달라고 부르실 때마다 총알같이 뛰어갔죠. 처음에는 굳어 있던 할아버지들의 표정이 조금씩 살살 풀리더니 몇 시간 후에는 미소도 지으시더군요. 무슨 철벽남이 넘어간 것도 아닌데 흐뭇하고 기뻤어요. 주최측과 연관이 있는 좀 능란한 자원봉사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도착하면서, 그분들이 누군지 알게 됐어요. 왜 그렇게 짠했는지 알 것도 같았어요. 그분들이야말로 어쩌면 이 일일호프의 주인공이었던 거죠. 출소한 장기수 할아버지들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홀이 붐빌 때쯤 되자 어르신들도 보통 손님들과 다르지 않게 웃으면서 말씀도 나누시고 맥주나 막걸리도 제법 드셨어요. 물론 저는 여전히 이분들 테이블을 최우선으로 하고 벨이 울릴 때마다 다다다 하고 뛰어갔죠. 다른 데 서빙을 하다 곁눈질로 보니 접시와 잔이 비어서 슬슬 부르실 때가 됐구나 싶더니 역시였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드시더군요. 네! 하고 달려갔어요.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아가... "


물론 저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죠. 아이 러브 유 베이비, 이런 말도 못 들어봤는데 하물며 아가, 라고 불려 본 적이 있을 리가. 할아버지는 꼬깃꼬깃 접힌 일일호프 티켓을 여러 장 꺼냈더니 저에게 건네 주셨어요. 10만 원 어치나 되더군요. 


"이걸로 좀... 아무거나 적당히 골라서 차려 주려나...?"


씩씩하게 네! 하고 대답하며 주름진 손에서 티켓을 받아 드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계시더군요. 제 손은 예쁘지 않아요. 아이처럼 조그맣고 몽톡한, 어른들이 일 잘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그런 손이죠. 예쁠 것도 고울 것도 없는 그런 손인데 그 분은 그런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군요. 그렇게 신기한 걸 보듯 물기 묻고 둥글넙적한 제 손을 계속 보면서 일일호프 티켓을 건네시던 장기수 할아버지는 제 손가락도 아니고 손등도 아니고 손목을, 뜨거운 난로를 건드려 보는 아이처럼 집게손가락으로 0.8초나 될까 말까, 아주 살짝 건드려 보시더군요. 손을 떼고는 갑자기 누구에게 혼난 것처럼 혼자 화들짝 놀라시는 걸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러셨던 모양이에요. 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티켓을 세고 장수를 확인해 드렸어요. 그제야 겁먹은 듯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간신히 미소가 돌아왔어요. 저는 카운터에 티켓을 내고 적당한 술과 안줏거리를 골라 내가고는 뭔가 자꾸 속이 상하고 화가 났어요. 손목을 만졌다고 화가 난 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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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이라는 최장기수 기록에 올라있는 김선명씨가 출소 후 노모와 해후한 모습

(다큐멘터리 '송환'의 한장면)


아니 정 과장이니 이 부장이니 하는 새끼들이 아주 제 것처럼 주무르던 그까짓 내 손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손목 한번 확 잡아 드릴걸. 아예 말해 드리고 싶더라니까요. 괜찮아요, 닳는 것도 아닌데 실컷 잡으세요, 하고. 아니 아예 쏟아진 맥주에 미끄러진 척하고 무릎에 한 번 앉아 드릴 걸 그랬나? 아니 그러면 내 쪽에서 성희롱인가?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세상에는 남의 몸을 제 사유재산인 양 찰흙처럼 주물러대고도 미안한 줄 모르는 놈들 천지인데, 높은 것들은 남의 가슴을 건드리고도 뭐 손녀 같아서 그랬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똥처럼 싸지르는데, 이런 인간들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맡겨 놓은 제 것 찾듯이 남의 몸을 한 번 달라고 조르다 화까지 내는 놈들이 하늘의 별처럼 넘쳐나는데 손톱 끝으로 내 손목을 살짝 건드려 보고는 저렇게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고독은 다른 고독을 부른다고 제가 말했나요? 0.8평의 고독을 제가 당해낼 수는 없겠지만 취객이 하수구인줄 알고 오줌을 싸는 A4용지만한 창문이 달린 지하방에 살던 저도 고독하긴 했던 것 같아요. 왜 남의 손을 만지고 그러세요! 하기엔 마음이 뭔가 찡, 하고 울렸어요. 사실 만졌다고 하기에도 뭐한 찰나의 순간이었어요. 그냥 내가 대신 억울했어요. 그 좁은 방에서의,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긴 고독이. 한 번 달라고 치근대긴 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을 시간들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가락도 아닌 손톱 끝으로 여자애 손목을 살짝 건드려만 보는, 죽어도 내가 알 수 없을 그 고독이. 아마도 그 고독 때문이겠죠.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키스를 할 줄 알던 남자보다도, 능란하게 여자를 안을 줄 알던 남자보다도, 몸과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남자의 감촉을 골라 보라면 아무래도 그 때 그 짧은 순간, 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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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